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12화 – 부임
부임
묵향은 낙양에 들어섰다. 낙양은 오랜 옛날 수도였던 도시로, 지금도 이 근방의 교통, 상업, 문화, 군사의 중심지이며 황제가 거하는 중경(中京)으로 가는 동쪽 관 문이다. 낙양에는 정북원수부(正北元帥府)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정북원수부 휘하의 20만 정병(精兵)을 이용해 낙양 외곽 수비와 몽고족들에 대한 국경 수비를 담당 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경에 있는 네 명의 왕 중 한 명인 영양왕(英揚王)의 별장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묵향은 우선 낙양성을 구경하고 분타로 가기로 작심하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남문을 통해 들어가니 성문을 지키는 수비병들이 보였다. 수비병의 복장은 그가 늘 보았던, 각 관청에 소속되어 민생치안을 담당하며 유사시에나 출동하는 향방군(鄕防軍 : 지방군)과 달리 전투를 전담하는 어림군(御臨軍 : 중앙군)이라 그런지 눈 초리가 매서웠고, 잘 발달된 근육이 상당한 훈련을 받은 정병들임을 무언중에 나타내고 있었다.
어림군은 향방군과는 달리 각 장군들이 지휘하며, 순전히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다. 이들은 국경을 위시하여 각 지방의 중요 거점, 수도 외곽을 방위하기 위해 서 주둔한다. 어림군은 황제가 통솔하는 중앙 정부의 명령만을 받으며 그 수는 112만에 달한다. 어림군 안에는 10만 정도의 직업 군인들로 이루어진 군대와 5만 정 도의 외인군(外人軍 : 용병)이 있으며 그들의 전투력은 통상의 어림군보다 강했다.
어림군은 각 지방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들이나 변경의 요새에 주둔한다. 그 외에 이이제이(以夷除夷)의 원칙에 따라, 교묘한 외교 정책으로 국경을 접한 오랑캐들을 적절히 다스려 그들이 연합하지 않고 서로 다투도록 만들어, 오랑캐들의 세력이 강대해지는 것을 억제하고 있었다.
어림군의 최고 계급은 원수, 대장군, 상장군, 장군의 네 계급으로 구분되며 다섯 명의 원수가 각각 20만 명씩의 어림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대규 모 전쟁이 벌어지면 그 지역의 향방군과 대비군(對備軍 : 각 관청에 소속되며 농한기에만 군사 훈련을 받으며 전쟁이 벌어지면 출동하는 예비군), 타 지역에서 온 지원군을 통괄 지휘하게 되므로 어떤 때는 1백만에 가까운 군세를 한 명의 원수가 지휘하기도 한다.
대원수(元帥)란 직책도 있긴 하기만 통합된 작전을 위해 전시(戰時)에나 직분이 생기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거의 유명무실해진다. 그가 늙어서 은퇴하면 후임 자를 뽑지 않기에 평상시에 대원수란 직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군권(軍權)을 집중하면 그만큼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낙양성을 구경하고 성에서 나와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낙양의 서쪽 외곽에 천령원(天領院)이라는 큰 장원이 있다. 이 천령원은 부근에 상당한 면적의 토지 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모든 농토를 소작농에게 대여하고 있었다. 천령원의 주인인 방龐) 대인은 그런대로 소작농에게 후한 편이라 부근의 주민들에게 평이 좋았 다. 그리고 방 대인은 엄청난 자금력으로 주변 상권의 3할을 잡고 있었으며, 많은 장인(匠人)들을 고용해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위인이 었다. 근래에는 천령표국(天領標局)까지 만들어 부근의 물품이나 군수물자 수송 사업에도 참여해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뒷구멍으로는 전장이나 도박장, 주루 등을 만들어 고리대금업 따위의 불법적인 사업을 하여 막대한 돈을 긁어모았다.
묵향은 천령원을 향해 천천히 말을 몰며 다가갔다. 그가 다가서자 정문을 지키던 호위 무사가 그를 제지했다.
“멈추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서 오셨습니까?”
호위 무사의 눈초리나 분위기와는 달리 말은 상당히 정중했다. 아마 손님 접대에 대해서 상당히 훈련을 받은 친구인 모양이다. 묵향은 호위 무사에게 말했다.
“방 대인을 뵈오려고 왔습니다.”
“사전에 약속이 있으십니까?”
“예, 대산(大山)에서 왔다고 하시면 아실 겁니다.”
무사는 ‘대산’이라는 말을 듣고 허겁지겁 안으로 통보를 했다. 대산이라 하면 마교의 본타가 있는 십만대산이 아니겠는가? 봉우리가 10만 개나 되는 것은 아니지 만 많은 봉우리를 가진 절정의 산악에 마교가 뿌리를 내렸고, 십만대산이라 하면 웬만한 멍청이가 아니면 ‘마교’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험악한 산세와 그 산 세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요새들에 힘입어 그 오랜 마교의 전통이 지켜져 내려왔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갔던 무사는 달려 나와서 묵향에게 말했다.
