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의 배신

“이런 젠장, 대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옆에 있던 탁자를 철퇴로 박살 내 버린 사내의 행동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서다.

“그, 그게 정말입니다. 정말 어린놈이 그랬다니까요.”

여왕벌 둥지의 지배인의 말에 요새도시 델카의 부지부장이자 돌격대장인 덤프의 안색이 더욱 붉어졌다.

“그래, 네놈 말대로라면 그 쪼그만 놈이 행패를 부리다 갑자기 지부장님이 계신 지하로 달려 들어가 그 참상을 일으켰다는 말이지?

게다가 당시 경비를 서고 있던 우리 조직원들은 덤이고.”

“그, 그렇습니다. 제가 본 사실 그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지배인은 덤프의 질책에 고개를 팍 수그리며 대답했다. 물론 다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 어린놈이 누나를 농락한 자신을 찾으러 왔다 그 사태가 벌어졌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덤프의 성격상 그 말을 듣자마자 저 무시무시한 철퇴로 자신의 대가리를 박살 낼 게 뻔했으니까. 미친개라는 덤프의 별명이 그냥 생긴 게 아닌 것이다.

“씨발, 그 개소리가 사실인지는 일단 그 애새끼부터 잡은 뒤 얘기하자.”

덤프는 시뻘게진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사내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조직원들을 풀어 도시 전체를 샅샅이 수색하라 지시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델카의 경비대장에게도 협조를 구해 수상쩍은 놈을 발견하면 곧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고, 블랙울프파 쪽으로도 몇 명 보내 그쪽 분위기를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젠장, 본부에는 괜히 알렸어. 범인을 잡는 건 고사하고 어떤 놈이 그런 짓거리를 벌인 건지 감도 못 잡고 있다니……

“그래도 알리신 건 잘하신 겁니다.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보고까지 늦어졌다는 게 밝혀지면 자칫 목이 날아가실 수도 있는 일입니다요.”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본부에서 지원부대를 보냈을 게 뻔하고, 지원부대를 누가 이끌고 올지는 네놈도 알 거 아니냐.”

지원부대를 이끌고 달려올 사람은 평소 칼릭스와 사이가 안 좋던 잭슨이 될 가능성이 컸다. 칼릭스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교활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이곳에 오면, 칼릭스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덤프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부지부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대가리가 몸통과 분리될 우려조차 있는 것이다.

‘씨발! 이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그때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조직원 하나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부지부장님, 범인과 그 배후세력을 알고 있다는 놈이 밀고를 하러 왔습니다.”

부하의 말에 덤프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뭐, 그게 정말이야! 당장 데리고 들어와!”

덤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조직원 한 명이 사내 하나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내는 바로 루크였다. 덤프는 루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만약 네놈의 말에 거짓이 있다면 내 친히 네놈의 혀를 뽑고 사지를 절단 내 주마. 정말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느냐?”

“헤헤, 범인이 누군지 그 배후세력이 어디인지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요. 그런데 정보에 대한 보상은 있겠지요?”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루크였다. 부두목이 행동에 나선 이상, 두목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두목을 암살하지도 않고, 자신부터 먼저 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죽지 않으려면 샐러맨더 파를 찾아가 밀고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두둑한 보상까지 받아내 델카를 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다 자신이 상대의 눈치를 잘 살펴 행동해야만 가능하겠지만………….

“걱정 마라. 정보만 확실하다면 네놈이 만족할 만큼 챙겨 줄 테니까. 자, 그러니 빨리 말해!”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미리 선불로 챙겨주시면, 헤헤헤. 그러면 제가 직접 놈들의 본거지까지 길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요.” 덤프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지만 곧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그만큼 정보에 대한 자신이 있으니 저런 똥배짱을 부리는 거라 생각한 것이다. 덤프는 품 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그대로 루크에게 던져준다.

쩔그렁.

묵직한 돈주머니를 주워든 루크는 재빨리 안을 들여다본 뒤 금화가 가득 들어있자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범인은 18세 정도 되는 잭이라는 녀석이고, 그 배후세력은 바로 블루썬더라는 조직입니다요.”

