낭왕전생 9권 – 20화 : 구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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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20화 : 구출 (3)


구출 (3)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머리통이 부서졌는데 무슨 재주로 살 수가 있겠는가.

“대체 왜 온 거냐?”

남궁벽이 원망 섞인 눈빛으로 설우 진을 쳐다봤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난 빚지 고는 못 사는 성미다. 나 때문에 네 녀석이 납치당한 걸 뻔히 아는데 어 떻게 가만히 있겠냐!”

설우진이 투덜거리며 남궁벽의 사 지를 결박하고 있던 쇠사슬을 잘라 냈다. 오랫동안 고초를 당한 탓인지 남궁벽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앞으 로 고꾸라졌다.

“난 보다시피 제대로 걷지도 못한 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혼자서 이곳을 빠져나가라.”

남궁벽이 자신을 부축하고 선 설우 진을 보며 완곡히 충고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다.

이미 팔다리는 사지근맥이 잘려 전 혀 쓸 수가 없었다. 단전이 무사하 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지만 팔다 리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내공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너, 내 고집 잘 알잖아? 괜히 입 아프게 떠들어 대지 말고 얌전히 있 어, 곧 이곳에서 빼내 줄 테니까.”

설우진은 남궁벽의 말을 철저히 무 시했다. 그러고는 남궁벽을 등에 업 고 바지에서 수실을 꺼내 몸을 고정 시켰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내기를 덧씌웠던 터라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인다 해 도 수실이 끊어질 일은 없을 것이 다.

“한숨 푹 자고 있어.”

설우진이 등에서 발버둥 치는 남궁 벽의 수혈을 짚었다. 그리고 한차례 숨을 고른 뒤 사자관 밖으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땡땡땡

요란한 종소리가 황룡 학관의 밤을 깨웠다.

“침입자다!”

“놈이

지금 정문으로 향하고 있다!”

“놈을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막아 라!”

건물 안에서 마천의 무사들이 급하 게 달려 나왔다.

그들을 깨운 장본인은 상원문을 넘어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원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 무사들은 다급히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벼락을 머금은 천뢰도에 허무하게 쓰 러졌다.

사자관을 빠져나온 설우진은 후문 이 아닌 정문으로 내달렸다. 상대적 으로 경비가 허술한 후문 쪽이 탈출 로로는 더 적합했지만 그는 무슨 이 유에서인지 정문을 택했다.

‘사마중달은 마천의 지낭이라 불리 는 자야. 그런 머리 좋은 인간이 순 순히 밖으로 나가도록 길을 열어 뒀 을 리가 없지. 아마 후문으로 향했 다면 그 작자가 준비한 덫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을 거야.’

설우진은 군사라는 족속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전생에 그들이 부리는 말이 되어 여러 번 움직인 경험이 있어서다. 사마중달을 직접 겪어 보지는 않았 지만 그도 비슷한 성향을 지녔을 것 이라 확신했다.

“놈이다.”

정문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경비 무사들이 살기등등한 얼굴로 설우진 을 맞이했다.

그 숫자는 일백 명을 훌쩍 넘어갔다.

“겨우 그 정도로 날 막을 수 있겠어?”

설우진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세 좋게 앞으로 내달렸 다.

거리가 좁아지자 사위에서 도검이 짓쳐들었다.

일개 경비들이라 하나, 그들의 실 력은 결코 얕볼 수준이 아니었다. 다들 천산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곳까지 온 것이기에 그들이 내뻗 은 한 수, 한 수에는 가공할 경력이 담겨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들의 공세에 휩쓸려 버릴 것 같았다.

한데 기우였다.

설우진은 사자관에서 아껴뒀던 뇌 기를 천뢰도에 모아 큰 원을 그리듯 휘둘렀다.

특별한 무리가 담긴 초식은 아니었 다.

하나, 그 위력은 경악스러웠다.

사방으로 흩뿌려진 뇌기는 무사들 을 집어삼켰다. 피는 한 방울도 튀 지 않았지만 멀쩡히 서 있는 이들이 없었다.