“고삐를 이리 주시고 안으로 드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방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는 서둘러 안에 있는 하인을 불러 묵향을 안내하라고 하고, 또 다른 하인을 불러 말을 마구간으로 끌고 가서 정성껏 돌보라고 지시했다. 묵향은 그가 하인에게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다 못해 말했다.
“그 말은 내가 아끼는 애마도 아니고 그냥 길을 떠나기 위해 구입한 말이야. 그러니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네. 말에 있는 짐은 나중에 내 방으로 보내 주게나. 그 럼 수고하게…….”
“알겠습니다, 대인.”
방 대인은 들어서는 묵향을 상당히 반겼다.
“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안녕하십니까? 소생은 묵향이라 합니다. 주위를 물리쳐 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의 말을 듣자 방 대인은 말했다.
“취월아, 차를 빨리 가져오너라. 잠시만 기다리시게나. 차를 내온 후에 같이 얘기를 나누기로 하지.”
묵향과 방 대인은 차가 나올 때까지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나 쓸데없는 한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녀가 차를 가져오자 그는 하녀에게 일렀다.
“손님과 조용히 할 말이 있으니 주위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라.”
“예, 나으리.”
취월이 나가자 묵향이 입을 열었다.
“총단에서 왔습니다. 여기 영패와 부임 서류가 있습니다.”
방대인은 묵향이 내미는 서류와 영패를 보고 난 후 그에게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본타에서는 한 가지 사업을 새로이 시작했다네. 표국(慄局)을 개설했는데 본교의 상층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계시는 중요한 사업이지. 자네는 혹 시 표국 사업에 대해 아는 게 있나?”
“표국에 대해서, 아니 일체의 상행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검술뿐이죠.”
“호,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힘이 나는군. 표물 운송 사업이란 게 원래가 신용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보니, 우선 맡은 물건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원하는 장소로 보내 줘야 한단 말일세. 그런데 곳곳의 깊은 산중에는 도적들도 많고, 거기에다가 이곳은 변방이기 때문에 치안이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이라, 이번에 총단에 좀 실력 있 는 고수들을 보내 달라고 했지. 얼마 전에도 30여 명 정도 도착했는데, 영 내 마음에는 차지 않더군. 그래 자네 나이는 어떻게 되나? 그리고 그전에 한 일은 뭐고?” “이제 마흔셋입니다. 살수로서 흑살대(黑殺隊)에서 일하다가 20년 전에 검수로 뽑혀 계속 교육을 받았습니다. 20년 만에 세상에 나왔으니 세상사에 어두운 편이 라 잘 부탁드립니다.”
흑살대라는 말이 나오자 거드름을 약간 피우던 방 대인의 안색이 확 변했다. 흑살대라면 내총관 직속의 암살대다. 뛰어난 인재들만이 소속되어 있었고, 능력이 엄 청나다는 소문을 약간이나마 듣고 있었던 것이다.
“흐…, 흑살대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흑살대에에서 무슨 일을 했나?”
“1급 살수로서 3년 정도 일했습니다.”
“1급 살수…….”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런 후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더니 말을 이었다.
“20년 전에 1급 살수셨다면…, 대단하시군요. 허허…, 몰라 뵙고 실수를 저질렀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방대인은 묵향에게서 그렇게 대단한 기도가 느껴지지 않자 총단에서 보내온 하급 무사나 아니면 행정 쪽에 뛰어난 인물인 줄 알고 수하를 다루듯 거드름을 피우 다가 묵향의 신상 내력을 알고 난 후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표물의 안전한 운송을 위해 고수를 원하긴 했지만 너무 강한 고수가 온 것이다. 20년 전에 1급 살 수였다면, 끅! 그 뒤는 생각 안 해 봐도 알 만하다. 마교란 본래 무공의 고하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단체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조바심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자가 상행위에는 거의 백치나 다름없는 순수 무골(武骨)이라는 점이다. 아마 그 때문에 그에게 부분타주의 직위를 맡겨 이곳으로 보낸 모양이다. 그리고 총단에서 직접 온 인물인 만큼 자신에 대한 감시자의 임무도 약간은 띠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방 대인은 이 평범한 옷을 입고 검은색 반월형 의 도를 차고 있는 녀석을 식은땀이 날 만큼 조심에 조심을 해서 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총단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바로 윗자리도 아닌 한참 윗자리에 포진할 것이 뻔한 이 녀석에게 잘 대해 주고 좋은 인상을 주면 나중에 자신의 꿈인 총단으로의 승진에 보탬이 될지도 모르고, 또 다음에 유력한 후원자가 되어 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표국은 요 근래에 시작해서 꽤 장사가 잘되는 관계로 여기저기에 새로 분점(分店)들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고수들에 대한 통제도 문제고, 또 제가 벌여 놓은 많은 일들도 있어 직접적으로 표국을 운영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에 총단과 분타들에서 50여 명의 고수들이 새로이 배치되어 왔지만 그래도 역부족 이죠. 아무래도 대규모의 표물 운송에는 힘이 부쳐 뛰어난 분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지요. 그런데 이렇게 높으신 분이 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엄연히 부분타주로 왔습니다. 저에게 하대를 하십시오.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면 껄끄럽습니다. 그리고 수하들도 이상하 게 생각할 거구요. 그냥 수하들에게는 고수를 한 명 초빙해 왔다고 말하고, 그러니까… 제 이름은 유향(柳香)이라고 수하들에게 소개하시죠.”
