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1권 14화 – 이걸 죽여살려?
이걸 죽여살려?
영원히 지속되는 전투는 존재할 수 없는 법, 결국에는 승부가 갈리고 말았다. 물론 승자는 브로마네스였다. 아니, 브로마네스일 수밖에 없었다. 순수한 검술만의 대결이었다면 적장의 적수가 되기 힘들었겠지만, 그에게는 사기 아이템이 있었다. 이런 경우를 상정하고, 특별히 공을 들여 제작해 놓은.
“커억!”
연대장은 까마득해지려는 시선을 간신히 붙들어 적장을 바라봤다. 틀림없이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적장의 마지막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급속히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적장에게 말을 걸었다. 모든 힘을 다 끌어모은 것이었건만, 그의 목소리는 알아듣기조차 힘들 정 도로 작았다.
“어, 얼굴을 보여 줄 수 있겠나?”
의외로 적장은 그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줬다. 투구를 벗자 드러나는 준수한 얼굴.
“허어, 젊군. 젊어…….”
투구 틈 사이로 보이는 탱탱한 피부 때문에 젊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젊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이 저런 새파란 애송이에 게 당했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친 용병의 삶을 살아왔던 자신이었기에, 전장에서의 죽음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하하네, 젊은이. 자네가 이겼…….”
연대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며 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축 늘어진 그는 이미 목숨이 끊어졌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브로마네스는 검을 높이 치켜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적장이 죽었다!”
그러자 도렌 쪽 병사들이 이에 호응하며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
그 순간 도렌 쪽 병사들의 사기(氣)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 반면, 메르헨 쪽 용병들은 싸울 의욕을 상실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붉은 전갈 용병단을 이끄는 최고위급 지휘관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것도 이름도 없는 애송이에게 말이다.
이후 벌어진 것은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적은 지휘부가 붕괴되자 혼란에 빠져 제각기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에 바빴다. 하지만 산길을 치중대가 가로막고 있다는 게 또 한 번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치중대에 막혀 우왕좌왕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적에게 죽임을 당한 병사보다 산길 아래쪽으로 추락사하거나, 동료에게 깔려 죽은 병사가 더 많았을 정도였 다.
만약 도렌 쪽에서도 용병단을 끌어들였다는 정보만 입수했어도,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페가수스 용병단보다는 급이 떨어진다는 평 가를 받고 있는 붉은 전갈 용병단이지만, 이들 역시 전쟁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겪은 정예병들이었다.
붉은 전갈 용병단은 적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승리를 낙관했고, 그에 비해 페가수스 용병단은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 누군지 명확하게 알고 있 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전쟁의 승패는 갈려 버렸다고 봐야 했다.
포로로 잡힌 자들은 갑옷이나 무기는 물론이고, 가지고 있던 동전 한 푼까지도 모조리 다 뺏기게 된다. 포로들은 마을 인근에 마련된 임시 수용소에 갇히게 되는 데, 이때 몸값을 지불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돈을 받고 풀어 주는 게 관례였다.
예를 들어 소속이 있는 용병들의 경우, 그들이 소속된 용병단에서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간다. 하지만 떠돌이 용병들처럼 몸값을 지불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 우에는, 노예로 팔아 버리는 것이 오랜 옛날부터 행해지는 관례였다.
부하들이 포로들을 임시 수용소에 가두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미하엘은 자신의 명령을 위반한 소대장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 생각대로라면 가차 없이 목을 베어 적장의 목과 함께 장대 꼭대기에 매달아 놨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죽여 버리기에는, 그의 실력이 너무 아까웠다. 더군다 나 적장의 목을 베는 크나큰 공까지 세우지 않았던가.
“처형해야 마땅합니다.”
한 중대장이 이렇게 말하자, 브로마네스를 이끌고 있는 중대장이 발끈해서 반박했다.
“적장의 목을 벴습니다.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호위대를 뚫고 들어가서 말입니다. 그런 영웅을 치하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목을 베다니요. 그걸 병사들이 납득할 것 같습니까? 무엇보다 우리들은 용병이 아닙니까.”
“옳습니다. 명령을 위반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가장 큰 공을 세운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그러자 처음에 처형해야 한다며 주장한 중대장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용병이라고 해서 군율을 허술하게 적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들만으로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그 녀석을 풀어 주신다면, 영주 쪽 장교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맞습니다. 용병단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일벌백계(-罰百戒)로 다스려야 합니다.”
휘하 중대장들의 의견조차 첨예하게 둘로 나누어져 있었기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미하엘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이때, 경비병이 들어와 보고했다.
