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3권 12화 – 죽어도 우겨야 할 일

죽어도 우겨야 할 일

개방의 남경 분타는 황병들의 기습으로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물론 개방도들이 다른 거대방파들의 제자들과 비교했을 때 무공에서 뒤떨어지기도 했지만, 남경 분 타를 치기 위해 동원된 황병들의 수가 워낙 많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남경 분타에서는 탈출하는 연공공을 추격하느라 고수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전력을 한 군 데로 집중시키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분타의 거지들을 총괄 지휘해야 할 분타주 독두개가 중상을 입어 드러누워 버린 상태다 보니, 변변한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묵사발이 나 버렸던 것이다.

남경 분타는 파괴되었지만 의외로 탈출에 성공한 거지들의 수는 많았다. 무공이 뛰어난 거지들의 경우 연공공을 추격하느라 대부분 분타를 떠나 있었기에 직접적 으로 전화(戰禍)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들은 남경 분타가 황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재빨리 남경을 탈출했다. 그 무리들 중 소팔개가 끼어 있었다. 소팔개는 탈출에 성공하자마자 그 사실을 총타에 알렸다.

소팔개의 긴급 보고를 받은 개방의 수뇌부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경 분타가 황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인데, 소팔개 가 보고한 사건의 전말은 그야말로 개방 수뇌부를 경기 들게 만들기에 족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발칵 뒤집힌 개방의 수뇌부는 긴급 장로회의를 열어 어떻게 이번 사건을 처리해야 할지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니, 독두개 그놈은 무슨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해서 본방을 이토록 난처하게 만든단 말입니까?”

“허허, 이보시오. 그게 어찌 독두개 혼자만의 잘못이겠소? 다 본방의 힘이 모자란 탓이지.”

“빌어먹을! 도대체 그놈은 본방과 무슨 웬수가 졌다고 일을 이렇게 꼬아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놈이라는 건 바로 천인공노할 마교 교주를 칭하는 말이었다.

“글쎄 말이오. 아니, 그때 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요? 이번 일에 대해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할 게요.”

“흥! 다른 사람 탓하지 마시오. 당신도 그 일에 찬성하지 않았소?”

“뭐야? 증거 있어?”

사안이 사안인 만큼 모두들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서로 책임을 미루느라 회의장은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방주의 인상이 어느 순간 확 일그러졌다. 대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서로 책임을 미루는 장로들의 모습에 울화가 치민 것이다.

“자자, 모두들 조용히 하게!”

방주의 명령에 장로들은 언쟁을 멈췄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방주는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울화가 치민다고 지금은 질책할 때가 아니다. 최대한 머리를 모아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일세. 흔적 없이 주워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지금 자네들이 해야 할 최우선적인 일은 어떻게 하면 이번 일을 가급적 모양새 좋게 얼버무릴 수 있느냐 하는 걸세.”

그 말에 평소 개방의 지낭(智囊)임을 자처하던 비육걸개 장로가 비대한 살집에 감춰진 작은 눈을 교활하게 굴리며 의견을 개진했다.

“소팔개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 일에는 독두개가 가장 깊게 관여했다고 합니다. 그가 독두개의 지시를 받아 다른 방도들이 모르도록 조심해서 처리했다고 하니, 모든 죄를 독두개에게 뒤집어씌우면 될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소.”

사사건건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아 대는 취선개 장로에게 비육걸개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쏘아보며 빈정거렸다.

“그게 뭐요?”

“이미 남경 분타의 많은 제자들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이오.”

“체포된 자들 중 3결 이상의 제자는 몇 되지도 않소. 2결 이하는 아는 것도 별로 없으니 놈들에게 고문을 당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요.”

비육걸개는 두터운 살점만큼이나 두꺼운 얼굴 가죽을 자랑하듯 뻔뻔스레 말했다. 비록 한솥밥을 먹던 식구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그냥 버리자는 의견이었다. 비 정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개방이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허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급이 낮을수록 놈들의 고문을 참지 못하고 실토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지 않소?”

