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23권 6화 – 동상이몽 동업자

동상이몽 동업자

유정길이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고 정신이 없을 때, 그 범인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추린 대인의 주리를 틀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추린이 황궁에서 잔뼈가 굵은 강골이라고 해도 악독하기 그지없는 마교의 고문을 견뎌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크으윽! 나, 날 죽여라, 죽여.”

“쯧쯧,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 텐데?”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한 추린이 혀를 길게 내밀고 이로 꽉 깨물려고 했다. 혀를 깨물어 자결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손이 번쩍하는 순간 그의 턱은 더 이 상아래로 내려가지 못했다.

“크으으윽.”

추린이 절망감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묵향은 너스레를 떨었다.

“이봐, 나는 자네에게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있어서 이런 수고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자네 혀가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대답을 들을 수 있겠나? 그리고 그깟 혓바 닥 따위 없어진다고 자네가 자살할 수 있을 것 같나? 다 헛수고야.”

퉁명스럽게 말한 뒤 한참 동안 몇 가지 고문을 더 한 후, 묵향은 추린의 아혈을 풀어 주며 질문을 던졌다.

“이제 대답할 생각이 들었나? 안 그러면 좀 더 하고…….”

“으윽! 허억, 허억!”

아혈이 집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던 추린은 혈도가 풀리자 숨을 연신 헐떡거리며 그 비대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묵향이 가한 고문은 극악하리만큼 엄청난 고통 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추린은 대답을 안 하면 더 고문을 하겠다는 말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워, 원하는 게 도대체 뭐냐?”

“황성사에서 악비 대장군을 왜 납치했나?”

그 말에 추린은 고통과는 또 다른 의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황성사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르는 극비였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이 황성사의 일 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납치까지 했다. 결론은 이 일에 황성사와 적대할 만한 거대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린은 더 이상 고문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온 상대이니만큼 순순히 말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의 질문 내용이었다. 악비 대장군을 황성사가 왜 납치를 했냐고 묻다니? 추린은 그런 정보는 알지도 못했고 들은 적도 없었다.

“그건 아니다. 우리가 그를 납치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황권에 위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일가 친족들까지도 목을 베야 하는 게 너희들의 일이잖아?”

“다른 자들이 그 일을 실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노부는 그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참, 황성사에 다른 두목들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군.”

악비 대장군을 왜 납치했냐며 슬쩍 넘겨 집어 추린의 반응을 본 묵향은 더 이상 이자를 쥐어짜도 나올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던 묵향은 추린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알고 있는 다른 두목들의 정체도 알려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설마 나보고 동료들을 팔라는 말인가? 사람 잘못 봤다.”

추린은 딱딱하게 굳은 어조로 외쳤지만 묵향은 전혀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빙긋 미소까지 지으며 이죽거렸다.

“잘못 봤는지 제대로 봤는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으, 으아악!”

그 후 차마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지독한 고문들이 행해졌고, 결국 추린은 진저리를 치며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마, 말하겠다.”

“혹시라도 거짓말을 하면 지금까지 받은 고문이 그리워질 정도로 네놈을 어루만져 주마.”

묵향의 엄포에 추린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더 심한 고문을 하겠다니. 동료를 판다면 자신은 더 이상 조직에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고문을 받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연, 연공공이야.”

“연공공?”

과거 묵향도 관부에서 일했던 적이 잠시나마 있었기에, 고위직에 앉아 있는 환관을 ‘공공’이라 부르며 존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놈을 잡기 위

해서 황궁으로 쳐들어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황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고 싶었던 묵향이었기에 곧바로 되물었다. “그놈 말고 딴놈은 없어?”

한 번 열린 추린의 입은 묵향의 질문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부가 알고 있는 건 연공공 한 사람뿐이다. 정기적으로 하는 회의에 참석할 때조차도 우리들은 모두 다 복면을 쓴 채 신분을 숨기고 만났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 들은 모르지만 연공공은… 독특한 목소리로 인해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황궁을 건드리는 것은 좀 찝찝했지만, 기왕에 내친걸음이다. 한 놈 잡아들이나 두 놈 잡아들이나 달라질 게 뭐란 말인가. 결심을 굳힌 묵향의 눈초리가 표독스럽게 빛났다.