‘무시무시하네. 이래서 무공은 내 공발이라고 하는 건가?’

설우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스 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 그는 신왕단을 통해 얻은 내공을 최대치까지 끌어 썼다. 때문 에 속으로 절반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한데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길을 막고 있던 벽이 사라졌다.

설우진은 더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정문을 박찬 뒤 밖으로 빠져나갔다. 뒤늦게 도착한 내원의 지원 병력이 그 뒤를 쫓아가 봤지만 이미 설우진 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놈이 후문이 아닌 정문으로 빠져 나갔다고?”

사마중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보고를 하러 들어온 하우연은 그의 격한 반응에 침중한 표정으로 설우 진이 학관을 빠져나간 일련의 과정 을 소상히 전했다.

“이놈이 내 수를 꿰뚫어 봤구나.” 

사마중달은 아차 싶었다.

그는 설우진의 예상대로 후문 쪽에 무사들을 매복시켜 뒀다. 거동이 불편한 남궁벽을 데리고 경계가 삼엄 한 정문으로 향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추격대는 따라붙었느냐?”

“시야가 어두워 놈을 놓쳤다고 합 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넌 지 금 당장 호견과 함께 놈의 뒤를 쫓 아라. 남궁벽의 몸에 만리추종향을 뿌려 뒀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마중달도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 지는 않았다.

그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 둔 만리추종향으로 설우진의 뒤를 쫓게 했다.

옷이 아닌 몸에 묻혀 두었기에 남 궁벽이 몸을 씻지 않는 한 얼마나 떨어졌든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다. 

“놈을 찾아낸 이후에는 어찌할까 요?”

“혼자서 철마들을 죽인 놈이다. 흑 랑사자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울 테니 위치가 파악되는 대로 전서구를 날 려라. 내가 직접 전위대를 이끌고 그곳으로 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놈을 찾은 후에 뵙겠습니다.”

하우연은 잠시 후 늑대와 그 생김 새가 무척이나 닮아 있는 개를 이끌 고 학관을 나섰다.


소란스러웠던 밤이 지나고 황룡 학 관에 아침이 찾아왔다. 사마중달은 처소로 들라는 서진용의 명을 받고 바쁘게 관주실로 향했다.

관주실에는 천 내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오 대 전위대의 대주들부터 원로원에 속해 있는 장 로들까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천주 서진용이 있었다.

“군사, 지난밤에 작은 소란이 있었 다고 들었는데………… 그 쥐새끼는 잡 았나?”

상석에 앉은 서진용이 차가운 시선 으로 사마중달을 내려다봤다. 사마 중달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어갔다.

“송구합니다. 쥐새끼가 덫을 물어 뜯는 바람에 잡지 못했습니다.”

“호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군 사가 직접 키운 철마들이 덫을 지켰 다고 들었는데.”

“최근 한 달 사이 무공에 큰 진전 이 있었던 듯합니다.”

“사마중달! 변명치고는 너무 궁색 하구나. 놈은 이미 제 나이치고는 과한 무위를 지니고 있다. 한데 거 기서 또 벽을 넘었다고?”

“……제가 판단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사마중달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천의 중추인 두 사람이 대립하자 장내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 다.

“천주님!”

바로 그때, 백랑대주 요굉이 앞으 로 나섰다.

갑작스러운 그의 개입에 사마중달 은 노기를 띤 시선으로 그의 등판을 사납게 노려봤다.

지휘 체계상 전위대는 군사부 산하 에 자리하고 있었고 당연히 서열상 으로 군사인 사마중달이 백랑대주인 요굉보다 앞섰다.

한데 요굉은 자신에게 양해도 구하 지 않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는 엄연한 하극상이다.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사마중달이 속으로 분을 삭이는 사이서진용의 시선이 요굉 쪽으로 옮겨 갔다.

요핑은 한차례 숨을 고른 뒤 답했다.

“군사가 놓친 그 쥐새끼, 저희 백 랑대에 맡겨 주십시오.”

뒤에서 듣고 있던 사마중달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우려했던 상황 이 벌어진 것이다.

