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9화 –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를
“교주님! 예상 밖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적미염 왕자영이 방에서 쉬고 있던 교주에게 긴급 면담을 청했다.
“무슨 일인가?”
“아수혈교와 황궁이 격돌했습니다.”
“황궁이?”
“예! 찬황흑풍단이 대망산을 공격하여 모든 강시들과 그곳에 있던 고수들을 진멸(鎭滅)했다 합니다.”
“찬황흑풍단이라면 무림의 고수를 골라 뽑아, 거기에 황궁무고의 무공을 더 가르쳐 무공이 대단한 경지라 들었다. 그 강대한 힘은 태산을 무너뜨린다 하더니 사실 인 모양이군.”
“그런데 그게.
“뭔가? 말해 보게.”
“찬황흑풍단도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전사자가 2천 명 정도이고, 부상자가 6천 명을 넘어간다고 합니다.”
“그럴 수가! 찬황흑풍단은 무림인들과 달리 중갑주(重鉀주)를 입을 뿐더러 말에게까지 갑옷을 입힌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피해가 클 수가 있나?”
“정보로는 이미 만들어져 있던 강시 2천여 구, 50여 구의 신형 강시, 그리고 수비 무사들이 천여 명, 그중에도 대단한 고수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에게 입은 타격이 라고 합니다.”
“하기야 황궁의 무리들은 내공보다는 외공에 치중하는 무리들! 그래도 찬황흑풍단은 일반 무사들과는 달리 내공을 쌓은 자들일 텐데.”
“무림인들을 상대로 했을 때는 그들도 그 정도의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림인들은 칼을 맞으면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니까요. 문제는 웬만한 상승고수가 아니면 죽일 수 없는 강시들 때문이죠. 그나마도 피해가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은 두터운 갑주와 방패 덕분이라고 합니다.”
이제 중요한 대화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교주는 왕자영의 그 가느다란 허리를 살며시 잡고는 품속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하여튼 일이 재미있게 되어가는군. 어떻게 된 것이 붕어 미끼를 썼는데 잉어가 잡히나?”
“아이…, 교주님도. 아마 무림맹에서 아직 무림의 사정에 어두운 황궁에 올가미를 씌운 것 같습니다.”
“무림맹도 꽤 하는군, 클클클.”
“이번의 사건으로 생각한 것인데, 차후에 있을 충돌에 대비하여 고수들을 많이 확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각종 무공에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녀석들만 골 라서 특별히 교육시켜 다음 세대의 고수들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이번의 사건을 통해 고수들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었습니다.”
교주는 느긋하게 왕자영의 옷을 벗기며 말했다. 왕자영도 그런 교주가 싫지는 않은지 교주가 편하도록 자세를 잡아 주고 있었다.
“좋아, 좋아. 그대가 알아서 하게나.”
“예, 지금 투입되어 있는 묵향에 관한 말씀인데…, 흐흠…, 일급 살수로서 스물세 명을 완벽하게 없앴지만 아직도 무공면에서는 미숙합니다. 그 녀석이 임무를 성 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무공보다는 머리를 잘 굴렸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임무가 없을 때는 무공을 익히고 있는데, 아이… 이러지 마세요. 말을 못 하겠잖 아요……. 으으음…, 그는 검에 능하니 뽑아서 교육시켰으면 합니다.”
교주는 도저히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왕자영의 육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기야,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인데도 상층부에서도 녀석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들이 많을 정도로 암살 실력과 검술이 뛰어나니……. 하지만 이미 본좌가 알아서 하라고 한 이상 그대 마음대로 하면 될 것 아닌가?”
“나머지는 수련생이라 상관없사오나 묵향의 경우 살수로서 내총관의 휘하에 있는지라 제가 그냥 데려가는 것보다는 교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서로 간에 입장이 편할 것입니다.”
“알겠네. 내총관에게 말해 두지.”
“감사합니다, 교주님.”
이제 교주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완벽한 나신이 되어 버린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고 침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묵향이 일곱 번째로 만난 교관은 상당히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혀 살수 같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살수란 전혀 살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가 살수로 보이 는 사람과 같이 있겠는가. 진정한 살수는 살인을 하는 그 순간에도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여태까지 그를 지도했던 교관들은 모두 다 전직 아니면 현직 살수들이었다. 살수들 중에서 나이가 많이 들어 현역으로 뛰기 어려운 사람들은 후배들을 가르치는 데 투입된다. 하지만 이번 교관만큼 완벽한 살수라고 생각해 본 사람은 없었다.
