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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칼의 말을 듣고서야 아까부터 회담이 자꾸 빙빙 도는 이유를 깨달았다. 하이 프리스트가 상호 모순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 프리스트는 크라드메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그 소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소녀가 할슈타일 가문에 의해 발견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리고 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다. 몇 번에 걸쳐 칼이 질문하고 지금은 샌슨도 그 질문을 하고 있다.
왜 할슈타일 가문에서 그 소녀를 찾아내면 안 되는가?
어차피 그 소녀는 할슈타일 후작의 딸이지 않는가. 그 소녀를 찾게 되면 할슈타일 가문에서는 더욱 강한 힘을 얻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저 남 잘되는 거 못 봐준다 는 식으로 거부할 수는 없잖아. 게다가 성직자가 그런 식의 심술을 부린다는 것은 우스운 일인데.
하이 프리스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말하지 않을 수 없군.”
갑자기 하이 프리스트는 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칼은 움찔했다.
“예? 아니, 이것은? 아, 예. 말씀하십시오.”
칼은 긴장된 표정으로 하이 프리스트를 바라보았고 하이 프리스트도 여전히 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는 거지? 두 사람은 서로를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엑셀핸드가 의아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이봐, 눈싸움 하나?”
그러자 아프나이델이 엑셀핸드를 말리며 말했다.
“지금 하이 프리스트께서는 메시지 주문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칼 님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뭐야? 거 참 무례한 다락귀신이군!”
“중요한 말씀이라서 그러시겠죠.”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알아보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 프리스트는 뭔가 길게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고 칼은 자주 얼굴 표정을 바꾸는 것을 봐서 이야기 내용 이 심상치 않았다.
한참 후에 칼은 말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할슈타일 가문에서는 그 소녀를 찾으면 안 되는군요.”
뭐라고?
“이해하신다니 고맙소.”
잠깐, 여기 이해하지 못한 사람 하나 있어! 설마, 칼. 그 소녀를 찾는 일을 맡겠다는 식으로 말씀하시지는 않겠지요? 칼은 말했다.
“할슈타일 가문에서 그 소녀를 찾으면 안 되니, 결국 다른 누군가가 찾아야 되는군요. 크라드메서는 진정시켜야 되고…….”
뭐야? 설마?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졌다. 이건 안 돼. 난 얼굴이 벌겋게 된 채로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신다면, 저도 한마디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우와, 허, 이거 장난이 아닌데? 늙은 성직자, 늙은 드워프, 전사가 둘(모두 이마에 ‘순종 전사임을 보증함.’이라고 써놓은 것처럼 생긴)에다 가 마법사와 도둑이 각각 하나, 그리고 독서가 한 명까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독서가는 늙은 성직자를 바라보았고 늙은 성직자는 말했다.
“말해 보게, 후치 군.”
“좋아요. 그럼 말씀드리죠. 전 반대입니다.”
“어? 야, 후치……”
샌슨이 놀라서 말했지만 하이 프리스트는 손을 들었다.
“이유를 말해 보겠나?”
난 어금니를 꽉 물었다가 빠르게 말했다.
“우린 할 일이 있습니다.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라자를 찾는 것은 다른 사람이라도 할 수 있다고 봐요. 아니, 인간 추적에 대해서라면 전문가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 만 아무르타트에게 몸값을 가져다주고 우리 영주님과 병사들을 되찾아오는 일은 우리의 일이며, 대신 해줄 사람은 없어요. 자기 생각만 하는 놈이라고 꾸짖으셔도 할 말은 없어요.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얼마나 빠르게 말했는지 내가 말해 놓고도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하이 프리스트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칼은 깊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고맙네, 네드발 군. 하지만 바로 그것, 우리의 일 때문에 내가 고민하는 거라네.”
“무슨 말이죠?”
“우리 일은 뭐지?”
“몸값을 마련하는 거…………… 아!”
그랜드스톰에는 내가 들어갈 만한 커다란 쥐구멍이 있을까? 인자하신 에델브로이라면 날 위해서 그런 것을 준비해 뒀을 것 같은데 말이야. 샌슨은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고 칼은 말했다.
