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31화 : 라이와 해골전사-3


라이와 해골전사 – 3

“허억! 저럴 수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중소형의 언데드들. 그리고 그들 사이사이에 엄청난 거구를 자랑하는 대형, 혹은 초대형 언데드들이 보였다.

며칠 전, 성을 공격했던 대형 이상급 언데드의 숫자보다 몇 곱절은 더 많아 보였다.

나세르 장군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는 건가…………. 라시드의 구원군을 노리고?”

만약 그게 맞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세우고 있던 언데드 집단에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가정들이 모두 무너져 내린다.

저들은 머리가 텅 빈, 숫자만 많은 집단이 아니었다.

밤에만 움직이는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낮에 움직이고, 또 지원군이 올 이동로를 정확히 예측하고 매복하고 있었다.

해골 속에 썩은 물만 들어있는 언데드 따위가,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인가?

확실히 라시드 군은 언데드와의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워왔던 것이 단지 소문만이 아니라는 걸 기습을 당한 상황에서도 잘 보여줬다. 말에 매달고 있던 커다란 사각방패를 꺼내 신속히 방어선을 치고는, 도끼나 철퇴로 방패에 가로막힌 언데드들을 곤죽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숙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했지만, 겨우 1천 기 정도로 오래 버티는 건 힘들다. 더군다나 사면을 포위하고 있는 작은 언데드들을 짓밟으며 접근하고 있는 대형 언데드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 순식간에 전멸당할 게 뻔했다.

“장군, 후퇴해야 합니다.”

부관의 말대로 부하들과 후퇴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나세르 장군은 차마 후퇴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비록 숫자가 적긴 했지만, 저들은 우군을 돕기 위해 달려와 준 병력들이다. 그들을 내버려 둔 채 이대로 도주한다는 게 양심에 찔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아비규환의 수라장 속으로 돌격해 들어갈 수도 없었다. 저들이 불쌍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들과 함께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세르 장군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며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의 괴이한 일이 전장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라시드 병력 안에서 누군가가 놀라운 도약력으로 뛰어오르더니 공중을 몇 바퀴 돌며 떨어져 거대한 장갑도마뱀 위에 내려섰다.

그가 검을 내려찍음과 동시에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내려앉듯 몸을 낮추는가 싶던 장갑도마뱀의 몸체가 모래와 맞닿음과 동시에 산산이 분해되어 흩어졌다.

며칠 전 밤에 처절한 혈투 도중 수십 개의 항아리에 적중당해 온몸이 불타오르면서도 꿋꿋하게 성벽 밑으로까지 돌진해 들어오던 광경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렇기에 나세르 장군은 엄청난 방어력을 가진 장갑도마뱀이 한순간에 박살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기적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갑주로 몸을 감싸고 있었기에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의 몸은 또 한 번 하늘 위로 날아올라 두 번째 목표물 위에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거대한 사막전갈이다.

그 결과는 똑같았다. 또다시 모래 먼지를 비산시키는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사막전갈 역시 모래 위에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갑옷기사 한 명이 만들어 내고 있는 기적을 보며 나세르와 병사들은 벅차오르는 기쁨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장군님, 저 사람이 라시드입니까?”

총리가 라시드를 만나러 갔을 때, 나세르 장군도 함께 갔었다.

그때 라시드를 만나기는 했었지만, 저렇게 갑주로 온몸을 감싼 상태로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갑옷 위에 ‘나는 라시드다’라고 써 붙여놓은 것도 아니고,

“글쎄, 잘 모르겠군.”

“이대로 돌격해서 힘을 보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라시드로 보이는 기사가 대형 언데드들만 모두 다 해치워 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라시드가 겨우 1천의 병력밖에 보내지 않았다고 내심 서운했었는데, 저 광경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왔던지, 아니면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최강의 전사를 보냈음이 틀림없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는 동안에 갑옷기사는 순식간에 대형 언데드 넷을 해치우고는 다섯 번째 목표를 향해 도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그들은 갑옷기사를 향해 은밀히, 그러면서도 놀라운 속도로 날아가듯 접근하고 있는 해골전사를 볼 수 있었다.

그 해골전사 역시 갑주로 몸을 감싸고 있긴 했지만, 손과 발은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언데드라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앗! 갑옷기사 뒤쪽으로 몰래 접근하는 놈이 있습니다!”

갑옷기사만큼 놀라운 움직임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해골전사는 뼈밖에 없는 몸 때문인지 아주 가벼운 것처럼 보였다.

지상은 수많은 언데드들로 빽빽하게 뒤덮여 있어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들을 피해서 목표를 노리려면 공중으로 도약하는 수밖에 없다.

해골전사 또한 갑옷기사처럼 언데드들의 머리통을 밟고 도약해 상대와의 거리를 급격히 좁히고 있었다.

갑옷기사는 공격하려는 대형 언데드에게 정신이 온통 팔려있다 보니 해골전사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 뒤에 접근하는 놈이 있다!”

“뒤를 봐!”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쳤지만, 아쉽게도 갑옷기사와의 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언데드 떼와 격전을 벌이느라 엄청난 소음이 연신 울려 퍼지고 있는 중이다.

갑옷기사의 청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걸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해골기사의 검에 꿰뚫려 언데드 떼들 사이로 떨어지는 갑옷기사의 모습을 그걸 본 장병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장군, 이제 도망쳐야 합니다. 라시드는 끝났습니다.”

나세르 장군의 생각도 똑같았다. 일당백, 아니 일당 만의 위용을 자랑하던 기사가 어이없게 죽어버렸으니, 라시드의 군세는 곧이어 언데드들에게 학살당하게 될 것이다.

그 틈을 이용해서 도망치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모두 후퇴한다. 전속력으로 달려라!”

“말에 박차를 가해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 탓에 그들은 갑옷기사가 언데드 떼들 사이에서 뛰어오르며 자신에게 기습을 가한 해골기사와 격전을 벌이기 시작하는 걸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