생강은 오래 묵은 것일수록 맵다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오랜 연륜과 경험에서 오는 숙련미(熟練美)라고 할까. 나이가 들수록 그 진수를 뿜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교관들은 현재의 실력 있는 살수보다는 오랜 살수 생활을 하고 은퇴한 고수들이다. 그럼으로써 그들 자신이 얻은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 했던 것이다.
새로운 교관은 40대 초반으로 보였으며 그런대로 잘생긴 얼굴의 남자였다. 그의 얼굴에는 상흔이 깊지는 않아 눈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왼쪽 눈 위에서 코 쪽으로 난 긴 검상이 있었다.
“본인은 환사검(幻邪劍) 유백(柳伯)이라 한다. 이제부터 너를 가르칠 것이다.”
“유 선배께서는 살수십니까?”
“그건 왜 묻는가?”
“도저히 살수 같지 않아서 그럽니다.”
“클클클, 나도 예전에는 살수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검술 교관이지. 나는 이제부터 자네만을 가르칠 것이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자네도, 나도 몰 라. 어느 정도 상부에서 원하는 정도까지 내가 지도할 것이야. 위에서도 많은 고심을 한 듯하지만 드디어 자네를 살수로서 소모시키기보다는 무사로 쓰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살수란 상대를 죽이기는 쉽지만 상대를 죽이고 난 다음에 탈출하기가 정말 힘들거든..
“알겠습니다.”
“검술을 익히면서 끊임없이 내공의 수련은 계속해야 하네. 하지만 본인이 느낀 바로는 내공이 최고로 중요한 것은 아니야. 문제는 깨달음이지. 어떤 경지에 다다 르면 내공은 자연적으로 얻어진다네. 거꾸로 얘기하면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정한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도 성립이 되지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선배님이 말씀하신 첫 번째 생각에 찬성합니다.”
“실지 명문 검파의 젊은이들이 보통 타파의 젊은이들보다 더욱 빠른 내공의 진보를 보이지. 자네도 무림에 나가 봐서 알겠지만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나이 많은 고수를 격패시키는 것을 왕왕 봤을 것이네. 그것은 깨달음이 빨랐다는 것이지 실지 내공수련을 그 젊은 녀석이 노인보다 더 많이 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내공의 경지를 1갑자, 2갑자 등으로 표시하는 것은 밀실에 박혀 60년 혹은 120년 동안 내공만 닦았다는 것이 아냐. 하나의 주기(週期)를 나타내는 것이지. 그 주기 를 넘었느냐 못 넘었느냐에 따라 그의 실력이 결정되는 것. 그 한 주기를 넘음에 따라 최소한 열 배 이상의 힘이 생기지. 그리고 내공이란 음(陰)에도 양(陽)에도 치 우치지 않게 익혀야 해. 한쪽으로 치우치게 익히면 단기간에 고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 다 헛거야. 높은 경지로 올라갈수록 힘들어지지. 나중에는 생명까지 위 험해져. 그러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익히지 않는 게 몸에 좋지. 내공이 계속 쌓이다 보면 그렇게 무리하게 내공을 연마하지 않아도 극양, 극음의 무공을 할 수 있어. 물론 두 가지 다 할 수 있지. 구태여 모험을 하면서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내공을 쌓을 필요는 없는 거야. 참, 듣자하니 자네는 검을 잘 다룬다고 그러던 데……..
그러면서 유백은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의 검은 검집 밖으로 나오자 투명한 옥빛을 띠는 것으로 보아 보검(寶劍)임이 확실했다. 그의 검은 일반 강호의 무리들이 사용하는 패검覇劍얇고 긴, 그러면서 앞부분의 날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양쪽의 검날은 무뎌서 베기보다는 찌르기에 유리한 검)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양쪽의 날이 대단히 날카로워 베기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검(劍)이란 원래 베기보다는 찌르는 것에 중점을 두는 무기지. 그렇다고 베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찌르기를 더욱 중요시 하는 무기야. 강호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패검은 군인들이 사용하는 검과 달리 가볍고 가늘며 길다는 점이 다르지. 그 때문에 적의 베거나 찌르기를 막을 때 날카로운 날이 서 있다면 칼날만 상하고 어쩌면 상대방 무기의 압력 때문에 검이 부서질 수도 있기에 날을 날카롭게 세우지 않지. 하지만 보검의 경우 그 강도(强度)가 뛰어나므로 날을 날카롭게 세 워도 무방하지. 그에 비해 도(刀)는 한쪽에만 날이 있고 날을 직선이 아닌 반월형으로 만들어 찌르기보다는 적을 베는 데 전문적으로 사용한다. 물론 찌르기를 못하 는 것은 아냐. 도의 경우 날이 없는 두터운 부분 덕분에 적의 강력한 일격에도 부서질 염려가 없지. 어떤 이들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적을 공격하기 편하도록 아주 무거운 도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어. 심한 놈들은 60근(약 36킬로그램)에 가까운 걸 사용하지. 자네의 무기를 한번 볼까?”