“흠, 연공공이라……. 어쩔 수 없지. 일단 그놈을 잡아들인 후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겠군.”

소부경 추린을 납치한 다음 날 밤, 묵향은 황궁의 높은 담을 넘었다. 연공공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환관으로 꽤나 막강한 권세를 지니고 있는 자인 모양이었 다. 거기에다가 권력의 중추라 할 수 있는 황성사의 간부이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황실에서 최고위에 속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놈만 잡아서 족친다면 어쩌면 악 비대장군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묵향이 황궁의 담을 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황궁 내부로 접근해 들어갈수록 짜증이 슬슬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경비 상태가 엄중해서가 아니라 황궁의 구조가 너무 넓고 복잡한 탓이었다. 일단 황궁 안으로 들어서고 나니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들로 인해 당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 다. 물론 잠입해 들어오기 전에 독두개를 닦달하여 황궁 지도를 받아 내기는 했지만, 복잡하기 그지없는 황궁 내부를 겨우 지도 한 장에 의지해서 찾아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다??

한참을 고민해 보았지만 묵향으로서도 결국 방법은 하나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자를 붙잡아 그놈을 이용해서 목적지로 가 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한밤중인 만큼 홀로 나다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있다면 두 명씩 조를 짜서 여기저기에 매복하고 있는 놈들뿐이었다.

이때, 묵향의 눈에 순찰을 돌고 있는 황병들이 보였다.

‘저놈들 중 하나를 붙잡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10여 명씩 조를 짜서 순시를 도는 황병들 중 하나를 납치할 수는 없다. 그자들은 언제나 일정한 간격으로 정해진 통로를 순찰한 다. 그런 그들이 사라진다면 곧이어 주위에 퍼져 있는 경계병들이 눈치 챌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저놈들 중 하나를 붙잡는 수밖에 없겠군.’

묵향이 관심을 돌린 것은 여기저기에 두 명씩 조를 짜서 매복하고 있는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으로 보아 꽤나 무공을 수련한 실력자들이 었다. 아마도 무림의 어떤 문파에서 파견한 고수들인 듯싶었다.

그들 중 한 조를 제압할 요량으로 묵향은 약간의 시간을 들여 그들을 관찰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압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들이 그냥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신호를 보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상이 있는지 혹은 제대로 경계를 서고 있는지 서로 확인하기 위한 행동인 모양이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군. 놈들은 1각(약 15분) 단위로 신호를 주고받고 있어. 그렇다면 저놈들을 제압했다손 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된다는 말이잖아. 젠 장,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하려니 저게 걸리고, 저렇게 하려니 이게 걸리고……. 어떻게도 하지 못하고 궁리만 하고 있는 동안 조금씩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뭘 발 견했는지 묵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둠 속에서 이쪽으로 미끄러지듯 접근해 오고 있는 시커먼 인영(人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건물이 만들고 있는 짙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민첩하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 그자 또한 흑의를 입고 있었고 복면까지 쓰고 있었기에 묵 향처럼 뛰어난 실력을 지닌 고수가 아니고서는 그 존재를 눈치 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묵향은 삼엄하기로 소문난 황궁에 복면인이 출현하여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자 잠시 이곳이 정말 황궁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 복면인을 예의 주시했다. 그러던 묵향의 입가에 뭔가 야릇한 미소가 그려졌다.

