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0권 8화 –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

수라도제가 이끄는 군웅들은 숭산 인근의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3일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길이다. 도중에 건량과 물만으로 끼니를 때우며, 산길을 가로질러 달 려왔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으로 그것이 모두 다 헛고생이었다는 것을 알자, 허탈감과 함께 피로가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었지만, 수라도제 등 몇몇 피로를 모르는 고수들은 아직까지 자리에 남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수준이 떨어지 는 자들이야 죽자고 달려온 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곳까지 쉬엄쉬엄 달려온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고수들은 모두 세 개의 패거리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패력검제와 황룡무제, 그리고 몇몇 무림의 원로들이었다. 술잔을 나누 며 대화를 나누는 중에 간혹 언성까지 높아지는 것을 보면 오늘 보인 소림의 행태에 불만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묵향과 만통음제였다. 그들은 화경을 상회하는 고수들답게 서로가 어기전성으로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자신들이 무슨 대 화를 나누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일지도 모르는 다른 놈들을 생각하면 그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라도제와 그의 사돈인 종리영우 그리고 종리영우의 의제인 제갈기였다. 이들 또한 묵향 일행처럼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대화를 남이 들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부는 기필코 소림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이빨을 뿌드득 갈며 수라도제가 어기전성을 날리자, 그의 앞에서 앉아 있던 종리영우가 부드러운 어조로 다독거렸다.

<사돈의 마음을 노부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감정대로 처리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갈기 또한 종리영우의 의견에 찬성이었다.

<형님의 말씀이 옳은 듯합니다. 그리고 만약 소림에 적개심을 드러낸다고 해도 때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 말에 수라도제의 눈썹이 꿈틀했다.

《때라고 했는가?》

<물론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소림이 소인배들의 집합소임이 드러났다고는 하나, 그들이 지닌 저력까지 무시해서는 안 되지요. 소림과 맞대결을 해서 승리를 거둘 자신이 있는 문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약 있다면 저놈뿐일 것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턱짓으로 제갈기가 슬쩍 가리킨 것은 만통음제와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묵향이었다. 모두들 그쪽을 바라본 후, 한결같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소림을 징죄하려면 무림의 공분을 일으키고, 무림맹이 직접 나서야만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면 설혹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그 피해가 너무나도 클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무림맹은 금을 잡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만큼 소림을 응징하는 것은 금을 박살 낸 후가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종리영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음을 날렸다.

<듣고 보니 동생의 의견이 옳은 듯하구만.>

하지만 수라도제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모두에게 어기전성을 날렸다.

《만약 그때가 되면 모두들 노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사돈. 사돈께서는 소림의 대문이라도 박살 내며 분풀이라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노부는 아직도 울화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언제 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돈이 노부를 찾는다면 이놈을 들고 즉시 숭산으로 달려가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옆자리에 세워 놓은 거도(巨刀)의 손잡이를 슬쩍 잡으며 전음을 날렸다. 그리고 그의 의제인 제갈기 또한 함께 할 것을 맹세했다.

<저 또한 형님이 하시는 일에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불러만 주십시오. 만 리 길이라도 마다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이때, 점소이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기에 그들의 시선은 문 쪽으로 돌아갔다.

“아니, 어디서 거지새끼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어! 빨리 밖으로 안 나가?”

비럭질해서 먹는 신세인 주제에 도대체 어디서 뭘 처먹었는지 살이 뒤룩뒤룩 찐거지 하나가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가 점소이에게 욕을 얻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점소이는 맹렬하게 거지에게 욕을 퍼부었지만, 거지는 점소이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문에 점소이는 할 수 없이 빗자루를 집어 들고 거지를 두들겨 팼지만, 거지는 전혀 아파 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거지는 객잔 안을 휙 둘러본 후, 수라도제 일행을 발견하고는 지체치 않고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수라도제 대협.”

“오, 비육걸개 장로가 아닌가? 반갑구먼. 안 그래도 개방 쪽에 연락을 넣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네를 만나다니…….”

하지만 비육걸개가 가깝게 다가오자 수라도제의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육걸개의 몸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수라도 제는 코를 감싸 쥐며 투덜거렸다.