묵향은 그의 검을 반 정도만 뽑아서 유백에게 보여 줬다. 예의상 윗사람에게 무기를 보일 때 검을 완전히 뽑으면 안 된다. 윗사람이 받아 들고 완전히 뽑는다면 몰 라도 그렇지 않으면 3할에서 5할 정도만 뽑아야 한다.
묵향과 같은 살수는 1차 훈련이 끝나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검을 제작한다. 나중에 취향이 바뀌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바꾸기도 한다. 어떤 살수는 상대에게 더 욱 큰 타격을 주기 위해서 검의 날을 완전히 톱니와 같이 만들어, 베기보다는 상대의 살을 찢어 내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검에 찔리면 검이 뽑힐 때 엄청난 고통을 준다. 그리고 내부의 장기(臟器)를 톱니가 끌고 나옴으로 인해 더욱 큰 타격을 준다. 물론 피부를 베었을 때도 이점이 있다. 피부를 베면 일직선으로 베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뜯고 지나가기 때문에 나중에 치료하기가 힘들고 출혈이 심하다.
살수가 각종 기형적인 무기들을 사용하는 이유는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를 확실히 저세상에 보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묵향의 애검 묵혼은 반월형의 검 으로 검신의 길이는 2척 3촌(약 70센티미터), 손잡이 길이 1척으로 칼날받이도 없는 기형검이다. 검신의 손잡이 가까운 곳에 ‘墨魂(묵혼)’이란 글자가 음각이 되어 있었다. 검을 찬찬히 보던 유백이 입을 열었다.
“누가 살수 아니랄까 봐 자네도 상당히 특이한 검을 애용하는군. 묵혼검이라. 하지만 검신이 검지는 않군?”
“지금은 좀 더 좋은 오철(烏鐵 : 검은색이 나는 합금으로 정강보다는 강도가 뛰어남)같은 검은색이 나는 강한 금속으로 검을 만들어 주겠지만 이걸 만들 당시만 하 더라도 제 직위가 낮아 백련정강(百鍊精剛 : 백 번이나 연마한 정순한 강철로 된 검, 대단히 튼튼함)으로 만들었으니 그렇죠.”
“왜 이런 검을 만들었나? 전체 길이는 보통 검과 마찬가지지만 손잡이가 너무 길어 들고 다니기에 불편할 것 같은데. 지금도 허리 뒷부분에 비스듬하게 걸리는 게 고작이잖아? 이래서는 너무 눈에 띄지.”
“하지만 그 이점도 많습니다. 손잡이의 뒷부분을 잡으면 이 검의 길이는 3척이 되고 짧게 잡으면 2척 3촌이죠. 저는 검을 사용하면서 계속 잡는 위치를 변화시키 므로 상대방이 저와의 간격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유 선배님도 알다시피 짧은 검은 속도가 빠르고, 긴 검은 속도는 떨어지지만 장거리 공격이 가능하다는 각각의 상 반된 장점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검의 날을 날카롭게 세운 것은 베기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죠. 여태까지 제 공격은 거의 모두 다 암습이었기에 적의 무기와 부딪
친 적은 없습니다.”
“흠, 자네도 이 검을 만든다고 상당한 잔머리를 굴렸군. 하지만 절정의 검술은 겨우 간격을 헛갈리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냐. 적을 단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일격필살(一擊必殺)의 각오가 없이 너는 죽고 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닌다면 도저히 절정의 경지로 들어서지 못한다 네……. 살 구멍을 찾으면서 휘두르는 검은 도저히 그 날카로움이 나타나지 못하지. 정면 대결을 할 때,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수는 최악의 경우 같이 죽겠다는 양패구상의 검법을 구사하는 녀석이지. 아예 실력이 떨어지는 놈이라면 몰라도 비슷하다면 이기기 어렵고, 설혹 실력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그 녀석을 해치우려면 부상은 각오하고 싸워야지, 안 그러면 오히려 자기 목숨을 날린다네. 병법에도 이르지 않았던가,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후배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정든 녀석이라 버리고 새 걸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건 자네 마음대로 하고, 여태까지 몇 가지 검법을 익혔나?”
