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3권 – 제6부 : 톱메이지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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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3권 – 제6부 : 톱메이지 5화

5

기운 빠지는 귀가길이다. 젠장.

품속에는 넥슨이 대충 그려준 할슈타일 후작 저택의 지도가 들어 있다. 그럼, 이제 이 지도를 보고는 저택가에 침입해서 그 책을 빼와야 하나? 허 참. 기막히구먼. 내 가 수도까지 올라와서 도둑질에 대해 염려해야 되게 되었다니.

걸음마저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내 다리가 이렇게 무거웠나? 말이 안 된다. 17년 동안 걸어다녔던 느낌을 그새 잊어먹었단 말이야? 제기랄. 늘상 끼고 있던 OPG가 없으니 기분이 여러 가지로 이상하다.

그런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은, 빌어먹을, 네리아가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것이다.

괴상한 녀석! 왜 우리한테 시키는 거야!

참, 그 제안은 네리아가 한 거였지.

기운 빠진다. 정말 기운 빠진다. 정말……………

“으어어엇!”

최악이다. 내 다리에 내가 걸려 넘어지다니. 땅이 강하게 내 볼을 때렸고 쓸려버린 볼의 살갗은 까슬까슬하게 벗겨졌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것!”

“제 발에 제가 걸리고 누굴 욕하는 거야?”

지나가던 행인 하나가 나에게 던진 말이다. 젠장, 그러고 보니 땅에 쓰러진 내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뭐 볼 게 있다고 그렇게들 쳐다봐? 난 일어나 서 몸을 털었다.

몸을 터는 손에 힘이 너무 없었다. 젠장, 내 힘이 이것밖에 안 되나? 난 있는 힘껏 내 몸을 쳤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대신 손바닥만 벌겋게 되었을 뿐이다. 난 악에 받 쳐서 내 몸을 두드려대었다.

퍽, 퍽, 퍼벅!

주위에서는 웬 미친 놈이 땅에 쓰러지고는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자해중이라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보든지 말든지.

……아무래도 보든지 말든지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군. 난 입술을 깨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너무 맥빠진다. 허수아비가 걸어도 나보다는 잘 걷 겠다.

허수아비?

갑자기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이, 그러나 당황한 감정 때문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던 말이 떠올랐다.

‘맙소사………… 바이서스 임펠의 길드 마스터가 허수아비였다니, 말도 안 돼.’

네리아의 말이었지. 무슨 뜻이지?

‘나는 넥슨휴리첼. 휴리첼 가문의 장자, 에델브로이의 재가 프리스트, 바이서스 임펠의 길드 마스터.’

넥슨은 그렇게 말했다. 분명히 바이서스 임펠의 길드 마스터. 길드 마스터인 자크가 그 자리에 있는데도 그렇게 말했으며 자크는 그 말에 아무런 불만이 없는 듯했 다. 그렇다면, 역시 실제의 마스터는 넥슨이며 자크는 지금껏 허수아비 마스터였다는 말이 되는군.

나는 갑작스런 깊은 생각에 잠겨 심각한 얼굴로 걸었다. 볼 만했을 것이다. 볼에는 쏠린 자국이 가득하고 몸은 흙투성이가 된 소년이 심각한 표정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전통적인 조직학의 응용일 뿐이야.’

넥슨의 말. 전통적인 조직학. 이게 뭘까? 난 뒤에 ‘학’자가 붙으면 일단 삼엄한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는 점이 문제로군. 젠장, ‘학자 붙은 것은 싫지만, 어디 보자. 전 통적인 조직학이라. 그게 무슨 말일까? 아까의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그렇군.

넥슨은 귀족이기 때문에 도둑 길드를 거느릴 수 없군. 그래서 자크를 대리인으로서 내세워 도둑 길드를 운영해 왔단 말이렷다? 그게 넥슨이 말한 전통 조직학의 응 용이로군.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란 말이군?”

네리아의 말. 넥슨 휴리첼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말이 돼. 시간과 노력의 문제야.’

넥슨의 말. 엄청난 시간과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도둑 길드를 만들어내었다는 말이겠지. 귀족이면서도.

왜?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왜? 돈이 좋아서? 그건 바보 같은 말이다. 돈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도둑 길드를 만들다니. 그런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웃기는 말이 된다. 도둑이 좋아서? 젠장, 그만해라, 후치 네드발! 자꾸 말이 안 되는 말만 하는군.

이거 장난이 아니게 돌아가는걸? 나는 걸음을 바삐 놀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칼과 의논을 좀 해봐야겠다. 아니, 어차피 네리아를 구해 내려면 우리 일행과 의논을

해야 되긴 하지만, 내가 알아낸 사실이 의외로 굉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급하다. 그런데 걸음이 왜 이 모양이지? 내게 OPG를 돌려줘! 망할.

“안내해. 가서 다 때려눕히지.”

샌슨의 말. 그리고 나는 길시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놔요. 5셀.”

“젠장. 이건 불공평해!”

길시언은 투덜거리면서도 왕자님답게 동전 5개를 내밀었고 샌슨은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길시언과 함께 먼저 와 있던 아프나이델이 설명해 주었다.

“후치는 당신이 틀림없이 그렇게 말할 거라고 했고 길시언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내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샌슨은 결국 ‘그 정도로 심한 녀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샌슨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야, 그럼 내게도 2셀쯤 내놔.”

샌슨의 말에 그와 함께 돌아왔던 엑셀핸드와 칼의 얼굴이 괴상하게 바뀌었다.

“퍼시발 군.”

“농담입니다. 젠장,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우리는 모두 남자들의 방에 모여 있었다. 내가 유니콘 인에 도착해서 일행이 돌아오기를 초조히 기다린 끝에, 먼저 입에 거품을 문 길시언과 킬킬거리는 아프나이델 이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 후 샌슨과 칼, 엑셀핸드도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모조리 우리 방으로 끌고 올라와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칼은 심각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또각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책을 가져다줘야 네리아 양이 풀려난다, 그런 말이로군?”