“크흐~ 냄새! 자네도 여전하구먼. 제발 딴 거는 모르겠지만 목욕 좀 하게. 코가 심히 괴로우니 말이야.”

“크크큭, 원래 거지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놈들 아니겠습니까? 거지한테 바랄 것을 바라셔야죠.”

비육걸개는 너스레를 떨며, 넉살 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런 다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상 위에 차려진 비싼 음식들을 입속에 마구마구 퍼 넣기 시작했다. 그들 간의 대화를 옆에서 유심히 바라보던 점소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없이 돌아가 버렸다. 모두들 칼을 차고 있는 무림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차마 밖으로 나 가 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비육걸개가 맛나게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수라도제는 상대가 도대체 아무런 말도 없이 먹기만 하고 있자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었 다. 개방의 장로인 그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수라도제로서는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비육걸개는 입속에 있는 음식을 대충 씹지도 않고 삼킨 다음, 다른 음식을 손으로 움켜쥐며 대꾸했다.

“하남분타에서 영양 보충 좀 하고 있다가 대협께서 이곳으로 오신다기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맛있군요, 대협.”

“영양 보충이라니?”

“한 며칠 절간에서 지냈었거든요. 원래 절에서 나오는 식사라는 게 그렇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개 한 마리 잡아 영양 보충하던 중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수라도제는 비육걸개도 소림사 문제로 이곳에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네도 소림사가 봉문한다는 것을 알고 돌아가던 중이었던 게로군.”

“예, 대협. 설마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날 줄은 본방에서도 예측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본방에는 무슨 일 때문에 기별을 넣으려고 하셨습니까?”

“숭산에서 철수한 금군의 행방을 묻고자 해서 말일세. 그놈들이 어디로 갔나?”

“호북성 방향으로 급히 남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양양성 인근에 포진하고 있는 금군의 주력 부대와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겠죠.” 그 말에 수라도제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잘됐군. 후발대가 도착하는 즉시 추격하여 그놈들을 박살 내 버려야겠어.”

바로 이때, 저쪽 자리에 앉아 있던 묵향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빙그레 미소 지으며 비육걸개에게 말을 걸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옆에서 듣게 되었는데 말씀이야, 자네가 소림에 있다가 왔다고?”

새파란 젊은 것이 처음부터 말을 찍찍 놓고 있으니 비육걸개의 속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무림인인 듯한데, 수라도제 일행과 합 석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동석하기 힘들 정도로 배분이 낮다고 생각되어졌던 것이다. 비육걸개 또한 개방의 장로인 만큼 묵향의 인상착의 정도는 초상화를 통해 알 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설마 이곳에서 정파의 최고수들 중 한 명인 수라도제와 같은 객잔에 앉아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허어, 대협과 함께 온 후기지수인 모양이군. 아마 이번이 초출인 모양인데, 상대를 봐가면서 말을 걸게나.”

이때 옆에 앉아 있던 수라도제가 아차하면서 재빨리 비육걸개에게 어기전성을 날렸다.

《초출이 아니라 마교 교주일세. 말조심 하게나.》

순간 비육걸개의 발그스레하던 뺨은 핏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져 버렸다.

“허걱!”

“본좌는 상대를 봐 가면서 말하는 거니 네놈이 그런 걱정까지 해 줄 필요는 없다. 나는 네놈이 개방 출신이고, 또 소림사에 있다가 왔다는 점이 마음에 든 것뿐이니 까 말이야. 자, 이제 우리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나 좀 나눠 볼까?”

상대의 의향은 들어 보지도 않고 묵향은 수라도제에게 말했다.

“이녀석 좀 빌려 가겠네. 죽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시게나.”