“수도에 보석이 떨어진 것은 결국 크라드메서가 활동기에 들어가기 때문이지. 한 달 후, 크라드메서가 활동을 개시할 때까지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라자가 될 수 있 는 소녀를 찾아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영영 보석 구경하기는 힘들게 될 걸세.”
아아아! 쥐구멍, 쥐구멍! 네리아는 입을 크게 벌렸다가 황급히 손으로 가렸다. 엑셀핸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문제의 요점을 파악한 것 같군.”
하이 프리스트도 미소를 지었다. 칼은 왼쪽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꼭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샌슨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군요! 크라드메서를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보석은 구할 수 없다? 그럼 찾아야 합니다! 그 소녀를 찾아내어야 합니다!” 칼은 결심을 굳힌 표정이 되었다.
“퍼시발 군. 우리 여유 일자가 한 달이었지?”
“예! 그렇습니다.”
칼은 하이 프리스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희들이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들로서도 간절한 일인 만큼 모자란 재주지만 그 소녀를 찾아보겠습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해낼 거요.”
칼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하이 프리스트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유피넬이 저울을 만들고, 헬카네스는 추를 만들지. 유피넬은 우리들에게 닥친 시련을 막기 위해 당신들을 이곳으로 출발시켰고, 헬카네스는 당신들이 안전하게 수 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돌보았을 것이오.”
칼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예…………… 저희들의 여행에는 정말 많은 행운이 있었습니다.”
하이 프리스트는 손을 강하게 휘저으며 말했다.
“그것이오! 매처럼 날카로운 눈과 하루에 세 개의 산을 넘는 다리를 가진 레인저라 하더라도 그 소녀를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오. 그 소녀를 찾는 자는 유피넬의 저 울대를 위해 헬카네스가 마련한 추, 바로 당신들이오.”
하이 프리스트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흠.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간단한 일이지. 하지만, 젠장. 언젠가 칼이 말한 바 있지만 우리가 신의 뜻을 알 수 있나? 어 쩌면 신은 그 소녀를 찾을 수 있는 레인저를 벌써 준비해 놓았고 우리는 그 소녀를 찾지 못한 채 좌절하는 역할일지도 모르지. 하, 하, 하.
어라?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군. 우리가 레인저냐, 뭐냐? 어떻게 붉은 머리와 10대 후반이라는 단서만 가지고 이 넓은 대륙에서 한 소녀를 찾아내지? 차라 리 신이 우리에게 그 소녀를 찾는 역할을 맡긴 거라고 생각해 버리는 게 낫겠군. 에구! 머리 아파! 난 신학은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을 테다.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칼은 하이 프리스트에게 말했다. 하이 프리스트는 고개를 갸웃하며 칼을 바라보았다.
“아까도 말씀하셨다시피 할슈타일 후작이 그 소녀를 찾는 것은, 결국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라자를 획득하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이 프리스트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렇소. 그리고 아마 당신은, 내가 그랜드스톰의 힘으로 그 드래곤 라자를 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으시겠지.”
엑셀핸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이 프리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옳은 말이오.”
그러자 엑셀핸드는 더 못 참겠다는 듯이 칼에게 말했다.
“이거 봐! 성직자를 못 믿겠다는 거야?”
칼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이 프리스트가 칼을 구원했다.
“노커여, 당신은 드워프고 저 칼은 인간이오. 드워프보다야 인간이 인간을 더 잘 이해하지 않겠소? 더욱이 저토록 현명한 인간이라면 말이오.”
“뭔 소리야? 다락귀신 네놈은 성직자잖아? 신의 지팡이 노릇하는 놈이 드래곤을 부려서 대륙을 결딴내겠다는 거야 뭐야?”
“인간은…… 원래 유피넬과 헬카네스 양자의 관심을 받는 생물이오.”
“나 원 참. 이해를 못하겠구만 그래. 젠장. 그럼 도대체 인간은 어떻게 산다는 거야? 성직자도 못 믿는다면 누굴 믿고 살지? 부모, 자식이나 남편, 아내도 서로 못 믿 겠구먼, 그래.”