“그래요.”

“이상한 일에 말려들었군. 허허, 참.”

엑셀핸드는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그 나이트호크 아가씨는 자기가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자넬 내보냈다고 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순 없지. 좋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자.”

그러자 일행의 눈은 동시에 칼에게 집중되었다. 그것 참. 칼은 대단해. 그리고 역시 칼은 엄숙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의아하군요. 넥슨 휴리첼이 사실은 바이서스 임펠의 마스터였다라. 그가 왜? 돈이 궁해서? 천만에. 돈이 궁하다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지. 그렇다면?” “심상치 않군요.”

아프나이델의 대답이었다.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이 궁금해지는군요. 그자가 원하는 푸른 책을 본다면 그자의 목적도 짐작할 수 있겠지요.”

“훔쳐내실 생각이십니까?”

길시언의 질문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의 내용에 따라 넥슨의 정체가 보다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리아 양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그 책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도의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런 말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입니다만, 할 수 없군요.”

길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돕겠습니다. 여러분의 중지를 알고 싶습니다만.”

샌슨은 칼의 뜻대로 하겠다고 말했으며, 엑셀핸드는 도둑질에는 관심이 없지만 동료의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프나이델 역시 그 책이 궁금하다고 말하 며 찬성했다. 그러자 길시언은 내게 질문했다.

“후치? 그 푸른 책에 대해서 차근차근 좀 들려다오. 들은 그대로.”

넥슨은 바이서스 임펠의 길드 마스터였지만 그의 길드에 있는 그 누구도 할슈타일 저택에는 잠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할슈타일 가문에서 찾고 있는 빨 강머리 소녀로 위장시켜 들여보낸다는, 어쩌면 실현 가능성이 전무할지도 모르는 계획이 나왔던 것이다.

넥슨은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말해 준 것은 그 책은 할슈타일 후작의 서재 책장에 들어 있으며, 푸른 표지라서 다른 장부나 서류와는 구분하기 쉽다는 것뿐이다. 샌슨이 말했다.

“그럼 뭐야? 살금살금 후작의 저택에 들어간 다음, 그 서재에서 책을 가져오면 된다. 이거군?”

그런데 그 할슈타일 저택이라는 것이 걸작이다. 최소한 바이서스 임펠의 도둑 길드에 있는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니까.

나는 넥슨이 준 종이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일행의 머리가 전부 테이블 위의 종이에 쏠렸다. 아니, 단 한 명. 엑셀핸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엑셀핸드는 노한 목소 리로 투덜거리다가 아예 테이블 위에 올라앉았다.

“잘 보세요. 후작의 저택은 어디의 담을 넘어가더라도 정원을 한참 가로지르지 않으면 본관에 닿을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건물이 바로 바깥에 노출되는 부분은 한 군데도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밤마다 이 정원에는 페이스풀 하운드들이 소환된다더군요. 이름이 정확한지 모르겠어요.”

아프나이델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끄응. 맞다. 그거 안 좋은 소식이군.”

칼은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고 아프나이델은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푸우. 그건 클래스 4이상의 마법입니다. 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만 대략은 알고 있습니다. 페이스풀 하운드들은 다른 차원에서 마법사에 의해 호출되는 개들입니 다. 이들은 우리 차원의 무기로는 절대로 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페이스풀 하운드 자체는 이쪽 차원의 생물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개들은 아무 리 어두워도 상대를 볼 수 있고, 심지어 투명 마법을 써도 그 마법적인 기운을 느끼고 짖어댑니다.”

“못 때린다고요?”

샌슨이 아주 억울하다는 어투로 물었고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샌슨은 자신의 검을 가리키면서 다시 질문했다.

“제 검은 은이 입혀져 있습니다. 은으로 된 무기는 대개 그런 유령 같은 놈들을 때릴 수 있는데요?”

“물론 언데드 계열이라면 타격이 가능합니다만 페이스풀 하운드는 언데드가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다른 차원의 생물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언데드는 우리 차원의 생물입니다.”

샌슨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아프나이델은 의아한 얼굴로 나에게 질문했다.

“그런 고급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틀림없이 마법사가 있을 텐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나?”

“마법사는 없어요. 그 저택에 있는 모든 마법은 드래곤이 걸어준 거래요.”

아프나이델은 탄식을 뱉었다.

“아, 드래곤이………… 그렇군.”

“예. 그 가문은 300년이 넘게 드래곤 라자를 배출한 가문이죠. 그 동안 드래곤들이 그 저택에 무수한 마법을 걸어주었던 모양입니다. 그 저택은 이 도시에서 빛의 탑 을 제외하면 가장 신비한 장소라는 말을 하던데요.”

“후우. 좋아. 계속해 보게. 아니, 잠깐. 적어가면서 하지.”

아프나이델은 잉크, 펜 등을 가져와서 넥슨이 준 그 지도의 정원 부분에다가 FH라고 적어놓았다. 나는 계속 설명했다.

“어쨌든 이 개들이 짖어대면 즉각 경비병들이 들이닥치게 됩니다. 여기, 별관에서 출동하게 된답니다. 예. 거기요. 이 경비병들의 숫자는 모두 30명인데, 모두 노련 한 전사들이라고 하는군요. 그 사람들 역시 할슈타일 가문이 300년간 대대로 정성을 가지고 길러낸 전사들의 후예이기 때문에 매수당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고 합니다.”

아프나이델은 입맛이 쓰다는 표정으로 F-30이라고 썼다. 전사가 30명이라는 말이겠지. 샌슨은 이빨을 사리물었다.

“갈수록…… 더 있어?”

“아직 시작도 안했어.”

“아이고!”

