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25화 – 새로운 여행의 비밀 (10권 끝)

새로운 여행의 비밀

“안녕하셨습니까? 폐하.”

“오, 어서 오게나. 자네를 부른 것은 대충 언질을 주기는 했지만 왕자의 결혼식 때문이야.”

“예? 그렇다면 미란 국가 연합에 가라는 이유가…….”

“황태자는 크루마의 여인과 결혼식을 올렸지. 그걸 막으려고 했었지만, 이미 정이 깊이 들어 버린 상태라 떼어 놓기가 힘들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왜 그렇게 갑자 기 고집이 세졌는지,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았지. 그래서 가므 의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둘째를 그곳 여인과 결혼시킬 필요성이 생긴 거야.”

“그래서 호위를 해 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지금 미란은 크루마 제국 내에 존재하면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황이지. 그리고 본국은 과거의 약속을 지킨다는 명분도 있지만, 크루마를 견제하기 위해 미란의 존재가 필요하고 말이야. 하지만 크루마 쪽에서 그 사실을 알아챈다면 그것을 막으려고 총력을 기울일 거야. 물론 왕자가 가는 것은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지만, 그 비밀이 새 나갈 우려는 언제나 있는 것이지. 내 아들을 맡아 줄 수 없겠나?”

“뭐…, 오랜만에 바람이나 쐴 겸 제가 맡기로 하죠.”

“오오, 고맙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내가 몇 명 붙여 줄 테니…….”

“아니, 폐하. 제 부하들을 몇 명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니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경의 부하들을 데려왔다면 그들을 데려가는 것도 상관없겠지. 수효가 많을수록 비밀이 샐 우려만 커지니까 말일세.”

“그렇다면 왕자는?”

“사람을 보냈으니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아스 폰 그래지에트 왕자가 도착했다. 다크는 그 왕자가 꽤 낯이 익었다. 전에 언젠가 정원에서 만났던 그 부끄럼을 잘 타던 소년이었는데, 어느덧 청년이 되어 있었다. 거의 180센티미터에 가까운 키였지만, 그의 아버지와 달리 아주 나약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다크로서는 처음 보는 물건인 안경이라는 것을 끼고 있었다. 동그란 쇠테에 역시 동그란 유리로 만든 렌즈를 붙여 놓은 것이었는데, 유리에 대한 섬세한 가공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안경의 가격은 대단히 비쌌다. 그렇기에 서민들은 눈이 나쁘다 해도 감히 구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고가의 사치품이었 다.

“인사하거라. 이쪽이 네 안전을 책임질 치레아 경이다. 그리고 저 아이가 내 둘째지. 아리아스라고 한다네.”

아리아스는 부황(父皇)의 소개를 듣고, 눈앞의 소녀를 향해 자그마한 안경의 렌즈 너머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치레아 공 국을 다스리는 치레아 대공은 엄청난 무예와 당당한 위엄을 지닌 여자 호걸쯤으로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도 다 다크가 거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 내지 않았기에 떠도는 헛소문이었지만.

다크 일행은 황제와 헤어진 후 곧장 미란 국가 연합으로 공간 이동했다. 미란에서는 혹시나 이들의 행적을 크루마가 눈치 챌 우려가 있었기에 매우 간소한 환영을 했을 뿐이었다. 미란에서 마중 나온 인물은 단 한 명으로 미란의 근위기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오네 기사단에 배속된 근위 기사였다.

그는 평소의 옷차림대로 호화롭게 차려입은 채 손님들을 마중했다. 사실 그는 가므 의장으로부터 크라레스에서 오는 친선 사절이 도착하는데, 그들을 마중하라는 지시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먼 길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가므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숙소까지 안내를 맡을 스테노 네르갈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스테노는 자신이 위임받은 일의 반 이상을 처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공간 이동해 온 인물들을 봤을 때 한눈에 뭔가 찜찜 함을 느낀 것이 사실이었다.

친선 사절이라면 그렇게 중요한 인물도 아니었고, 또 예전처럼 육로나 해로로 장거리 이동을 해서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이동을 행했기에 호위의 규모는 매 우 작은 것이 관례였다. 물론 대단히 비중이 높은 인물이 방문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렇듯 근위 기사 혼자 마중을 나갈 정도의 대접을 받는 인물은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도 저 비싼 안경을 쓴 새파란 젊은이를 뒤에서 호위하고 있는 세 명의 기사들은 스테노가 첫눈에 봤을 때 벌써 그래듀에이트급이라는 것을 눈치 챘을 정도 로 잘 훈련된 기사들이었다. 별 볼일 없는 인물을 호위하는 규모치고는 그 도가 지나친 것이다. 크라레스의 그래듀에이트가 겨우 450여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정확한 추리였다.

