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1권 6화 – 저들은 뭘 하는 놈들인고
저들은 뭘 하는 놈들인고
“빙고! 저 녀석이 틀림없어!”
망원경을 통해 상대를 차근차근 관찰하던 스펜 안트리아는 이윽고 확신을 가진 듯 외쳤다.
“정말이야?”
아더 존슨의 물음에 스펜은 자신의 품속에 소중히 가지고 온 초상화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그래, 바로 저 녀석이야. 여기 있는 이 초상화에 그려진 그놈이 확실해.”
“좋았어. 이제 목표물은 찾았고, 호위의 규모는?”
아더의 물음에 스펜은 다시금 망원경으로 살펴보며 말했다.
“가만있자……. 옳지! 저기 나무 밑 그늘에 모두 모여 있군. 하나, 둘, 셋, 넷…, 모두 네 명이야.”
“네 명밖에 안 된다고? 뭔가 이상하지 않아? 왕자의 호위인 데다가, 정략결혼의 중요성을 따져 본다면 너무 적어.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새 나간다면 본국에서 무 슨 짓을 해서라도 막으려고 들 거라는 것은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을 텐데, 겨우 네 명이라……. 이봐, 기므에. 저 녀석들의 신분을 조사해 봐.”
아더의 명령을 들은 마법사가 스펜에게 말했다.
“예, 망원경을 좀 주십시오.”
“여기 있네. 호위들은 바로 저 나무 밑에 있어.”
“예.”
기므에는 망원경을 건네받은 후 호위 기사들의 생김새를 열심히 기억했다. 그런 후 본국에 그들의 모습을 전송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본국의 마법사들이 그 들의 신분이나 실력 등등을 조사해 본 후 그 결과를 전송해 줄 것이다.
잠시 후 수정 구슬에 기사 한 명의 얼굴이 나타나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름은 스테노 네르갈. 라이오네 기사단 소속 기사. 8년 전 그래듀에이트 자격 취득. 제국 전쟁 후 라이오네 기사 임명. 전체적인 데이터에 따르면 본국의 수준으 로 봤을 때 간신히 1류 정도에 편입될 수 있는 실력인 것 같습니다.”
그런 후 수정구슬에는 두 번째 기사의 영상이 떠야 함에도 곧장 마법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방금 말씀드린 스테노 외에 다른 사람은 전쟁의 신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크라레스의 기사들 중에서 구 유령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은 전쟁의 신전에 등록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저들은 아마도 근위 기사급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난 실 력을 지녔던 구 유령 기사단 소속의 기사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크라레스 유령 기사단 소속 기사들의 실력은 이미 6년 전에 입증되었었으니까 말입니다.”
수정구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더는 스펜에게 말했다.
“흐음, 근위 기사급 세 명에 라이오네 한 명이라. 그야 당연하겠지. 상대는 크라레스의 왕자니까 근위 기사들이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하겠지. 그렇다 면 놈들의 타이탄은 카프록시아인가? 아니면 그 괴물 같은 청기사?”
청기사라는 말이 나오자 스펜은 신중하게 생각한 후 말했다.
“청기사라면 증원을 좀 더 요청해야 해. 안티고네 다섯 대 가지고 덤비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좋아, 안전하게 나가자구 기므에, 증원을 요청해. 안티고네 다섯 대 정도를 더 불러들인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그건 모르지. 우리는 그때 병원에 있었으니까 청기사가 어떤 타이탄인지 한 번도 보지 못했잖아? 기므에, 청기사 세 대가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지원을 요청한다 고 해. 그렇게 하면 그에 따른 전력 평가는 본국에서 해 주겠지.”
“알겠습니다.”
기므에가 또다시 본국에 통신을 시도하고 있을 때, 아더는 다시금 상대편 기사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크라레스의 근위 기사로 보기 시작하자 그 당당한 덩치라든지 말쑥한 외모 등등 상대가 매우 강인하고 실력 있는 기사들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 녀석들이 그렇게 뛰어난 기사들이라 이 말이지? 초록 도마뱀 작전에서 뛴 이후 다시금 만나 보는 좋은 적수들이구먼…. 그런데, 으응? 저 미인들은 또 누구 지? 우와, 정말 예쁘게 생겼는데?”
“뭐야? 나도 한번 보자.”
