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2권 2화 – 의문의 마교 고수들

의문의 마교 고수들

중원 최고의 정보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무영문이었지만, 요즘 들어서 정보 수집에 있어 약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첩보조의 7할 이상이 금나라 쪽에 침투해 있거나 대금전쟁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다른 쪽으로는 투입할 인원이 없어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같으면 마교의 성지 십만대산(十萬大山)으로 들어가는 통로들은 50개 조에 달하는 비영단원들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되었다. 그냥 감시만 하는 일인데도 불 구하고 왜 그렇게 많은 숫자의 첩보조를 필요로 했느냐 하면, 마교 전투 조직의 특이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마교도들은 마기(魔氣)라는 독특한 기운을 뿜어낸다. 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마기는 더욱 짙어져, 자신이 숨어 있는 위치를 타인에게 뻔히 드러내게 되는 마교 무사들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추적하기 아주 손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교도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개발해 냈 다. 즉, 총단을 떠난 직후부터 전속력으로 냅다 달려가는 것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만큼, 그들을 몰래 추격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전력을 다해 쫓아 가도 따라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척을 숨길 수 있겠는가.

무영문이 마교 주위에 50개나 되는 첩보조를 배치했었던 이유는 그들이 이동할 만한 통로를 기준으로 인원을 폭넓게 매복시켜, 마교도의 이동로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무영문이 개발해 낸 이 방법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무리해서 추격할 필요 없이, 자신이 매복해 있는 근처로 마교의 전투 집단이 지나가면 그 들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잘 봐 뒀다가 상부에 보고만 하면 끝이었다.

상부에서는 각 조가 보내온 보고를 토대로 마교도들의 목표를 대략적이나마 짚어 볼 수 있었다. 사실 그것만 해도 충분했다. 어느 정도 규모의 세력이 대충 어느 쪽으로 이동한다는 것만으로도 무림맹에서 상당한 정보료를 받아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마교를 감시하고 있던 그 많던 인원이 모두 다 빠져나가고 겨우 2개조, 열 명만이 흩어져 이동로를 감시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무영문의 수뇌부들 은 그 인원으로 제대로 된 감시가 될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금나라를 조사하는 데만도 엄청난 인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마교도들까지 감시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마교가 그들과 같은 배를 타고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열 명의 인원이 감시할 수 있는 이동로는 열 개밖에 안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십만대산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수십 개의 이동로 중, 지금까지 마교도들이 가장 많 이 이용해 온 곳 열 개를 골라낸 다음 각자 하나씩을 맡았다. 그리로 마교도들이 이동을 하냐, 안 하냐는 완전히 운에 맡겨 버렸다.

이동로 하나를 배정받은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왕숙(王淑)이다. 길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그는 매일같이 길 위로 오가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뭘 발견했는지 무감정하게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그의 눈이 갑자기 부릅떠졌다.

“헉! 저게 뭐야?”

그가 발견한 것은 일단의 마교도들이다. 행색만으로는 그자들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모두 다 엄청난 고수들 이라는 점이다. 왕숙은 안전을 위해 길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 아래쪽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일 정도다. 그런데 이런 먼 곳에 자리 잡은 그에게까지 저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마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상대의 수를 셌다. 워낙 거리가 멀어 정확히 세기는 좀 힘들었지만, 백 명 안팎임에는 분명했다.

“말로만 듣던 수라마참대인가?”

그는 황급히 토굴 속으로 들어갔다. 유사시 숨기 좋도록 위장이 잘되어 있는 토굴 안에는, 그가 오랜 시간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 여져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짐을 뒤져 작고 얇은 양피지 한 장을 꺼내 깨알만 한 글자를 빠르게 써넣었다.

『백여 명 규모의 특1급 전투단 출발.

-423 왕숙』

그리고는 새장에서 가장 튼튼해 보이는 전서구 한 마리를 꺼내, 양피지를 집어넣은 작은 대롱을 다리에 조심스럽게 맸다.

“조심해서 날아가거라.”

전서구를 날린 왕숙은 다시금 처음의 위치로 되돌아왔다. 왕숙은 길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이해하기 힘든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저놈들이 왜 아직도 저기 있는 거지?”

마교도들이 지금까지 보여 준 행동대로라면, 저들은 쏜살같이 달려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어야 했다. 물론, 짤막한 내용의 전서를 보냈기에 왕숙이 지체한 시간 이 얼마 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들이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면 그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만…, 저 정도 속도라면 추적이 가능하겠는데?”

왕숙은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 나무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혹, 자신을 찾아올지 모를 일행들에 대한 배려였다.