“이곳으로 모시라는 의장 전하의 명을 받았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것이나 불편한 점이 있다면 시녀들에게 말씀하시면 해결해 드릴 겁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 겠습니다.”

그리고 스테노가 또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가므의 왕궁 내에서도 가장 경비가 철저한 곳들 중의 한 곳에 그 손님들이 묵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이 묵는 곳은 아주 중요한 손님들을 위한 거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손님들이 묵는 거처 바로 옆에 자리를 줬으니 그 혜택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는 위치임에는 틀림없었다. 저 녀석들이 과연 누군지 궁금증이 치민 그는 한참 생각에 잠겨 걸어가다가 앞에서 마주 걸어오는 근위 기사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 챘다.

“이봐, 스테노.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면서 걸어가는 거야? 애인한테 차였냐?”

“글쎄…,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디에 가는 길인가?”

“아, 며칠 동안 숙소를 변경하라는 지시가 있어서 말일세. 나하고 믹스 보고 당분간 저기 있는 저 방을 쓰라고 지시가 내려왔거든. 뭐, 숙소의 내부를 수리한다나 뭐라나 하면서 말일세. 그것 때문에 오늘 밤부터 묵어야 할 방을 한번 구경해 보려고 왔지.”

“그래?”

이것저것 해야 할 생각이 많았기에 처음에 스테노는 동료가 하는 말을 대충 넘겨들었다. 하지만 돌아서서 가려는 순간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의 동료들이 오늘부 터 묵게 되는 방과 특별 손님을 위한 방의 사이에 크라레스에서 온 사신들이 거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눈치 채자마자 라이오네 기사단장실을 향해 빠 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라이오네 기사단장 키르기스는 자신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스테노를 향해 물었다.

“임무는 정확히 수행했나?”

“예, 각하. 그런데 소관이 한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뭔가?”

“그들의 정체가 뭡니까?”

“누구 말인가?”

“크라레스의 사신들 말입니다. 비리비리해 보이는 안경 쓴 사신을 호위하기 위해 그래듀에이트가 세 명이나 함께 왔단 말입니다.”

“자네는 알 필요 없네.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돌아가서 자네 일을 보게나.”

“저도 어떤 일에 한해서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알고 있는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될 때도 있죠.” 이 정도까지 말한 스테노는 갑자기 자신이 추측하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 찌르면 뭔가 상대에게 반응이 올 것을 노렸던 것이다. “왕국의 안위에 관련된 일이죠?”

“그건…….”

갑작스런 부하의 질문에 당황한 기사단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얼버무렸다.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라면 자네 혼자 마중을 보냈겠나? 쓸데없는 데 머리 쓰지 말고 자네 할 일이나 하게.”

“정략결혼입니까?”

“헙!”

갑자기 숨이 막히는지 괴상한 소리를 질렀던 기사단장은 재빨리 일어서서는 집무실 문밖과 창문 밖을 살펴본 후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거렸다. 코린트와의 전쟁에 휩쓸린 덕분에 뛰어난 기사들의 거의 대부분이 전사해 버린 가므 왕국이었기에 기사단장 또한 저 밑바닥에서 그야말로 벼락출세를 한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아직 윗사람으로서 미숙함이 많았던 것이다.

“자네 그걸 어떻게 알았나?”

“그거야 아주 쉽죠. 엄청난 호위를 받는 인물. 그런데 이쪽에서는 될 수 있다면 표 나지 않게 맞아들였죠. 그리고 그다음에 진행된 것은 호위하는 당사자들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비밀스런 경호. 그런데도 그런 대접을 받는 인물은 비리비리한 새파란 젊은이. 그 젊은이의 나이로 봤을 때 그렇게 높은 경륜이나 직위를 가진 인 물은 아닌게 확실하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신분뿐이죠. 설혹 크라레스의 귀공자가 방문한다고 해도 이렇게 조심스럽게 호위를 하진 않아요. 또 그런 귀공자가 본국 을 방문한다고 해서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구요. 그렇다면 크라레스의 왕자가 방문했다고 봐야겠죠. 그 왕자도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방문한 것일 테니까, 저런 미숙한 왕자가 해낼 수 있는 것은 색싯감 고르는 것 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하기야 저렇게 비리비리해서야 첫날밤을 무사히 보낼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자네, 말조심해!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거야.”

“저는 틀린 말 한 거 없다구요.”