“본관은 3층 건물로 3층에 후작의 침실과 기타 중요한 방들이 있다고 해요. 각층을 연결하는 것은 중앙의 커다란 계단 하나인데, 예. 그거요. 커다랗죠? 본관 안에는 항상 하인들이 오가기 때문에 이 커다란 계단을 몰래 올라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요. 왜냐하면 후작 저택의 하인들은 3교대로 움직이거든.” “3교대. 허어!”

엑셀핸드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8시간씩 교대로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인이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없대요. 그리고 후작의 방은 3층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게 정말 또 걸작이거 든. 이 건물에는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있지만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없어요.”

“뭐야? 그럼 후작은 어떻게 올라가는데?”

“2층 여기 중앙의 방에 주문이 걸려 있대요. 텔레포트 스펠을 영구화시켜 3층 중앙의 방에 연결시켜 둔 모양입니다. 예. 거기 그 방이오. 그래서 2층의 이 방에 들어 가서 약속어를 외우면 3층의 방으로 휘익! 옮겨간대요. 끝내주죠? 그리고 물론, 텔레포트 스펠을 작동시키는 약속어는 후작 이외에는 아무도 몰라요. 3층은 후작만이 사용하는 층이랍니다.”

“얼씨구, 잘한다. 3층에는 당연히 창문 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렷다?”

엑셀핸드의 질문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환기 문제도 있고 해서 창문은 큼직한 것들이 달려 있대요. 거의 베란다를 달아도 될 정도로 크다는데요. 그런데 이 창문이 역시 기가 막힌 물건이죠. 창문으 로 올라가려면 벽을 타야 되는데, 도둑 길드가 알고 있는 어떤 벽타기꾼도 이 벽은 못 탄답니다. 왜냐하면 벽에는 그리스 주문이 영구화로 걸려 있거든요.”

샌슨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거! 이루릴이 쓰던 거, 그러니까 미끄러지게 하는 마법?”

“응.”

아프나이델은 한숨을 쉬다가 다시 말했다.

“만일 날아 들어간다면?”

“창문은 평범한 형태지만 전부 알람 스펠이 걸려 있대요.”

아프나이델은 다시 한숨을 쉬다가 주위 사람들을 위해 설명했다.

“알람 주문은 누군가 지나가게 되면 요란한 소리를 내게 되는 경계용의 주문입니다.”

“안 들키고 지나갈 수는?”

“유령이 아닌 바에는 아무도 들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비저빌리티를 사용해도 들키는걸요.”

샌슨은 으르렁거렸다.

“그걸로 끝이야?”

“여기까지가 도둑 길드에서 아는 거래. 3층 내부에는 들어가보지 못해서 어떤 마법이 더 걸려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데?”

사람들은 모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칼은 지그시 아프나이델이 기록해 둔 그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허탈한 표정으로 그 종이를 바라 보았다. 샌슨이 말했다.

“젠장, 그냥 도둑 길드를 덮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리아 양이 위험해질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 책이라는 것이 보통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닌걸.”

“그 책이 왜죠?”

“적어도 넥슨 씨는 그 붉은 머리 소녀보다 그 책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행동한단 말이야. 그렇다면 그 책에 담긴 비밀이 대단한 거라는 것은 간단히 짐작되 는데.”

“하지만 들어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들어갈 수 없다라…………, 그것 참. 어디 보세나. 아프나이델 씨. 이 마법들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습니까?”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지 않았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드래곤이 건 마법이라면 그건 이만저만 강한 것이 아닐 겁니다. 저 같은 풋내기 마법사가 덤벼볼 만한 것이 아니겠지요.” 칼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그 종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 역시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그 종이를 노려보게 되었다. 칼은 잠시 후 말했다. “할슈타일 후작께는 미안하지만, 역시 그 책이 필요해.”

샌슨은 칼을 바라보았다.

“필요하시다면?”

“훔쳐내야지…….뭐.”

“어떻게요?”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맞아. 온갖 노력을 다해야 되겠지.

하늘에 무겁게 깔린 암회색의 구름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며칠 내에 눈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군.

할슈타일 저택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굉장하군. 지금 정문 앞에 서 있는데 본관은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암회색의 하늘은 낮게 대지를 내리 누르고 있으되 할슈타일 저택의 건물은 바로 그 하늘을 꿰뚫는 모습으로 저 앞에 서 있었다.

칼은 기운찬 동작으로 말에서 뛰어내렸다.

가관이다. 칼의 옷은 예절보다는 솔직함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더기라고 불러줄 만한 것이다. 저 옷을 만들기 위해 오늘 아침 헌옷을 산 후 샌슨이 저 옷 을 가지고 공놀이를 했다. 뭉쳐서 걷어차고 짓밟고 발로 비비고, 거기다가 엑셀핸드는 코를 풀었으며 길시언은 저 옷을 들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다. 무슨 짓을 했을 까? 칼은 죽고 싶다는 얼굴로 저 옷을 입었다. 게다가 칼의 얼굴엔 재를 부드럽게 발라 멋진 화장을 하고 코를 씰룩거리고 있었으며 허리는 완전히 굽어버린 상태였으 며 지금 당장이라도 입에서 침이 길게 떨어질 듯하다.

그리고 샌슨도 말에서 내렸다.

