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4권 1화 – 몬스터에게 배후가 있다?
몬스터에게 배후가 있다?
“세상에…….”
끝도 없이 널려 있는 시체를 보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병사들과 말, 그리고 크고 작은 몬스터들의 시체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그들의 시체로 가 득 메워져 있었다. 또한 죽어 널브러져 있는 시체는 웬만한 전쟁터는 두루 돌아다녔다고 자부하는 병사들이 봐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털보가 언성을 높이며 부하들을 꾸짖었다. 여러 전쟁터를 전전했던 자신도 이런 처참한 광경은 거의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두려움에 휩싸인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더욱 좋지 않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들! 이런 것 한두 번 보냐? 이번 정찰 활동을 시작하고 이런 장면은 몇 번이나 봤잖아. 용병이라는 것들이 겨우 이런 것 때문에 감탄사를 터뜨려서야 뭐가 되겠나? 너희 셋은 저쪽을 정찰해 봐! 그리고 너희 셋은 이쪽을!”
“예!”
용병 기사들이 정찰을 위해 떠난 후, 털보는 해골바가지를 보며 슬쩍 질문을 던졌다. 한 번 혼이 난 덕분인지 그의 목소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대장, 더 이상 둘러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곳곳에 널려 있는 시체들로 미루어 보아 몬스터의 반란 규모가 상상 이상인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는 몬스터입죠. 기사단들이 투입되기 시작하면 곧 진압될 것입니다.”
“글쎄…….”
다소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던 용병대장의 눈길이 어느 한곳에서 멈추었다. 그는 여태껏 자신이 찾고 있었던 것을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저리로 가자.”
용병대장이 앞서서 달려가자 그 부하들도 헐레벌떡 상관의 뒤를 따라갔다. 용병대장이 발견한 것은 깊숙이 파여 있는 타이탄의 발자국이었다. 용병대장은 타이탄 의 발자국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역시, 이 정도까지 사태가 심각한데 기사단을 투입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털보는 약간 질린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기사단을 투입했는데도 피해가 이 정도라는 말입니까?”
“나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리는군. 자, 타이탄의 발자국을 따라가세. 저쪽으로 맹렬히 달려갔으니까 말이야.”
“옛!”
타이탄들의 발자국은 상당한 간격을 두고 하나씩 깊숙하게 찍혀 있었다. 용병들은 곧이어 타이탄들이 왜 그쪽으로 달려갔는지 알 수 있었다. 오우거의 시체들이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뒤에서 검에 맞은 흔적으로 보아 타이탄들은 오우거들을 추격하면서 그들을 죽이며 나갔다고 추리할 수 있었다.
“오우거들이 저쪽으로 도망친 모양이군. 타이탄들은 그쪽으로 계속 추격해 들어갔고…….”
그들의 추격은 산 뒤편에서 끝이 났다. 산 뒤편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오우거와 미노타우르스의 발자국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타이탄들의 발자국도 그곳까 지만 발견할 수 있었다.
“갑자기 대형 몬스터들의 발자국이 많아졌습니다. 그걸 보면 이곳에 대형 몬스터들을 매복시킨 후 끌어들인 것이 아닐까요?”
“쯧쯧, 자네는 대형 몬스터들이 그 정도로 지능이 높다고 생각하나?”
사실 오크나 트롤, 고블린 같은 경우 꽤나 지능이 높다고 볼 수 있었지만, 오우거나 미노타우르스 같은 대형 몬스터는 지능지수가 아주 낮았다. 그리고 그들은 본 능적으로 단독 생활을 즐기는 놈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매복 작전 같은 것을 생각하고, 또 실행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잘 아는 털보가 아무 소리도 못 하자 용병대장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주위를 빙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뭔가가 있어.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겠지.”
“예? 인간이라구요? 어떻게 몬스터들을 인간이 조종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당연한 노릇 아닌가? 저 트롤이나 오크의 시체를 좀 봐.”
용병대장은 쓰러져 있는 벌거벗은 몬스터의 시체가 있는 한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네는 이런 자국을 본 적이 없나?”
트롤의 시체를 봤을 때는 확실하진 않았지만,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연약한 피부를 가진 오크의 시체에는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묵 직한 것에 짓눌린 듯한 흔적들, 그리고 곳곳에 햇빛이 파고들어 그을린 자국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것은 털보에게 매우 눈에 익은 것이었다.
“이건 갑옷을 입은 흔적이 아닙니까?”