“휴~. 그래 이왕에 눈치 챘으니 어쩔 수 없지. 오늘부터 자네는 잠도 잘 생각 하지 말고 크라레스 왕자를 호위하도록!”

“예?”

“네 녀석이 할 일은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잔머리 굴린 벌이다. 이번 혼례는 본국의 미래가 걸린 일이야. 크루마의 야욕을 막으려면 크라레스 같은 강대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말이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크라레스도 나름대로 정예 기사들을 호위로 보내왔을 것이고, 여기는 왕궁이기에 경비도 철저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만약 비밀이 새 나가 면 크루마는 사력을 다해서 방해 공작을 가해 올 테니 정신 바짝 차리라구. 알겠나?”

“옛, 맡겨만 주십시오.”

크루마라는 강대국이 얼마나 막강한 기사들을 보내오게 될지 그 뒷걱정은 하지도 않는 스테노였다.

크라레스의 왕자가 도착한 다음부터 본격적인 짝 맺어 주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선택된 한 명의 여인을 강제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지체 높 은 귀족들의 여식들을 차례로 선보일 수도 없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비밀이 새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곳곳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무작정 내보 내서 아무나 짝이 되게 만들 수도 없었다.

무도회에 참석하는 경우 왕자의 경호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지체 높은 귀족의 여식이 선택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므 쪽에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가므 의장과 어느 정도 의논 조정을 끝낸 가상의 인물을 먼저 신랑감으로 내세운 다음, 그 인물과 결혼하려는 여인을 찾는다는 미명 아래 지체 높은 귀족 여식들의 초상화를 대량으로 입수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크라레스 왕자는 그 많은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1차 작업이 완료된다. 그런 다음 그 여인과 하루 동안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2차 작업이다. 그리고 그 여인이 마음에 든다면 곧장 결혼식을 감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왕자의 결혼 상대는 정말이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왕자가 선택한 여인들이 왕자와 만남을 가진 후 모두들 퇴짜를 놨기 때문이다. 비밀 유지를 위해 자신 이 만나야 하는 상대가 강대한 신흥 제국 크라레스의 왕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녀들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이 재미없는 왕자하고의 만남이 별 로 유쾌하지 않았던 것이다.

“젠장! 오늘도 헛일이겠는데, 안 그래? 나는 오늘도 안 된다는 것에 1골드 걸지.”

“아서라, 누가 그 내기에 응하겠냐? 저 아가씨 하나도 재미없다는 듯 하품을 하고 있잖아. 누가 저 아가씨 귀에다가 저 양반이 크라레스의 왕자라고 한마디만 해 줘도 저러지 않을 텐데…….’

“시간 낭비야. 이래 가지고는 결말이 안 나와. 저렇게 숫기 없는 사내 녀석은 그냥 아무나 하나 데려다가 그냥 결혼시켜 버리는 것이 최고야. 정이야 함께 살다 보 면 자연히 생겨나는 것 아니겠냐? 여태껏 계집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으니, 처음 접한 그 여자에게 자연히 정이 쌓이게 되어 있다구.”

“미친 소리 하지 마! 그게 될 법이나 한 소리야?”

호위들이 왕자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스테노는 기가 막혔다. 어떻게 저러고도 대 제국의 근위 기사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아니, 스테노가 봤을 때 저들의 저 거친 말투라든지 행동거지로 봤을 때 근위 기사는 절대로 아닌 것 같았다. 근위 기사들은 처음 뽑혔을 때부터 일정 기간 왕궁 예절을 철저하게 교육받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근위 기사도 아니면서 어떻게 왕자의 경호를 맡을 수 있었을까? 그들의 실력이 근위 기사들보다 뛰어나다는 추측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원래가 그렇 게 높은 실력자들만이 근위 기사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스테노는 크라레스에서 온 경호 기사들에게 어슬렁거리며 다가가서 슬쩍 말을 건넸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쪽이야말로. 저런 왕자 호위한다고 그렇게 땀 뻘뻘 흘리며 열심히 경호할 필요 없어요.”

“아니, 저런 왕자라니요? 댁들은 근위 기사로서의 예절도 모른단 말입니까?”

스테노는 일부러 그런 식으로 찔러 봤는데, 역시나 상대들은 껄껄 웃으며 스테노가 원하던 것을 알려 줬다.

“우리들은 근위 기사가 아니오.”

“그렇다면… 중앙 기사단 소속인가요?”