샌슨은 한결 낫다. 오늘 아침 여관의 마구간을 찾아간 샌슨은 옆에서 길시언이 열심히 할 수 있소! 기운내시오, 샌슨! 오! 우리의 희망 샌슨! 헬턴트 사나이의 참멋을 보여주시오! 사나이는 외모보다는 행동으로 말하는 법!’ 등등의 시시껄렁한 응원을 하는 가운데 씩씩하게 머리를 여물통에 집어넣고는 그대로 머리를 감아버렸다. 옆 에서 보고 있던 말구종의 눈이 1큐빗은 튀어나올 뻔했다. 그 상태 그대로 식당에 들어서자 유니콘 인의 주인장 리테들은 샌슨을 살해하려고 들었고, 그래서 샌슨은 밖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옷은 건드리지 못했지만(샌슨은 옷이 소중하다. 치수가 맞는 옷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신 아주 파격적으로 입고 있다. 바지는 한쪽은 부츠 안 으로, 다른 쪽은 부츠 바깥으로 나와 있고 혁대는 풀어버리고 대신 밧줄로 묶고 있다. 망토 하나를 아낌없이 엑셀핸드의 도끼에 건네주어 걸레로 만들어 두르고 있다. 하지만, 오, 빌어먹을. 그래도 둘은 나보다는 낫다. 난 아직 말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으윽. 엉덩이가 아파 죽겠다. 난 옆안장으로 말을 탄 경험이 없단 말이다.

내 표정을 보더니 샌슨은 폭발할 듯한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난 잡아먹을 듯이 샌슨을 노려보았고, 샌슨은 지나치게 정중한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내게 말했 다.

“원로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레이디 후칠리아. 이제 다 왔습니다.”

오………… 맙소사. 후칠리아! 정말 이름 짓는 센스하고는!

그랬다. 난 가슴에 커다란 솜뭉치를 집어넣어 붕대로 단단히 둘러멘 다음 대단히 요염한 브라를 걸쳐매었다. 허리에는 거들을 입고 그 아래에 가터에 스타킹까지 걸 치고 있다. 젠장, 다리에 털 난 것 깎다가 베인 상처가 아직까지도 쓰라리다. 그러고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흰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이다. 원피스! 맙소사. 우리 아버지가 지금 날 보면 날 절대로 당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실 거다. 이게 칼이 말한 온갖 노력을 다한다는 말인가?

난, 맙소사, 여장을 하고 있다!

죽고 싶어라!

칼은 대문 앞에 섰고 곧 문지기가 달려나왔다. 문지기는 창살처럼 생긴 철문 틈 사이로 우리를 내다보며 말했다.

“누구십니・・・・・”

문지기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하고 곧 나를 바라본 채 넋이 빠져버렸다. 오, 안 돼. 매력이 넘친다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징그러운 시선으로 보지 마! 젠장. 저 문지기는 아마 내 머리카락을 보고 놀라고 있는 것일 게다. 멋있지? 아프나이델이 온갖 고생을 다해서 만들어낸 걸작이지. 붉은 머리! 타 오르는 불꽃처럼 요염 무쌍하고 도발적인 이 컬러, 뇌쇄적이지?

맙소사, 내가 원래 이런 면이 있었나? 난 다소곳이 문지기의 시선이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칼은 말했다.

“여보슈, 이 집안에서 빨강머리 계집애를 찾는다던데?”

저 거칠고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 멋진 말투야….. 칼은 그야말로 어디 뒷골목에서 굴러다니다가 조금 전 기어나온 듯한 말투로 말했다. 문지기는 얼빠진 표정으 로 칼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칼은 다시 말했다.

“맞소, 아니오? 그런 말이 들리기에 저 계집애를 노스 그레이드에서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엉?”

“마, 맞습니다. 잠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문지기는 곧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잠시 후 다시 달려나와 철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오십시오.”

칼은 곧 트레일의 말고삐를 붙잡은 채 걸어 들어갔고 샌슨은 한 손에는 슈팅스타를, 다른 손에는 제미니의 고삐를 쥔 채 칼의 뒤를 따랐다. 나? 물론 제미니 위에 옆 안장을 한 채로 다소곳이, 요조 숙녀처럼,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 망할.

기다란 정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주위의 모습은 가을의 정서를 한껏 뽐내며 고즈넉하면서 장엄했다.

정원 양쪽에 서 있는 커다란 두 개의 분수대는 계절이 계절인지라 물이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원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서 있었고 낙엽이 멋있게 깔려 있었 다. 그러나 포석이 깔린 길에는 낙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낙엽들 사이로는 각양각색의 조각들이 서 있었는데 그 전체의 배치가 대단히 정교했다. 동상의 모습은 주 로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실제 드래곤만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박력 어린 모습은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으르렁거리며 내게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자도 아닌 것이!’라고 외치며, 아우, 뒷덜미야.

본관 앞에 도착하니 곧 말구종과 다른 하인들이 달려나왔다. 말구종이 달려오자 샌슨은 나에게 징그러운 시선을 보내더니 곧 내 안장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두 손 을 겹쳐 내밀었다. 어울린다, 어울려! 젠장. 난 조심스럽게 샌슨의 손을 밟고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자 말구종은 우리 말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그 떠나가는 속도가 엄 청난 까닭은, 칼과 샌슨에게서 풍기는 향기 때문이겠지.

하인들은 우리를 안으로 모셨다. 으리으리한 건물이다. 건물 벽에 그리스 주문이 걸려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건물 벽은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모습으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본관 정문 위로는 거대한 드래곤 얼굴 모양의 부조가 걸려 있었다.

되도록 다소곳이 걸으려 애쓰면서(쉬운 일이 아니었다. 젠장. 구두가 너무 작단 말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홀의 모습이 보였다. 홀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 있었고 정면으 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거대한 계단, 그리고 양쪽으로는 커다란 문들이 보였다. 천장을 본 순간 놀라버렸다.

천장에는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뼈로 만들어진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다. 우와! 드래곤의 머리뼈! 역시 300년 이상 드래곤과 동고동락해 온 집안다운 모습이다. 난 입 을 쩍 벌리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으나 샌슨은 그냥 입을 쩍 벌려버렸다.

아마 집사로 짐작되는 인물이 나오더니 우리를 쳐다보았다.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를 멋있게 뒤로 넘긴 그럴듯한 중년 남자였다. 그 남자는 우리들에게서 풍겨나오 는 그윽하달 수는 없는 향취에 찔끔하는 모습이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할슈타일 가의 사무를 보는 궤헤른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칼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 반갑다. 나 칼이오.”

