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1권 20화 – 눈물을 흘리는 황제
눈물을 흘리는 황제
“폐하, 놀라운 정보가 입수되었사옵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는 안티노스 후작이었지만, 어디서부터 얼마나 달려왔는지 숨이 다소 거칠어져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예, 코린트의 군대가 비밀리에 탄벤스 공국에 집결 중이옵니다.”
그 보고를 듣고 황제는 지그발트 폰 안티노스 후작의 예상대로 기절할 듯이 놀랬다. 평화 회담을 하고 있는 와중에 코린트의 군대가 탄벤스 공국에 집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라레스 쪽이 그러했듯이 파견했던 기사단을 철수시킨다면 모를까…….
“뭣이?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은십자 기사단이 모두 다 투입된 데다가, 거의 3개 사단에 달하는 병력이 도착했사옵니다. 마법진을 통해 3만에 달하는 군대까지 이동시킨 것을 보면 분명히 대 대적인 전쟁을 벌일 야욕이 있음이 분명하옵니다.”
하지만 황제는 애써 좋지 않은 생각들을 털어 내며 조심스럽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했다. 은십자 기사단이 전부 다 투입된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3개 사단 의 병력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우 3개 사단인데…….”
“하지만이 아니옵니다. 지금도 계속 마법진을 통해 병력이 이동해 오고 있사옵니다. 코린트가 하루에 1만이 넘는 병력을 지속적으로 탄벤스 공국으로 보내고 있 다는 것은 전쟁 외에는 답이 있을 수 없사옵니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하옵니다.”
하루에 1만씩 계속 보내지고 있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병력이 추가적으로 투입될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가 수비적인 개념의 전쟁을 하는 데는 기사단만으로 충분하지만, 공격을 하려면 점령지를 장악하기 위해 군대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6년 전에 대규모로 벌어졌던 전쟁에서 병력이 모자라서 엄청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크라레스였다. 그렇기에 기사단과 함께 상대방의 병력이 대규모로 이동 중이 라는 것은 코린트가 뭔가 침략적인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으음…,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다론을 불러 들여라. 빨리!”
“옛.”
황제의 명령을 받고 근위 기사가 재빨리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 다론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그는 연구실에 있다가 불려 왔는지 여기저기에 뭔가가 묻어 있는 지저분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불러 계셨사옵니까? 폐하.”
“다론 경, 토지에르 경의 치료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 이틀 전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으로 보고를 받았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나?”
“예, 지금 몸조리를 하고 있사옵니다. 경과가 좋다면 아마도 한 달쯤 후에는 완치될 것으로 예상되옵니다.”
“지금 토지에르 경과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는데, 주선을 좀 해 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스승이 안정을 취해야만 할 때였다.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던 스승이었기에 다론은 조심스럽게 황제의 의견에 반대했다.
“예? 하지만 토지에르 경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지라, 여기까지 오는 것은 무리일 것이옵니다.”
“아, 그것은 상관없네. 통신용 마법진을 통해서 몇 가지 의견 교환만 하면 되지, 직접 여기까지 나올 필요까지는 없어. 그것도 안 되겠는가?”
직접 스승이 와야 한다면 몸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지만, 침상에 누운 채로 마법진을 통해서 대화를 한다면 그렇게 무리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위하며 다론은 허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토지에르를 찾을 정도라면 보통 큰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폐하의 명이시라면…….”
“빨리 준비해 주게.”
“옛, 폐하.”
잠시 후 다론의 노력에 의해 회의가 개최되었다. 수정 구슬에 모습을 드러낸 토지에르는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눈빛은 맑게 살아 있었다. 황제는 병상에 누워 있는 토지에르의 야윈 얼굴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표시할 수는 없었다. 일단 이 장소는 공식적인 회의 석 상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천장을 보며 참아 냈다. 그런 후 자신이 낼 수 있는 한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황제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 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토지에르 경. 그래, 몸은 좀 괜찮은가?”
눈물을 참기 위해 천장을 바라보는 황제의 표정을 보고 토지에르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자신이 그만큼 황제에게 커다란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장하여 답했다.