크라레스는 코린트와의 대전이 끝난 후 유령 기사단과 콜렌 기사단을 해체하고 중앙 기사단이라는 단일 체제를 구축했다. 더 이상 힘을 숨길 필요가 없으니 유령 기사단의 존재가 필요 없었고, 콜렌 기사단은 원체 구형 타이탄들로 구성된 부대였기에 구형 타이탄들이 모두 다 용광로로 들어가거나 타국에 판매되어 버리면서 해체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중앙 기사단이었다. 현재 크라레스의 중앙 기사단은 8개 전대로 구성되어 있고, 각 전대는 카프록시아급 타이탄 30대씩으로 이루어진 막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오.”

“그렇다면…….’

상대가 해답을 못 찾고서 버벅거리고 있자 미디아가 친절하게 알려 줬다.

“우리는 치레아 기사단 소속이죠.”

“어? 그렇다면 치레아 대공의 개인 기사단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근위 기사단을 제쳐놓고 호위를 떠맡을 수 있었죠?”

“대공께서 이 일을 맡았기 때문이죠.”

“참! 그런데 치레아 기사단이라면…, 진짜로 황금빛 나는 타이탄을 사용합니까?”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자 스테노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황금 도금을 한 건가요? 아니면 미스릴을 그대로 둔 건가요?”

“황금 도금을 한 거죠. 반짝반짝하면서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아아,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여기까지 소문이 퍼진 모양이죠? 하기야 드라쿤을 가지고 처음 도톤시 외곽에서 기동 연습을 했을 때 정말 대단했었죠. 시민들이 모두들 타이탄을 구경한다고 정

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거든요.”

“그렇다면 댁들께서도 드라쿤을 지급받으셨습니까?”

상대의 물음에 팔시온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팔시온은 자신들이 몇 년에 걸쳐 치레아 대공의 검술 지도를 받았고, 2년 전에 그래듀에이트가 됨과 동시에 타이탄을 지급받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원래 그래듀에이트가 된다고 해도 타이탄을 곧바로 지급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다크의 친구였고, 또 치레아 기사단은 그녀 개인의 기사단이었기에 타이탄 한 대씩 지급해 주는 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남에게 떠벌리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한번 구경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뭐, 어려울 것은 없으니까 나중에 궁에 돌아간 다음에 보여 드리죠.”

“감사합니다.”

상대가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미카엘이 벌떡 일어서면서 말했다.

“끝난것 같아. 자, 일어서라구.”

“오늘도 굉장히 빨리 끝났네.”

“보면 몰라? 오늘도 꽝이라구.”

이렇듯 가므 의장이 애태우는 가운데 왕자의 결혼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처음에 2주 정도로 잡고 있었던 여행은 계속 날짜가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가므 의장은 끈질기게도 이 결혼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강대국 크라레스와 혈연을 맺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 기 때문이다.

가므 의장이 이렇듯 정략결혼 같은 것에까지 심혈을 기울일 정도로 그들의 이웃 나라 크루마는 강했다. 크루마는 코린트와의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불붙기 시작 한 군비 경쟁 덕분에 미란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군비 경쟁의 시작은 재미있게도 신생 강대국 크라레스가 불을 질렀다. 그들은 전쟁에서 노획한 타이탄들을 이용해서 꾸준히 카프록시아의 변형인 테세우스를 생 산해 댔던 것이다. 테세우스의 숫자가 계속 불어나면서 크라레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코린트는 불안을 느꼈고, 그들도 무리할 정도로 타이탄을 생산하기 시작했 다.

그렇게 되자 코린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크루마로서도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3차 군비 증강 작업이 어렵사리 끝난 후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코린트가 급 속도로 전력을 팽창시키자 크루마는 다시 타이탄의 생산을 재개했고 또 크루마의 생산에 위협을 받은 코린트가 생산을 하고..

이런 식의 경쟁이 연속되다 보니, 나중에는 멀쩡하게 굴러가는 구형 타이탄들까지 용광로 속에 쑤셔 넣어 신형 타이탄으로 재생산해 버리는 사태까지 들어갔다. 지금에 이르러서 크루마에서 최하의 출력을 내는 타이탄이 출력 1.5나 되는 카마리에였으니 도대체 얼마나 군비 경쟁이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되자, 코린트, 크루마, 크라레스의 3대 강국과 그 주변 국가들 간의 군사력 차이가 점점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큰 불안을 느 끼고 있는 인물들 중의 한 명이 가므 의장이었다. 미란 국가 연합은 크루마에 완전히 둘러싸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루마로서는 쟉센 평원의 점령지 와 본국을 딱 가로막고 있는 미란의 존재가 매우 못마땅할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호시탐탐 미란을 병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미란은 크루마의 마수에서 벗어 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묵향11 : 외전-다크 레이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