“18살? 그리고 배후세력은 뭐, 블루썬더?”

덤프는 범인이 18살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지배인이 말한 어린놈이 범인이라는 말이 떠오르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범인의 배후세력인 블루썬더라는 조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거대 조직이기에 그런 가공할 살인 병기를 키워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말단 조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 부지부장님. 제가 그 블루썬더라는 조직을 아는데요. 시장에서 영세상인들 대상으로 보호세를 뜯거나 소매치기, 도둑질 같은 걸 업으로 하는 허접한 놈들입니다. 그리고 저놈 역시 그 블루썬더 조직원이구요. 소매치기하는 애새끼들을 관리하고 있는 걸 제가 직접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뭐야! 그렇다면 이 새끼가 지금 날 가지고 놀고 있다는 말이잖아?’

루크가 거짓말로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 덤프는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못 참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순식간에 방 안 전체에 짙은 살기가 흘러넘쳤다. 덤프는 자신의 애병인 철퇴를 손에 들고 천천히 루크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망할 새끼! 내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나불거리다니, 그 배짱 하나만큼은 인정해주마. 그 보상으로 네놈을 갈가리 찢어 들개 먹이로 던져 주겠다.”

“그, 그게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저분이 말한 블루썬더라는 조직이 제가 몸담고 있던 조직이 맞긴 한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캑캑…….”

루크는 말을 하다 덤프가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아 올리자 죽음에 대한 공포에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미친개 덤프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덤프의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지부장님, 일단 놈이 하는 말부터 들어보시죠. 어쩌면 블루썬더 뒤에 또 다른 조직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놈이 말한 범인의 나이가 지배인이 말한 범인과 비슷하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사내는 덤프의 귓가에 입을 가져간 뒤 작게 속삭였다.

“본부에서 지원부대가 오기 전에 뭔가 행동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손을 놓고 있다가 지원부대가 오면 그 모든 책임을

부지부장님께서 덮어쓰실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덤프는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놈이 말한 정보가 진짜라면 범인을 잡아서 좋고, 아니라면 놈들에게 뒤집어 씌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덤프는 루크를 바라보며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네놈의 주둥아리가 어떻게 열리냐에 따라 네놈의 대가리가 곤죽이 되느냐 마느냐 결정이 되겠구나. 흐흐, 한동안 내 철퇴에 피를 먹여주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마침 잘 됐군. 그래, 한번 말해 보거라.”

루크는 덤프의 협박에 겁을 먹고 잭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부두목의 갑작스런 잠적 명령에 조직원들이 허둥지둥 몸을 피할 때, 각 지부의 지부장들이 비상거점에 숨은 부두목을 찾아왔다. 현재 조장 네 명은 라이와 함께 다란툼에 가 있었기에, 부두목을 찾아온 것은 그들을 제외한 세 명이었다. 스팅과 알리는 부두목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밖에 나가 있었기에 여기에 참석하지 못했다.

“갑자기 잠적하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부두목.”

부두목은 짐짓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목께서 돌아가셨다.”

뜬금없는 말에 지부장들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예? 두목께서요?”

“어떻게 하다가 돌아가신 겁니까?”

부두목은 두목과 함께 생각했던 비밀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그가 달톤 등 조장넷을 소집해 다란툼으로 보낸 후,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두목의 방을 찾았을 때 이미 두목은 죽어있었다고 설명했다.

“어떤 놈이 감히 두목을?”

“믿기지 않겠지만 루크일세.”

“루, 루크가요? 아니, 왜 그놈이 두목을…………?”

부두목은 미리 재구성해 둔 정황을 지부장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이 듣게 된 정황은 이랬다.

두목이 암살당한 것을 발견하자마자 부두목은 급히 스팅을 정문으로 보내 본부를 빠져나간 사람이 있나 조사하게 했다. 그런데 그 시간대에 정문을 빠져나간 건 루크가 유일했다.