묵향의 말은 절대로 죽이지는 않겠지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 줄 수는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라도제로서도 의외였던 것이, 비육걸개가 순순히 묵향을 따라 객잔을 나가 버렸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가 못 가겠다고 버티면서 수라도제에게 구원을 청 했다면 자신이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비육걸개가 순순히 교주를 따라서 나가 버리자 수라도제로서는 그들 사이를 막아설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수라도제는 재빨리 묵향의 뒤를 따라 일어섰고, 다른 무림의 명숙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비육걸개가 개 맞듯이 맞고 있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도중에 끼어들어 그를 구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묵향은 멀리 가지도 않았다. 비육걸개를 객잔 뒤편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간 후,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소림사가 왜 봉문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은데 말씀이야. 입을 열지 않거나,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상대의 위협에 비육걸개의 투실투실한 뺨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걸 모를 수 있겠는가. 저놈에게 박살 난 제자가 5백을 넘어섰는데 말이다. 오죽하면 개방 이 저놈에게만은 정보를 공개하자고 결의했겠는가.

“물론입니다.”

“하기야 잘 알고 있겠군. 본좌가 주리를 튼 개방 제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 말이야. 자, 빨리 말해 보라구.”

“그게… 이런 말씀 드리기가 그렇지만, 사실 본방에서도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을 말하기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묵향은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뭣이? 이것이 정말 관을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비육걸개는 난감하다는 듯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믿지를 않으니 그로서도 난처했던 것이다.

“사실입니다. 제가 분명히 수라도제 대협께서 이끄는 구원 세력이 곧이어 도착할 것이라는 정보까지 장문인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상외로 장문인은 봉문 을 결의했습니다. 싸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승산이 있고도 남으니까 본좌가 그 망할 놈들이 봉문을 선언한 이유를 네놈에게 묻는 거잖아. 아무도 소림을 돕지 않았다 해도 소림은 싸워서 이길 수 있었 어. 그런데 왜 봉문한 것이지?”

그 말에 비육걸개의 투실투실한 살점에 묻혀 있던 자그마한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교주는 뭔가 알고 있는 것이다. 개방이 모르고 있는 뭔가를 말이다. 그렇지 않 고서야 저런 호언장담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걸 자신이 모른다는 걸 교주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슬슬 유도 신문을 하여 교주가 뭘 알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비육걸개는 개방의 결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주에게 정보를 넘겨주려고 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오늘 큰 건수를 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봉문을 선언하기 전날 장생전에 고승들이 모여 밤새도록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떤 결론이 났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장생전에 들어가서 직접 들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 말입니다. 어찌 되었건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고승 들이 모두 장생전에서 나오더군요. 그런 다음 그들은 모두 소림사 뒤에 있는 산봉우리로 올라갔습니다.”

소림사에는 가 본 적도 없는 묵향이었기에 거기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소림사 뒷산이라……. 거기에는 뭐가 있지?”

“뒷산 쪽으로 가면 먼저 조사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참회동이 나오지요. 그분들이 가는 방향으로 봐서 조사전으로 가는 것이 아니 라 참회동으로 가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참회동이라고? 그럴 리가.”

“아닙니다. 그쪽이 확실했습니다. 자신들이 내린 결정이 선대들이 쌓은 업적을 무너뜨리게 될 것은 당연한 이치니, 어쩌면 그것을 참회하기 위해 가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해 봤습니다만.”

비육걸개는 자신의 추리를 묵향에게 말했지만, 묵향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있었다. 그들이 참회동으로 갔다? 왜 참회동으로 갔다는 말일까? 모두 다 참회동으 로 몰려간 후, 소림의 앞날을 결정할 중차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참회동에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만큼 비중 있는 인물이 들어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소림 내에서 그만한 발언권을 지닌 인물이 참회동에서 썩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단 한 가지 가능성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그런 가능성이 있음을 모른다. 왜냐하면 모두들 그가 미쳤다고 확신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묵향은 그가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왔음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허어, 그러고 보니 그 미친놈이 참회동에 있었던 모양이군. 그런데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지? 그가 합해진 소림의 힘이라면 금나라쯤이야 겁날 것이 없었을 텐 데 말이야.”

강자지존(强者之尊)의 법칙이 통하는 세계에서 성장해 온 묵향으로서는 도저히 소림이 내린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어린애와 어른의 싸움에 서 어른이 대충 항복해 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물론 어른이 어린애에게 뭔가 양보할 이유라도 있다면 또 모른다. 상대를 좋아하든지, 아니면 약점을 잡혔든 지…….