취선개 장로의 대꾸에 비육걸개는 답답하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방금 전에도 말했잖아! 아는 게 있어야 실토하지.”

“닥치고, 내 말 좀 들어 봐. 물론 그놈들은 아는 게 별로 없지. 하지만 교주가 정보 제공을 요청해 올 때, 전폭적인 협조를 해 주라는 지시는 2결제자 이상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요. 고문을 참지 못한 놈들이 그 사실에 대해 나불거리면 본방은 끝장이지. 그 말을 듣고 본방과 교주 사이를 오해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소? 이제 내 말의 요지를 이해하겠소?”

모두들 공감하는 모양인지 장로들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젠 독두개만의 문제가 아니다. 황실과 척을 진 것이 분명한 교주와 개방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오해가 일어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크흠…”

“그렇다면 빨리 사람을 보내 그놈들을 구출하든가, 그도 여의치 않으면 죽여서 입막음을….. ……”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오?”

또다시 취선개 장로가 톡 쏘자, 울컥한 비육걸개 장로는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외치려다가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두 명이라면 몰라도 포로로 잡힌 자는 1백 명이 훨씬 넘는다. 그들 모두를 구출하는 것도 어렵지만, 죽여서 입막음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5만이나 되는 황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황도에서 일을 벌여야 하는 데다, 자칫 이 일에 개방의 상층부가 개입되었다는 조그마한 심증이라도 안겨 줬다가는 개방은 그야 말로 파멸당할 가능성마저 안고 있었다.

비육걸개 장로는 살집에 묻힌 자그마한 눈동자를 연신 뒤룩거리더니 퉁명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마치 그럼 넌 뭔가 방도가 있느냐는 듯한 어투였다.

“젠장,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이오?”

취선개 장로는 짐짓 목소리를 낮춰 차분히 설명했다.

“일단 이번 일을 독두개의 단독범행으로 몰아가는 거요. 그리고 나머지 정보 제공의 건은 이번에 맹과 마교 간의 동맹이 체결된 만큼 동맹의 의리상 마교 쪽에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해 주라는 명령이었다고 밀어붙이는 거요. 동·맹·의·의·리 말이오. 알겠소?”

취선개 장로는 특히 ‘동맹의 의리’라는 말에 힘을 줬다.

“흠, 현재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겠구려.”

나름대로 취선개 장로의 의견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는지 방주는 장로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또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없소?”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취선개 장로는 자신의 의견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까지 논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각 분타들에 지시를 하달해 증언을 함에 있어 한 치의 어긋남이 없도록 조치해야 할 겁니다. 그 외에 다른 일들은 본방에 유리한 방향으로 즉흥적으로 처리하거나 아니면 그건 비밀이니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증언해 줄 수 있다고 둘러대는 겁니다. 그런 다음 즉시 이쪽으로 보고하도 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의 뜻을 표했다.

“취선개 장로의 의견대로 하는 게 좋겠소.”

어느 정도 대책이 수립되었다고 느꼈는지 비육걸개 장로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림맹에 파견 나가 있는 공수개 장로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공수개 장로도 뭘 좀 알고 있어야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게 아닙니 까?”

방주는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경 분타의 참사에 대한 대책은 조금씩 틀이 잡혀 가는 것 같았지만, 과연 이런 변명이 먹힐지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 었다. 그래서인지 각 분타에 지시 사항을 하달하러 밖으로 분주하게 나가는 장로들을 바라보는 방주의 안색은 침중하기 그지없었다.

개방의 수뇌부가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공수개 장로는 맹주쪽에서 자신을 호출하기 전에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그는 즉시 맹주에게 면 담을 요청했다.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공수개 장로가 맹주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맹주인 태극검황 청영진은 그의 측근들과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토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맹주는 굳은 표정으로 공수개 장로의 인사를 받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공 장로가 노부를 보자고 한 게, 혹 남경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오?”