“그렉 크레스터 소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미하엘은 중대장들에게로 고개를 돌려 양해를 구했다.
“자네들의 의견은 충분히 참고하겠네. 일단은 이 말썽꾼과 단 둘이 얘기를 나눠 보고 싶네만..
그 말에 중대장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거나 상벌의 모든 권한은 지휘관인 미하엘에게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렉 크레스터, 대대장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빼어난 외모를 지닌 젊은이가 서 있었다. 얼굴 여기저기에는 핏물이 잔뜩 말라붙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땀에 푹 절어 있는 데다가 투구의 무게에 눌 려 떡이 되어 엉켜 있었다.
격전을 치른 후에도 씻지 못해 엉망인 차림새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빛이 났다. 외모만으로 따진다면 어딘가의 귀족의 아들이라고 해 도 믿을 정도다. 그런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앞날이 기대되는 젊은이였다.
그렉 크레스터의 출중한 외모에 미하엘은 당혹스런 눈빛을 비쳤다. 이건 분명 미하엘의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그가 오기 전에 읽어 본 그에 대한 보고서에는 화려 한 경력들만 쓰여 있을 뿐, 외모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미하엘은 그렉 크레스터가 자제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무식하고 험악하게 생긴 놈일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렉 크레스터의 고귀하게 생긴 외모를 본 것만으로도 미하엘의 마음이 크게 누그러졌지만, 그는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렉 크레스터의 군례에 답 도 하지 않은 채 싸늘한 어조로 질책부터 쏟아 냈다.
“내가 왜 귀관을 호출했는지 알겠나?”
물론 브로마네스 역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예전에 한창 유희에 빠져 있었을 때는, 나라를 다스려 본 적도 있었던 그가 작금의 사태를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최대한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마도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제가 적진으로 돌진을 감행했기 때문이겠지요.”
“알긴 아는군. 그럼 그것이 명령불복종에 해당하는 중죄라는 것 또한 알고 있겠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대대장님께서 계셨던 그쪽에서는 잘 안 보이셨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위치에서는 보였습니다. 적진에 나 있는 커다란 빈틈이 말입니다. 대대장님께서도 보셨을 거 아닙니까. 허둥대는 보병들에 막혀 저희 쪽으로 달려온 기마병이 몇 기 되지도 않았다는 것을요.”
애송이의 변명에 미하엘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자네 상관이 뒤를 받쳐 줬으니 자네가 적장에게까지 다가갈 수 있었던 거지, 겨우 1개 소대 병력만으로 적장 근처에나 다가갈 수 있었을 거 같나?”
순간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그렉 크레스터를 보며 미하엘의 마음은 조금 더 풀어졌다. 끝까지 우기며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하지 않는 순진함까지 가 지고 있다니.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던 화려한 경력만 생각한다면,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미하엘은 무심코 손을 뻗어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이미 읽어 봤기에 내용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한 번 더 그렉 크레스터의 경력을 새삼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여러 용병대에서 세운 크고 작은 공훈들.. 그 공로의 댓가로 저 젊은 나이에 중대장까지 진급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나이에 비해서는 꽤나 화려한 경력이로군. 이 정도만 해도 상관들은 자네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을 걸세. 그런데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해서 자기 무덤을 파는 겐 가? 이게 자네 출세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
그렉 크레스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런 독단적인 행위는 자네를 성공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파멸로 이끌 걸세. 그것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네 동료들까지 함께!”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잠시 그렉 크레스터를 바라보던 미하엘은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어디 한 번 솔직히 말해 보게. 설마하니 이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로 공을 세운다고 해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모두가 다 자네같이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부하들을 통솔할 수 있겠나. 자네도 장교이니 그 점은 잘 알고 있을 게 아닌가.”
잠시 미하엘의 눈치를 살피던 브로마네스는 머리를 맹렬히 굴린 뒤, 주저주저 하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공을 세우겠다고 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미하엘은 생각했다. 차라리 전공에 눈이 어두워 그랬노라고 말했다면, 젊은 혈기에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받아들였을 텐데. 미하엘 은 내심 콧방귀를 뀌며 냉랭하게 물었다.
“공을 세우는 것 외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가?”
브로마네스는 짐짓 한탄하듯 구슬프게 말했다.
“개인적인 복수였습니다.”
황당한 답변에 미하엘은 순간 기가 막혔다.
“보, 복수?”
“예, 적장은 붉은 전갈 용병단을 이끄는 고위급 지휘관이었습니다. 그가 그 위치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습니까?”
‘그러면 그렇지…….?”
