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7화 : 떨어지는 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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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7화 : 떨어지는 별(1)


떨어지는 별(1)

“이것들이 대체 어디서 허리를 놀 려 댄 거야? 다들 정신 차리고 빨 리 짐들 날라!”

서창포구의 한 귀퉁이에 낯익은 배 한 척이 서 있었다. 군선을 개조해 서 만든 노도채의 배였다.

노도채는 지난밤에 은밀히 서창포구에 배를 댔다.

정기적인 보급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노도채의 식구들은 배를 대 기 무섭게 근처의 주루로 달려갔다.

몸 안에 쌓인 혈기를 풀어내기 위 함이었다.

덕분에 포구 근처에 자리한 주루들 은 때아닌 특수를 맞이했다.

‘쯧쯧, 나이도 한창인 놈들이 겨우 고것 좀 놀렸다고 힘들어하기는. 이 래서는 저녁 무렵에나 배를 띄울 수 있겠는걸.’

고두발이 가볍게 혀를 차며 선수 난간에 엉덩이를 갖다 댔다. 그러고 는 지난밤에 산 연초를 입으로 가져 가 불을 붙였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 고두발은 그 알싸한 향을 즐기며 자연스레 시가지로 시선을 향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고두발은 못 볼걸 본 사람처럼 난간에서 벌떡 일어 섰다.

커다랗게 확장된 그의 두 눈에는 붉은빛의 연기가 길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형님!”

적린을 확인한 고두발이 다급히 선 실로 뛰어 들어갔다.

선실에는 용문걸이 반라의 여인을 옆에 끼고 늘어지게 잠에 취해 있었 다.

‘저 팔자 좋은 인간’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부아가 치민 고두발은 탁자에 있던 물병을 들어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

용문걸은 느닷없는 물세례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하아, 두발아,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용문걸은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지금 한가하게 낮잠이나 잘 때가 아닙니다.”

“어디 관군이라도 떴냐?”

“우리가 그동안 관에 먹인 돈이 얼만데 관군이 움직이겠습니까!”

“그럼?”

“적린이 피어올랐습니다.”

순간 용문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언제부터 연기가 보였느냐?”

“방금 전에 확인했습니다. 연기가 퍼진 정도로 짐작건대 일각 여 전에 적린을 태운 듯합니다. 어찌할까 요?”

“장강의 사내가 한번 입으로 뱉은 약속을 어길 수는 없지. 지금 당장 애들을 모아라. 설가장으로 간다.”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던 용문걸의 기세는 한순간에 묵직하게 변했다. 잠시 후 용문걸을 필두로 한 노도 채의 수적들이 무장을 갖춘 채 배에 서 내렸다. 그 숫자는 일백에 달했 다.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여소교는 아이들을 독려하며 바쁜 걸음을 내디뎠다.

“어머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설우결이 답답한 표정으로 여소교 를 쳐다봤다.

그는 공부를 하다 어머니의 급한 부름을 받고 달려 나오는 길이었다. 

“본장에 흉수들이 쳐들어왔단다.” 

“흉수라뇨?”

“이 어미도 그들이 누군지는 모른 단다. 하나, 분명한 건 그들에게 잡 히면 너희들이 무사치 못할 거란 사실이다.”

여소교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초지 종을 설명했다.

“그럼 아버지는요?”

설우결이 설무백의 안위를 묻자 여 소교는 입술을 씹으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곧…… 뒤따라온다고 하셨다. 하 니 너희들은 걱정 말고 포구로 향하 도록 해라.”

“그, 그럴 순 없어요. 변변한 호신 공 하나 익히지 못하신 분이 무슨 수로 그곳을 빠져나오겠어요.”

“지금 네 아버질 믿지 못하겠다는 게냐!”

여소교가 평소답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결 오라버니, 어머니의 말씀대로 해요. 돌아갔다가 되레 아버지의 발 목을 잡게 될 수도 있잖아요.”

단예가 조심스럽게 설우결의 팔을 잡아끌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형처럼 무공을 배우는 거였는데. 그럼 최소한 이렇게 비겁하게 등을 내보 이고 도망치지는 않았을 텐데.’

