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1권 3화 – 뒤끝 강한 실버 드래곤

뒤끝 강한 실버 드래곤

쟈크레아는 아르티어스라는 ‘먹이’를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냥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아르티어스가 실버 드래곤을 ‘덩치만 큰 돌대가리’쯤으로 치부할 정도로, 실버 일족이 마법 공부에 등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충 공부한다고 해 도 고룡이 될 정도의 장구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웬만한 마법은 다 마스터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쟈크레아는 노룡답게 고차원적인 마법을 이용하여 아르티어스의 레어를 2중, 3중으로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제 파악도 제대로 못 하는 노랑 도마뱀 새끼가 밖으로 기어 나오기만을. 그리고 그때가 바로 놈의 제삿날이 되게 해 주기를.

하지만 그로서도 아르티어스가 이토록 빨리 레어 밖으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허, 정말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로군. 설마 내가 손가락이나 빨면서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건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쟈크레아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교활하기 짝이 없는 아르티어스란 놈은, 말썽만 부리지 않는다면 자신이 개입하지 못할 거라 판단한 거라고 말이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일족의 로드로서의 체면이 있지, 명확한 증거도 없이 자신보다 어린 드래곤을 핍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놈과는 종족도 다르지 않은가. 놈을 이유도 없이 박살 내 놨다는 사실이 밖으로 새 나간다면, 골드 일족의 로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놈도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드의 권능을 이용하여 놈을 함정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즉, 자신의 뒤끝이 얼마나 강렬한지 몰랐 다는 게 놈의 치명적인 실책이라는 말이다.

“큭큭큭, 제까짓 게 뛰어 봤자 벼룩이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쟈크레아가 손을 쓱 휘젓자, 방금 전까지 그의 모습을 비추고 있던 거울에 다른 존재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은빛 드래곤의 형상이었다. 그 드래곤은 자신에게 통신마법을 걸어온 상대가 쟈크레아임을 알아보고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로드(Lord)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저에게 연락을 다 주시고.」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로드시여.」

“아르티어스라는 놈을 알고 있느냐?”

이름을 듣는 순간 은빛 드래곤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건 오랜 세월 쌓인 깊고 깊은 원한이 서린 눈빛이었다.

「알긴 하는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놈을 찾아가서 시비를 걸어라.”

시비를 걸라는 말에 은빛 드래곤의 두 눈에서 원한 어린 눈빛이 푸시시 사라지고, 곧바로 침통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이런 말씀 아뢰게 되어 원통합니다만, 놈은 저보다 월등하게 강합니다.」

그가 예전에 아르티어스에게 박살 났었다는 것은 쟈크레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쯧, 한심한 녀석. 그렇게 패기가 부족하니 하찮은 골드 따위한테 쥐어 터지고 다니는 거야.”

자존심이 무척 상했겠지만 상대는 감히 티를 내지 못했다. 그런 상대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쟈크레아가 지시했다.

“넌 내가 시키는 대로 놈을 찾아가서 시비만 걸면 된다. 놈이 너에게 솜털만큼이라도 피해를 주면, 내가 직접 놈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해 줄 테니까.” 그제서야 상대는 쟈크레아의 의도를 눈치 챘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상대는 흥분해서 외쳤다.

「로드의 지엄하신 명령이신데, 제가 어찌 감히 거부하겠습니까.」

“호오, 내 명령이라서 따르시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놈을 시키지 뭐. 네놈 아니더라도 놈에게 이를 갈고 있는 녀석들은 많으니까.”

「헤헤,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그 일을 꼭 하고 싶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쟈크레아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은빛의 실버 드래곤을 잠시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놈은 방금 전에 레어에서 나왔다.”

「그럼 목적지가 어딘지……?」

쟈크레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 어린 말투로 소리쳤다.

“그것까지 내가 알아내서 네놈에게 알려 줘야만 하겠느냐? 네가 알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알 수 있는 방법은 널리고 널렸잖아!”

매서운 쟈크레아의 질책에 은빛 드래곤은 납쭉 고개를 조아리며 황급히 말했다.

「제가 놈의 행방을 알아보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로드시여.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삐익, 삐익.

* * *

요란한 경보 소리와 함께 통신용 수정구에 엘프의 모습이 나타났다. 외곽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엘프였다.

“무슨 일인가?”

그랜딜 공작의 물음에 수정구 안의 엘프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전하.」

“손님?”

수정구를 자세히 보니, 엘프의 뒤편으로 반쯤 가려져 있는 오크의 모습이 보였다. 은빛 머리털을 멋지게 기른 오크였는데, 머릿결이 풍성하고 윤기가 자르르 도는 것이 늙어서 탈색된 백발과는 차원이 달랐다.

엘프가 가장 혐오하는 게 바로 무식한 오크다. 그렇기에 경비를 서고 있는 엘프가 오크를 보고 손님이라며 자신에게 보고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저 오크는 오크로 변신한 드래곤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것도 실버 드래곤이…….