흑의에 복면까지 써 어둠 속에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감춘 한 인영이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 부분이 봉긋하게 솟아올라 있는 것을 보면 여인임에 분명한 흑의복면인 건물이 만드는 짙은 그림자를 적절히 이용하며 움직였기에 아무도 그녀의 은밀한 움직임을 파악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흑의복면인은 바로 정진사태(靜眞師太)의 애제자 지선이었다. 그녀가 이런 괴이한 복장을 하고 황궁을 누비고 있는 것은 무슨 역심을 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 은 그녀가 황궁의 경비를 점검할 차례였기에 이런 괴상한 복장을 하고 황궁 내부를 은밀히 순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각 요소요소에 매복하고 있는 아미파 제자들이 근무를 제대로 서고 있는지 점검하고, 나아가 황병들의 근무 상태까지 관찰했다. 만약 이상이 있다면 제자 들의 경우 다음 날 아침 호된 기합을 가할 것이고, 황병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면 황군 지휘부에 연락하여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은 자신들이 농땡이를 부린 것을 귀신처럼 파악해 내는 상관의 행동이 놀랍기 그지없다고 느꼈겠지만, 그것도 다 아미파의 1대제자들이 은밀 히 암행을 해 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날 있었던 암행의 시작은 예전에 행해졌던 그것들과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정에도 없었던 손님과 대면하게 되었 다. 그것도 그녀가 적의 존재를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상대에게 혈도가 제압당한 후였다. 자신이 지닌 무공에 은근히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그 순간 그

녀가 받은 충격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바로 근처에 동문들이 있건만 혈도가 막혀 버린 그녀는 그 어떤 신호도 보낼 수가 없었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공력을 운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전음도 보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녀를 제압한 괴한은 그녀를 끌고 좀 더 으슥한 곳으로 이동했다. 상대가 뭘 하려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지선은 끝까지 희 망을 버리지 않고 침착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저자가 나를 죽이지 않고 제압한 것을 보면 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일 거야. 그게 뭘까? 만약 황궁 내부의 정보를 원한 것이었다면, 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는 다른 자매들을 제압하는 것이 훨씬 편했을 텐데……. 왜 내가 순찰 나온 것을 노려 나를 제압한 거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선의 머리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러고 있던 지선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상대 또한 나 와 똑같은 임무를 띤 황궁 소속의 비밀무사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지선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이곳이 바로 황궁이기 때문이다. 황병 5만에 무수한 고수들이 철통처럼 경비를 서고 있는 황궁에 어느 미친놈이 잠입해 들어오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충분히 지금 이 사황이 이해가 된다. 그가 봤을 때, 지선은 황 궁에 침입한 괴한일 테니 말이다.

그러자 자신이 황병들의 경비 상태를 알려 줄 때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의 얼굴이 떠올랐다. 황궁의 세부적인 경비 상태를 총책임자 인 그보다도 아미파의 여승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아마도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상대는 황궁의 경비 상태를 알아 보기 위해 파견된 관부의 비밀 고수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상대에게 자신이 적이 아님을 최대한 빨리 밝혀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혈도를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라 한 올의 공력도 일으킬 수 없는 상태라서, 상대에게 전음조차 날릴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상대가 이쪽의 대답을 들어 보겠다며 기회를 주기 전에는, 그녀는 그 어떤 의사표시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갑자기 상대의 전음이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상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정중한 것이었다.

<네가 무슨 일로 황궁에 침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알바 아니고. 지금부터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말을 채 끝맺지는 않았지만 죽이겠다는 소리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상대가 같은 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지선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상대는 자신도 황궁에 어떤 목적을 지니고 침입한 동업자로 생각한 모양이다.

이때 그녀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계책이 떠올랐다.

‘내가 침입자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는 내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침입자인 내가 주위에 도움을 청할 리 없으니까. 발각되면 둘 다 죽은 목숨. 나를 동지라고 생각하면 했지 적이라고 생각하며 경계할 이유가 없잖아.’

괴한은 지선의 대답을 듣기 위해 목을 움직일 수 있도록 혈도 몇 군데를 풀어 주며 덧붙였다.