칼은 얼굴을 붉혔고 하이 프리스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이 프리스트는 칼에게 말했다.
“칼. 신께 맹세하겠소. 성직자가 신께 맹세한 것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 줄은 알고 있을 것이오.”
칼은 감동한 눈길로 하이 프리스트를 바라보았다. 하이 프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신의 지팡이고, 따라서 신의 걸음을 보좌하오. 지팡이가 그 쥔 자를 인도하지는 않소. 난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라자를 찾는 것으로 우리 교단의 위세를 높이고 싶은 생각은 없소. 난 평화를 원하오.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들이 그 소녀를 찾거든, 자의로 그 소녀를 크라드메서에게 데려가시오. 그걸로 끝이오.”
“믿겠습니다.”
간단하네? 허어, 참. 어떻게 저렇게 간단히 믿을 수 있는 거지? 뭐, 칼이 결정한 일이니 정확한 판단이겠지. 하이 프리스트는 이제 길시언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쩌겠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험가의 생활, 어차피 내일의 계획은 없겠지. 좋은 일에 동참해 보고 싶지 않은가?”
길시언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랜드스톰의 고용입니까? 얼마 내시겠습니까?”
네리아의 눈이 번쩍번쩍. 저건 도대체 무슨 말이야? 하이 프리스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델브로이 신전에서 영구적으로 공짜 치료에 힐링 포션 무료.”
“좋군요. 껄껄.”
길시언은 껄껄 웃었지만 갑자기 찢어지는 고함소리가 들려와서 그 웃음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나이트호크 하나 필요 없으세요오?!”
아이고 맙소사. 나와 샌슨은 동시에 이마를 짚었다. 이 유피넬도 탄복할 우리들의 조화로운 행동을 보던 하이 프리스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네리아에게 질문했 다.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 있소?”
“예. 머리도 너무너무 좋고 용모도 아름답고 몸매도 끝내주며 날카로운 손가락들 사이에서는 항상 매서운 바람이 일어나는, 100년쯤 지나면 전설의 인물로 불려질 나이트호크가 우리 사는 현재에 하나 있어요.”
“우우, 후치 등 좀 두드려줘.”
“내가 더 급해. 나부터 좀………….”
하이 프리스트는 우리들의 반응에서 그 전설적인 나이트호크가 누군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가씨 직업이 그거요?”
“그 음산할 수도 있는 직업에 저의 매력으로 밝은 분위기를 더하고 있지요.”
“샌슨…… 남길 말은…….”
“나, 나한테 남기지 마…………… 나도 죽을 거야………….”
네리아의 앙증맞은 주먹이 우리 둘을 좀 난타한 다음, 하이 프리스트는 일행의 선택은 칼의 마음대로라고 말했다. 네리아는 칼에게 귀여운 표정을 짓기 위해 애썼고, 그래서 칼은 속이 좀 불편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랜드스톰에서 제시하는 일이니만큼 정보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오?”
“가능성이 있으니까 부탁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가능성은 아마 보다 많은 정보에 기인할 테고.”
하이 프리스트는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하고는 말했다.
“있소. 하지만 그 정보는 할슈타일 가문 외에는 나밖에 모르는 일이오. 비밀을 지켜주시오.”
“알겠습니다.”
“좋소. 그럼.”
하이 프리스트는 로브 자락 속에 손을 집어넣어 종이들을 꺼내었다. 그는 그것을 칼에게 건네주었다.
“당신만 읽어보시오. 그러나 당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정보를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소.”
“이것이 추적에 도움이 되는 그 정보입니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오.”
“알겠습니다.”
하이 프리스트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지금 이 대륙에 불어닥칠지도 모르는 재앙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오. 가급적 입을 조심해 주길 바라오. 바이서스는 현재 전쟁중이며 그 것만으로도 민심은 흉흉하오. 모두들 지혜로운 분들이니 잘들 아실 것이오.”
모두들 입을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하이 프리스트는 아프나이델에게 말했다.