그래서 혹시 루크가 뭔가 알고 있는 건 없나 물어보기 위해 스팅을 보냈더니, 루크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잠깐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밖에 나간 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게다가 그 부하들에게 물어보니 최근 정보를 수집하겠다며 샐러맨더 파나 블랙울프파의 조직원들과 접촉하는 일이 잦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봤을 때, 범인은 루크 녀석이 확실해. 그리고 그 배후에는 샐러맨더나 블랙울프가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하지만 지부장들은 부두목의 말을 믿기 힘든 듯 모두들 고개를 갸웃하며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상하군요. 녀석이 두목을 암살한다고 해서 뭘 얻을 게 있다고…?”

“나도 그게 궁금하다. 두목을 죽인다고 해서 녀석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우리 조직원들의 복수에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갈가리 찢겨 죽을 테니 말이야. 그걸 감안한다면 녀석은 샐러맨더나 블랙울프에 포섭되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지 않겠나.”

“그래서 조직원들에게 잠적을 명령하신 거였습니까?”

“그래.”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스팅이 뛰어들어와 보고했다.

“두, 두목! 큰일 났습니다.”

지부장들은 스팅이 부두목을 두목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차피 부두목이 두목의 자리를 이어받게 될 것이 확실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두목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본부에 루크 녀석이 샐러맨더 파의 돌격대장 미친개와 함께 들이닥치는 걸 확인했습니다. 삼십여 명의 중무장한 졸개들을 이끌고 말입니다.”

스팅의 보고에 다른 지부장들은 믿기 싫어도 루크의 배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쩌면 좋죠? 두목님의 지시대로 일단 조직원들에게 무작정 몸을 피하게 하긴 했습니다만, 결국 꼬리가 잡힐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꽁꽁 숨어 봐야 이 바닥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때, 이번에는 알리가 황급히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

“두목! 크…, 큰일 났습니다.”

부두목은 인상을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침착하게 보고해!”

“돈벼락에 중무장한 괴한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놈들은 몇 명 되지 않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간다면…………!”

여기까지 말하던 알리는 모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부두목은 알리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지부장들을 둘러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마 돈벼락에 들이닥친 놈들도 샐러맨더 파 조직원일 게 뻔해. 우리 조직을 아예 뿌리째 거덜 내겠다는 속셈이겠지. 어쩌면 다른 지부들 역시 비슷한 상황일 거야.”

“루크 이 개자식!”

“내 그 개자식의 목을 비틀어 버릴 테다.”

지부장 셋은 루크의 배신에 치를 떨면서도 이 긴박한 상황에 면밀히 사태를 분석하고 조직을 챙기는 부두목의 카리스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의견이 일치됨을 확인하더니 부두목 앞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두목! 저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두목.”

동료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멍하니 서 있던 알리와 스팅도 부두목의 눈짓에 서둘러 같이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자 박스터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두목이 죽고 조직이 박살 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웃는 모습을 지부장들에게 보여 봐야 좋을 게 전혀 없다.

박스터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지부장들의 몸을 일일이 붙잡아 일으켜 준 뒤 부드럽게 말했다.

“자자, 어서 일어서게. 못난 내게 충성을 다짐하니 이거 참 난감하기 짝이 없구만.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직을 위해 내

거절하지 않겠네.”

“뭘요, 두목 외에 누가 우리를 이끌 수 있겠습니까.”

“루크 그 개새끼도 두목께서 계신 한, 자신에게 차례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샐러맨더 놈들에게 붙은 거겠죠. 나쁜 새끼!”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알리가 스팅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샐러맨더?”

“응, 루크 개새끼가 샐러맨더 놈들에게 붙었어. 조금 전에 미친개가 이끄는 돌격대와 함께 본부에 들이닥치는 걸 내가 직접 봤다니깐. 망할 놈의 새끼!”

“최악이로군. 얼마 전에 여왕벌의 둥지가 박살 났다고 하던데……………. 설마, 그 새끼가 그걸 우리한테 홀랑 뒤집어 씌운 건 아니겠지?”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던 박스터의 안색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지만,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감히 자신들과 같은 작은 조직이 샐러맨더와 같은 대조직을 건드릴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병신 새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놈이 우리가 여왕벌의 둥지를 박살 냈다고 말한들 그 누가 믿겠어? 뭔가 딴 꿍꿍이속이 있겠지. 어쩌면 흉수의 탈출로를 우리가 도와줬다고 하던가 하는 정도 말이야. 게다가 루크 그놈은 우리 조직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잖아.”

