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30화 : 라이와 해골전사-2
라이와 해골전사 – 2
발키란 성안에서 10기의 기마병들이 튀어나오더니 각기 흩어져 북쪽으로 달려 올라가는 걸 보며 알파17은 짜증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들. 이제야 구원을 요청하다니……………》
여러 곳을 정찰한 결과, 알파17은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는 게 라시드라는 건 알아냈다. 하지만 그게 사람 이름인지, 아니면 단체 이름인지, 그도 아니면 국가 이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언데드로 만든 새 몇 마리를 보내 얻어낼 수 있는 정보라는 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파17은 라시드를 불러들이기 위한 덫을 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주민들이 라시드에 대해 쑤군거리고 있는 마을들 중에서, 침공하기 좋은 곳을 골랐다.
남부 지방에서 끌어모은 언데드 세력을 집중하여 공격을 시작한다면, 라시드가 그쪽으로 달려올 거라고 알파17은 생각했다.
라시드는 주민들의 얘기에 따르면 언데드 토벌에 있어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자인 모양이니까.
하지만 첫 번째 마을을 박살낼 때는 실패했다.
마을 사람들을 몽땅 다 죽여 버리면 안 된다는 걸 그는 그때의 경험으로 터득했다.
주민을 몽땅 다 죽여 버리면 구원병이 오는 게 아니라 아예 그곳은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이 그 마을이 궤멸당했다는 것을 눈치채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고 말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일부러 몰살시키지 않고 되도록 많은 주민들이 도망치도록 놔줬다. 하지만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마을을 파괴했지만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막강한 전력을 지닌 라시드였으니까.
어쨌거나 며칠 전에 1천 규모의 병력을 박살낼 수 있었던 걸로 봐서 자신의 작전이 잘못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곳 발키란 성을 목표로 전진을 시작했다.
작은 마을들을 파괴하고 있어 봐야 끝이 나지를 않는다. 그럴 바에는 가장 강한 세력을 노리는 편이 라시드를 끌어들이는 가장 빠른 길이리라. 최대한 천천히 이동해 왔기에 그는 어젯밤 이곳에 라시드라는 게 와 있을 거라 기대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 중소형 언데드를 투입했을 때, 알파17은 이미 적들의 전력 파악을 끝냈다. 아쉽게도 라시드라 칭할 정도로 격이 다를 정도의 전력을 지닌 존재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보유한 주전력을 투입하지 않고 두 마리의 초대형 언데드와 20마리 정도의 대형 언데드만을 투입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문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한밤중에 베타1을 투입, 성문을 파괴하고 외성의 수비 병력을 궤멸시켰다. 그 후, 알파17은 다시 물러나서 발키란 놈들이 라시드에게 구원을 청하도록 유도했고, 그 결과가 지금 보고 있는 전령들이다. 《크흐흐, 라시드를 볼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저놈들이 라시드를 불러들이지 않는 바람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적은 이뤘으니 다 죽여 버릴까요?》
자신이 사람으로서의 이성을 지니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미네르바는 일부러 더욱 과격하게 말했다.
일단, 그때 서로 대화를 튼 이후, 미네르바는 눈치만 살피지 않고 직접적으로 알파17의 목적에 대해서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물어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무 멍청한 척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발키란 성까지 오며 여러 마을들을 파괴하는 동안 알파17과 미네르바는 어떤 식으로 공격할지에 대해 토의를 하곤 했다.
베타1이 제법 쓸 만하다는 걸 깨달은 알파17은 그의 성장을 위해 일부러 의견을 내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만큼 베타1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알파17은 그 숫자가 말해주듯 꽤 오래전에 자아를 찾은 리치였고, 그만큼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미네르바는 미네르바대로 알파17과 자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상대가 뼈밖에 남아있지 않은 리치였지만, 제법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드물긴 했지만 나름 감정 표현을 미세하게나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후, 미네르바는 알파17에게 더욱 친근하게 굴면서 그의 심복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데드 속에 녹아들어 생활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알파17밖에 없었으니까.