“노커 님과 칼 일행은 어떻게든 그 드래곤 라자를 찾아야 되는 이유가 있소. 다른 분들, 길시언과 네리아 양, 그리고 아프나이델 씨는 어쩌시겠소? 별 계획이 없다면 칼 일행을 도와주셨으면 하오. 그랜드스톰에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이며 만족할 만한 보상도 있을 것이오.”
네리아는 진한 콧소리를 내었다.
“카아아알 아저씨이이잉?”
칼은 난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도와주신다면 좋겠지요. 네리아 양은 밤의 세계의 정보를 취급하실 수 있으실 테니까.”
“키스해 줄까요?”
“아니! 그건 됐소.”
아프나이델은 조금 더듬거리며 말했다.
“칼. 전 당신들에게 갚을빚이 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허락하실 수는 없겠지만, 저도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욕심의 문제도 있습니다. 전 스승을 찾아왔지만, 여러분들처럼 우수한 모험가들을 따라다니며 제 자질을 키워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우린 별로 우수한 모험가는 아니오. 그리고 나야 별로 거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엑셀핸드는 간단히 말했다.
“난, 그 드래곤 라자를 찾아야 될 이유가 크지. 함께해도 될까?”
“당연합니다.”
칼은 무조건 선선히 웃으며 허락했다. 에구, 사람이 너무 좋아. 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 빼고 모두 한가락하는 사람들이니 상관없겠지만.
그런데 그때까지 길시언은 입을 열지 않았다. 칼과 하이 프리스트는 길시언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길시언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난 모험가며, 모험과 보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갑니다. 하지만, 동료의 문제. 어렵군요. 칼, 아실 겁니다. 제가 함부로 동료를 고를 수 없다는 것을.”
하이 프리스트와 엑셀핸드, 그리고 아프나이델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지만 우리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시언은 누군지도 모를 암살자에게 추적당하는 사람이 다. 그 작자는 길시언이 왕권에 위험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없애려 하고 있다. 그리고 길시언은 그 암살자들과의 충돌 과정에서 우리에게까지 해가 올 것이 두려 워 함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칼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도에서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그 소녀가 수도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수도에서는 도와주시겠군요.”
길시언은 묵묵히 칼을 바라보았고, 칼은 미소로 길시언을 바라보았다. 길시언은 피식 웃어버렸다.
“모험가의 생활이 길었습니다만, 그 동안은 동료도 없는 좀 이상한 모험가였죠. 이제 슬슬 동료를 맞이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미력하지만,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 다.”
칼은 환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전하께서 함께하신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전하가 아닙니다! 길시언, 길시언입니다!”
“아, 예…….”
하이 프리스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한 달 후 크라드메서가 활동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추적의 기간은 한 달로 정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더 힘들겠지요. 이 어려운 여정에 오로지 행운만이 함께 할 거라는 식의 약속은 드릴 수 없소. 하지만 그랜드스톰이 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드렸고,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돕겠소. 일행의 지휘는 칼이 맡으실 것이고, 칼의 판단에 따라 모두들 움직여 주시오.”
칼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대들에게 에델브로이의 축복이 함께하길.”
난 잠시 하이 프리스트를 바라보았다. 하이 프리스트는 내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하이 프리스트가 모아놓은 대로 팀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 목적은 어떤 소녀의 추적. 사실 어떤 소녀의 추적이라면 여행자나 상인에게 의뢰하는 것이 나 을 텐데. 하이 프리스트는 크라드메서가 웨이크닝에 들어갔다는 소식과 우리의 도착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만으로 이 팀을 구성했다.
그것 참…………. 그것이 에델브로이의 가르침인가? 수단은 사건의 옆에 있다는?
너무 엄청난 이야기를 연속으로 들어버려서 머리가 꽤 아픈데.
우리는 모두 그랜드스톰의 거대한 회의실 하나에 모여 있었다. 하이 프리스트는 이 방을 마음대로 쓰라고 했으며 그 외에도 식사나 잠자리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제공하겠다고 했다. 우와! 여관비 굳었다! 그러나 칼은 정중하게 여기서는 회의만 가질 것이며 숙식은 여관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에이.