왕숙이 백여 명의 마교 고수들이 이동하는 것을 포착한 사실은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주를 돕기 위해 양양성으로 이동하는 전투 집단 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왕숙으로부터 두 번째 보고를 받았을 때, 무영문의 수뇌부는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백 명에 달하는 고수들 중, 열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시 총단으로 되돌아갔다는 보고였기 때문이다.

장인걸의 이목을 속이기 위한 교란 작전이라면 얼마 움직이지도 않고 대부분이 그냥 돌아갈 리 없었다. 물론 남은 열한 명만 해도 충분히 장인걸의 이목을 끌 만큼 강력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뭔가를 부수러 가는 거라면 이동 속도가 너무 느리다. ‘진짜 미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무영문의 수뇌부는 자신들이 놓치고 있 는 게 한 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왕숙으로부터 되돌아갔다고 보고받은 그 90여 명의 고수들이 진짜로 총단으로 되돌아갔는가? 총단 인근에 배치된 아홉 명에게 긴 급히 사람을 보내 알아봤지만, 그들이 총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숙이 빠져나간 자리를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았기에 빚어진 결과였 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무영문의 수뇌부는 3개 조를 십만대산 방향에 새로이 투입했다. 2개 조가 맡은 임무는 사라진 90명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개 조는 왕숙과 교대해서 열한 명으로 이뤄진 마교 고수의 이동을 추적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왕숙이 아무리 우수한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특1급에 해당하는 고수들 근처에 접근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상대방은 눈을 감고 있어도 그 존재감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지독한 마기를 언제나 뿜어내고 있었기에 구태여 가깝게 접근해서 관찰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들의 뒤만 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 세월 첩보조에서 잔뼈가 굵은 왕숙은 뭔가 크게 한 건 할 수 있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것만 봐도 수상쩍 은데, 저들은 마물(魔物)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엄청난 고수들이다. 그런 자들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런 해괴한 행동을 할 리가 없다.

이번 일만 제대로 잘 파악해 내면, 그 공을 인정받아 조장으로 진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왕숙은 한밤중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나 상대의 움직임을 관 찰하고, 또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이목에 수상한 그림자가 하나 얼핏 보였다.

‘뭐지?”

왕숙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히 재빠른 놈이라 하마터면 들고양이가 움직인 것으로 착각할 뻔했을 정도였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 한 섣부른 행동은 할 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 상대는 장인걸 쪽에서 보낸 첩자나 암살자일 수도 있었다. 왕숙은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더욱 신경 써서 움직이며, 미지의 적을 탐 색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의 흔적은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왕숙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수상한 그림자의 정체는 물론이고 동료가 있는지, 또 있다면 그 수가 얼마인지 조차도 아직 알아내지 못 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조별로 행동하기에 자신의 뒤를 맡아 줄 듬직한 동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가 받는 심리적 압박감은 더욱 컸다.

한참 주위를 살피던 그의 눈에 나뭇가지가 묘하게 꺾여 있는 게 보였다. 무영문의 첩보 조원들만이 알고 있는 약속이었다. 그걸 알아보자마자 왕숙의 시선은 급히 나무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 나무의 아래쪽에는 얼핏 봐서는 알아보기 힘들도록 교묘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 안에는 무영문도들 끼리 주고받는 은밀한 기호들이 포함되어 있다.

‘162조 도착, 모습을 드러내라고??

왕숙은 잠시 망설였다. 이게 적의 함정이라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지원 부대가 온 것일 수도 있다. 무영문 같은 첩보 조직의 경우, 은밀하게 행동하기에 같은 편끼 리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해 서로 죽이는 참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왕숙은 마침내 결심했다. 무영문도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기호들. 그것에 자신의 목숨을 건 것이다.

마음을 굳힌 왕숙은 슬쩍 자신의 위치를 드러냈다. 지금까지 꼭꼭 숨어 있던 그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와 똑같은 복장의 복면을 한 인 물이 슬며시 그에게 접근해 왔다.

“누구십니까?”

“지금까지 수고했다.”

복면을 벗자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바로 162조 조장인 조철삼(趙哲三)이었다. 인수인계를 할 때는 정확하게 서로의 정체를 드러내야만 한다. 적에게 속는 것도 방지할 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의도였다.

‘지금까지’라는 말만으로도 왕숙은 눈앞의 인물이 왜 나타났는지 감을 잡았다. 자신을 대신해서 162조가 마교도들의 감시를 맡게 된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오, 조철삼 조장님.”

“혼자서 저들을 감시하며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뭔가 특이한 사항은 없었나?”