“이거 원…, 그런데 자네가 이번에 온 것을 모든 사람에게 비밀로 붙여야 하나?”
“그렇게 해 주십시오. 방 대인 같은 경우 믿을 수 있으나 그 나머지는……. 특히 대인의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공이 있으니 수하들에게 의심 받지 않고 움직이려면 표두(頭)로 행세를 하는 게 좋겠군요. 그래야 표물 운송에도 참가할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본교의 고수들은 얼마나 됩니까?”
“분타 자체의 인원이 1천여 명 되네. 그리고 각 분타나 총단에서 파견 나온 고수들이 1백여 명 있지. 그중에서 50여 명은 요 근래에 도착한 고수들이네. 그들은 곳 곳에 배치되어 일을 하고 있지. 전방, 기방, 전당포 등 안 하는 일이 거의 없네. 합법적인 사업도 많고 불법적인 사업도 많은데, 특히 불법적인 사업의 경우 무력이 많 이 필요하네. 지금 낙양 상권의 3할을 잡고 있는데, 표국 업무가 정상화되면 그 비율은 더욱 늘어날 거야. 표국의 신용이 올라가면 변방으로 보내는 병참금의 수송 에 관여하면 더욱 큰 돈을 벌 수 있지. 일반 군수물자들은 대부분 군의 수송부에서 관할하지만 병참금은 돈에 눈이 뒤집힌 산적들이 덤벼들 가능성이 있어 표국을 이용하지.”
“낙양에 이곳 말고 표국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표국 다섯 개가 더 있네. 그중 세 곳은 작지만 두 곳은 상당히 크지. 어차피 그들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 그렇지만 실지 외부에서 표물을 거의 위탁받지 않더라 도 낙양분타에서 돌리는 물자가 엄청나기 때문에 그것만 해도 상당하지. 그 외에 변방에서 말이나 양, 모피 등 많은 물자들을 수입해 올 생각인데, 그쪽의 통로가 개 척되면 변방으로 가는 무역로가 열려 막대한 이익을 줄 것으로 생각하네. 그 외에도 인력과 돈만 있으면 정당한 방법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네.” “집안의 하인들은 어떻습니까? 본교의 인원들인가요?”
“아닐세. 지금 원체 사업을 확장해 놔서, 그 정도 여력이 없어. 기밀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주 중요한 곳에 출입하는 자들과 밀정으로 심어 놓은 자들만 본교의 인물들이지.”
“그렇다면 저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유지해 주십시오. 암수에 걸려 목숨을 잃기는 싫습니다. 아무리 고수라도 암수에 걸리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가는 것이 정석이니까요. 그리고 대인께서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는데…, 저는 동자공을 익혀 여색을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여자를 청한 다면 그건 가짜라고 보면 옳겠죠. 그리고 또 대인이 저에게 여자를 붙여 준다면 그 또한 대인이 가짜라고…….”
“알겠네,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가족에게도 안 되나?”
“예, 많은 사람이 알수록 비밀이 샐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할 수 없군. 그런데 미리 양해를 구해 두겠는데, 자식들 중에 몇 명이 아주 버릇이 고약한 놈들이 있으니… 그 때문에 실례를 범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일세.”
“그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상대를 안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제 방은 좀 작은 걸로 해서 안채와 떨어진 곳이 좋겠는데……. 괜찮은 곳이 있습니까?”
“흠, 표사 중에 한 명이 쓰던 집이 있는데 낡기는 했지만 수리를 하면 쓸 만할 거야. 하지만 너무 집이 작아서…….”.
방대인은 묵향의 눈치를 봤다. 그로서는 묵향의 취향을 가늠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밥을 지어 줄 하녀는 제가 구해서 쓸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오늘은 물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