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30화 : 새로운 시작 (완결)

랜덤 이미지

낭왕전생 9권 – 30화 :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무림 제패의 부푼 야망을 품고 중 원에 발을 들여놨던 마천은 서진용 의 죽음과 함께 전력의 대부분을 잃 고 지리멸렬했다.

그 과정에서 쌍룡맹과 역천회의 역 할이 컸다.

그리고 세간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 았지만 낭인들의 숨은 활약도 돋보 였다.

그들은 수적인 우위를 앞세워 본진 밖에 나가 있던 마천의 무사들을 요 격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마천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 다.

한데 승리를 거두고도 쌍룡맹과 역 천회는 기분 좋게 웃지 못했다. 마 천의 격렬한 저항에 그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천중오가 의 수장들 대부분이 은퇴를 걱정해 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특 히 황보철용과 북리진의 부상이 심 각했다. 위험한 전장을 요리조리 피 하다 재수 없이 적랑대와 부딪친 게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역천회의 위성웅은 목숨을 잃었다.

그는 마천과의 전면전을 최대한 피 하고 싶었지만 운이 없게도 역천회 가 도사리고 있던 곳으로 장거한이 이끄는 마랑대가 들이닥쳤다.

반전을 이끄는 마천의 칼날답게 마 랑대는 역천회를 상대로 분전했다. 특히 대주인 장거한의 무위가 독보 적이었다.

이에 위성웅은 어쩔 수 없이 전면 에 나서야 했다.

파상절후의 혈투가 이어졌고 안타 깝게도 결과는 양패구상이었다. 위 성웅은 힘겹게 장거한의 목을 베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치 명적인 내상이 목숨을 앗아 갔다. 각 세력을 이끌던 머리들이 힘을 잃거나 죽임을 당하면서 강호의 판 세는 새롭게 짜였다.

자연스럽게 권력 이양이 이뤄진 것이다.

우선 쌍룡맹은 황유하가 맹주 직을 연임하며 힘을 결집시켰다. 자연스 럽게 맹주의 권한이 강화됐고 그 과 정에서 천중오가가 누리고 있던 많 은 것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당연히 천중오가는 크게 반발했고 내부의 분란으로 이어질 조짐까지 보였다.

한데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한 곳 에서 황유하에게 힘을 실어줬다.

바로 마천 쟁투 이후 침묵하고 있던 구파였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황유하에 대한 지지를 천명했다.

맹의 결집된 힘에 구파의 지지까지 더해졌으니 사실상 승부는 난 셈이 었다.

결국 천중오가는 황유하의 명령을 수용했다.

쌍룡맹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가 고 있을 때 역천회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아 갔다.

그 중심에는 해천인이 있었다. 그는 적사호를 대신해 각 수호 가 문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에게 역천회의 이름을 버리라 종용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이미 대세가 기운 상황이었기에 속으로는 응분을 삼키면서도 그 뜻에 순순히 따 랐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큰 싸움이 이어 지는 동안 장강 이남에서도 싸움이 벌어졌다.

그 싸움의 시작은 황룡혈사였다. 쌍룡맹에 밀려 강남으로 내려오기 는 했지만 삼사보는 여전히 강북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삼사보의 수장들은 쌍룡맹 의 전력이 대거 섬서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서로 힘을 합쳐 하 남을 도모하자고 뜻을 모았다.

사실 거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한데 원정군의 수장을 세우는 과정에서 다툼이 벌어졌다. 저마다 자신들이 모시는 보주를 수장으로 추대 한 것이다.

처음엔 가벼운 언쟁이었다. 그런데 언쟁이 길어지면서 무력 충돌이 일 어났고 결국엔 큰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황룡혈사 못지않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었다.

수백에 이르는 무사들이 죽고 그 배에 달하는 무사들이 크게 다쳤다. 결국 강북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삼사보의 야심찬 계획은 무위로 돌 아갔다.

한차례 큰 소란을 겪은 이후 설가장은 다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왔 다.

설무백은 일품점 영업을 정상화하 는 데 힘을 쏟았고 여소교와 설단예 는 보다 나은 품질의 옷을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공방에서 밤을 지새 웠다.

그리고 설우결은 지난번에 큰일을 겪고 나서 큰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 지 무가에 입문하겠다고 집을 나섰 다. 가족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그의 선택을 존중해 줬다.

마지막으로 설우진은 집으로 돌아 온 뒤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공방에 들러 작업을 돕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음주와 수면을 즐기는 데 할애했다.

가족들은 그가 힘든 일을 해냈다는 걸 알기에 길어지는 백수 놀음에도 묵묵히 옆에서 지켜만 봤다.

오늘도 설우진은 후원에 자리한 누 각 안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즐 기는 꿀맛 같은 낮잠이었다.

한데 막 잠이 드려는 찰나, 눈가를 따스하게 감싸던 햇살이 사라졌다. 머리 위로 비친 그림자가 햇살을 가 린 것이다.

설우진은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 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황룡혈사에서 함께 싸움을 치렀던 적사호였다.

“공사가 다망하신 분께서 이 먼 곳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설우진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적사 호와 눈을 맞췄다.