갑작스런 맹주의 질문에 공수개 장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렇습니다, 맹주님.”

“조금 전에 추밀원에서 항의문이 도착했소. 남경에서 마교 교주가 혈겁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지만 거기에 개방의 남경 분타가 관여했다고 하는데…, 이 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공수개 장로는 재빨리 총타에서 보내온 대책 방법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타에서는 이번 일의 책임을 모두 다 독두개 혼자의 잘못으로 밀 어붙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노련한 공수개 장로는 처음부터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본방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따르면 유감스럽게도 그게 대부분 사실인 모양입니다.”

“허어, 그럴 수가. 노부는 설마 하고 있었거늘…….”

맹주가 한탄하고 있을 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감찰부주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자세히 설명 좀 해 보시오. 어째서 마교 교주가 일으킨 혈겁에 남경 분타가 끼어든 것인지 말이오. 혹 개방 수뇌부의 지시가 있었던 거요?”

공수개 장로는 펄쩍 뛰며 부인했다.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시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남경 분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조사하기 위해 총타에서 대대적으로 인력을 동원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 일에 장로급 다섯 명과 4결제자 5백 명이 동원됐소이다. 남경에서 탈출한 모든 거지들을 조사하고 있으며, 그들 간에 대질심문까지 벌이고 있단 말이오. 만약 총타에서 그런 일을 지시한 것이라면, 구태여 그러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개방의 호들갑이 연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좌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고 자신의 변명이 썩 먹혀 들어가는 것 같지 않자, 공수개 장로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황군은 남경 분타를 괴멸시키며 분타주 독두개를 포함해 1백 명이 넘는 방도들을 잡아갔소이다. 그쪽에서도 나름대로 조사를 벌일 텐데, 우리 쪽에서 제식구 감 싸기 식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놔 봐야 헛게 아니겠소이까?”

당연한 말이었기에 감찰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다면 개방에서 조사한 바를 들어 봅시다.”

공수개 장로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총타에서 치밀하게 조사한 결과, 남경 분타주인 독두개가 마교에 포섭되어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합니다. 부분타주인 소팔개를 비롯해서 그곳에서 탈출해 온 모든 방도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봤지만, 독두개 외에 다른 자들이 마교도들과 작당한 징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답니다. 거의 대부분의 방도들이 교주가 남경에 나타났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건 확실할 겁니다. 그나저나 독두개, 그 빌어먹을 배반자 때문에 남경 분타의 모든 방도들이 오 욕을 뒤집어쓰고 황군에 체포되었으니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믿어도 되겠소?”

“맹주님, 오랜 세월 동안 저희 개방은 협의의 최선봉에 섰던 문파입니다. 비록 독두개와 같은 추잡한 배신자로 인해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 고 모든 개방도들이 그놈과 같다고는 생각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분타주가 마교에 포섭된 이상, 그 밑에 있는 제자들이야 분타주의 명령에 따라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공수개 장로는 짐짓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독두개가 한 일이라고 해 봐야 황도에서 입수한 정보들을 취합하여 마교에 넘겨주거나 그들이 일을 벌일 창고를 빌려 준 정도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창 고 안에 술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이 있다며 일반 방도들에게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려놓고 밖에 경비까지 세워 놨다고 하니, 그 속에서 교주가 무 슨 짓을 벌였는지 다른 방도들이 알 수가 없었을 게 아닙니까?”

모두들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 일쯤이야 방도들에게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독두개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벼운 일이라고 자신들도 느꼈 으니까.

“만약 방도들로 하여금 무장을 갖춘 뒤 황궁으로 돌격하라든지 아니면 대신들 중 몇몇을 암살하라든지 하는 그런 망령된 명령을 독두개가 내렸었다면 곧바로 소 팔개 등 간부들이 놈의 변심을 눈치 챘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난 적도 없었습니다.”