스펜의 채근에도 아더는 망원경을 넘기지 않았다. 망원경에 비치는 그 모습들이 정말 대단한 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미인들이군. 저 녀석들 여자 친구들쯤 되나? 그런데… 저 금발…, 상당히 낯이 익지 않아?”
“뭐? 이리 줘 봐.”
스펜은 망원경을 받아 들고 찬찬히 살펴본 다음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만있자……. 그러네, 상당히 낮이 익어. 저 짱딸막한 검이나……. 맞아! 초록 도마뱀 작전 때 만났던 그 마법사 소녀!”
스펜의 말에 아더가 이제야 기억난다는 듯 주절거렸다.
“그래, 바로 그녀야. 그런데, 죽은 줄 알았는데…….”
“이상하네. 그 작전은 크라레스와는 무관했었는데, 어떻게 저 소녀가 크라레스의 인물들과 어울리고 있지? 아니면 미란과 관계가 있는 건가?”
“글쎄…….”
“하기야 뭐, 저 소녀가 한 명 더 끼어 있다고 해도 바뀔 것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보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법사들일 가능성이 있는데 말이야. 특히 저 소녀는 마법사였잖아.”
“뭐, 그러지. 이봐, 기므에.”
“예?”
“통신이 개통되었으면 저기 있는 소녀하고 그 일행도 함께 보고해. 크라레스 쪽인지 미란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근위 기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어느 한쪽의 근위 기사단 소속 마법사들일 테니 꽤 실력이 있다고 봐야 하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기므에가 보고를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답신은 놀라운 것이었다.
“작전을 중지하고 철수하라는 지시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기가 막힌 아더는 기므에를 옆으로 밀치고 수정 구슬에 나타난 마법사에게 직접 따지고 들었다.
“뭐라고? 작전을 중지하고 철수하라고?”
아더의 물음에 수정구슬 속에 비춰지고 있는 노마법사는 간단하게 답했다.
““예.”
“한 번 더 확인해 봐. 자네가 뭔가 잘못 전달받은 것 아닌가?”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법사가 수정 구슬에서 모습을 감추고 난 후 잠시 기다리고 있자 이번에는 화려한 복장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더는 상대가 누군지 즉시 알아보고는 인사 를 올렸다.
“안녕하셨습니까? 바르데 각하.”
“그래, 타국까지 파견되어 작전하느라 수고가 많았네. 전달은 이미 받았겠지만 내가 다시 한 번 더 명령하지. 작전을 중지하고 복귀하라.”
“하지만 적의 호위 규모는 매우 작습니다. 본국 기사단을 몇 시간 내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증원을 보내 주시면.
“자네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군.”
“예?”
“크라레스는 신흥 제국이기는 하지만 매우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나라가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미란과의 정략결혼에 겨우 호위 기사 몇 명만을 보낼 것으로 생각했나?”
“하지만 진짜로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안티고네 10대만 있어도 금방 해치운 다음 철수할 수 있을 겁니다.”
뭣도 모르고 떠들어 대는 부하의 항의에 바르데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확정적으로 말했다.
“10대가 아니라 40대 모두 다 보낸다고 해도 승산이 없다.”
“예?”
“자네의 보고대로라면 그곳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근위 기사단이 아니라 치레아 기사단이다. 그것도 치레아 대공 자신이 직접 인솔하고 있는…… 치레아 대공이라면..”
“그래, 바로 그 크라레스 최고의 무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도와주는 드래곤까지 함께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답이 나올 수가 없어. 잔말 말고 빨 리 철수해라.”
이제 더 이상 수정 구슬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더와 스펜은 어리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크라레스에 있는 엄청난 검객에 대해서는 병원 에서 퇴원한 후 지겹도록 그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그 소문의 당사자가 바로 저기에 있다는 것이다.
“망원경 다시 한 번 더 줘.”
하지만 아더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스펜이 먼저 망원경으로 그쪽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누가 치레아 대공이지? 맞아. 바로 저기 있는 덩치 좋은 여기사인가? 치레아 대공은 여자라고 들었으니까 말이야. 정말 대단한 근육질이군.”
“나도 좀 보자.”
아더는 스펜에게서 망원경을 뺏어 든 후 아래쪽을 살피며 감탄사를 뱉었다.
“그래. 정말 한가락 하게 생겼군 그래. 저 우락부락한 근육질 좀 봐. 엄청나게 수련을 한 여자인 모양인데? 그런데 드래곤은 어디 있는 거지?”