말도 안 되는 변명짓거리에 미하엘의 기분이 극도로 언짢아졌다. 혈기가 넘치기는 해도, 꽤나 괜찮은 놈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더니 얄팍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한심 한 놈일 줄이야…….
“그래, 그래서 그가 자네 아버지라도 죽였다는 말인가?”
“예.”
이죽거리기 위해 그냥 해 본 소리였는데 예, 라고 대답을 하자 미하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모습을 본 브로마네스는 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덧붙였 다.
“아, 아니, 그가 제 아버지를 직접 죽인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죽였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난전(亂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름 없는 용병 을 누가 죽였는지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그가 상대편 부대를 지휘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흠, 자네 선친께서도 용병이셨나?”
“예…….?
만약 적장이 자기 아버지를 직접 죽였다고 말했다면, 거짓말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었다면 미하엘로서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치열한 전장에서 죽었는데, 어느 놈이 죽인 줄 알고 복수를 하겠는가. 그러다 적장이 유명한 놈인 걸 알게 되고, 그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간다? 말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그냥 용서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하엘은 표정을 굳히고 매섭게 질책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지휘관이 이성을 잃어 버리다니!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 이번에는 운이 좋아 적장의 목을 벨 수 있었지만, 만약 귀관이 적장의 목을 베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자네 하나 죽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말이야. 알겠나?”
“그가 적군의 지휘관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도저히 제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명령 위반…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멍청함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 부하들에게도 미안하고 말입니다.”
한순간의 격동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충분히 용서할 여지가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 기회에 원수를 갚아 버린 이상, 그가 눈이 뒤집혀서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일 은 이제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싸늘했던 미하엘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번만은 용서해 주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적장과 싸우는 모습을 보니, 자네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인물이 무명(無名)이었을 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 여기에 오기 전에는 뭘 했었나?”
이때를 위해서 정보 단체에서 준비해 준 게 바로 그렉 크레스터라는 인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였다. 브로마네스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대충 살을 붙여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미하엘에게 들려줬다.
드래곤의 가공스런 기억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 만큼, 그의 말은 단 1초도 막힘이 없이 술술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아귀가 척척 들어맞 았다.
물론 의심하려고 든다면 그 점이 조금 수상쩍긴 했지만, 미하엘은 좋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원래 사람이라는 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할 때면 약간의 과장도 들어 가고, 한편의 옛날이야기처럼 드라마틱하게 설명하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것은 용병 녀석들에게 술 한잔 먹여 보면 언제나 되풀이되는 일이기도 했다.
미하엘은 브로마네스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자네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이해는 가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의 잘못이 덮어질 수는 없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대장님께서 어떤 벌을 내리신다고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자 미하엘은 짐짓 냉정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귀관의 목을 베어 장대 꼭대기에 매단다고 해도?”
약간의 장난기를 내포한 미하엘의 질문에, 브로마네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건 좀 심하신 거 같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브로마네스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더니,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르티어스에게
하던 행동이 무심결에 튀어나온 것이다.
“감봉! 예, 감봉 정도가 딱 적당하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적장의 목을 벤 공도 있고 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란해. 안 그러면 네놈을 세뇌하든지, 아니면 죽여 버리고 다른 데 가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거든. 그러자면 그 지랄같은 아르티어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 녀석에게 뭐라고 변명하지?
이런 뒷말이 생략된 것이었지만, 그것을 미하엘이 알 리가 없었다. 사실 미하엘도 실력이 뛰어난 부하의 목을 베어, 장대 꼭대기에 매달 생각까지는 없었으니까. 짐짓 고민하는 척하던 미하엘은 느릿한 목소리로, 위엄을 가득 담아 판결을 내렸다.
“특별히…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 주도록 하겠다. 추후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살아남지 못할 거야. 알겠나?”
순간 확 밝아지는 브로마네스의 얼굴. 미하엘은 결코 모를 것이다. 방금 전의 대화로 인해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사람은 브로마네스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 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바라지도 말게. 목이 날아가지 않은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야.”
“서운하게 생각할 리가 있겠습니까.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로마네스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전공이 그냥 허공으로 날아갈 리 없다는 것을. 자신이 이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윗사람들에게 과시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전투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 그럼 나가 보게.”
“옛!”
힘차게 군례를 올린 후, 활기찬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가는 브로마네스. 그런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하엘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렇게 뛰어난 부하 가 자신의 밑에 들어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행운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기회를 통해 녀석에게 지워지지 않을 빚까지 지게 만들지 않았던가. 녀석은 자신에게 생명을 빚진 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인연을 이용해서 살며시 끌어당긴다면, 어렵지 않게 녀석을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묵향> 3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