“약점이라도 잡힌 것인가?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지?”

중얼거리던 묵향은 비육걸개를 향해 매서운 눈초리를 돌리며 질문했다.

“그놈의 참회동이 어디 있지? 본좌가 알기 쉽게 설명해 봐.”

비육걸개는 땅바닥에다가 손가락으로 소림사의 내부 건물들을 그리면서 설명했다.

“여기는 처음이시라고 하셨으니, 알기 쉽게 설명 드리죠. 그러니까 이곳이 저기 보이는 정문, 정문을 들어서서 정면에 보이는 가장 큰 건물이 대웅보전(大雄寶殿) 이죠. 대웅보전 뒤편에 있는 건물이 바로 지객당입니다. 그 지객당 뒤편으로 몇 개의 건물들을 통과해서 쭉 더 들어가면 세 개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곳이 나옵니 다.”

비육걸개의 설명에 묵향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흠, 그렇구먼.”

“그 건물들을 통과해서 이쪽으로 더욱 뒤로 들어가면 야트막한 산이 나오는데, 그 중간에 동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참회동이죠. 참회동으로 올라가는 길 이쯤 에 조사전이 있으니 아마도 찾기는 쉬우실 겁니다. 교주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경비가 삼엄한지라 손쉽게 침투하시기는 쉽지 않으실 텐데요?”

비육걸개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파임을 자처하는 개방도가 아무리 방 내의 결의가 있었다고 해도 마교 우두머리에게 소림사 내부를 자세히 알려 주는 짓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기에 비육걸개가 선택한 것이 이것이었다. 진실을 알려는 주되, 조사전으로 가기에는 가장 험난한 길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더군 다나 상대는 조사전으로 가는 길을 가장 알기 쉽게 알려 달라고 했으니, 이 이상 더 알기 쉬운 길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길들이야 빙빙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가 알려 준 통로는 곧장 방장실을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방장실은 소림사 최상급 무승들의 집합체인 팔대호원이 호위하고 있다. 그리고 그쪽으로 가는 도중에 나한전까지 덤으로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용담호혈(龍潭虎穴)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설명을 다 들은 묵향은 다시 한 번 더 땅 위에 그려진 지도를 자세히 바라본 후, 비육걸개에게 말했다.

“이렇듯 자세하게 설명해 줘서 고맙군. 그럼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 또 보기로 하지. 잘 가게나.”

엄청난 속도의 경공을 발휘하여 자신의 시야에서 아스라이 사라지는 교주를 바라보며 비육걸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떠그랄! 정말 지랄같이 빠르군!”

잠시 후 비육걸개는 정신을 차린 듯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냐? 너 같은 놈을 다시 보게. 그건 그렇고 저놈을 만났다는 걸 빨리 총타에 알려야겠어.”

비육걸개의 두뇌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마교 교주가 숭산에 있다는 것을 총타에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혹시 교주가 소림사에서 볼일을 마친 후 수라도제 일행에 재합류할지도 모르니, 수라도제 일행에다가 개방 제자 몇 명을 파견하는 일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또 뭐를 해야 할까?

이때, 비육걸개의 머릿속에 교주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알송달송한 수수께끼 같은 말. 미친놈이 참회동에 있다고? 그런데 미쳤다면 왜 고승들이 그의 말을 듣고 봉문을 했단 말인가. 미친놈 말을 들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 그 미친놈만 있으면 소림에게 금나라의 정예 병력 쯤이야 하루아침 해장거리도 안 되는 모 양이다. 그 미친놈이 누구길래…….

비육걸개는 방금 전 교주가 한 수수께끼 같은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해 내기 위해 둔중한 비곗덩어리 속에 감춰진 날카롭기 그지없는 두뇌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미친놈이라……. 그게 교주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칭할 때 즐겨 사용하는 욕인가, 아니면 진짜 상대가 미친 건가…….”