“아마 사람으로 트랜스포메이션 하고 있는 모양이지. 에…, 저 중에서 드래곤이 변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저쪽에 있는 키 큰 빨강머리 미녀밖에 없잖아. 사람이 라고 하기에는 너무 예쁘니까 말이야.”
“앞으로는 저 두 녀석을 잘 기억해 둬야겠군. 자, 철수하자. 여기 오랫동안 있어 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말이야.”
바르데 후작은 아더에게 작전 중지를 지시한 후 급히 미네르바에게로 향했다. 미네르바가 총사령관이었기에 그녀에게 이번에 있었던 모든 일을 보고한 후 다시금 지시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보고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무슨 일인가?”
“예, 치레아 대공이 드래곤과 함께 미란에 나타났사옵니다.”
“미란에? 그렇다면 왕자의 호위로 말인가?”
“예, 그것을 알아내는 즉시 작전을 중지시켰사옵니다.”
미네르바는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치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미란과 크라레스의 밀착이 강화될수록 크루마에는 불리했다. 그렇기에 그것을 막으려고 했 는데, 그것을 막을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분노를 부하에게 터뜨려 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될 뿐. 그래서 미네르바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우선 화를 억눌렀다. 하지 만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자…, 잘했군. 그래, 옳은 선택이었어. 그건 그렇고 이렇게 된다면 크라레스와 미란의 관계가 더욱 밀착될 텐데…….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은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것은 결코 그녀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기에, 무심결에 그녀의 목소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지켜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전하, 크라레스가 계속 힘을 키워 오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코린트에 미치지 못할 정도이옵니다. 또 본국의 경우 코린트라는 든든한 방파제가 있사옵니 다. 만약 크라레스 황제가 욕심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코린트와 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니까 경의 말은 크라레스가 먼저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인가?”
“예, 전하. 만약 코린트와 크라레스가 정면충돌을 벌인다면 그때를 이용해서 미란을 박살 내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아무리 크라레스가 힘이 강성하다고 해도 코린트와 맞붙게 된다면 미란으로 돌릴 여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일단 가루가 되어 버린 후라면 크라레스도 비빌 언덕이 없으니 미란에서 손 떼지 않 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꼭 코린트와 크라레스가 충돌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시간을 주게 된다면 오히려 미란과 크라레스의 관계만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옵니다. 지금 크라레스 사단들이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어떻게 말인가?”
“2개 사단급 병력이 크로나사 북서쪽으로 이동 중이옵니다. 얼핏 본다면 코린트의 스웨인 지방에 대한 대비 태세를 더욱 강화하는 듯 보이겠지만, 토리아 왕국이 나 트루비아 왕국으로 그 병력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옵니다. 6년 전 크라레스는 트루비아가 해방된 후 안정을 찾을 때까지 1개 사단의 병력을 빌려 줬 던 예가 있사옵니다. 그만큼 트루비아와 크라레스는 친밀하기에 그들이 트루비아 왕국을 수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병력을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토리아 왕국을 병합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면 코린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그 병력이 어디로 갈 것인지가 확실해진 후에 작전을 세워 보자 이 말이로군.”
“옛, 전하.”
“자네 의견을 참고하도록 하겠네. 이만 가 보게나.”
“옛”
정보관인 바르데 후작이 나가고 나자 미네르바는 지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왜 서북쪽으로 2개 사단을 이동시킨 것일까? 크라레스의 서북쪽에는 이미 3개 사단이 주둔 중인데, 추가로 2개 사단이나 더 투입하는 이유가 뭐지?”
크라레스의 2개 사단이 움직이고 있는 것, 이것은 통상적인 사단의 위치 변경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바르데의 말대로 트루비아나 토리아 쪽으로 이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전쟁이 끝난 후 패전국이 되어 버린 코린트를 이상하게도 열심히 지원하고 있는 마도 왕국 알카사스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카사스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려면, 코린트와 알카사스의 동맹국인 토리아 왕국을 치는 것보다 엔테미어 공국 쪽으로 병력을 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 법일 것이다. 엔테미어 공국은 마도 왕국 알카사스가 대 제국 코린트와 국경선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독립시킨 완충지대였다.