까마득한 천장에다 멋진 베란다에는 계단이 달려 다른 건물의 베란다로 이어져 있었고 아름다운 창문들에는 평범한 태양빛마저도 아름다운 찬양으로 빛나게 만드는 색유리들이 끼워져 있었다. 근사한 장소였고, 근사한 장소에 들어올 때마다 그러하듯이 샌슨과 나는 좀 불편했다. 엑셀핸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신전은 드워프의 손으로 만들어졌지.”
“아, 그렇습니까? 하긴 이런 건물을 만들려면………….”
아프나이델은 적절하게 대답했고 그래서 엑셀핸드는 씨익 웃었다. 모두가 자리에 모여앉게 되자, 난 먼저 조금 전 궁금하게 여겼던 것을 질문했다.
칼은 내 질문에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가? 사건을 해결할 열쇠는 항상 사건의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이 헬카네스의 법칙 중 하나일세.”
아프나이델이 그 말을 보충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건의 열쇠는 유피넬이 만들고 헬카네스는 그것을 숨긴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숨기는 장소는 항상 사건의 바로 옆. 왜냐하면 그곳이 가장 찾기
가 어려우니까.”
“그럼 하이 프리스트는 똑똑한 사람, 재주 있는 사람보다는 우리가 바로 이때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군요?” 내 질문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도 있으시겠지. 허허. 이거 실망시켜 드리면 어쩌나?”
그러자 엑셀핸드가 말했다.
“실망은 무슨! 아직 시도하지 않은 일이라면 결과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어디 하이 프리스트가 주신 문건을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시작할까요?”
“그거? 자네가 읽게. 그 다락귀신 놈은 자네만 읽으라고 했잖은가.”
칼은 조금 생각하는 눈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 문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물러나 그곳에 시선을 보내지 않으려 했고 네리아는 칼의 어깨 뒤로 살 며시 다가가다가 샌슨의 고함소리를 듣고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물러났다.
칼은 심각한 표정으로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문서는 대략 열 장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우리는 베란다로 나가서 신전의 건물을 구경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머리 아픈 구조였다. 아무래도 수련사들은 반드시 ‘에델브로이여, 길을 열어주소서!’라고 외칠 것 같은데 말이야. 왜 그런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지?
엑셀핸드는 다른 사람은 팔을 얹는 난간에다가 혼자 턱을 올려놓고는 말했다(불쌍해라……………).
“그런데 말이야. 여보게, 드래곤 라자는 다른 사람과 특별히 다른 뭔가가 있는가?”
베란다에 모여 있던 사람은 나와 길시언, 아프나이델, 그리고 엑셀핸드였다. 네리아는 호시탐탐 칼이 읽는 문서를 훔쳐보려고 애쓰고 있었고 샌슨은 네리아를 막기 위해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엑셀핸드의 질문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길시언이 대답할까, 아프나이델이 대답할까?
길시언이 입을 열었다. 오!
“잘 모르겠는데요?”
· 싱거운 왕자님. 아프나이델이 대답했다.
“그런 것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드래곤이나 다른 드래곤 라자만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드래곤과 드래곤 라자만이 알아본다고? 어떻게?”
“그야 저로서는 알 수 없지요. 하지만 옛글에 보면 그런 대목이 나오지 않습니까?”
“난 글 좋아하지 않아. 노래라면 몰라도. 말해 보게.”
“예. 그러니까 드래곤이 드래곤 라자를 알아보고는 ‘귀하는 드래곤 라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군. 날 선택하겠는가?”라고 말하지요. 그럼 드래곤 라자도 말합니다. ‘당 신을 선택하겠다. 당신은 날 선택하겠는가?’ 또는 이런 대목도 많지 않습니까? 드래곤 라자가 어느날 어떤 소년을 보고서는 ‘드래곤라자의 자질을 가졌군. 내가 널 돌봐주마.’. 뭐 그렇게 말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 뭐, 드워프는 확실하고, 엘프도 알아보지 못하는가?”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 말씀입니까? 글쎄요. 유피넬의 어린 자식인 엘프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엑셀핸드는 날 바라보았다.