“상부에 보고한 것 외에 별다른 사항은 없었습니다.”

몇 가지 얘기를 나눈 후, 지금까지 이들을 추격해 왔던 왕숙은 처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십만대산으로 말이다.

조철삼은 저 멀리 마기가 풍겨 오는 지점을 노려봤다. 숲에 가려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마교 고수 한 명 한 명의 위치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집어낼수 있을 정도로 그 개개인이 뿜어내는 마기는 강렬했다. 조철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공포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 무시무시한 기운에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젠장, 특1급이라고 하더니, 정말 지독한 마기로군.”

조철삼은 고개를 돌려 그의 부하 둘을 지목하며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저기 보이는 마을을 철저하게 수색해 봐. 어쩌면 놈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관도를 통해 뭔가를 수송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조장.”

“최대한 신속하게 행동하되, 저놈들이 눈치채게 해서는 안 돼. 알겠나?”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으니 염려 놓으십시오.”

부하들이 달려가고 난 후, 조철삼은 남은 조원들과 함께 마교도들을 감시하기 편한 곳을 찾아 몸을 날렸다. 멀리서 봤을 때 자신의 몸을 완벽히 가려 줄 수 있을 정 도로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 위에서 저들의 동태를 감시하려는 것이다.

비영단 소속 162조 조원들은 조철삼의 명령에 따라 그 인근 마을의 물류 이동 상황을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마차를 통해 수송하는 물건들 중에 중요한 것은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봤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자 점차 수색 범위를 넓혀 갔다.

“자네는 이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는 영안표국을 살펴보도록 해. 그리고 자네는 전장 쪽을 알아보고…….”

162조는 조철삼의 지휘 하에 마교도들을 은밀하게 추격하며, 그들의 행로 부근에 있는 마을들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사해 봐도 수상한 부분이라 고는 눈곱만치도 발견할 수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마교에서 고수들이 아무런 일도 없이 단체로 산보를 나왔을 리는 없지 않은가. 조철삼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고심하고 있을 때 부하들 중 한 명이 슬쩍 입을 열었다.

“혹시 누군가를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런 멍청한 녀석, 저렇게 마기를 풀풀 풍기면서 감시가 된다고 생각하나?”

당연한 질책이었다. 마교도들이 뿜어내는 마기는 워낙에 강렬하여, 웬만큼 무공을 익힌 자라면 아주 먼 거리에서도 그 기척을 포착해 낼 수 있다. 그렇기에 숨어서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일 거라는 추측은 아예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혹 상대방이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자라면 몰라도.

“그렇다면 누군가를 추격하는 것은요?”

“추격한다는 놈들이 저렇게 꿈지럭거리며 움직이겠나?”

“그렇다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멍청한 놈, 네놈은 그렇게 생각이 없나? 놈들은 계속 이동 중이다. 척 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잖아!”

조철삼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부하는 기죽지 않고 또 다른 질문을 해 왔다. 물론 질책하는 조철삼도 부하의 계속된 질문에 짜증을 내면서도 계속 대꾸를 해 주고 있 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 말로 정보를 팔아 먹고사는 무영문의 저력인지도 모른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며 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나오면 철저하게 파고 들어 가는 이러한 모습이 무영문이 강호 제일의 정보 문파로 군림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호위하는 것은 아닐까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호위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호위를 하려면 곁에 바짝 붙어서 호위해야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짙은 마기를 풍겨 대면서 무슨 호위를 한다는 말이냐? 목표가 바로 이 근처에 있다고 광고할 일이라도 있나?”

조철삼이 이렇게 단정 지을 만도 했다. 그의 부하 둘이 혹시나 해서 수상쩍은 자를 찾아 이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현천검제나 패력검제, 그리고 소연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는 정도의 얄팍한 위장을 했을 뿐이었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두 사내와 동행하는 정파인 으로 보이는 그런 여 고수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하지만 부하는 더 이상 그 뒷말을 이어 붙이지 못했다. 조철삼 조장의 사나운 눈빛으로 봤을 때, 그 뒷말을 이어 붙임과 동시에 주먹이 날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 다. 아무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무영문이라고는 해도 쫄다구는 적당히 알아서 기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조장님, 출출하지 않으십니까? 식사 준비를 할까요?”

고개를 갸웃하던 조철삼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느껴지던 마기 덩어리들 중에서 세 개가 어딘가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한 게 느껴졌 기 때문이다.

“너는 이곳에서 남은 자들을 감시하고 있거라.”