이때, 갑자기 비육걸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명호 하나가 있었다. 만사불황! 바로 주화입마에 빠져 미쳐 버린 소림사 최강의 무승을 일컫는 명호가 아니었던가. 교 주가 말한 미친놈이 바로 그라고 가정한다면, 방금 전에 교주가 한 말이 전체적으로 무리 없이 해석될 수 있었다.

“허어, 바로 그거였군. 공공대사가 돌아왔음이야.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비육걸개는 수라도제 일행에게 되돌아가서 이별을 고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하남분타를 향해 전속력으로 경공을 전개해 달려가 버렸다.

이걸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수라도제 일행 또한 경악감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고, 공공대사가 제정신을 차렸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방금 비육걸개가 말했지 않습니까? 아마 사실일 가능성이 클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노부는 소림에 좀 다녀올 테니 남은 일행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라도제도 공공대사를 만나러 가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물론 다른 사람들도 공공대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공공대사는 참회동에 들어 있다. 그런 만큼 정식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그를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걸 감행하자면 무공이 뛰어나야 함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소림의 중심지까지 몰래 숨어 들어가자면 보통 실력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돈. 이곳은 안심하시고 다녀오십시오.”

수라도제도 소림사의 내부를 소상히 알지는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장실 뒤편으로는 외인의 출입을 불허하는 곳인 것이다. 그렇기에 수라도제 또한 교 주가 들어간 방향, 즉 비육걸개가 알기 쉽게 설명해 준 길을 통해 참회동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소림사가 지닌 저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무승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건물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드러나 있는 경비보다 숨어 있는 경비들이 더욱 무서웠다. 매복해 있는 자들의 실력은 세인들이 말하는 신검합일급에 달하는 막강한 실력을 지닌 승려들이었다.

물론 한밤중에 몰래 숨어든다면 조금 더 손쉬웠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대낮이었다. 거기에다가 묵향이 통과하는 경로 상에는 방장실이 있지 않던가. 점점 더 안 으로 들어갈수록 삼엄해지는 경비에 묵향 같은 탈마급 고수로서도 어려움을 느낄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통과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마교 총타처럼 진세 라든지, 함정까지 골고루 깔려 있었다면 그가 아무리 탈마급이라고 해도 몰래 통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저기 있는 것이 조사전인가? 그렇군, 저기 현판에 조사전이라고 쓰여 있네. 그 뚱뚱이가 제대로 설명했군. 그럼 저 길로 올라가면 되겠군.’

묵향이 참회동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워낙 비육걸개가 설명을 자세하게 해 준 덕분이었다.

‘바로 이곳이군.’

묵향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커다란 동굴 위에懺悔洞(참회동)’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묵향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참회동 안에서 웅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시게나.”

상대가 어딘가에 숨어서 기습을 가해 올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향은 서슴지 않고 참회동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제법이로군. 본좌가 왔음을 바로 눈치 채는 것을 보면 말이야.”

“교주와 빈승 간에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을 어찌 알겠소이까? 다만 자연의 소리가 누군가 이곳에 들어왔음을 알려줬을 뿐이지요.”

몇 날 며칠 동안 동굴 안에서만 기거해 온 공공대사였다. 그렇기에 주위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라든지 바람 소리 등등 각종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시 각에는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파악하고 있었던 그였기에 순간적인 외부인의 침입을 파악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침입자가 이토록 가깝게 접근해 있 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상대의 기척을 파악해 낼 수 없자,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침입자의 정체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자는 그가 알기에 단 한 명뿐이었기에.

“흠, 그럴 수도 있겠군. 그건 그렇고, 전에 봤을 때보다 좀 야윈 것 같군.”

“허헛,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인데 조금 야위면 어떻겠소이까. 그런데 시주께서는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셨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지.”

“말씀해 보시구려.”

“왜 봉문을 결정했는가? 소림은 엄청난 힘이 있어. 그것은 그 무엇보다 자네가 잘 알잖아? 그놈의 교리 때문에 살생을 하기 싫었던 것인가? 아니면 뭔가 약점이라 도 잡힌 것인가?”

“시주, 이곳은 불도를 닦는 곳이라오.”

왜 당연한 소리를 떠드는 것인지 의아하게 여기며 묵향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건 본좌도 알고 있어.”