집사 궤헤른은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엄숙하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희 가문에서 붉은 머리 소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요?”

“뭐? 아, 조가 말해 줬소.”

궤헤른은 칼의 대답이 너무 엉망이어서 조금 냉정을 잃은 모양이다.

“조가…… 누굽니까?”

“아, 내 친구요. 조, 멋쟁이 조. 그 녀석이 그러던데 할슈타일인가 하는 집안에서 빨강머리 계집애를 찾는다고 그러더라고.”

“그 조라는 분은 그 말을 어디서 들었다고 합니까?”

“누구더라? 아, 그래. 메리에게서 들었다고 그러던데?”

“……메리는 누굽니까?”

“내가 알 게 뭐요. 조 녀석이 어디서 끼고 자던 작부겠지. 그놈, 여자 후리는 솜씨가 비상하거든? 끝내준다고. 어느 여자든지 간에 녀석이 한 번 찍으면 그날로 치마 끈 풀었다고 봐야 돼. 녀석 솜씨가 어떤가 하면…………….”

궤헤른 집사는 정중히 손을 들어 칼의 수다를 막았다. 맙소사, 칼,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려? 집사는 말했다.

“우선 이리로 드시지요.”

궤헤른이 우릴 안내한 곳은 홀 옆에 있는 응접실이었다. 이거 안 좋네. 2층으로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필 1층이람. 그러나 칼은 별 내색도 하지 않고 씩씩하게 집 사를 따라 들어갔다.

안내된 곳은 아름다운 장식이 가득한 화려한 응접실이었으나 칼은 과격하게 소파에 앉아버렸고 그러자 샌슨은 보다 더 과격하게 소파를 뭉개버릴 듯이 앉았다. 칼은 소파 위에서 엉덩이로 펄쩍펄쩍 뛰었다.

“허! 그거 푹신푹신하네!”

칼……… 오, 제발. 샌슨도 차마 그 동작은 따라하지 못했다. 그러나 칼은 거리낌없이 집사 궤헤른에게 수다를 떨었다. 벽에 있는 저것은 진짜 금붙이냐? 우와, 초상화 멋있네. 비싼건가? 커튼 한번 우라지게 하얗네. 계집애 속옷보다도 더 하얗구먼. 헤이? 당신 속옷은 어때?

집사 궤헤른은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참아내었다. 그는 칼이 차와 함께 나온 은제 찻숟가락을 소매에 감추려다가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면서까지 온화한 모습을 지켜 내었다. 솔직히 박수를 쳐주고 싶은데? 칼은 머쓱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저 소녀의 내력은 어떻게 됩니까?”

궤헤른의 정중한 질문은 전혀 정중하지 않은 답변을 받았다.

“푸하! 내력? 내력은 무슨 얼어죽을 거, 언제더라? 내가 소장수할 때. 야, 샌슨! 그거 기억나지? 참. 그때가 내가 깃발 날릴 때였지. 내가 소를 몰아서 노스 그레이드 를 지나가면 쫘악! 술집의 아가씨들마다 모두 자지러졌다고! 치마를 뒤집으며 환호했지! 뭐라고? 아, 그래. 노스 그레이드의 윌라무트 마을에서 여기로 소를 끌고 왔 을 때였지. 그게 얼마 전이더라? 어쨌든 여기 왔다가 저 계집애를 주웠지. 쬐끄만 게 시장 바닥에서 징징 짜고 있는 모습이 하도 보기 안쓰러워서 말이야. 그래서 우리 집에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고 키웠지.”

칼의 저 멋진 거짓말은 집사 궤헤른을 몹시 감동시킨 모양이다. 궤헤른은 냄새 때문에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대단히 열성적인 태도로 질문했다.

“그게 정확히 언제쯤인지요.”

“몰라! 야! 후칠리아! 너 몇 살이야?”

나는 얌전히 대답했다.

“전 17세이어요.”

집사 궤헤른은 내 대답이 몹시 마음에 든 모양이다. 10대 후반, 붉은 머리, 고아 출신, 멋지게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하하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궤헤른은 찻숟가락이 몹시 염려된다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칼은 그가 나가자마자 곧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퍼시발 군. 시간이 없으니 바로 행동으로.”

샌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곧 일어났다. 그는 응접실 문을 열고 나섰고, 곧 바깥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이봐! 어디서 싸면 돼?”

어울린다. 정말 무섭도록.

샌슨이 나가고 나자 우리는 그저 태평하게 천장과 주위 벽 장식, 태피스트리나 감상했다. 태피스트리의 무늬도 대개 드래곤의 모습들이 많았다. 내게 이름을 붙여도 좋다고 허락한다면 난 이 저택에 드래곤의 신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겠어.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샌슨인가 해서 보니 샌슨은 아니고 집사 궤헤른이었다. 그런데 집사 궤헤른 뒤쪽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섰다. 난 순간 얼굴을 내리깔았지만 의 심스럽게 보일까 싶어 눈을 올려떠 고개 숙인 채로 그를 훔쳐보았다.

할슈타일 후작이었다. 전에 보았을 때도 날카로운 얼굴이었지만 지금 정체를 숨긴 채로 만나게 되니 정말 그 시선으로 내가 오늘 아침에 먹은 메뉴를 짚어낼 정도로 보였다. 무서워.

칼은 멀뚱한 시선으로 후작을 바라보았다. 집사 궤헤른은 좀 일어나 줬으면 고맙겠다는 시선을 간절하게 보내었지만 칼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듯이 태평하게 말했다.

“난 칼이라는 사람인데, 댁은 뉘시오?”

후작은 싸늘한 얼굴로 칼을 마주보았고 집사 궤헤른은 부리나케 설명했다.

“할슈타일 후작이십니다. 일어나시오!”