박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지부장들은 몰랐다. 알리가 무심코 한 말이 거의 진실에 근접한 것이었다는 것을.

샐러맨더 파에서 루크의 밀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신속하게 포위작전을 전개했다면 블루썬더 파의 조직원들은 오늘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멸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매치기나 정탐에 이용되는 꼬맹이들까지 모두 다 합친다고 해 봐야 100명을 채 넘지 못하는 작은 도적집단에서 보낸 행동대원 한 명이 자신들의 정예가 지키고 있는 여왕벌의 둥지를 박살내고, 지부장 칼릭스까지 참살해 버렸다는 걸 믿는 쪽이 오히려 제정신이 아니라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덤프는 공격대를 이끌고 블루썬더 파의 본거지와 돈벼락 상점을 급습했다. 왜냐하면 지부장 칼릭스가 죽은 뒤 자신이 범인을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본부에서 파견되어 나올 간부급에게 바칠 뇌물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녀석들의 기습을 피해 조직원들이 대피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만, 이런 행운이 계속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배신자 루크가 샐러맨더 파에 붙은 이상 조직원들의 도피처가 들통 날 확률이 높고, 게다가 조만간 병사들이 수색에 동원될 가능성도 크지 않겠습니까. 그 전에 요새 밖으로 탈출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두목.”

“숨어있는 조직원들에게 지금 당장 연락을 할까요?”

하지만 박스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오히려 그건 녀석들이 바라는 걸 거야. 생각을 해봐라. 우리들의 얼굴을 알고 있는 건 루크 녀석 하나뿐이야. 그 녀석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샐러맨더 파 녀석들의 코앞을 지나간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할걸. 안 그래?”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니까 녀석들은 오늘 밤, 성벽을 뛰어넘는 자들이 있는지 그것부터 중점적으로 살펴볼 거다. 그게 우리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니까.”

두목의 말에 모두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최대한 몸을 숨기고 녀석들의 동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자, 모두들 돌아가서 부하들 단속 단단히 하도록 해라. 특히, 루크 녀석의 조직원들을 철저하게 단속해라.”

“혹시 녀석들이 관리들의 협조를 얻어 시내를 뒤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합니까?”

“걱정마. 집이 한두 채도 아니고, 마을 전체를 어느 세월에 다 뒤지겠냐.”

“뒤질 수도 있지. 집들을 다 뒤지지는 못하겠지만, 여관이나 뭐 그런 곳만 뒤지는 거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몇 군데 되지도 않고 말이야.”

박스터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는 비밀리에 마련해 뒀었던 은신처를 이용해야 했겠지만, 루크 녀석이 배신한 시점에 은신처로 기어들어가는 것은 죽여 달라고 목을 들이미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리라.

“부하들은 지금 어디에 숨어있나?”

“저희는 여관을 잡았습니다.”

“저희도…….

“일단 다리 밑쪽에 숨어있으라고 했는데………

“할 수 없군. 각자 허름한 민가를 골라 피신해 있도록 해라. 여관에 있는 건 너무 위험해. 녀석들이 수색을 시작한다면 여관부터 뒤질 게 뻔하다.”

“알겠습니다, 두목.”

“두목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겠지. 일단은 몸을 숨겼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만나자.”

박스터는 지부장 셋을 각자 따로 불러 접선할 장소를 별도로 알려줬다.

“그곳에 칼로 그림을 새겨놔라. 뭘 그려도 상관이 없지만, 태양 그림은 그리지 마라. 태양은 너희들이 위험을 느낄 때 그려라.

알겠냐?”

“예, 두목.”

“약속 시간은 한 시로 하자. 반드시 한 시에 그림을 그리러 나와라. 나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누군가 너를 미행하는 자가 있거나 하면 나가지 않을 테다. 알겠냐?”