<거절할 텐가?>

부탁하는 말투였지만 자신이 고개를 가로젓기만 하면 곧장 목을 비틀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뚜렷이 느껴졌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살아남는 게 먼저였으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놀랍게도 상대는 그녀의 혈도를 모두 풀어 줬다. 아마 괴한도 지선이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었다. 똑같이 황궁에 침투한 처지 인데, 설마 황궁 요소요소에 매복해 있는 무사들에게 신호를 보낼 리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혈도가 풀리자 지선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비록 방심을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전혀 눈치 채지도 못했는데 혈도를 제압당했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월등한 고수라는 소리다. 지선은 섣불리 주위에 잠복해 있는 동문들에게 신호를 보내기보다는, 최대한 이자를 안심시킨 뒤 포위망을 구축하여 제압하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자칫 어설프게 잡으려 들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뭘…, 도와 드리면 되죠?>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나?>

일단 웬만한 곳은 다 알고 있기에 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상대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

상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내가 찾는 인물은 우상시(右常侍) 연공공이라는 환관이다. 그자의 거처를 알고 있나?>

황궁 안에는 수많은 환관들로 득실거리고 있었기에 외인인 지선이 그들의 거처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우상시 연공공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 많은 환관들 중 최고위직인 십상시(常侍) 중 하나인 ‘우상시’라는 벼슬을 지닌 환관이 그다. 더군다나 연공공은 그녀가 이곳 황궁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만나기 싫어했던 인물들 중 하나가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하지? 알려 줘야 하나? 아니면 또 다른…….?

급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지선이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순간 상대의 손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그녀의 멱줄을 틀어쥐었다. 또다시 어 처구니없을 만큼 간단하게 상대에게 붙잡히다니, 지선이 절망감에 고개를 떨굴 때였다. 멱줄을 틀어쥐고 있던 상대의 손에 힘이 주어지며 나지막이 투덜거리는 소 리가 들려왔다.

“젠장. 헛수고를 했군.”

아마도 이렇게 그녀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기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마자 혈도를 풀어 줬던 것이리라. 단숨에 그녀를 제압한 고수답게 그 손아귀가 가하는 힘은 가히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순식간에 목구멍이 틀어막혔기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녀는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공력을 끌어 모아 상대에게 전음을 보냈다.

<끄끅… 아, 알아요.>

상대는 곧 힘을 풀며 당황한 어조로 전음을 날렸다.

<이런, 알아? 대답이 없기에, 그런 줄도 모르고…….>

채 하지 않은 뒤의 말은 듣지 않았어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죽여 버리려고 했다는 말일 것이다. 지선은 일단 연공공의 거처를 가르쳐 준다는 말로 시간 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숨결을 가다듬은 후에야 지선은 상대에게 물었다.

<연공공의 위치만 알려 주면 저를 살려 주실 건가요?>

<물론이지. 도움을 준 사람을 없앨 이유가 없잖아.>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지선이 아니었지만, 현재 그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방금 전 귀하의 행동으로 봤을 때,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조금 튕겨 봤는데 상대는 의외로 삐딱하게 나왔다.

<그렇다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각서라도 쓸까? 지금 당장 네년을 죽여 없앨 수도 있음을 너도 잘 알 거 아니냐? 나는 내가 한 말은 철저하게 지켜. 그러니 헛 소리 그만 하고 얼른 연공공의 거처나 말해.>

계속 떠들어 봐야 의견차가 좁혀질 리 없었다. 상대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낀 지선은 더 이상 뻗대기를 포기하고 재빨리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상대의 성격이 그가 지닌 무공만큼이나 성급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좋아요. 안내하죠. 자, 나를 따라오세요.>

지선은 천천히, 하지만 결코 멈춤 없이 궁궐 깊은 곳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상대는 그녀의 바로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었기에, 만약 주위에 있는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려 하다가는 먼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가능성이 컸다. 상대는 그녀가 그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

딱히 괜찮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녀의 이동은 계속되었고, 연공공의 거처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지선은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이 자가 연공공의 거처에 도착한다면 그의 관심은 당연히 연공공에게 쏠릴 것이다. 그때를 이용하여 동문들과 힘을 합해 이 괴한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연공공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럼 어떤가? 안 그래도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인물들 중 하나가 바로 연공공인데 말이다.