두 사람은 황룡혈사가 끝난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 다. 적사호는 역천회를 수습하느라 바빴고 설우진은 쉬느라 바빴다. 

“팔자 좋구나.”

“부러우십니까? 그럼 학사님도 이 참에 문주 자리 때려치우고 이 근처 에 작은 무관이나 하나 차리시죠. 자금은 저렴한 이자로 빌려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제가 언제 마음에 없는 소리 하는 것 봤습니까?”

설우진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 며 반문했다.

“솔직히 솔깃하긴 하다만, 이 어깨 에 걸려 있는 목숨이 한둘이 아닌지 라 그리는 못 하겠구나.”

“마천도 사라진 마당에 뭐가 걱정 입니까? 뒷일은 후배들에게 맡겨 두 고 무한으로 내려오시죠. 이곳에 무 관을 내기만 하면 제자가 되겠다고 달려올 놈들이 아마 수백에 이를 겁 니다. 제가 괜히 투자하겠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설우진은 농이 아니라는 듯 적극적 으로 적사호를 설득했다. 하지만 적사호의 마음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참 좋은 기횐데………… 뭐, 싫다는 사람한테 억지로 강요할 순 없죠. 그보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먼 곳까지 절 찾아오신 겁니까? 바쁜 분께서 단지 얼굴이나 보자고 이곳 까지 발걸음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요.”

설우진은 직설적으로 물었고 이에 적사호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뗐다. “최근 천산 쪽에서 심상찮은 움직 임이 포착됐다.”

“……?”

“아무래도 마천 내부에 새로운 천주가 탄생한 듯싶다.”

“황룡혈사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게 마천의 무서움이다. 놈들은 내부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그 과 정에서 새로운 강자를 배출해 낸다. 당장은 놈들이 입은 타격이 만만치 않으니 움츠리고 있겠지만 언제 다 시 중원에 발을 들이려 할지 모른 다.”

적사호는 중원의 정세가 안정된 뒤 황유하와 은밀히 손을 잡고 쌍룡맹 과의 공조하에 천산에 도사리고 있 는 마천의 동향을 살폈다.

황룡혈사에서 마천이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천주가 죽고 오대 전위대 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으니 당분 간은 회복이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마천은 그 어떤 세력보다도 뿌리가 깊고 단단했다. 언제 또 그 만큼의 세를 모아서 다시 중원을 도 모할지 모를 일이다.

“설마, 절 찾아오신 이유가………?” 

“그래. 이번에도 네 녀석이 힘을 좀 빌려줘야겠다.”

“제가 그 청을 받아들일 걸라고 생각하십니까?”

설우진은 어이없다는 듯 적사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지난번 황룡혈사에서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다. 한데 또 그에 준 하는 위험을 감수하라니 그의 입장 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냥 여행 다녀온다 생각해라.”

“그게 어떻게 여행입니까? 죽을지 도 모르는데.”

“설마 우리가 네 녀석보고 천산에 들어가서 새 천주와 싸우라고 하겠 느냐? 그냥 놈들의 곁에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그 동태만 알려 주면 된 다.”

“무슨 수로 놈들 곁에 머뭅니까?” 

“후훗,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다. 난주에 새로이 학관을 만들까 한 다.”

“혹시, 그 학관이라는 게…………?” 

“그래. 황룡 학관이다. 아마 쌍룡맹 의 주도로 일 년 안에 황룡 학관이 난주로 이전될 것이다. 그리되면 학 관의 사정으로 학업을 미처 마치지 못했던 관도들도 자연스럽게 모여들 게 될 테지.”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었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다. 황룡 학 관을 재건해서 다시 불러들이겠다 니.

명목상으로 설우진은 아직 황룡 학 관의 관도다. 원치 않으면 가지 않 아도 되지만 후퇴라는 꼬리표를 달 고 살 수는 없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겁니까?” 

설우진이 이를 갈며 물었다. 절대 적사호의 머리에서 나올 내용이 아 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알려 드렸다.”

적사호의 등 뒤에서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설우진이 황룡 학관에서 어렵사리 구출해 낸 남궁벽이었다. 

“하아, 네 녀석이 이런 식으로 뒤 통수를 칠 줄이야.”

“뒤통수가 아니다. 네 녀석도 사실 그리워하고 있지 않느냐, 관도들과 함께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긴 누가………….”

“그렇게 열을 내는 게 증거지.”

‘젠장, 저 자식은 나를 너무 잘 알아.’

설우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마지막 자존심만은 챙기고 싶었다.

“그냥은 못 갑니다.”

“돈을 달라는 거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좋다. 그럼 위험수당까지 듬뿍 챙 겨서 안겨 주마.”

짧은 신경전 끝에 거래가 성립됐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난주에는 제이 의 황룡 학관이 세워졌다. 기본적인 체계는 그대로 가져갔기에 설우진은 이 년 차 관도로 복귀했다.

하지만 황룡 학관의 누구도 그가 황룡혈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웅이 란 걸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설우진은 그저 건방진 관 도에 게으른 선배 그리고 싸가지 없 는 후배에 불과했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