“그 이루릴은, 델하파의 항구로 갔다고?”
“예.”
“뭐하러?”
“말하지 않았는데요.”
“그래? 흐음. 그 엘프 아가씨가 있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2주 후면 돌아올 거예요.”
“그런가?”
그때 안에서 칼의 말이 들려왔다.
“들어들 오십시오. 다 읽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칼은 서류들을 탁탁 추슬러 모으고 있었고 네리아는 볼이 부어 있었고 샌슨은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헷. 우리는 중앙의 테이블에 몰려 앉았고 칼 은 말했다.
“이 서류의 내용을 공개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 서류가 할슈타일 가문의 개인적인 비밀을 담고 있어서입니다. 알려지면 할슈타일 가문의 수치가 되겠지요.” “그런가? 그럼 됐네. 말하지 말게.”
엑셀핸드는 간단히 대답했다. 우아아앙! 듣고 싶은데! 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몇 가지는 알려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해가 될 듯합니다. 다만 다른 곳에 가셔서 이 내용을 말씀하시지는 마십시오. 귀족가에 있어 명 예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네리아는 히죽 웃었다.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짓자 칼은 천천히 말했다.
“되도록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할슈타일 후작이 훨씬 젊었던 시절, 그는 간혹 집안의 하녀를 침대로 끌어들였던 모양입니다. 좋은 일은 아닙 니다만 귀족가에서는 그다지 낯선 일도 아닙니다.”
엑셀핸드는 콧방귀를 뀌었다. 칼은 설명했다.
“하지만 할슈타일 후작은 그저 재미나 보려고 그랬던 것은 아닌가 봅니다. 당시는 드래곤 로드의 약속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할슈타일 후작 은 조금이라도 일찍 자손을 봐두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몇 년이 지나버리면 다시는 드래곤 라자가 태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본처에게서는 자손이 태어나지 않 았고, 그래서 할슈타일 후작은 다급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집안의 하녀들을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죠.”
네리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동물 같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아이고, 얼굴 붉어진다. 망할. 난 다시 그 후작의 얼굴을 떠올렸다. 흠. 그 양반, 젊었던 시절에는 그랬단 말이지? 칼은 말했다.
“그런데 하녀들에게서도 자손이 태어나지 않았지요. 그래서 후작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줄 알고 거의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드래곤 라자의 자질을 가진 아이들을 끌어모은다는 그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죠.”
“흠, 그런데요?”
“그런데 최근 할슈타일 가문에 이상한 여자가 찾아왔던 모양입니다. 아주 낡은 옷을 입은 병색이 완연한 여자였지요. 그 여자는 할슈타일 저택 앞에 쓰러졌고, 후작 가에서는 거지인 줄 알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하인이 그 여자를 알아보았습니다. 과거에 그 저택에 있었던 하녀였답니다.”
우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후작가에서는 그 하녀를 안으로 옮겨서는 왜 돌아왔냐고 물었지요. 그 하녀는 후작을 불러달라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고작 옛날에 그 저택 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후작을 만나고 싶어한다니, 하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하녀가 놀랄 만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후 작의 아기를 가졌었다는 말이지요.”
“휘이?”
샌슨이 희한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흠.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할슈타일 후작은 놀라서 그 여자에게 달려왔고 여자가 병색이 완연한 것을 보고는 치료하려고 애썼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위독한 상태였지요. 어쨌든 후작은 그 여자의 임종을 지켰는데, 아마 그때 왜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 혹은 아기는 살아 있느냐는 식의 질문을 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만 정확하게 무슨 이야 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후작과 그 여자 단 둘이서 나눈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죽고 나서 후작은 갑자기 붉은 머리의 10대 후반의 고아 소녀를 찾으라고 명령했답니다.”
“그게 그 여자가 남긴 유언인가 보군요.”