그들의 이동 속도가 워낙 빠른 것이었기에 부하를 보낼 수는 없었다. 162조에서 가장 빠른 경공 속도를 자랑하는 조철삼이었지만, 상대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 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의 무공이 엄청나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조철삼이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자신의 기척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기 에, 그는 최대한 기척을 숨겨 가며 달려야만 했다.

조철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 가는 자들의 기척을 놓쳐 버렸다.

“젠장, 어디로 갔지?”

이미 기척은 놓쳐 버린 상태였고, 기왕에 내친걸음이었기에 주위를 살피며 계속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던 조철삼은 갑자기 앞에서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마기를 느끼고는 깜짝 놀라 땅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세 덩어리의 마기는 그가 숨어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듯,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렸다. 마인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기다린 후에야 조철삼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갔나?”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놈들은 일행에게로 되돌아간 모양이다. 조철삼도 처음의 위치로 돌아갈까 했지만 쉽 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저들이 이렇게 바쁘게 어딘가에 갔다 온 걸 보면,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마교의 고수들이 온 곳으로 한참을 더 달려가자 조철삼은 작은 장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전혀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장원이었다. “이상하네, 여기는 영안문(永安門)인데…….”

조철삼이 영안문에 다가갔을 때, 그는 장원에서 왜 그토록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장원 안에는 시체들만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도 살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설마…, 그들이 죽였나?”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이 이런 학살극의 장본인이라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시체에 나 있는 상흔을 살펴봤을 때, 살해에 사용된 무공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흔한 수법들이었다. 그리고 상처의 깊이도 제각각이라 수십 명에 달하는 집단이 이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조철삼은 자신 이 따라왔던 그 세 명이 일부러 힘 조절을 해서 의도적으로 이런 흔적을 만들어 놨을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시체들을 둘러보던 조철삼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일부러 자신이 지닌 무공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군. 상처만으로 봤을 때는 어떤 놈들이 저질러 놓은 일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겠는데?” 영안문 같은 저급한 문파를 없애는 데, 그렇게 엄청난 실력자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즉, 살해자의 정확한 실력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가 뒤쫓아 온 마 교의 고수들부터 시작해서, 무림의 어지간한 문파의 상층부에 존재하는 고수들이라면 모두 다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조철삼이 실내로 들어가자 아주 호화로운 장포를 걸친 중년인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두개골이 쩍 갈라진 채 쓰러져 있는 시체가 바로 영안문의 문주인 목진명 (木眞明)이었다.

“역시, 상처만 봐서는 흉수를 짐작할 수조차 없군.”

이렇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조철삼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누군가 실내를 샅샅이 뒤진 흔적이 보였던 것이다. 물건을 보관해 둘 만한 아주 작은 공간들까 지 다 뒤진 것을 보면 범인은 여기서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뭘 찾은 걸까?”

조철삼도 나름대로 실력을 발휘하여 한 시진 동안 이곳저곳을 뒤졌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쓸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돈이라든지, 패물, 귀금속이 보이긴 했 지만 장원을 덮친 자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는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은자 1백 냥의 값어치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야명주를 발견한 조철삼은 장원을 습격 한 자들이 평범한 무리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걸 손도 대지 않은 걸 보면 뭔가 있기는 있어.”

조철삼은 슬쩍 야명주를 품속에 넣고 곧장 자신의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번에 자신이 본 일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깨알만큼 작은 글씨를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니었기에 능숙하게 두 장을 썼다. 보고서를 다 작성한 그는 그것들을 돌돌 말아 황동으로 만든 작은 대롱 안 에 밀어 넣었다. 뚜껑을 꼭 닫으니 물 한 방울 새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밀봉이 됐다. 그중 하나를 전서구의 가느다란 발목에 묶어 하늘로 날려 버린 뒤, 남은 하나 의 대롱을 수하들 중 한 명에게 건네주며 명령했다.

“혹 모르니 너는 이걸 직접 전달하고, 좀 더 많은 인원을 증원해 달라고 전해라. 사안은 특(特)이다. 알겠냐?”

수하는 대롱을 받자마자 그것을 자신의 입속, 그러니까 혀 밑에 집어넣었다. 만약 누군가의 공격을 받거나 하면 그는 그것을 꿀꺽 삼켜 버릴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장.”

“수고해라.”

부하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던 조철삼의 머리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지금까지 쫓아갔던 열한 명의 마교 고수들의 목적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안 문 정도를 박살 내기 위해 저 정도의 고수들이 마교를 나왔을 리는 만무했지만, 흉수가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목적도 없이 천 천히 행동하는 마교 고수들을 본 적이 없기에 조철삼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