“손님을 최대한 정중하게 식당으로 안내하도록 해라. 주인님께서는 지금 식당에 계시니까 말이다.”

「옛.」

그랜딜 공작은 통신을 끊자마자, 곧바로 식당 쪽 담당자를 호출하여 명령했다.

“주인님께 손님이 오셨다고 전해라. 아마도 실버 드래곤인 것 같다고 말이야.”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식당 담당자가 핼쑥하게 질린 얼굴로 그랜딜 공작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

「식당 안에는 아무도 안 계십니다.」

그랜딜 공작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브로마네스님과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던 게 조금 전이었는데, 그럴 리가 있나?”

「제 말이 믿어지지 않으신다면 직접 와서 확인해 보십시오. 지금 식당 안에는 아무도 안 계신 게 틀림없습니다.」

“보물창고로 다시 가셨나?”

하지만 보물창고에서도 아르티어스와 브로마네스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제서야 당황한 그랜딜 공작은 여기저기 통신을 넣어 주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주인이 계시다는 답신은 오지 않았다. 심지어 아르티어스의 침실까지 다 뒤졌는데도 말이다.

그랜딜 공작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다른 드래곤이 왔을 때 어딘가로 가 버릴 건 또 뭐람.’

어쩌면 브로마네스의 레어에 놀러 갔는지도 모른다. 그랜딜 공작은 곧바로 다시 식당 담당자를 통신으로 불러 지시했다. 그쪽으로 조금 있으면 오크로 변신한 드 래곤이 갈 건데, 그에게 주인께서 지금 자리에 안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라고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랜딜 공작은 오크로 변신한 손님의 방문을 별것 아닌 것으 로 치부하고 있었다.

***

자신의 레어로 돌아온 브로마네스는 고개를 조아리는 노예들에게 명령했다.

“근래 만들어 뒀던 무구(武具) 세트를 가져오너라.”

“옛 주인님.”

노예가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네가 소장하고 있는 무구 세트를 입고 유희를 하겠다고?”

“응.”

아르티어스는 황당하다는 듯 질책했다.

“이 새끼가 정신이 있나 없나. 실버 놈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된다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목걸이까지 만든 놈이, 무구 세트를 입고 갈 생각을 해?”

아르티어스가 짜증을 내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브로마네스는 호비트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즐겼다. 그렇기에 그가 수집해 놓은 무구들은 다른 드래곤들의 수 집품들에 비해 훨씬 더 화려한 명품들이었다.

아르티어스의 짜증에 브로마네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에휴~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조금만 기다려 봐.”

왜 갑자기 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르티어스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노예들이 가져온 무구들을 보자마자, 아르티어스는 그 가 왜 그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때, 너무 이상하지? 쩝, 용병들이 입는 실전(實戰) 스타일로 만들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너무 촌스러워서…….”

“그, 그렇긴 하다만.”

실전용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노예들이 가지고 온 무구들은 무척이나 투박하게 생긴 것들이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브로마네스가 이런 싸구려틱하게 생긴 무 구 세트까지 준비할 생각을 한 것을 보면, 그가 이번 유희에 얼마나 큰 기대를 품고 있는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슬쩍 아르티어스의 반응을 살피던 브로마네스는 인상을 확 찡그리며 소리쳤다.

“에이, 젠장! 용병들이 입는 흔한 갑옷처럼 보이게 만들라고 지시하기는 했지만, 이걸 드워프 놈들이 들고 오는 것을 보는 순간 머리 꼭대기로 피가 확 끓어오르는 거야. 아무리 내가 그렇게 지시하긴 했지만, 이따위 싸구려 냄새가 풀풀 나는 걸 나보고 입으라고 만들었다니……. 순간, 녀석들의 대가리를 박살 내 버리고 싶은 걸 참느라 무지 힘들었다니깐.”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무구들을 자세히 살펴본 뒤, 브로마네스의 말과는 달리 엄청난 명품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할 말을 잃었다. 단순하고 투박하게 보이는 것과 싸구려라는 말이 동일시될 수는 없다.

이 무구들을 만든 장인은 브로마네스가 키우고 있는 최고 등급의 실력을 갖춘 드워프들이다. 사향 덩어리를 아무리 헝겊으로 꽁꽁 감싸 놓아도 향기가 밖으로 새 어 나오듯, 아무리 단순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들의 장인 혼은 감춰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묵향과 만나기 이전의 아르티어스였다면, 브로마네스처럼 겉모습만으로 이 무구들을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놈과 어울리면서 혼이 담긴 명품은 화려한 외양이 아닌, 내면에 감춰져 있다는 걸 배웠다.

“친구, 실전용 갑옷을 입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겠네만, 이 무구들은 가급적 입지 않는 게 좋겠군.”

아르티어스의 만류에 브로마네스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브로마네스였기에 안 그래도 입기에 떨떠름하던 차에, 아르티어스 의 반응까지 이러자 그의 입은 댓발이나 튀어나왔다.

