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21화 – 고약한 드래곤의 성격

고약한 드래곤의 성격

황금빛이 확 뿜어 나오는 가운데, 아르티어스는 처음과 같이 인간의 몸으로 트랜스포메이션했다. 문득 이 영토의 주인이 저렇듯 엘프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데, 손님인 자신이 위압적인 드래곤의 형태로 있다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이다.

“험험..”

아르티어스는 잠시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해 대며 뭐라고 입을 열어야 할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만큼, 타이탄을 집어넣은 후 키아드리아스의 옆에 서 있는 카렐이나 그의 연인인 키아드리아스에게 다짜고짜 행패를 부린 것이 상 당히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었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저 포악한 아르티어스를 향해 돌진했던 연인을 향해서는 그야말로 달콤한 시선을, 그러면서 아르티어스를 향해서는 감히 드러내 놓지는 못하고 밑바닥에 살짝 분노를 깔아 놓은 시선을 던지고 있는 키아드리아스를 향해 아르티어스는 언제 자신이 그렇게 분노했었느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는 주절거렸 다.

“미안하게 되었구먼. 원래 내 성격이 이렇지 않았는데 아들에 대한 사랑이 원체 지극하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됐네. 자네가 카렐인가?”

일단 상대가 의외로 예의를 차리고 나오자 카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위압적인 존재감과 무지막지한 광기를 드러내던 포악한 드래곤과, 저 약간은 쑥스러운 듯한 선량한 미소를 얼굴 가득 짓고 있는 인물이 동일인이라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예, 제가 카렐 아미타유스라고 합니다.”

“나는 아르티어스라고 한다네. 그 넓은 말토리오 산맥에서 혼자서 쓸쓸하게 살고 있지. 그러다가 정을 붙인 아이니까 내가 얼마나…….”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말은 키아드리아스에게 가로막혔다. 상대가 일단 예의를 차리고 나오자, 방금 전까지 그 놀라운 아르티어스의 전투력과 광기 덕분에 주눅 들 어 있던 것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또 연인까지 옆에 서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까지 생기자 원래의 성깔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놈의 성질머리를 뻔히 알고 있는데, 저렇듯 내숭을 떠는 것에 그야말로 기가 막히기 시작한 키아드리아스의 회심의 반격이었다.

“흥! 누가 쓸쓸하게 살았다고 그래요? 2천 년 전에 내가 자기 허락도 받지 않고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노발대발하면서 달려와서는 내 날개를 박살 낸 것은 누구 였죠?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도 쓸쓸하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느냐구요.”

키아드리아스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면서 항변했다.

“허허허…, 그런 일이 있었던가? 원체 오래전의 일이라서 기억도 나지 않는구먼. 아, 원래 드래곤이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는 거지, 뭐 그런 걸 가 지고 아직까지 꽁하니 가슴에 품고 있나? 그런 사소한 기억은 훨훨 털어 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지.”

“날개 부러지는 것이 아르티어스 님에게는 사소한 일일지 몰라도, 처음 잡았던 레어가 너무 비좁아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고 있던 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구 요. 그리고 그걸 다시 제대로 치료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혹시나 날개가 잘못 붙어 버릴까 봐 딴 생명체로 트랜스포메이션도 할 수 없었다구요. 그런 저 를 보면서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드래곤들이 비웃었는데요.”

계속 상대가 밀어붙이자 슬며시 신경질이 나기 시작한 아르티어스는 슬며시 항변하기 시작했다.

“허허, 자네 좀 집요한 데가 있군. 이만 딴 데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르티어스는 난처한 듯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주절거렸지만, 눈에는 한껏 힘을 주어 만약 말을 안 들으면 아예 없애 버리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키 아드리아스에게 살짝 보내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채고는 카렐이 키아드리아스의 팔을 살짝 잡아끌면서 말했다.