마음을 정한 지선은 주변에 경계를 서고 있던 제자들 중 한 명에게 비밀리에 전음을 보냈다.

<침입자가 있다. 지금 나는 괴한에게 제압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사부님께 연락드리고, 비밀리에 연공공의 숙소 쪽으로 제자들을 집결시켜라. 그자의 목표는 우상시 연공공이다.>

잠시 후, 지선은 아직까지 희미한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창문 하나를 가리키며 괴한에게 전음을 보냈다.

<바로 저 방이에요. 주변에 경비가 삼엄하니, 알아서 조심하도록 하세요. 그럼 저는 가 봐도 될까요?>

하지만 괴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에 있는 놈이 연공공임을 확인한 후에, 자, 앞장 서라.>

예상대로 상대는 그녀의 잔꾀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생각해도 저 괴한처럼 엄청난 고수로 성장하려면 강호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아 왔을 것이다. 그런 노회한 고수에게 잔꾀가 통할 거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도 않았기에 지선은 실망한 표정을 보이지 않고 앞장 서서 연공공의 침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연공공은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서재에서 열심히 붓을 놀리며 뭔가를 한참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선으로서도 의외였던 것이 갑자기 창문이 덜 컥 열리면서 복면을 뒤집어쓴 자신이 출현했음에도 연공공이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공공은 붓놀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지선을 향해 소름이 끼칠 것 같은 고음의 느끼한 음성으로 물었다.

“늦은 시간인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요?”

그제서야 지선은 1대제자들이 밤마다 황궁을 암행한다는 사실을 연공공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그런 생각을 지선이 떠올리는 순간, 그녀의 뒤에서 음침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과연 돼지 말대로 아주 독특한 음성을 지니고 있군.”

그 순간 연공공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쭉 찢어진 눈매에 감춰진 매서운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괴한의 말 한마디로 그 정체를 단숨에 간파해 버렸기 때 문이다.

“크크큭, 과연 배짱이 있는 놈이로구나. 추린을 납치한 것도 모자라서 감히 황궁에까지 침투해 들어오다니.”

“너한테는 안 됐다만, 돼지가 기억하는 놈이 너밖에 없어서 말이야.”

괴한이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연공공의 몸이 쭉 늘어나듯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너무나도 손쉽게 책상을 건너뛰었기에, 마치 처음부터 그의 앞 에 책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연공공의 손에는 어느 틈에 뽑아 들었는지 얇은 연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 연검은 그의 허리띠 뒤쪽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기에 그가 뽑아 들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가 무장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가 없었다.

연공공과 지선의 거리는 거의 1장 반(약 4.5미터)이나 되었지만, 그의 검은 순식간에 그녀의 코앞에 당도했다. 놀랍게도 연공공은 엄청난 무공을 지닌 고수였다. 그의 연검에서는 시퍼런 검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고, 푸른 강기마저 아련하게 맺혀 있었다. 엄청난 위력을 내포하고 있는 그 공격에 휩쓸리면 뼈도 추리기 힘들 게 분명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지선은 어떻게 해서든지 연공공의 공격권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연공공의 연검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에 도저히 피할 여유가 없었다. 엄청난 공력을 내포한 검격으로 봐서 연공공은 처음부터 지선과 괴한을 한꺼번에 날려 버릴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그걸 깨달은 지선의 눈동자는 절망감에 물들었 고, 순간 질끈 눈을 감았다.

캉!

괴이한 소리에 지선은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자신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소리가 들려오다니 이상했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눈앞에는 놀 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연공공의 검은 놀랍게도 괴한의 손에 막혀 있었다. 그것도 아무런 무기도 쥐지 않은 적수공권에 말이다. 괴한의 손은 투명하게 빛나며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런 환상과도 같은 무공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지선이었기에 한순간 멍하니 서 있었다.

갑자기 지선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뒤로 날아가 벽에 세차게 부딪쳤다. 괴한이 방해가 되는 그녀를 붙잡아 뒤로 집어 던져 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괴한은 연공공이 자신과 괴한을 한꺼번에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지선을 황궁과는 관계없는 진짜 침입자로 단정한 모양이다.