아프나이델의 질문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단지 붉은 머리의 10대 후반의 소녀라고 한다면…
“그리고, 드래곤 라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네리아의 말이었다. 아프나이델은 네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마 그렇게 찾는 것이겠죠. 붉은 머리의 10대 소녀를 먼저 찾은 다음, 드래곤 라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거 아닐까요?”
아, 저 이야기. 바로 어제 네리아와 나눈 이야기로군. 엑셀핸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조금 전 아프나이델 자네도 드래곤 라자는 드래곤 라자를 알아본다고 했지?”
“그렇군요. 그런 방법으로 찾겠군요. 그렇다면 그 소녀가 수도에 있다는 말입니까?”
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소. 후작은 바이서스 곳곳에 사람을 보내어 붉은 머리의 10대 소녀인 고아가 있는지 알아보게 한 모양이오.”
아프나이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너무 막막하군요. 그 죽은 하녀가 정확하게 어디에 그 소녀가 있는지는 말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후작은 친분 관계가 있는 상인들에게 부탁하거나 의뢰하여 바이서스 곳곳에서 붉은 머리의 소녀를 찾아보라고 명령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보 면 무식한 방법입니다만, 생각해 보니 붉은 머리, 10대 후반, 고아,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아이가 그렇게나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못 돼도 백 단위까지는 올라갈 텐데?”
“그럴까요?”
칼은 미소를 지었다. 엑셀핸드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말해 보게.”
“이 문서를 작성한 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수학을 퍽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읽어드리고 싶군요.”
칼은 문서를 뒤적거리더니 한 부분을 찾아내고는, 헛기침을 좀 한 다음 말했다.
“흠, 들어보십시오. ‘바이서스의 인구는 약 35만 명 가량이다. 여기서 소거법으로 그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을 찾아내 보면, 먼저 여자이므로 인구의 반인 17만 명으 로 줄어들게 된다. 다음 10대 후반. 15세에서 20세까지의 소녀로 가정하고, 전체 인구 중 이 나이의 비율을 보면 대략 15퍼센트 정도 된다.’ 허, 이 수치는 다시 조사 해 봐야겠군요. 정확한 건지. 어쨌든 17만 명의 15퍼센트니까 2만 5500명이 된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빨강머리? 그건 어떻게 하지요.”
아프나이델의 질문에 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머리카락 빛깔이라는 것이, 희귀한 색깔도 있고 흔한 색깔도 있어서 이 부분에서는 좀 고민을 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 문서의 작성자는 하루 종일 대로에 서서 지나 가는 사람의 숫자와 그중 붉은 머리의 사람의 숫자를 세어보았나 봅니다.”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내가 보아도 말이 안 되는 말이다.
“하핫! 그게 말이나 돼요?”
“응? 왜 그러는가, 네드발 군?”
“그 말은 결국 대로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가지고 조사를 했다는 말이잖아요. 여자들은 대로에 잘 돌아다니지 않아요. 그런데 필요한 확률은 여자들 중에 붉은 머 리가 얼마나 되는지 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샌슨이 말했다.
“남자나 여자나, 뭐 머리 빛깔의 비율은 똑같지 않을까?”
“에이, 말도 안 돼. 그럼 남자와 여자의 키나 몸무게 비율도 똑같아야 되게? 게다가 그런 식으로 조사하면 백발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지? 필요한 비율은 10 대 후반 소녀 중에서의 붉은 머리 소녀의 비율인데. 한 가지 더. 지방마다 머리 빛깔에 조금씩 차이가 날 수도 있잖아?”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하지만 일단은 이 조건을 따라가 보세나. 여자와 남자의 머리 빛깔 비율이 다르다 해도 극심하게 다를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이 작성자도 백발머리는 뺐겠지. 지방마다 다르다는 말은 일리가 있네만 바이서스 임펠은 나라 중앙에 있는 도시이고 많은 인구가 사는 곳이니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수치라고 볼 수도 있 겠지.”
“흐으음………… 그래서 얼마래요?”
“이 작성자가 세어보길, 대로에 돌아다니는 사람 중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4퍼센트 정도라는데?”
네리아가 붉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말했다.
“4퍼센트? 그렇게 적나?”