설우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 신을 책망하며 발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가슴으로 음침한 소성과 함께 검이 들이쳤다. 나철휘가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앞서 보낸 요마였다.

“안 돼!”

설우결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 고 있던 여소교가 아들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등판이 쩍 하고 갈라졌다.

“어머니!”

“나, 난 괜찮으니……… 어서 피하거라. 이 어미가 무슨 수를 써서든 저자의 발목을 묶어 놓으마.”

여소교는 끔찍한 상처를 입고서도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설우결을 안심 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상처는 심각했다.

얼마나 깊게 베었는지 벌어진 살점너머로 뼈가 비칠 정도였다.

“이,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피로 얼룩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설우결이 품 안에서 단도를 끄집어 냈다.

설우진이 호신용으로 선물한 뇌천 비였다.

뇌천비에는 설우진이 몇 차례에 걸 쳐서 밀어 넣은 벽뢰진천의 뇌기가 담겨 있었다. 타악.

설우결이 뇌천비를 치켜들고 요마에게 달려들었다.

제법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요마는 가볍게 수중의 검을 휘둘러 뇌천비를 쳐 냈다.

그때마다 뇌천비를 쥔 손아귀는 터져 피로 얼룩졌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였다.

‘단 한 번, 단 한 번만 맞출 수 있 으면 돼.’

설우결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로지 어머니 와 누이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바로 그때, 요마의 옆으로 은밀히 하나의 인영이 파고들었다.

그 인영은 설우결에게 시선이 가있는 요마의 사각 지대로 우장을 강 하게 내질렀다.

“크윽.”

순간 요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덕분에 아주 잠깐이지만 설우결에 게 길이 열렸다.

‘죽어.’

설우결이 뇌천비를 두 손으로 움켜 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노리는 곳은 단 하나, 요마의 단전 이 자리한 아랫배였다.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요마가 다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설우결은 눈앞에서 들이치는 검을 피하지 않고 어깨로 받아 냈다.

서걱.

검날이 설우결의 왼쪽 어깨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생살이 찢기는 고통에 설우결의 두 눈이 부들부들 떨렸다.

‘멈추지 마.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는 고통 때문에 머뭇거리는 육체를 강한 의지가 끌고 나갔다.

푸욱.

결국 뇌천비는 요마의 아랫배에 꽂 혔고 그 순간 담겨 있던 벽뢰진천의 뇌기가 요마의 단전으로 파고들어 단단하게 굳어 있던 그릇을 산산이 깨부쉈다.

쿵.

단전이 파괴된 요마는 게거품을 물 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운 좋 게 목숨을 구하더라도 더는 무공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설우결도 쓰러졌다.

목표를 이루자 뒤늦게 밀려드는 고 통에 정신을 놔 버린 것이다. 

“오라버니!”

단예가 다급히 달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어깨의 상처가 아주 깊었다. 단순 한 지혈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대로 두면 둘 다 위험해.’

그녀는 급히 품 안에서 바늘첩을 꺼냈다.

바늘첩 안에는 평소 분신처럼 지니 고 다니던 다양한 크기의 바늘과 수 실들이 담겨 있었다.

쉭쉭쉭.

그녀는 잠시 설우결의 상처를 살핀 뒤 바늘을 그곳으로 가져갔다. 그리 고 옷을 꿰매듯 수실로 어깨의 상처 를 꿰매기 시작했다.

대범하면서도 현란한 손놀림이었 다.

그녀의 손이 거쳐 가자 거짓말처럼 피가 멎었다.

그런데 그녀의 뛰어난 바느질 솜씨 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두 사람을 어떻게 포구까지 데려가지?’

단예는 난감한 표정으로 여소교와 설우결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정신을 잃은 상태다. 한 사람 정도면 업어서라도 옮길 수 있는데 둘은 옮길 재간이 없었 다.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멀리서 발소 리가 들려왔다.

한두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흠칫하며 두 사람을 담벼락 쪽으로 옮겼다. 그게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무인들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었다.

단예는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아까 요마의 몸에서 빼낸 뇌천비를 손에 꽉 쥐었다.