그리고 엔테미어 공국을 다스리고 있는 미카엘 엔테미어 대공은 코린트와 알카사스 간의 불화를 중재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미카엘 엔테미어 대공은 상당히 뛰어난 외교 역량을 갖춘 인물이었다. 크라레스가 크로나사 평원을 집어삼켰을 때 제일 먼저 축하 사절을 보낸 인물이 그였을 정 도니까 말이다. 그는 크라레스와 매우 친하게 지내려고 엄청난 노력을 퍼부었고, 그 덕분인지 크라레스 제국은 엔테미어 공국과의 국경선에 단 1개 사단의 군대도 투입하지 않고 있었다.
“흐음, 크라레스가 알카사스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엔테미어 공국 쪽으로 병력을 돌릴 가능성도 있겠어. 그렇게 되면 코린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잖아! 그리고 놈들이 행동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자니, 빌어먹을! 서서히 크라레스가 본국의 목을 조르고 있는데 가만히 참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미네르바가 미란과 크라레스의 밀착을 저지하지 못한 것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미란은 크루마의 영토 안에 존재하고 있는 국가. 유사시에 군대의 이동을 해야만 할 때 미란이 크루마 군대의 자국 영토 이동을 거절한다면, 매우 심각한 사태에 처하게 될 수 있었다. 미란이 길을 막는다면 크루마의 군대는 마법진을 통해 이동하든지 아니면, 오실롯 왕국과 아르곤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실롯 왕국이나 아르곤은 둘 다 중립국이었기에 타국 군대의 이동을 허용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마법진밖에 없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대규모의 병력을 이동시킨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 것이다. 그야말로 크라레스는 미란이라는 동맹국을 만듦으로 인해 크루마의 목줄기를 꽉꽉 죌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좋은 방법이 없자, 옆에 있던 물잔을 잡고는 힘껏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잔이 깨져 버린 후 씩씩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던 미네르바는 밖에다가 대고 외쳤다. 누군가 이 사태를 타개할 방법을 의논할 만한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여봐라.”
“옛, 전하.”
“지오그네 보고 급히 오라고 일러라. 그리고 시녀보고 방을 청소하라 일러라.”
“옛, 전하.”
대답이 들려온 후 곧이어 시녀가 들어와서는 미네르바의 집무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는 시녀가 청소하고 있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이 궁리 저 궁리 하며 지오그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밖에서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나 지오그네 후작 각하께서 도착하셨사옵니다, 공작 전하.”
경비병의 말에 미네르바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들라고 해라.”
“옛!”
미네르바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오그네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는 미란과 크라레스의 관계가 밀착되는 것에 대해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 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깔려 있었다.
“크라레스가 본국이 싫어할 것을 뻔히 알면서 미란과 밀착하기 시작했어. 그 둘이 결혼을 통해 연합을 공고히 하면 더욱 손대기가 껄끄러워질 거야. 그래서 말인 데…, 점점 안하무인격으로 콧대가 높아지고 있는 크라레스의 힘을 조금은 감소시켜 둘 필요성이 있겠어. 그렇지 않으면 크라레스는 점점 더 세력이 커질 것이고, 미란을 통해 본국에 직접적인 압력을 가해 올 것이 당연해.”
미네르바의 말에 지오그네는 궁금한 듯 물었다.
“예? 하지만 어떻게…….
“워렌에게 연락해라.”
워렌이라는 말에 지오그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직하게 물었다.
“뭐라고 하면 되겠사옵니까?”
“토지에르를 암살하라. 그는 크라레스의 기둥이야. 그가 없어진다면 크라레스의 힘은 엄청나게 감소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전에도 몇 번 시도를 해 봤지만, 그에 대한 경호가 워낙 치밀한 데다가 그 자신이 뛰어난 마법사다 보니까 틈을 찾을 수 없었지. 하지만 엘리안 황태자가 협조해 준다면 가능성이 있어. 토지에르만 사라 져 준다면 미란 정도와는 동맹이 아니라, 서로 통합된다고 해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봐야겠지. 아마도 토지에르가 죽는다면 그의 뒤를 잇기 위해 마법사들끼리의 권 력 쟁탈전이 벌어질 게 분명해. 제1마법사의 자리는 각국 궁정 마법사들의 꿈이니까 말이야. 또 여태까지 모은 정보에 의하면, 그렇게 해서 뒤를 잇는 마법사가 있 다고 하더라도 토지에르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없으니 한동안은 크라레스가 잠잠해질 거야. 어떤가? 내 생각이?”
미네르바의 말에 지오그네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주 좋은 계책이옵니다, 전하.”
“그래? 그렇다면 워렌보고 실수 없이 처리하라 일러라.”
“옛,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