그러자 칼은 미적거리며 일어났다. 후작은 칼을 한 번 쳐다보더니 곧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고개를 돌렸다. 칼은 그게 불만스럽다는 듯이 느물거렸다.

“헤엣. 처녀의 향기가 더 마음에 드시오?”

맙소사, 칼, 정말이지………… 당신은…… 멋져! 궤헤른은 이 당돌한 말에 사색이 되었지만 후작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날 바라보았다.

“저 아이인가?”

궤헤른은 곧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후작은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우와, 최고의 위기 순간이다앗! 난 얼굴이 붉어질 만한 상상을 열심히 했지만 내 얼굴은 창 백해진 모양이다. 후작은 물끄러미 날 보더니 말했다.

“얼굴을 들어보아라.”

주, 죽겠군. 난 얼굴을 조금 들어 후작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후다닥 내렸다. 후작은 뚫어질 듯이 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후작은 손을 뻗더니 내 손을 쥐 었다!

아, 안 돼! 젠장. 손을 만져보면….. 와, 우화, 다행이다. 그 동안 OPG를 계속 끼고 있어서 내 손은 햇빛을 별로 받지 못했고 그래서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소녀의 손이라기에는 너무 투박했지만. 난 손을 빼려고 꿈지럭거렸지만 그렇다고 너무 힘센 소녀라고 의심받을까봐 힘을 많이 주지도 못했다.

후작은 내 손을 쥔 채로 한참 서 있더니 다시 손을 놓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어 자신의 손을 닦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사람 불쾌하게 만드는데? 난 후작의 발만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후작은 싸늘하게 궤헤른에게 말했다.

“내 집에서 냄새 나는 것들을 치워라.”

“예?”

“두 번 말해야 되나.”

그러고는 후작은 곧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칼은 얼떨떨한 얼굴이 되어 쾅 소리가 나며 닫히는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궤헤른은 말했다.

“자, 이만들 나가주시오. 또 다른 남자는 어디로 갔소?”

“이, 이봐! 뭐하는 거야? 저 먼 노스 그레이드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그런데 이렇게 쫓아내는 거야?”

“누가 초청이라도 했소? 속히 나가주시오.”

“제기랄! 누굴 놀리는 거야? 안 돼! 이렇게는 못 나가. 여비라도 줘야지!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농담하지 마시고 나가시오!”

칼은 계속 억지를 부려대기 시작했고 그러자 궤헤른도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칼은 질세라 험악하고 야비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궤헤른은 화 를 내며 하인들을 불러들였다.

하인들은 우리를 붙잡아 곧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칼은 고래고래 고함과 비명을 질러대었고 그중 90퍼센트 이상은 욕설로 점철되었다. 홀 중간쯤 끌려갔을 때 샌슨 이 털레털레 나타났다.

“어? 뭐야, 이건?”

샌슨은 얼빠진 목소리로 말하더니 하인들을 불러세우려 했다. 그러나 하인들은 샌슨을 보자마자 곧 그도 붙잡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샌슨 역시 욕지거리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장난치는 거야! 사람 여기까지 불러놓고!”

“누가 불렀어? 너희들이 찾아왔잖아!”

“빨강머리 계집애를 찾는다면서! 죽을 고생을 하며 데려다 줬잖아! 왜 이러는 거야! 젠장, 저만하면 침대에 눕혀놓고 봐도 괜찮잖아?”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옷!”

“저 계집애도 저만하면 괜찮잖아! 엉덩이도 펑퍼짐하고 가슴도 빵빵하고! 게다가 원하는 대로 빨강머리잖아? 뭘 더 바라는 거야!”

새애앤스으은, 주우욱일 거야아아…………! 하인들도 어이없다는 얼굴로 외쳤다.

“이 자식아! 우리 후작님이 어디 끼고 잘 계집 찾는다더냐!”

“뭔 오리발이야! 빨강머리가 좋아서 불렀잖아! 그래서 데려다 줬잖아!”

샌슨과 칼은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후작이 여자를 원해서 찾는 줄 알았다는 식으로 퍼부어대었다. 잘들 논다. 아마 날 놀리기 위해 저러는 것일 테지. 그러나 후작이 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하인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일 것이다.

주먹다짐만 나오지 않았다뿐이지 거의 싸움에 가깝게 우리는 쫓겨났다. 말과 함께 바깥으로 쫓겨나고도 한참 동안 칼과 샌슨은 철문을 흔들면서 욕지거리를 퍼부어 대었고 난 좀 멀찌감치 떨어져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칼과 샌슨은 내가 봐도 좀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욕설을 퍼부어대고는 투덜거리며 물러나 말에 안장을 올렸다. 난 그 틈을 봐서 샌슨에게 살짝 다가서서 귓속말을 했 다.

“돌아가면………… 샌슨, 각오해!”

샌슨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싱글거렸다. 어디 두고 보자! 난 얌전히 말 위에 올라 옆안장을 하고 다소곳이 손을 모아쥐었다. 하지만 속이 부글거리는 것은 못 참겠는 걸? 그러나 칼은 내 참담함에는 관심이 없는지 샌슨에게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었다. 그러자 샌슨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좋아, 제대로 해뒀다는 말이렷다?

우리는 유니콘 인으로 돌아왔다.

“거, 네드발 군. 퍼시발 군의 목은 이제 그만 조르고…

“그럼 다리를 꺾지요!”

“우어어억!”

내가 엎드린 샌슨의 등에 올라타서 다리를 꺾어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칼은 한숨을 쉬었다. 샌슨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방바닥을 두드려대었다.

“죽는 시늉 하지 마!OPG가 없으니 내가 꺾어봐야 얼마나 아프다고!”

“그럼 네가 누워봐라! 내가 꺾어줄 테니까! 아픈지 안 아픈지………….”

“오거에게 자기 다리 맡기는 등신이 어디 있어!”