“알겠습니다, 두목.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칼로 그림을 그리는 건 각 지부장들. 각자 약속된 장소에 1시, 2시, 3시에 그림을 그리러 나오라고 해뒀다. 그리고 그는 그걸 관찰한 후 나중에 접선하기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만약에 샐러맨더 파 놈들에게 어느 하나가 포착되어 붙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일망타진 당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삼 일 후에 보자.”

“몸조심하십시오, 두목,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가구조차 거의 놓여 있지 않은 작은 방. 어둠에 가려진 덕분에 그런대로 깨끗하게 보였지만, 벽에 가까이 얼굴을 대고 보면 벽면이 꽤 낡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싸구려 여관방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여성의 향기가 감돌고는 있었다. 한 번씩 자신의 방을 찾아오는 두목을 위해 예쁘게 꾸미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루산나는 침대 위에 드러누워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을 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들어 잠을 자려고 해도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자려고 애써 눈을 감으면 자꾸만 그때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망할 놈의 얼굴도…………….

그날 이후로 놈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면 어쩌면 그녀도 그때의 치욕적인 기억을 점차 잊어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놈은 같은 패거리로 받아들여졌고, 두목은 놈에게 뭔가 일을 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곳 델카에 놈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젠장! 두목은 왜 그딴 개자식을 받아들여 준 거지?”

처음에는 자신의 복수를 해주기 위해 받아들이는 척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두목은 자신의 방에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잭의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두목이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생긴 건 그래도 두목은 마음이 넓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건 순전히 눈에 콩깍지가 씐 루산나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두목 몰래 그놈을 죽여 버려?”

하지만 두목이 그걸 미리 방지하고자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놈의 행방을 그날 이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스도 모른다고 했고, 루크에게 물어봐도 그건 똑같았다. 두목은 놈을 어디로 보낸 것일까? 또 무슨 임무를 맡긴 것일까? 아니, 어쩌면 자신을 위해 이미 놈을 죽여 버린 뒤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으아아,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잖아. 이렇게 사람 피 말리게 하지 말고.”

이때, 누군가 요란스럽게 그녀의 방문을 두드려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쾅쾅!

“루산나! 여기 있어?”

한스의 목소리였다.

루산나는 침대에서 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줬다. 자신의 등 뒤쪽을 연신 힐끗거리며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오는 한스를 향해 루산나는 물었다.

“무슨 일이야?”

평소 같았으면 하늘과도 같은 두목의 애인에게 혹시라도 밉보일까 조심조심 행동했던 한스였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정신이라도 나간 듯 굉장히 흥분한 모습이다.

“크, 큰일 났어. 두, 두목께서 돌아가셨어.”

한스의 말에 루산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두목이 죽었다니…………

“뭐? 제리코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중얼거리는 루산나를 향해 한스가 다급히 말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해. 부두목께서 최대한 빨리 피신하라고 명령하셨거든.”

“누가…, 누가 제리코를 죽인 거야? 설마…, 그 잭이라는 놈은 아닐 테지?”

한스는 씹어 먹을 듯 분노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루크, 그 개새끼가 조직을 배신했어.”

루크가 범인이라는 말을 루산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루산나가 두목과 친밀해진 이후, 루크는 그때부터 가끔씩 그녀에게 값비싼 물품들을 선물해 주곤 했었다. 당연히 루산나는 루크를 아주 좋게 보고 있었다.

“루크가? 설마….”

멍하니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루산나를 향해 한스는 정신을 차리라는 듯 어깨를 쥐고 흔들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설마가 아니야. 이러고 떠들 시간 없어. 빨리 준비해 한시가 급하다고! 그놈이 샐러맨더 파 조직원들을 이끌고 우리들을 잡으러 돌아다니고 있단 말이야.”

그 말에 루산나도 더 이상 딴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크가 샐러맨더 파에 붙었다면, 정말 사력을 다해 몸을 숨겨야만 한다. 마을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소문을 조합해 쓸 만한 정보들을 걸러내던 녀석이 바로 루크였으니까. 그만큼 조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루크가 두목 암살에 대한 모든 죄를 홀딱 뒤집어 썼기에 그녀가 살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부두목의 명령을 받고 그녀를 처치하러 달려온 사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