“바로 그거야. 이놈들은 시체가 되기 전에는 갑옷을 입고 있었어. 흔적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강철로 만든 아주 묵직한 것을 입고 있었겠지. 그리고 아무리 여기 저기 둘러봐도 몬스터들이 사용했음직한 무기는 보이지 않지? 저 병사의 시체를 봤을 때 도끼에 찍혀서 죽었음이 분명한데, 이 전장 어디에도 몬스터들이 사용했음
직한 도끼는 보이지 않지 않나? 아마도 전투가 끝난 후 모두 다 거둬 간 것이 분명하다고 봐야지. 그건 그렇고, 자네는 몬스터들이 강철 갑옷을 입고 강철 도끼를 들 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털보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시인했다. 물론 몬스터들이 농가에서 약탈한 도끼라든지 곡괭이 같은 농기구나, 토벌대를 역으로 토벌해 버린 후 뺏은 검이나 창 같 은 무기를 소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갑옷만은 어떻게 되지 않는 것이다. 가죽 갑옷 같은 경우 잘 안 맞는 부분을 잘라 내든지 해서 어떻게든 입을 수 있겠지 만, 각자의 체형에 맞춰 제작되는 강철로 된 갑옷만은 절대로 몬스터들이 입을 수 없었다. 인간과 몬스터들은 체형 자체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말이다.
“어떤 놈들이 몬스터들에게 갑옷과 무기를 대준 거야. 그리고 여기에 타이탄들의 잔해가 있어야 정상인데, 그것도 없지 않나? 갑옷이나 무기라면 몰라도 몬스터들 에게 있어서 타이탄의 잔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테니까 놔뒀을 것 아닌가.”
“혹시, 알카사스 쪽이 승리하면서 회수해 간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전세가 어느 정도 고착되었을 때를 노려서 회수했던지 말입니다.”
“자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승리했다면 병사들의 시체를 장사지냈겠지. 병사들의 시체를 거두기 힘든 여건이라면 최소한 귀족들이나 기사들의 시체라도 거두어서 묻어 줬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어. 그리고 오던 길에 여기저기 있던 반쯤 뜯어 먹힌 시체들 못 봤나? 몬스터들이 전쟁을 끝낸 후 승리를 축하하며 식사를 한 것이겠지.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저렇듯 느긋하게 식사까지 할 수 있었을까?”
“과연… 그렇군요.”
“이보게, 카마엘!”
용병대장의 호명에 마법사 한 명이 앞으로 쓱 나서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경우 여기에 파견되어 온 마법사였고, 한낱 용병 나부랭이에게 존칭을 쓸 이유 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시오?”
“통신 마법진을 그려 주게. 전하께 보고를 해야겠어.”
“그러지요.”
잠시 후 마법진이 완성되고, 수정 구슬에 상대편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는 총사령부 통신실…, 어, 자네는 카마엘이군. 듣자 하니 용병들하고 떠났다던데, 무슨 일인가?”
“용병대장이 사령관 전하께 보고 사항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 말해 보게.”
용병대장이 앞으로 쓱 나서서는 수정구슬을 향해 말했다.
“정찰을 해 본 결과 아무래도 어떤 국가가 몬스터들과 연합하고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연관은 짓고 있는 것이 틀림없소.”
“그게 정말이오?”
“틀림없소. 몬스터들은 잘 만들어진 두터운 강철 갑옷을 두르고 있고, 강철로 만든 도끼나 검 따위를 가지고 있었소. 몬스터들이 그런 것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은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누군가가 그것을 만들어 줬다고 봐야 하겠지. 그것도 각종 몬스터의 체격에 잘 맞춰서 제작되었을 거요. 인간이 입는 갑옷은 도저히 몬 스터들이 입을 수 없으니까 말이오.”
수정구슬에 노마법사의 의아스러운 표정이 비춰졌다.
“그럴 리가……”
“그리고 이곳에서 타이탄들도 다수 파괴된 것 같소. 거대한 오우거나 미노타우르스의 사체도 있소. 하지만 타이탄의 잔해는 찾을 수 없었소. 몬스터들에게 그 무 거운 타이탄의 잔해를 굳이 운반할 필요가 있었겠소? 타이탄의 잔해를 필요로 하는 종족은 인간밖에 없지 않소? 그러니 당연히 그 잔해가 흘러 들어간 곳이 몬스터 들과 손을 잡은 인간들의 본거지일 것이오.”
“그렇다면 귀하는 어떻게 하실 참이오?”
“타이탄의 잔해를 따라서 추적해 갈 거요.”
“추적할 단서는 있소?”