“그런가 봅니다. 그런 식으로 계산해서 2만 5500명 중 붉은 머리의 비율을 계산해 보면 1020명 정도가 나온답니다.” 엑셀핸드는 숫자가 계속 나오자 머리가 아프다는 시늉을 했다.
“원 참, 그놈의 숫자 놀음. 그럼 끝났는가? 바이서스 내부에는 그런 조건에 맞아드는 소녀가 천 명쯤 된다. 이 말인가?”
“아니,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고아라는 겁니다.”
엑셀핸드는 머릿가죽을 매우 험악하게 긁적였다.
“고아 비율은 어떻게 계산해?”
“이것은 왕실 학술원에서 조사한 자료를 이용했나 봅니다. 요즘은 전쟁 때문에 고아 발생률이 높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요즘 자료를 이용할 수야 없습니다. 찾는 아 이는 10대 후반…………, 따라서 10년 정도 전의 기록을 사용해서 알아본 결과 고아의 비율은 200명에 세 명 꼴이랍니다.”
엑셀핸드는 그만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쳤다.
“아프나이델!”
“1.5퍼센트라는 말입니다.”
“그래? 그럼? 1020명이라고? 그중에서는?”
“열다섯 명에서 열여섯 명 정도 됩니다.”
엑셀핸드는 그 굵직한 눈썹을 크게 꿈뻑거렸다.
“그것밖에 안 돼?”
어랏, 정말 그것밖에 안 되나? 이 넓은 나라 안에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이 고작 그거야? 사람들은 모두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고 난 네리아를 바라보았다.
“헤에, 그럼 네리아도 이 대륙에 열다섯 명밖에 없는 사람들 중에 하나네요? 나이가 조금 틀리지만.”
“무슨 소리! 신비에 속하는 매혹적인 얼굴과 거의 범죄에 속할 만큼 아름다운 몸매, 그리고 우아한 거동, 상냥한 마음씨, 그런 조건은 계산하지 않았잖아? 그런 조건 까지 따진다면 확률이 더 떨어질걸?”
“새, 샌슨! 나, 남길 말은…….”
“나 죽었어. 사인(死因)은 기가 막혀서. 그러니 말 걸지 마.”
네리아에 의해 잠시 동안 우리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급박한 순간이 지나고 나서 길시언은 말했다.
“그럼 간단하군. 대륙을 이 잡듯이 뒤져서 그런 소녀를 열다섯 명 정도만 찾아보면 된다, 이거군요?”
길시언의 말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계산은 순수하게 탁상 공론이니만큼 실제와는 많이 다를 겁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수백 명의 소녀를 찾을 일은 없을 것 같군요. 한결 편하게 되었습니 다.”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바이서스를 그냥 돌아다니며 그런 소녀를 찾아야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일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여유 기간은 한 달 입니다.”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말만 하면 고개를 끄덕이시는군.
“하긴………….. 우리는 웨스트 그레이드에서 미드 그레이드까지 오는 데만도 한 달 가까이 걸렸지. 더군다나 그것은 그냥 달린 것. 만일 마을이나 도시마다 조건에 맞는
모든 소녀를 찾아보려고 한다면·· 그건 너무 어렵겠군.”
사람들은 모두 취향대로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엑셀핸드가 가장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칼이 가장 점잖았지만 어쨌든 모두 골치 아픈 표정이었다. 그때 신비에 속하는 매혹적인 얼굴과 거의 범죄에 속할 만큼 아름다운 몸매, 그리고 우아한 거동, 상냥한 마음씨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말했다.
“거꾸로 하죠?”
“무슨 말이오, 네리아 양?”
네리아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그 소녀의 과거의 조건 말고 현재의 조건으로 찾아봐요. 10대 후반의 소녀, 그리고 고아죠? 만일 살아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세상에서 고아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 퍽 적어요. 내 경험상으로.”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렇다 해도 뾰족한 방법이 있겠소? 의견이 있다면 들려주시오.”
“일단은 새 모이를 던지죠. 상회, 조합 등에다 물어보는 방법도 좋고요.”
“새 모이를 던진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