“자신 있느냐?”

“네. 지난번의 실수를 확실하게 만회해 보이겠습니다.”

“좋다. 그럼 지금 당장 군사부와 공조해 놈의 뒤를 쫓도록 해라.”

“존명!”

요굉이 힘차게 답하며 관주실을 나 섰다.

“천주님, 이번 일은 저희 군사부 소관입니다. 한데 어찌하여 전위대 에 단독으로 일을 맡기실 수가 있습 “니까?”

“지금 날 나무라는 것이냐?”

서진용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치 거악이 움직이는 듯한 압도적 인 무게감이 전해졌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나, 백랑대를 보내신 건 분명한 실책입니다. 놈은 간교한 두뇌를 지 녔습니다. 단순히 힘만을 앞세워 잡 으려 한다면 되레 큰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사마중달이 강경한 어조로 서진용 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서진용의 화만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쾅.

서진용이 화를 참지 못하고 오른발 을 세차게 찍었다.

그 충격에 바닥을 이루고 있던 단 단한 자단목이 쫙쫙 갈라졌다.

“오늘부로 사마중달의 군사 지위를 박탈한다. 흑랑대주는 놈을 포박해 방으로 데려가라. 이후 별도의 지시 가 있기 전까지 밖으로 나오게 해서 는 안 된다.”

서진용은 극단적인 명령을 내렸다.

평소 사마중달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던 그였기에 그 명령은 모두 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하지만 놀라기만 할 뿐 누구 하나 그 뜻을 돌리려 나서는 이는 없었 다.

‘오랜 충성의 대가가 겨우 이것인가?”

사마중달은 허탈했다.

서진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후 그 는 말 잘 듣는 개처럼 오직 서진용 만을 위해 일해 왔다. 그가 원하는 것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뤄 냈다.

한데 지금 그 주군이 자신을 쳐내려 하고 있다.

“제가 없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사마중달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에 서진용은 비릿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사마중달, 언제고 네놈을 처리하 려 했다. 단지 명분이 없어 그리 하 지 못했을 뿐. 그동안 날 위해 일하 느라 수고 많았다. 여생은 중원이 아닌 천산의 경치 좋은 곳에서 보내 도록 해라.’

서진용은 사마중달의 힘이 커져 갈 수록 마음의 부담을 느꼈다. 그가 마음을 바꿔 먹는 순간 자신의 자리 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그 생각이 틀렸다고 볼 수만은 없다.

강호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모시던 주인을 배신하고 대신 그 자리에 앉 은 사례는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자존의 법칙이 통용되는 마 귀들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더욱 비일비재했다.

“조만간 절 다시 찾게 될 겁니다.” 

호위들에 이끌려 밖으로 걸어 나가 면서 사마중달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하나, 누구 하나 그 말에 귀를 기 울이지 않았다.


해가 어스름하게 모습을 드러낼 무 렵, 설우진은 섬서와 하남의 경계에 자리한 심덕촌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덕촌은 가구의 숫자가 백 호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한데 설우진은 왜 굳이 이 작은 마을에 들른 것일까?

그 답은 마을 곳곳에서 진하게 풍 겨오는 약초 향이 말해 주고 있었 다.

심덕촌은 윤심덕이라는 의원이 정 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는 신수활의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 는데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침을 놓 을 수 없게 되자 심산유곡으로 들어 와 약초 연구에 매진했다.

그 와중에 제자가 되겠다며 전국에 서 많은 의생들이 찾아들었고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됐다.

‘윤허준, 그 돌팔이가 있어야 하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선 설우진이 바쁘 게 눈을 돌렸다. 낯선 이의 방문에 도 심덕촌의 마을 사람들은 대수롭 지 않다는 듯 자기 할 일에만 매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안으로 들어갔을까, 그의 발걸음이 다 쓰러져 가는 초가 앞에서 멈춰 섰다.

‘저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네. 누가 저 꼬락서니를 보고 의 원이라 생각하겠어.’

설우진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마 당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약초를 썰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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