칼은 대단히 힘겨운 표정으로 우리를 말렸다.

“여보게들. 자네들이 계속 떠드니까 아프나이델 씨가 시작을 못하지 않는가.”

난 씩씩거리며 샌슨의 다리를 놔주었고 샌슨은 껄껄 웃었다. 확실히 별로 아프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야. 언제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음, 레이디 후칠리아. 고향에 돌아가서 한번 그런 모습으로 퍼레이드를 할 계획은…..

곧 나는 샌슨에게 날아들었고 우리 둘은 동시에 균형을 잃고 침대 뒤로 나가떨어져 버렸다. 꽥! 그러자 곧 엑셀핸드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이 시끄러운 친구들아, 좀 조용히 못하겠느냐!”

우리는 툴툴거리며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 오도카니 앉았다. 그러자 아프나이델은 한숨을 쉬며 마법 시전 준비를 갖추었다. 아프나이델은 초조한 표정으로 길시언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길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가에서라면, 한 시간 후쯤이 식사 시간일 겁니다.”

“후우………… 좋습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대략 한 시간쯤 걸릴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진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보지 않으셨다고요?”

“이루릴 양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서 패밀리어의 소환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껏 패밀리어와 복합 커뮤니케이션은 시도해 보지 않았습니다.”

칼은 웃으며 격려했다.

“소환도 성공했으니, 접촉도 당연히 성공할 것이오.”

아프나이델은 긴장된 얼굴이었지만 역시 마법사답게 침착하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먼저 짐 속에서 쇠막대기들을 꺼내어 조립했다. 그러자 커다란 삼발이처럼 생긴 것이 우리 방 한가운데 서게 되었다. 그리고 아프나이델은 여관 주인에게 빌려온 솥을 그 위에 걸었다. 흠, 확실히 삼발이가 맞군.

샌슨은 한쪽 옆에 준비되어 있던 통에서 솥으로 숯을 쏟아부었다. 숯을 차곡차곡 쌓고 나자 아프나이델은 정성어린 손놀림으로 그 위에 향을 덮었다. 그리고 불을 붙 였다.

숯은 바알간, 약간은 미약한 빛을 내면서 타올랐다. 그러자 아프나이델은 방 안의 초를 전부 끄도록 명령했다. 촛불이 다 꺼지고 나자 방 안에는 숯불에서 나오는 미 약한 붉은 빛만이 남게 되었다.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불그스름하게 바뀌었다. 아프나이델은 기이하게 생긴 쇠막대기를 들어올리더니 숯불 위에 피어오르는 향의 연기를 가로로 젓기 시작했다. 그 러고는 내가 모르는 기이한 시동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아프나이델의 주문은 길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그러나 절대로 끊어지지 않았다. 목소리의 고저에 따라 쇠막대기가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고 가끔 아프나이델은 격정적인 동작으로 향을 집어 숯불에 팽개치듯 뿌렸다. 그때마다 불티가 날리며 연기가 자욱해졌다.

엑셀핸드의 드워프다운 얼굴이 검붉은 빛 속에서 더욱 드워프답게 보였다. 어둡고 침침한 불빛 속에 반짝거리는 그 작고 둥근 눈. 칼의 얼굴은 마치 깊은 고뇌에 싸 인 인간의 모습처럼 보였다. 미명은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샌슨은 그저 입을 헤벌리고 있었으나 길시언은 입을 꾹 다문 채였다. 그는 프림 블레 이드의 손잡이를 놓고 있었지만 프림 블레이드는 떠들지 않았다.

웅얼거리는 소리는 언제 멎었는지 모르게 멎었다.

소리가 멎었어? 난 아프나이델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숨을 들이쉬었다.

아프나이델은 눈을 뒤집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마법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상 태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실패인가? 뭔가 위험한 것인가?

갑자기 아프나이델의 입가가 위로 스르르 올라갔다.

“보인다!”

칼의 얼굴이 밝아졌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에 아프나이델은 계속 흐느끼듯이 웅얼거렸다.

“차가운 천장…… 살짝 내려가자. 그래. 문으로………… 살며시 밀어라……………. 너무 긁지는 말고……………. 발톱을 주의해. 딱딱한………… 주위를 보고………… 역시 식사 시간이 군…….”

저건 길시언의 주장이다. 아무리 하인들이 오간다 해도 절대로 식사 시간에는 오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귀족가니까 식사 시간에 소란스러운 발자국 소리를 내거 나 하지는 않을 것이며, 물론, 하인들도 먹어야 되니까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길시언은 식사 시간에는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 다. 물론 사람처럼 큰 것은 들키겠지만, 지금 우리의 정보원은 사람이 아니니까.

“이건 계단이군…… 좋아. 살짝……… 그렇지.”

아프나이델은 마치 날아오르듯이 허리를 슬쩍 올렸다. 아마 지금 그는 저택에 있는 그의 패밀리어와 완전히 혼연 일치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아프나이델은 땅에 내 려서는 것처럼 몸을 살짝 구부리기까지 했다.

“좋아…………, 없군…………. 됐어, 중앙의 방으로…………… 그래………….”

아프나이델은 마치 살금살금 걷듯이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고 그래서 길시언이 기겁하면서 그를 붙잡아 간신히 숯불을 걷어차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길시언이 붙 잡느라 아프나이델은 잠시 머리를 가로저었으나 다시 나직하게 말했다.

“놓칠 뻔했어. 옳지. 그래…………… 당황하지 마라…………… 그 방이다. 그래………… 짜릿한 기운이 느껴진다. 역시 마법이로군…………. 영구화된 마법의 힘이야…………. 밀어라. 응? 이 런……, 좋아. 천장에 매달린다.”