연공공의 무공도 놀라웠지만 괴한의 무공은 더욱 놀라웠다. 방해물인 지선이 없어지자 순식간에 연공공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선은 느긋하게 그들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괴한의 눈치를 힐끗 본 후, 그가 연공공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렸음을 깨닫자마자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밖에는 예상대로 아미파의 제자 50여 명이 완전무장을 갖춘 채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복면을 벗어 던지며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침입자가 있다. 침입자의 무공이 고강하니 정면 대결은 절대 피해야 한다. 모두들 항마연환검진(抗魔連環劍陣)을 펼쳐라.”

항마연환검진은 비교적 무공이 약한 다수가 강한 소수를 압박하는 데 최적화된 아미파 고유의 검진이다. 대부분의 문파들은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진법을 보유하 고 있다. 그 하나는 항마연환검진처럼 강한 무공을 보유한 소수의 침입자를 다수로써 대적하기 위해 최적화된 진법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소수로써 다수를 상대하 기 위한 진법이다.

아미파의 여승들은 지선을 중심으로 검진의 묘리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능제강(柔制)의 이치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항마연환진법을 펼 치고 있었기에 그녀들의 움직임은 마치 무희(舞姬)들의 검무(劍舞)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진법을 펼친 채로 그녀들이 조금씩 연공공의 처소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꽈꽝!

갑자기 연공공의 서재 쪽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한쪽 벽이 터져 나갔다. 채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 그 속에서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지 선은 금방 그게 복면괴한이 만든 음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복면괴한은 마지막에 보였던 그 격돌에서 이미 연공공을 제압해 버렸는지, 그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 다.

괴한은 밖으로 나오다가 아미파의 고수들이 검진을 펼친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봤다. 그녀들을 지휘하고 있는 지선이 방금 전까지 자신이 붙잡고 있었던 바로 그 여인임을 알아본 복면괴한의 눈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이 묻어 나왔다.

지선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동문들에게 외쳤다.

“침입자가 절대 도주하지 못하도록 해라!”

이때 그녀의 옆에 서 있던 2대제자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질문했다.

“저자가 연공공을 인질로 잡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저자와…….”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지선은 순간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괴한과 함께 자신까지도 베어 버리려고 하던 연공공의 표독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지선은 동문들에게 외쳤다.

“침입자를 저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황궁이다. 멀지 않은 곳에 황상 폐하께서 계시다는 말이다. 그러니 연공공의 안위 따위에 신경 쓸 필 요 없다. 모두들 알겠느냐?”

불도를 닦은 제자들이기에 몇몇은 그녀의 명령에 내심 반발을 했을지 모르지만, 감히 1대제자인 지선에게 대놓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지선의 말대로 이곳은 황궁 안이다. 그녀들이 맡은 최우선적인 임무는 황상 폐하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호위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음인지, 항마 연환검진은 강한 살기를 내뿜으며 복면괴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비검(飛劍)!”

지선의 지시가 떨어지자 네 명의 여승들이 경공을 전개하며 몸을 날렸다. 항마연환검진은 소수의 적을 향해 전후좌우를 압박함과 동시에, 뒤쪽에 위치한 제자들 중 네 명씩 하늘로 날아올라 십자형태로 교차하며 쉴 새 없이 공중공격까지 가하는 매우 무서운 검진이다. 일단 검진이 발동한 이상 저자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 을 것이다.

그때 복면괴한이 연공공을 어깨에 짊어진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하늘. 언뜻 보면 네 명밖에 공격자가 없는 공중이 약점으로 느껴지겠지만, 그게 항마 연환검진의 가장 큰 함정이었다. 도주하기 위해 공중으로 몸을 날림과 동시에 모든 공격이 사방에서 집중되는 것이다. 공중으로 몸을 날리느라 행동의 제약이 큰 적 은 그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야말로 하늘은 필사(必死)의 관문이었던 것이다.