“그렇지? 네가 보기에도 너무 싸구려처럼 보이지? 에이, 빌어먹을. 내 이 똥자루 같은 드워프 새끼들을 그냥!”

“허~참. 네 눈에는 이게 싸구려로 보이냐?”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큰둥한 브로마네스의 대꾸가 튀어나왔다.

“척 봐도 싸구려처럼 보이는데.”

“아냐. 안목이 있는 호비트라면 이 무구들이 엄청난 명품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거야. 일개 용병이 걸칠 수 있는 무구들이 아니라는 거지.”

그 말에 크게 당황한 브로마네스. 그는 흉갑(胸甲)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용병으로 신분을 위장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근본부터 뒤틀리게 되니까.

“그, 그런가?”

“그러니 괜한 짓 하지 말고, 나처럼 마법사로 분장해.”

“흥,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내 취향까지 간섭할 생각은 하지 마. 나는 전사가 좋아. 그것도 이렇게 근육이 울퉁불퉁한 근육전사가 말이야.”

브로마네스는 팔을 굽혀 이두박근을 만들어 보이며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흐흐, 호비트 암컷들은 이 우람한 근육만 보여 줘도 그냥 뿅뿅 간다니깐.”

아르티어스는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에라이, 새꺄! 실버 패거리들 골탕 먹이자며 유희를 떠나자고 한 놈이 뭔 호비트 암컷 타령이야!”

“짜샤! 암컷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한 전사의 척도는 누가 뭐래도 이 우람한 근육들에서 시작한단 말이야.”

말을 듣다 보니 저런 헛소리를 나불거리다가 혼난 놈이 하나 있었다. 그놈이 누구였었지? 맞다. 아들놈의 친구들 중에서 가장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던 팔시온이 란 놈이었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아르티어스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놈하고 의외로 죽이 잘 맞을지도…….?

브로마네스가 의외로 완강히 거부했지만 아르티어스 역시 대충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저 무구들을 입고 가는 건 안 돼! 너 같은 닭대가리라면 속아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물건 보는 눈이 있는 놈을 만나게 되면 단박에 들통 난다고!” “에이, 젠장!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브로마네스가 포기하지 못하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검이었다. 무구를 바닥에 던져 놓은 그는 검만큼은 꽉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가져가야겠어. 뭐라고 하지 마.”

수천, 수만의 적병 사이를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뚫고 들어가 적장(敵將)의 목을 베는 게 브로마네스의 로망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그럴 정도로 고급검술을 구 사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만약 상대가 그래듀에이트 정도의 실력만 지니고 있어도 오히려 자신의 목을 내줘야 할 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모자라는 검술 실력을 ‘아이템 빨’로 메꾸려 하는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상황을 봐서 몰래 마법을 쓰면 되잖아.”

브로마네스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실은 내가 마검사였노라고 말하라는 거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놈을 쓰는 게 좋아. 어지간한 실력 차이는 그냥 무시하고 썰어 버릴 수 있도록 특별히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놈이니까.”

용병이라고 모두 다 싸구려 무구들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전장을 떠돌아다니는 용병들 중에는 자신의 무구에 전 재산을 쏟아붓는 자들이 허다했다. 피 튀기는 전 장에 섰을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실력과 무구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브로마네스가 마법검만은 꼭 챙겨야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걸 아르티어스로서도 딱히 만류할 방도가 없었다.

“만약 상대가 타이탄을 꺼내면?”

브로마네스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식으로 곧바로 대꾸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근육전사는 포기해야겠지.”

“흥, 멋 부리는 것에 목숨까지 걸 생각은 없는 모양이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스릴을 즐기는 건 좋지만, 상대가 타이탄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넌 내가 이제 처음 유희를 떠나는 헤즐링처럼 보이냐?”

“그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 없군. 자네 좋을 대로 하게.”

아르티어스는 무구들은 물론이고, 브로마네스의 목에 걸린 목걸이까지 쭉 훑어본 뒤 말을 이었다.

“목걸이도 그렇고, 저 허접하게 보이려고 애쓴 명품 무구들도 그렇고……. 꽤나 오래전부터 이번 유희를 계획해 왔다는 걸 알 수 있겠어. 그래, 우선은 자네 계획 대로 따르기로 하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건데?”

“흐흐, 일단은 알카사스 왕국의 수도, 다란스로 가야 해.”

둘이 다란스로 막 공간이동을 하려는 순간, 아르티어스의 몸에서 약한 신호음이 흘러나왔다. 신호음만 듣고도 아르티어스는 그랜딜이 보낸 통신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무슨 일이냐?”

「손님이 오셨습니다, 주인님.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생김새로 봤을 때는 실버 드래곤인 것 같습니다.」

“실버 드래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르티어스는 곧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뭣 때문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고 싶지 않으니 대충 둘러대서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주인님.」

아르티어스는 서둘러 통신을 끝낸 후 브로마네스를 향해 말했다.

“기다리게 했군. 자, 이제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