충분히 말이 되는 설명이었기에 맹주와 그 측근들은 공수개 장로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허, 정말 안타까운 일이오. 어찌 그 간악한 마교의 꼬임에 빠져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듯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맹주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무림맹으로서도 이번 일에 대해 빠져나갈 명분이 필요했었고, 그걸 공수 개 장로가 제공해 준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정파 최고의 정보 단체인 개방을 못 믿게 되는 최악의 사태로 발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공수개 장로는 자신의 말이 완벽하게 먹혀들었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마무리만 하면 끝이다. 공수개 장로는 짐짓 허심탄회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저도 총타로부터 보고서만 받은 상황이기에 정확한 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추밀원과 형부(刑部)에 알아 보시면 제가 한 말이 사실인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황군들이 남경 분타를 기습하여 체포한 인물이 독두개 혼자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보나마나 다른 거지들을 모두 다 심문할 테고, 그럼 이번 일이 독두개 혼 자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입김이 가해졌던 것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겠지요.”

맹주는 처음보다 훨씬 밝아진 얼굴로 공수개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건 공수개 장로의 말씀이 옳은 듯하구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개방이 이번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믿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맹주님.”

“좋소. 그럼, 이번 사건을 일으킨 마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해 보기로 합시다. 도대체 교주의 의도가 뭔 것 같소? 이런 일을 벌여서 뭘 얻을 수 있기에 이토록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단 말이오?”

공수개 장로는 보고서의 내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소팔개의 증언에 따르면 교주는 아마도 실종된 악비 대장군을 찾고 있었던 듯합니다. 비록 다소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긴….”

하지만 공수개 장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분노한 감찰부주가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소리쳤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는 여기저기서 보내온 항의 문들이 쥐어져 있었다.

“다소 무리라니요? 이것들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교주는 남경에 도착한 첫날 관도를 검문 중인 황병들을 구타했을 뿐 아니라, 우상시와 추밀사 그리고 소부경 같은 고위관리들을 차례로 납치해서 고문을 가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소부경은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정도로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공동파, 아미파와 충돌을 일으켜 수십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발생시켰다고 쓰여 있습니다. 교주가 남경에서 한 행위는 맹과 황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감찰부주의 옆에 앉아 있던 청호진인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만약 대장군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즉시 맹에 알려 황실에 파견 나가 있는 공동파와 아미파에 협조를 구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결코 이런 유혈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막아서는 아미파와 공동파의 제자들에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살수를 써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과연 동맹을 맺은 맹에 할 행동입니까? 더군다나 그 당시 교주는 야행복에 복면까지 착용했다고 합니다. 그걸 보면 그는 자신의 정 체를 감추고 싶어 했음이 분명했고, 그 말은 곧 그의 행동이 결코 떳떳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맹주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추론이오.”

터지기 시작한 봇물인 듯 청호진인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마교에 대한 규탄이 흘러나왔다. 오랑캐의 침입으로 일시지간 동맹을 맺고 있지만 두 거대세력의 내부에 는 이렇듯 불신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교주는 팽선을 비롯한 하북팽가의 정예들과 난투극을 벌였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팽선을 비롯해서 수많은 팽가 의 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지요. 그걸 가만히 참고 넘기니까 이번에는 아예 이렇게 간 큰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 말에 감찰부주 역시 동감의 뜻을 표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언제까지나 교주의 횡포를 눈감아 줄 수는 없습니다. 추밀원이 맹에 엄중히 항의해 온 것뿐만 아니라…, 공동파와 아미파 역 시 맹의 결단을 원하고 있습니다.”

감찰부주의 말에 고무된 듯 청호진인도 옆에서 거들었다.

“교주의 정확한 의중을 알지 못하는 이상, 이런 식의 공동 전선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맹주님.”

맹주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말을 마친 맹주는 더 이상의 의견 개진을 불허한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뭐라 반론을 말하려던 청호진인은 그 모습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맹주의 집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공수개 장로만이 성공적으로 일 처리를 해냈다는 만족감에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