“소신의 몸은 괜찮사옵니다. 폐하께 심려를 끼쳐 드려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게나. 하루라도 빨리 몸을 털고 일어나는 것이 짐을 위하는 것이야. 그건 그렇고 몸이 불편한 경을 부른 것은 상의할 일이 있어서네. 그대가 설 명을 해 주겠나? 안티노스 경.”
안티노스 후작은 병상에 누워 있는 토지에르에게 이번 전쟁의 시작부터 전개 과정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토지에르는 트루비아에서 전쟁이 터지기 전에 병원에 실려 갔기에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다론은 병상에 누워 있는 스승이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복잡한 사건은 아예 보고를 하지 않았기 에 그런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경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코린트는 트루비아를 쓸어버림으로써 본국의 동맹국들에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인 것 같사옵니다. 만약, 만약 본국의 동맹이 무너진다면 더 이상 코린트를 제압 할 수는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토지에르로서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코린트는 엄청난 힘을 지닌 강대국이었고, 또 이번에 적기사까지 대량으로 생산한 저력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 들도 크라레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크라레스의 동맹들을 해체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도 그렇게 생각했는가?”
“탄벤스는 머나먼 변방일 뿐이옵니다. 만약 그곳에서 전쟁이 조금 크게 벌어진다고 해도 코린트는 전면전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코린트에게 본국의 힘을 보여 주소서. 그렇다면 코린트는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이때 코린트가 완전히 두 손을 들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타격을 입혀야만 하옵니다.” “흐음…, 그렇게 되면 코린트가 물러설까?”
황제의 고심에 찬 물음에 토지에르는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그가 생각했을 때 코린트가 이쪽의 뒤통수를 치려다가 그게 발각되어 오히려 그쪽이 커다란 타 격을 당한다면, 크라레스가 결코 만만한 국가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된다면 알아서 꼬리를 내리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예, 그 정도 타격을 당했으니 손을 털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은십자 기사단을 상대하려면 타이탄들을 많이 투입해야 할 텐데.
“폐하, 스바시에 전하께서는 지금 회담 장소에 가 계시니 어쩔 수 없고, 치레아 대공을 보내시옵소서. 그녀와 치레아 기사단이라면 딴 곳에서 병력을 빼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황제는 잠시 궁리를 했다. 물론 키에리라는 검호(劍豪)를 물리친 치레아 대공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타이탄 전력에서 너무 심한 차이가 나는 것 이 좀 걸렸던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간다고 해도 20대는 너무 작은 숫자가 아닐까? 적의 규모는 거의 1백 대에 달하는데…….”
“그러시다면 폐하, 탄벤스 전선에서 빼냈던 기사단을 재차 투입하시면 될 것이옵니다. 국경선에 대기 중인 다른 기사단들을 빼낼 수는 없기 때문이옵니다. 적들이 이쪽을 향해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기습을 가해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사옵니다. 또 이번 전투가 기습으로 승부하는 것인 만큼 그렇게 많은 병력은 필요 없을 것이오나 기밀 유지가 철저해야만 하옵니다. 그렇게 하여 크나큰 타격을 받게 된다면 놈들도 이쪽을 향해 기습 공격을 준비했던 터였기에 아마도 간담이 서늘해져 서 더 이상 딴 생각을 못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탄벤스 전선에서 빼낸 것은 1, 7, 8전대였다. 그들은 이번에 있었던 두 번에 걸친 격렬한 전투 덕분에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크라레스의 대부분의 기사단들은 국경의 중요 요새들을 기지로 하여 타국의 침략을 억제하고 있었기에 빼낼 수는 없었다. 크라레스 기사단들 중에서 임의로 빼낼 수 있는 기사단은 치레 아 기사단과 스바시에 기사단, 그리고 1, 2, 7, 8전대뿐이었던 것이다.
“알겠소, 그렇게 하지.”
“감사하옵니다, 폐하.”
“다론 경! 통신을 해제하라.”
“옛, 폐하.”
다론이 재빨리 통신용 마법진을 해체하고 있는 동안 황제는 안티노스 후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티노스 경.”
“옛, 폐하.”
“치레아에 연락을 보내라. 그리고 소집 해제했던 기사단들을 다시 소집하라. 평화 회담을 하면서 뒤로는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그 가증스러운 코린트에게 호된 맛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옛,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