복면괴한이 하늘로 몸을 띄우자, 지선은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침입자를 포획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순간 아미파 여승들의 공격 이 괴한을 향해 집중되었고, 곧이어 복면괴한의 가공할 무공이 펼쳐졌다. 괴한은 자신이 필사의 관문으로 들어섰음을 깨닫자마자, 후퇴하거나 하는 대신 정면 돌파 를 선택한 것이다.

복면괴한의 손이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사방에서 몰려오는 아미파 여승들의 공격에 그대로 맞부딪쳐 갔다.

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로 몸을 띄웠던 20여 명의 여승들이 돌진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뒤로 튕겨져 나왔다. 그녀들은 복면인과의 격돌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땅에 착지하지도 못하고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럴 수가!”

괴한의 경공술은 너무나도 대단한 것이어서, 연공공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격돌의 반발을 이용해 순식간에 밤하늘 속으로 까마득히 솟아올랐 다. 그리고 곧이어 어둠에 녹아들어가듯 그 종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괴한을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갔던 지선 이하 모든 여승들은 그런 괴한의 뒷모습을 향해 입 을 쩍 벌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들은 괴한의 걸출한 무공에 경악감을 감추기 힘들었던 것이다.

지선이 방으로 들어서자 정진사태가 급히 질문을 던졌다.

“침입자가 있다더니 어찌 되었느냐?”

“도망쳐 버렸습니다.”

보고를 받은 정진사태는 순간 당황한 모양이다. 침입자를 잡지도 못했는데 지선이 돌아왔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적이 탈출했다면 응당 그녀가 앞장 서 서 추격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침입자의 무공이 대단히 강했던 게로구나.”

“예, 사부님. 그자는 제자들이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거느리고 온 제자들의 무공실력은 정진사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였기에 지선의 보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강하더냐?”

“예, 무공도 대단했지만 그자의 경공술은…, 너무나도 엄청나서 도저히 추격 자체가…….”

“허긴, 한밤중에 경공이 뛰어난 적을 추격해 봐야 좋을 게 없겠지. 그래, 그자의 무공이 그렇게 대단했다면 피해는 크지 않았느냐?”

“2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불행 중..

정진사태의 입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지선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침입자가 연공공을 납치해 갔다는 점입니다.”

그 말에 정진사태는 굉장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예.”

지선은 사부에게 이번에 자신이 알게 된 것을 말할까 말까 잠시 고심하는 듯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연공공은 실력을 숨기고 있던 고수였습니다. 그가…….”

그녀는 연공공이 사부와 필적할 정도의 고수라는 걸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정진사태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지선은 자신 의 눈이 낮음에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혹 사부님께서는 그가 무공을 연성했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지선아. 그토록 무림의 무공이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황궁에서 그냥 보고만 있었겠느냐? 무림의 고수들을 흡수하는 한편, 나름대로 고수들을 키웠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황궁이 지금껏 무림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었겠느냐?”

9파1방과 몇몇 문파들만이 무림의 전부라고 생각할 만큼 자부심이 강했던 지선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마귀의 집단인 마교를 포함해서 말이다. 지선이 고개를 푹 숙이자, 정진사태는 잠시 부드러운 눈길로 제자를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사실 연공공은 대단한 실력의 고수이다. 그런 그가 납치되었다고 하니 내가 놀랐었던 게야. 어쨌거나 일이 아주 고약하게 되었구나.”

환관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십상시 중 우상시 연공공이 납치되었다. 그것도 아미파가 철통같은 경계망을 펼치고 있는 황궁 안에서 말이다.

“무림맹에 기별을 넣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잠시 염주만 굴리며 아무 말 없던 정진사태는 마지못한 듯 중얼거렸다.

“그래야겠지.”

대답을 하는 정진사태의 얼굴은 황궁에 드리워진 암운을 감지한 것인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최근 악비 대장군의 갑작스런 실종이나 괴한이 침입하여 연공공을 납 치해 간 것이나 천하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정도의 파장이 있을 거라는 것을 예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