“아무래도 타이탄의 잔해를 오우거가 운반해 간 것 같은데, 무거운 짐 덕분에 평상시보다는 발자국이 깊게 파일 테니 추적은 문제가 없을 듯하오.”
“알겠소, 이 사실을 전하께 전하겠소. 귀하는 일단 전하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현 지점에 대기했다가 지시를 받도록 하시오. 귀하의 무운을 빌겠소. 그럼 이 만.
통신을 끝낸 후 용병대장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타이탄 잔해의 이동 경로를 따라간다. 자, 모두들 집합시키도록 해라.”
“지금 말씀입니까?”
대장의 명령에 털보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수정구슬 속의 그 노마법사는 이곳에서 대기하라고 했었기 때문에 대장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지금 당장!”
“옛.”
털보는 재빨리 정찰을 위해 산개해 있는 부하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상부의 명령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장은 지금 당장 떠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털 보는 오랜 용병 생활을 통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부’보다는 눈에 보이는 ‘대장’을 따르는 것이 만수무강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마엘은 수정구슬을 집어 든 후 마법진을 발로 쓱쓱 지우면서 약간 신경질적으로 따지듯 말했다.
“이보시오, 대장, 내가 상부에서 듣기로는 그대들이 맡은 것은 단순한 정찰 임무였소. 우리들은 그것을 보조하는 것이었고 말이오. 그리고 방금 현 지점에서 대기 하라는 지시가 있었지 않소? 그런데 지금 움직인다는 것은 항명죄에 해당하오.”
이 마법사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목숨 걸고 적진 깊이 들어가는 것을 겁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용병대장은 무섭게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그럼 네놈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마법사는 매서운 용병대장의 눈길을 슬쩍 피하며 궁시렁거렸다.
“이보시오, 우리는 그대들을 돕기 위해 파견된 거요. 그렇게 위협적으로 나온다면.”
“한낱 목숨이 아까워서 정찰 임무를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그딴 소리를 한 번만 더 한다면 내가 여기서 네놈을 죽여 주겠다. 그러니 그만 입 닥치고 내가 하 라는 대로 해, 알겠어?”
아무리 용병이긴 해도 저쪽은 기사였다. 그리고 카마엘은 마법사, 둘이서 정면 대결을 한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카마엘은 치밀어 오르 는 노기를 가라앉히며 나중을 기약했다.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가면 용병대장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상부에 보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총사령부로부터 새로운 지시 사항이 하달되었습니다.”
널찍한 탁자였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국의 주인인 대공은 행방불명이었고, 치레아 기사단은 수도로 이동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 위급의 기사들 및 마법사들이 부재중인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 회의는 본의 아니게 치레아 공국에서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 버린 그란트 반 리에 카르토 백작이 주재 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본국은 몬스터들의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말에 회의 석상에 앉아 있던 모든 인물들이 경악한 듯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그는 손을 들어 모두를 조용하게 만든 후 말을 이었다.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사실입니다. 토지에르 전하께서는 강력한 마법의 힘으로 몬스터들을 지배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서 현재 알카사 스 및 아르곤 제국과 전쟁을 벌이고 계신 것이죠.”
회의 석상에 앉아 있던 장군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인물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얼마 전 총사령부의 명령으로 치레아 변방의 요새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몬스터들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은 적들을 기만하기 위한 술책이었 다, 이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몬스터들의 발원지는 경들도 아시다시피 말토리오 산맥의 양 끝단이죠. 하지만 여태껏 말토리오 산맥의 중심을 끼고 있는 본국의 피해가 거의 전무 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몬스터들은 토지에르 전하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타국이 괴이하게 여길 우려가 있기에 본국이 몬스터들에 게 점령된 것으로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단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카르토 백작은 주위를 쓱 훑어본 후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물론 이 사실은 절대적으로 기밀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외에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대공 전하께서 안 계신 상태에서 이곳을 폐허로 만들 수 없기에 항 복하는 것이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하십쇼. 그러면서 대공 전하께서 돌아오시는 그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몬스터들과의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설득해야만 합니 다, 아시겠습니까?”
“으음,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을 속여라, 이것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몬스터들 또한 쓸데없이 주민들이나 병사들과 충돌을 일으키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쪽에서 시비를 건다면, 아무리 토지에르 전 하의 지시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 흉폭한 것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워낙 난폭한 것들이니 그 본성이 되살아날 수도 있는 것 아닙 니까? 그러니 될 수 있다면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지요.”
“알겠습니다, 부하들에게 지시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도 이 사실을 주지시켜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몬스터들을 향해 돌을 던지거나 혹은 공격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속해야만 할 것입니다.”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