“아르티어스 님의 말이 맞아. 괜히 싸울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쉬쉬…, 오늘 당신답지 않게 왜 그러는 거야? 여태껏 우리들은 평화롭게 살았잖아? 나는 이런 사소한 해묵은 감정을 가지고 우리들의 생활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허허헛! 내말이 그 말이라니깐. 해묵은 감정은 씻어 버리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세나. 나도 옛날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니까. 원래가 세월이 가면 모든 생명체의 삶을 거부하는 거대한 바위도 풍요로운 옥토로 탈바꿈하는데, 내 성격이 안 바뀌겠는가? 이해해 줄 거지?”

딴 거는 다 좋았는데 “이해해 줄 거지?”하는 말을 내뱉으며 공포스러운 광기를 드러내는 것을 보며 키아드리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적당히 손봐 준 후 다시 우아하게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저 더럽기 그지없는 성질머리. 아르티어스의 성격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게 이로써 증명된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해해 드리죠.”

키아드리아스의 표정은 누가 봐도 억지로 내뱉는 말이라는 것이 확실했음에도, 아르티어스는 뻔뻔스럽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 이웃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겠나?”

“누가 이웃이라는 거야? 여기서 말토리오 산맥이 얼마나 먼데……’라고 키아드리아스가 생각하고 있는 그때 공간이 확 열리며 누군가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있

는 아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티어스의 앞에 자신의 성과를 보여 주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나타났지만, 바로 그 순간 아리엘은 엄청나게 당황하고 말았다.

<이런 변이 있나?>

피투성이의 청년이 자신의 팔에 안겨 있어야 했는데, 거기에는 피투성이의 웬 어린 계집애가 금발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인사불성인 상태로 안겨 있었기 때문이 다. 하지만 그런 아리엘은 본체만체하고 아르티어스는 재빨리 그에게로 다가와 빼앗듯이 소녀를 받아 들었다.

“이럴 수가…….”

아르티어스는 방금 전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자신의 아들을 아리엘이 그 모양으로 만들어 놓기나 한 듯 그 분노를 아리엘을 향해 터뜨리며 외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 사랑스러운 아들이 왜 이 모양이 되었냐고?”

아르티어스가 축 늘어져 있는 소녀를 단박에 알아보자 아리엘은 안심했다.

<이게 네 아들이 맞냐? 그렇다면, 약속은 지켜졌다.>

“뭐야? 이 빌어먹을 녀석아. 어떻게 약속이 지켜져? 너는 이게 안 보이냐?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아직은 숨이 붙어 있잖은가? 나는 분명히 살아 있는 채로 너에게 건네줬다. 네 손에서 죽건 말건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야. 이것으로 약속은 지켜졌다!>

아리엘은 더 이상 욕을 듣기 싫은 듯 사라져 버렸다. 사실 아리엘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르티어스가 아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 상태로 돌려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아르티어스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분노를 억누르고는 치료에 들어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치유 마법을 이용해서 일단 아들을 살려 놓고 봐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우려와는 달리 아들의 치료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끝났다. 그게 아르티어스로서도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아들의 몸은 내 부에서부터 엄청난 속도로 재생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아르티어스의 치유 마법이 합쳐지자 정말이지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자요.”

이제는 축 늘어져서 잠들어 있는 아들을 하염없이 불안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는 아르티어스가 약간은 불쌍한 듯한 마음이 일었던지, 키아드리아스는 비록 걸레 가 되다시피 한 옷이었지만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아르티어스에게 건네줬다. 그제야 정신이 든 아르티어스는 그 옷을 조심해서 아들의 몸 위에 덮어 줬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레어 안으로 들어가죠. 거기에는 편안한 침대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아무리 치유를 했다고 해도 그런 상태에서 금방 공간 이동을 하 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할 거예요. 그 아이를 그렇게 아끼신다면 며칠 정도 여기서 몸조리나 하고 가는 것이 현명하겠죠. 그런데…, 이런 말 묻기는 좀 이상하지만 저 아이, 드래곤이 맞아요? 제가 보기에는 호비트 같은데?”

“내 아들이야. 더 이상 딴 수식어는 필요 없다.”

“쳇, 잘난 척하기는……. 알았어요. 빨리 따라 들어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