《지금 당장 할 필요는 없다. 이제 겨우 전령이 달려갔으니, 라시드라는 것이 이곳으로 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
알파17은 눈 닿는 곳까지 끝없는 모래사막 위를 빙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라시드라는 게 구원하겠답시고 달려오는 것이니, 그 목적은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겠지.》
《자칫 안팎으로 협공당하게 될 겁니다.》
알파17은 전령이 달려간 방향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협공을 한다고 해봤자 문제 될 건 없다. 전령이 저쪽으로 달려갔으니 놈도 저쪽에서 오겠군. 저 근처에 언데드들을 매복시키도록 해라. 성과는 적당히 떨어져 있으니 성에 있는 것들이 구원병을 파견할 수도 없을 거다. 놈이 뒤통수를 맞고 깜짝 놀란 얼굴이 보고 싶군.》
《알겠습니다.》
《라시드라는 게 과연 얼마나 강할지 기대가 되는구나. 크흐흐흣.》
** *
발키란 성 사람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밤을 보내도록 강요하던 언데드 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벽 무렵에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언데드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성 안은 한창 복구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성문 복구는 끝났습니다.”
말이 복구일 뿐이지 제대로 복구된 건 아니다. 방어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잘려 나간 철문을 복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나마 잘려 나간 쇳조각들을 다 회수했는데도 그 모양이다.
“언데드 떼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아냈는가?”
성주의 물음에 나세르 장군은 공손히 대답했다.
“사방으로 수색대를 파견했습니다만 어디에 숨었는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언데드들은 인간과 달리 식량도 물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놈들의 이동로를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디 딴 마을이 공격받고 있다는 보고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총리가 불쑥 끼어들어 성주에게 말했다.
“도저히 내성을 뚫고 들어올 수 없을 듯하니 물러간 게 아니겠습니다. 성주님.”
총리의 말에 성주는 두툼한 뺨을 찡그렸다. 그는 식욕만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탐욕 또한 엄청났다. 과거 무역로가 원활하게 가동하고 있을 때는 끊임없이 돈이 쏟아져 들어왔었다.
하지만 요즘은 알카사스와의 사이가 안 좋아진 것과 언데드의 창궐로 인해 무역로를 오가는 상인들의 발길이 뚝 끊겨버렸다.
덕분에 재물의 수입도 없게 됐지만, 식량을 제대로 확보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돈 나갈 일만 생기고 있으니 성주의 안색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본전이 아까운지 성주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라시드에 구원을 청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언데드의 위치를 모르는 이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성주님.”
나세르 장군의 말에 총리가 끼어들어 반박했다.
“만약 이대로 언데드가 다시 쳐들어오지 않는데 라시드의 부대가 도착한다면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게 문제 아닌가.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들에게 식량은 물론이고, 보상금까지 두둑하게 내줘야 할 텐데………….”
“다음에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건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도 언데드 탓에 피해가 적잖은데, 그런 쓸데없는 낭비까지 해야 하다니. 알 카사스 놈들과 언데드 탓에 무역상이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되었는데…….., 에잉, 쯧쯧.”
성주도 짜증이 난 것이다.
“어려운 때인 만큼 뭉쳐야 이 난국을 잘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성주님. 작은 손해 따위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나세르 장군이 위로했지만, 사실 그게 작은 손해가 아니기에 문제였다.
이때, 부관이 달려와 나세르 장군에게 보고했다.
“장군, 원군이 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나세르는 성주에게 군례를 올리며 말했다.
“소장이 마중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나세르 장군은 500여 기의 기마병만을 거느리고 라시드가 보낸 지원군을 환영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기에 나세르는 언데드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밤에만 움직여 왔으니까.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한다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뜨거운 사막 위에서 말을 그렇게 다룰 수는 없다.
적당한 속도로 2시간 정도 이동하자 저 멀리서 모래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라시드의 군세가 보였다.
그런데 그 숫자가 기대한 것보다 너무 적었다.
먼지 탓에 숫자를 헤아리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넉넉하게 잡는다고 해도 1천여 기 남짓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겨우 저 병력밖에 보내지 않다니! 실망이로군.”
“그러게 말입니다, 장군.”
외성이 돌파당해 풍전등화 상태라는 걸 분명히 전했었다.
그렇다면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발키란 성을 위협할 정도로 언데드의 세력이 강력하다는 걸 라시드에서도 이미 파악했을 건데, 겨우 1천 기 정도밖에 보내오지 않다니.
이건 이쪽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 정도 병력이라면 거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세르 장군의 입맛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쨌거나 잘 됐군. 언데드는 이미 물러가 버린 후니까 말이야.”
성주와 총리가 배 아파하는 라시드 측에 지급해 줘야 할 지원물자가 대폭으로 감소하게 생겼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는 수밖에 없으리라.
이때였다. 갑자기 라시드군의 사면에서 모래 먼지가 치솟으며 언데드 대군이 모래 속에서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