“그걸 아신다면서 왜 이곳까지 오셨소이까?”

“그야…….?”

말대답을 하려던 묵향은 자신의 실책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상대는 불도를 닦는 승려가 아닌가. 승려가 추구하는 것은 모든 욕망을 버리 는 해탈이다. 사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모든 욕망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묵향이 살아오면서 그런 참된 구도의 길을 가는 승려는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 금 그의 앞에 그런 승려가 하나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묵향으로서는 그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 옥영진 대장군부에서 식객으로 있을 때,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던 묵향이다. 자신의 감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제대로 된 길을 가는 승려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어렴풋이나마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물론 묵향보고 그 길을 가라고 한다면 결단코 사양하겠지만 말이다. 멈칫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묵향은 공공대사를 새삼스레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봤다. 혜안이 어린 듯 깊숙이 가라앉은 눈동자. 얼마나 금식하며 참회했는지 헐렁 한 가사 자락 사이로 깡마른 그의 육신이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에 비해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대사께서는 도(道)를 얻은 모양이구려.”

“허허헛,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소이다.”

공공대사가 옅은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종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누군가가 격투를 벌이는 듯, 병장기 소리와 폭음이 들려 왔다.

“오늘 본사에 손님이 많은 듯하구려.”

“나가 보지 않을 거요?”

“빈승이 꼭 나가 봐야 할 이유라도 있소이까?”

“물론 저 녀석도 대사의 손님이니까 그렇지. 간간이 들려오는 폭음. 뇌전도법이 지니는 특징이 아닌가. 아까 객잔에서 거지 녀석하고 얘기하고 있을 때 그놈이 엿 듣고 있는 건 알았지만, 따라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하지만 공공대사의 반응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서문세가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한 모양이구려.”

“대사도 알 거외다, 서문길제라고.”

아마 공공대사도 알 것이다. 공공대사보다는 30년 정도 연배가 뒤쳐지지만, 그가 미치기 전쯤에 이미 수라도제는 뛰어난 도객으로서 명성이 자자했었으니 말이 다. 하지만 공공대사는 무림의 일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이제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돌아가 주시겠소이까? 빈승은 할 일이 있어서…….”

축객령에 묵향은 돌아서서 몇 발자국 나가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반전하여 공공대사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도대체 그가 언제 돌아서서 달려들었는지 눈치 채지 도 못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언제 뽑아 들었는지 묵혼검이 푸른 궤적을 남기며 빛과 같은 속도로 공공대사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왜 안 피하는 게요? 대사의 능력이면 충분할 텐데…….”

묵혼검은 공공대사의 세 치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하지만 묵향이 무의식적으로 시전한 어검술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강기로 인해 공공대사의 옷은 조금 찢어져 있 었고, 옅은 선혈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공공대사는 내공을 한 올도 끌어올리지 않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공대사는 감정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시주와 싸울 이유가 없소이다.”

공공대사는 묵향의 검에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자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답하는 공공대사의 눈에서 묵향은 더 이상 승부욕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만약 예전의 공공대사였다면 적이 자신을 죽일 마음이 있건 없건 호승심 때문에라도 맞상대를 해왔을 것이다. 엄청난 무위를 과시하며 승부욕에 불타오르던 공공대사를 마주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다고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단 말 인가.

자신이 추구하는 강함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공공대사를 향해 묵향은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재빨리 검을 거두며 정중하게 말했다.

“대사는 정말 도를 얻었구려.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잘해 보시오. 그럼 이만 가 보겠소.”

뒤돌아서는 묵향을 향해 공공대사가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서문 시주가 교주를 따라왔다고 하셨소?”

“그렇소만.”

“그런데 어찌하여 이곳으로 오기에 가장 어려운 길로 오셨소? 그 방향은 방장실이 있어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라오. 그러니 갈 때는 다른 길로 가시는 것이 편 할 거외다.”

“고맙소.”

묵향의 대답은 아무런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 듯했지만, 그 속마음은 달랐다. 이따위로 길 안내를 한 비육걸개를 다음에 만나면 뼈를 추려 놓겠다고 마음속으로 다 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놈이 감히 가장 지독한 통로를 안내해? 내 이놈을 가만히 두나 봐라.’