“열두 가지를 익혔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한 번도 검술을 써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검술을 사용하면 들통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검술을 사용하 지 말고 그냥 죽으란 지시를 받았습니다.”
“흠, 원래 검법이란 것은 각종 공격과 방어의 초식을 모아 놓은 것. 일단 공격과 방어의 개념을 자세히 이해하면 초식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그렇다 고 초식이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닐세. 나는 자네한테 스무 가지 검법을 가르칠 예정이네. 하지만 이 검법 자체를 사용해선 안 돼. 초식의 일부분만을 이용해야 해. 이 검법들은 모두 여러 정파의 검법들이야. 초식 전체를 펼치지 않고 초식의 일부만을 이용하여 상대와 겨룬다면,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그 근원을 알아 내기는 힘들지. 초식이 완전히 펼쳐지지 않고 일부만 사용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를 하기도 어려워. 자네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무적의 검법이란 존재하지 않 아. 어떤 검법이라도 그 천적(天敵)인 검법이 있기 마련……. 그 때문에 명문 무가에서는 최후에 사용하는 한두 가지 검법은 꼭 숨겨 두지. 그것들은 생사의 갈림길 이 아닌 한 사용되지 않아. 그 검법이 알려지면 그에 대한 대항 초식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렇게 초식을 잘라서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일반 초식을 익히는 것보다 잘라서 사용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네. 본인도 이것을 깨닫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지. 그리고 이렇 게 사용하면 살수에게는 또 한 가지 이점이 생기지. 여러 파의 검법을 조각내서 이용하면 상대는 흉수를 알아내기가 아주 힘들어. 그리고 전문가가 보더라도 시체의 상처를 보고 그 흉수를 알기는 힘들지. 혹시 알아낸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검법이 어우러져 있으니 확실히 알아낼 재간이 없지. 어떤 경우에는 이간질시키려고 일부 러 초식 전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잘라서 사용하게나.
우선 자네는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도록 수련해야 하네. 시각이야 모든 이들이 타고난 것이고, 청각을 예민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지. 소리만으로 부근의 모든 상 황을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 해. 나머지 감각들도 차례로 개발해 가자구. 살수이니만큼 감각은 꽤 잘 발달되어 있을 테니 자네에게는 그만큼 득이라는 점을 감사히 여기고, 검술을 수련하면서 명심해야 할 점은 검술을 잘한다는 것과 살인을 잘한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해. 수많은 고수들이 암습에 의해 저세상에 갔지 눈앞의 적보다는 등 뒤의 적이 무서운 거라네. 그러니 수련하는 도중에 나는 자네를 틈만 나면 암습할 생각이야. 그 점 잊지 말고 대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참, 자네 여자를 아는가?”
“예?”
갑작스런 질문에 묵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다시 물었다.
“여자와 성합(合)을 해 본 적이 있느냔 말이다.”
“아직 없습니다.”
묵향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답했다.
“그렇다면 너는 내공수련도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구나. 여태까지 자네가 배운 것을 사용해도 상관없고, 또 하나는 그것을 약간 변형한 방법인데…, 일종의 동자공(童子功)을 혼합하는 방법이지. 후자의 방법이 훨씬 더 빠른 성취를 볼 수 있으나 단점이 있다면 여자와 한 번이라도 잠자리를 함께하면 동자공 자체가 파괴 된다는 점이야. 선택은 자네한테 달려 있어.”
“선배님의 생각으로는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약간의 문제는 있지만 빠른 성취를 원한다면 동자공이 좋아. 하지만 무림이란 곳이 원래 정면 대결보다는 암습과 술수가 난무하는 곳이라 잘못해서 미약 종류에 당한다면 모든 게 끝장이지. 선택은 자네가 해야 해.”
“그럼 여태까지 해 오던 방법을 쓰겠습니다. 괜히 동자공을 익히다가 적의 술수에 걸려 모든 걸 잃을 수는 없거든요.”
“그럼 이제 시작해 보세나……..”
유백의 교육은 지독했다. 면벽수련을 통해 아침저녁으로 청각을 단련했고, 또 내공을 닦았다. 그 외의 시간에는 검법과 암기술, 경신술을 익혔다. 가장 힘든 것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암습이었다. 서로 얘기를 잘 나누다가도 유백은 한 번씩 검을 뽑아 기습을 했고, 묵향은 아슬아슬하게 날아드는 그의 검과 표창을 막으면서 식 은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이것도 세월이 가면서 익숙해져 적당히 막아 낼 수 있게끔 되었다. 하지만 유백은 점점 더 공격에 쏟는 공력을 늘려 갔으므로 묵향으로 서는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