아프나이델은 위로 날아올라 천장에 매달릴 자세를 취해서 다시 한번 길시언을 놀라게 만들었다. 길시언의 부축을 받은 아프나이델은 머리를 휘저었다. 그의 눈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며 아프나이델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뿌듯한 미소와 함께 짧게 말했다.

“접속은 순조롭습니다.”

“좋았소! 당신이 해낼 줄 알았습니다!”

칼은 크게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박수를 쳐주었고, 그러자 아프나이델은 겸연쩍은 모습으로 말했다.

“지금 그 박쥐는 그 방 앞의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방 안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박쥐의 청각도 괜찮은 편이거든요.”

칼은 히죽 웃었다.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이루릴이 레너스 시에서 아프나이델에게 가르쳐준 주문, 패밀리어 부르기. 아프나이델은 이루릴 덕분에 그 주문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선택한 패밀리어는 박쥐였다.

그리고 지금 아프나이델은 우리가 오늘 낮에 숨겨둔 그 박쥐와 완벽한 의사 소통을 성공시킨 것이다. 우리는 기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엑셀핸드는 손가락까 지 꺾어가며 만족을 표시했다.

“저 친구는 역시 마법사라고! 하하하!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후작이 식사를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갈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럼, 계속 그 박쥐와 접속하고 있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번 성공했으니 이젠 자유자재로 할 수 있습니다. 이루릴에게 연락을 부탁할 수도……..?

아프나이델은 말을 꺼내다가 흠칫했다. 나는 눈이 동그랗게 되어 물었다.

“박쥐 이름을 그걸로 지었어요?”

아프나이델의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아프나이델은 주저하면서 말했다.

“아, 감사의 의미로………… 그렇게 지었어.”

샌슨은 입을 쩍 벌리더니 다시 다물며 피식 웃었다.

“박쥐 이름으로는 좀 그렇군요.”

“푸핫하하하! 오, 이런, 미안하네, 아프나이델, 하지만 박쥐에게 이루릴이라니. 프허업!”

엑셀핸드는 배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고 그래서 아프나이델은 더욱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우리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여 있어서 몹시 허기가 졌다. 하지만 후작이 언제 그 방에 들어갈지 모르므로 우리는 허겁지겁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올라왔 다. 주인장 리테들은 우리의 식사 속도에 상당한 감동을 표명했다.

아프나이델은 침대 위에 누워서 눈을 감은 채 자신의 패밀리어 박쥐 이루릴과의 접속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방해될까봐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지루하 게 기다려야 했다.

샌슨이 나직하게 말했다.

“긴 밤이 될 것 같군.”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길시언은 술병과 잔을 돌리기 시작했고 엑셀핸드는 파이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모두들 조용조용한 동작으로 술을 마시거나 파이 프를 피우거나 혹은 샌슨처럼 주방장에게 얻어온 빵을 단조롭게 씹거나 하고 있었다.

우리도 조용히 있으려니 지루했지만 아프나이델도 퍽 힘들 것이다. 계속해서 박쥐와 접속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한마디로 마법을 계속해서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다. 그래서 저렇게 누운 채로 기다리는 것이지만.

샌슨이 빵을 모조리 대충대충 먹어버리고(그는 달인이니까!), 술잔을 몇 번 비우고, 심심해진 나머지 내 코를 비틀려다가 나에게 손등을 물어뜯기고, 소리없이 비명을 좀 지르고, 칼의 눈총에 머쓱한 표정을 짓고, 테이블 아래로 내 다리를 걷어차려다가, 엑셀핸드의 무릎을 걷어차 도끼머리로 한 대 쥐어박히고, 다시 한번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을 무렵이었다.

“올라오는군………….”

아프나이델의 말이었다. 너무나 희미해서 평상시라면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는 잘 들렸다. 모 두들 긴장한 표정으로 드러누워 있는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후작인가 보군…………… 밤색 머리에 희끗희끗한 새치, 맞습니까?” “맞소.”

칼이 대답했다.

“좋아……, 계단을 올라왔어. 후후. 사람들은 자기 집의 천장에 뭐가 매달려 있어도 모른단… 으응. 좋아. 잠겨 있었군. 열쇠를 돌리고…………, 그래. 들어가. 모두 조 용히! 이제 시동어를…………….”

모두 조용히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숨을 멈출 정도로 긴장했다. 아프나이델 역시 몹시 긴장했는지 누운 채로 상체를 조금 떠올리기까지 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이를 악물었다.

아프나이델은 그렇게 상체를 조금 떠올린 자세로 주먹을 부르쥐고 긴장해 있었다. 잠시 후, 아프나이델은 다시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고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드워 프가 크게 호흡하는 소리에 천장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아프나이델은 느릿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좋아…………… 창문으로 날아가거라. 그래. 그대로 날아가라. 가서 쉬어라. 수고했다.”

그리고 아프나이델은 눈을 뜨더니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모두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프나이델은 말했다.

“들었습니다.”

“시동어는 뭡니까?”

아프나이델은 머리를 절절 흔들다가 말했다.

“원참. 허탈해서 말할 기분도 안 나는군요…………. 시동어는 ‘옮겨라.’입니다.”

모두들 얼빠진 표정으로 합창하듯이 말했다.

“옮겨라?”

“예. 어쩌면 마법을 건 드래곤들은 평범한 것이 생각하기 어렵다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나 보군요.”

“그렇군요. 하하. 좋습니다. 그럼 시동어는 알았군요.”

칼은 싱긋 웃으며 그 간단한 말을 종이 위에 적어두었다. 원 참. 그걸 잊어먹을까봐? 어쨌든 넥슨이 준 지도의 2층에는 ‘옮겨라.’라는 말이 적히게 되었다.

“예? 한밤중이요?”

칼은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많이 걸릴 듯합니다.”

그랜드스톰의 프리스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하이 프리스트에 의해 임무를 받았고 모임이나 회의에 사용하라고 방까지 배정받았던 사람들이 라 거절하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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