묵향은 참회동을 나서자마자 곧장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숨어 들어올 때야 인기척을 숨길 필요가 있었지만, 볼일 다 마쳤는데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 다. 전속력을 다해 경공술을 전개하고 있는 묵향을 따라올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묵향이 보라는 듯 엄청난 파공성을 흘리며 나한전 근처를 통과할 때, 수라도제가 승려들에게 포위된 채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가 뇌전도법을 사용한 이상, 승려들은 곧장 상대가 누군지 파악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쯤에서 서로 간의 다툼은 끝이 난 모양이었다.

“잘해 봐라. 그래 가지고야 백날 가도 공공대사를 만날 수 있겠냐?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크흐흐흣.”

묵향이 비웃음을 흘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수라도제라고 못 봤을 리가 없었다. 수라도제 같은 고수가 저렇듯 엄청난 파공성을 흘리며 쏘아져 나가는 상대의 기척을 모른대서야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한껏 비웃음을 짓고 있는 묵향의 얼굴을 본 순간 수라도제의 얼굴이 똥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 이다.

“어엇! 저자는 뭐냐?”

“어디서 온 거지?”

수라도제를 포위하고 있던 승려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 중에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승려가 일갈했다.

“동요치 마라. 저자는 밖으로 나가는 자가 아니냐?”

이때, 수라도제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장문인이 침중한 안색으로 그에게 말했다.

“사질, 자네는 빨리 조사전으로 가 보게. 아무래도 그가 튀어나온 방향으로 보아 그쪽인 듯싶으이.”

“예, 방장 스님.”

그 승려가 달려가려 할 때, 수라도제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어조에는 씁쓸함이 짙게 묻어 있었다.

“조사전이 아니라 참회동일 것이외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문 시주.”

“노부는 마교 교주의 뒤를 쫓아서 이리로 왔소이다. 나는 들켜서 여기 있고, 그는 아마 들어가는 데 성공한 모양이오. 그가 저렇듯 기척을 숨기지 않고 달려가는 것 을 보니, 이제 볼일은 다 마쳤다는 뜻이겠지요.”

그 말에 장문인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빨리 참회동으로…, 아니 노납이 직접 가지.”

“이보시오 방장 대사, 노부도 함께 가면 안 되겠소?”

“아미타불. 서문 시주, 그곳은 절대로 외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소림의 중지외다. 노납이 그걸 어기면서까지 시주의 청을 들어드릴 수는 없소이다. 용서하시 길 바라오이다.”

나한전 소속의 무승 몇을 거느리고 재빨리 달려가는 장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라도제는 자신이 경솔했음을 후회했다. 이토록 경비가 엄중할 줄 알았다면 밤 에 들어왔을 것이다. 밤이라면 자신의 실력으로 충분히 뚫고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교주와 자신의 실력 차는 생각하지도 않고 괜히 따라 들어와서 이런 개망 신을 당할줄이야 그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실 그도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초강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주님께서는 본사를 위해서 이곳에 오셨었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면 서로가 좋지 않았겠습니까?”

아마도 이 승려는 수라도제가 마교 교주가 소림사에 침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막기 위해 이곳으로 달려온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수라도제 같은 무림의 명숙이 무슨 할 짓이 없어서 소림의 담장을 넘었겠는가? 절간에서 재물을 훔치기 위해 왔을 리도 없고, 무공서를 훔치기 위해 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특히 승려에게 그런 심증을 더욱 명확히 굳혀 주는 것이 그가 밤도 아니고 낮에 소림의 담을 넘었다는 사실이었다.

승려가 오해를 하건 말건 수라도제야 지어 놓은 죄가 있다 보니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남은 일은 빈승들이 처리할 것이니 시주께서는 그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어쨌건 교주가 이곳에 침입한다는 것을 아시고 여기까지 달려와 주신 점, 방장 스님을 대신해서 빈승이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야 노부도 어쩔 수 없지. 그럼 수고들 하게나.”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알고 수라도제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