잠시 후 그림자가 머리맡으로 드리 웠다.

그녀는 벼락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 며 뇌천비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닿지 않아.’

그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억센 손이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다니네. 혹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저놈, 아가씨 작품이야?”

억세지만 적의가 섞여 있지 않는 말투.

그녀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자신에 게 호의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자는 제 오라버니가 쓰러뜨렸어 요.”

단예는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순순 히 밝혔다.


“아무래도 설가장 사람들 같은데 요.”

“음, 그러고 보니 저기 쓰러져 있 는 녀석이 그놈의 얼굴을 빼다 박았 네.”

용문걸의 시선이 설우결의 얼굴에 닿았다.

“어떻게 할까요?”

“알면서 뭘 물어. 모두 배로 데려 가. 근처에 흉수들이 더 있을지 모 르니까 다들 서둘러서 움직여.”

용문걸은 즉각적으로 명령을 내렸 다.

그가 이리 서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긴장케 하는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 이다.

‘하아, 이거 잘못하면 강이 아닌 뭍에 뼈를 묻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용문걸은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싸움에 대비해 단전의 내력을 한껏 끌어 올렸다.

“형님, 애들 보냈소.”

“우린 이대로 설가장으로 간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요?” 

“내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이다.”

고두발의 불만을 잠재운 용문걸은 설무백을 구하기 위해 힘차게 발을 굴렸다.


“헉, 헉, 빌어먹을, 소싯적에는 일 대백의 혈전을 치르고도 날아다녔 었는데.”

설무백을 업고 뛰던 궁악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앞을 막아선 요마들을 노려봤다.

그는 지금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혼자 움직이기도 버거운데 등에 설 무백이라는 짐까지 떠안고 있으니 배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늙은이, 그 구차한 목숨이라도 건 지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얌전히 설 가장주를 넘겨. 그리하면 사지 하나 를 끊어 내는 것으로 네 죄를 용서 해 주겠다.”

나철휘가 크게 인심을 쓰듯 말했 다.

하지만 그 정도 도발에 눈 하나 깜짝할 궁악비가 아니었다.

“사내새끼가 종알종알 무슨 말이 그리도 많아! 그만 아가리 쳐 물고 덤벼!”

궁악비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저, 저놈의 혓바닥을 뽑아 내 앞 으로 가져와라!”

열에 받쳐 흥분한 나철휘가 요마들 을 한꺼번에 움직였다.

사방팔방에서 요마들이 쏟아져 들 어왔다.

‘내가 죽나 네놈들이 죽나, 어디 한번 해보자!’

사위에서 밀려드는 강한 압박감에 궁악비는 몸 안의 선천지기를 끌어 냈다.

내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라 선천지 기 말고는 쓸 수 있는 무기가 없었 다.

 주인의 선천지기를 머금은 혈부가 금방이라도 피를 토해 낼 듯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쉬쉬쉭.

요마들의 검이 동시다발적으로 들 이쳤다.

한데 궁악비는 전혀 검을 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금씩 좁혀지는 거리.

‘혈무환’

검들이 눈앞에 들이칠 때 궁악비의 신형이 팽그르르 돌았다.

순간 핏빛 강기를 머금은 혈부가 원을 그리며 요마들의 검을 그대로 갈랐다.

“쿠웩.”

공격을 마친 뒤 궁악비가 거칠게 토악질을 했다.

선천지기가 빠져나간 부작용이었다.

‘역시 무리였나.’

궁악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혈무환은 그가 익힌 부법의 최종 오의다.

강맹한 위력을 한 번에 쏟아 내는 만큼 막대한 내력을 필요로 했다. 한데 그에겐 그만한 내력이 없었

다.

해서 수십 년 동안 강호를 종횡하 면서도 혈무환을 펼쳐 보인 건 이번을 포함해 단 세 번뿐이다.

털썩.

그가 선천지기의 고갈로 괴로워할 때 요마들의 가슴팍에서 동시다발적 으로 피분수가 솟구쳐 올랐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요마들은 자 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쓰러졌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나철휘가 비명을 내지르듯 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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