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8권 35화 : 토사구팽(兎死狗烹)-1
•토사구팽(兎死狗烹)-1
알파17은 본부로 공간이동한 뒤 알파3을 대면했다.
알파17의 보고를 받은 알파3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감히 주인님의 영역 부근에서 타이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간 큰 나라가 있을 줄이야………….》
《아직까지는 그 배후에 국가가 있다는 증거를 찾은 건 아닙니다. 일단은 그 타이탄을 처치한 후에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면, 배후를 파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알파3이 말했다.
《일주일 후,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웜 하나가 돌아올 예정이다. 그 녀석을 쓰도록 해라.》
샌드웜이 막강한 전력이긴 했지만, 문제는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강력한 전력을 본부에 대기시켜 두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알파17은 베타1과 함께 본부에 머무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알파17 발키란 성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한 번씩 다녀오기도 했지만, 미네르바는 본부의 마신의 은혜가 설치되어 있는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전투에 앞서 죽음의 기운을 듬뿍 흡수해 두라는 알파17의 배려였다.
미네르바는 그 시간을 그래듀에이트와의 격투를 되새기는 데 활용했다.
마스터의 경지를 개척해 봤던 미네르바는 명상의 중요성을 잘 안다. 특히나 이번처럼 강자와의 대결에 대한 회상과 반성은 한층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연구하고 있는 건 상대가 쓴 검술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그때 썼던 방법들. 그걸 되새기며 다음에도 쓸 수 있도록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 했다.
죽음의 기운을 사용하는 요령을 하루라도 빨리 터득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마침내 1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샌드 웜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 워낙에 저장 공간이 큰 놈들이다 보니 한 달 정도 굶는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며칠 정도는 오차가 있을 수 있기에 알파17은 삼일을 더 기다렸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거 같다. 녀석들이 밥 먹으러 오는 시간을 이렇게까지 어긴 적은 없으니까.》
알파3의 우려 섞인 대답에 알파17은 물었다.
《어디에 배치된 웜입니까?》
《자네도 알 거야. 링카 성 앞쪽에 배치해 둔 언데드 대군 주위를 방어하던 녀석이다. 만일을 대비해서 특별히 큰 녀석을 보내놨었지.>
《제가 가보겠습니다.》
알파3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녀석이 이리로 오고 있는 도중이라면 거기에 가봐야 헛일일 텐데?》
《그래도 마냥 이곳에 죽치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좋을 대로 하게.》
《그럼 가보겠습니다.》
어차피 가봐야 헛일일 수도 있다.
웜이 뭔가 먹잇감을 쫓느라 시간을 보낸 탓에 뒤늦게 복귀했을 수도 있다. 덩치는 엄청나게 컸지만 지능은 그리 좋지 못하다. 과거 살아있을 때의 포식하던 습관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먹이를 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포식을 추구할 필요가 없었지만, 몰래 침투해 오는 그래듀에이트들을 쫓아가 잡아먹을 정도로 먹이에 대한 집착은 놀라웠다.
그렇기에 저렇게까지 커다란 덩치로 성장하고, 또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알파17은 베타1을 호위로 거느리고 알파3에게 들은 지점으로 공간이동했다.
웜이 있는 곳은 알파17도 잘 아는 곳이었다.
그곳에 매복 중인 언데드 떼는 자신이 배치해 둔 녀석들이었으니까.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모래 속에 숨어있는 대량의 언데드들이 보였다. 기운을 보는 것이기에 모래 속 곳곳에 뭉쳐있는 죽음의 기운의 형상으로 봐서 어떤 게 들어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이상하군…………. 이미 떠났나?》
헛걸음을 했다고 생각하며 본부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베타1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와보십시오.》
멀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알파17은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풍화되어 사라지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들을.
아주 옅은 죽음의 기운을 띄고 있었다. 그 크기로 봤을 때 웜이 사멸하고 난 잔해임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원의 잔해가 맞습니까?》
《유감스럽지만……………, 그렇다.》
알파17은 링카 성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방향 200여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링카 성이 있다.》
링카 성이라면 알카사스 서쪽 최고의 방어거점이다.
오랜 세월 크루마 제국 총사령관으로 있었던 미네르바다.
중요국가의 기사단 배치에 대해서는 대략적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링카 성에는 타이탄 분대가 하나 주둔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미네르바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알파17은 상세히 설명을 시작했다.
어차피 가르쳐 줘야 할 일이었으니까.
《이 대사막으로 인해 동쪽대륙과 서쪽대륙이 분리되어 있지. 두 대륙은 무역로를 통해 방대한 물자를 서로 교역하고 있어. 동쪽대륙에서 그 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게 알카사스 제국이고, 그 무역로의 시발점이 되는 도시가 바로 링카 성이다. 이런 중요한 요충지인 만큼 알카사스에서는 타이탄 1개 분대를 상시 배치해 두고 있다. 타이탄은 얼마 전에 봤을 테니 잘 알겠지? 자네가 기억하고 있는 타이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겠지만, 언데드의 시각이라는 것이 인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니 적응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미네르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과거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울 거라고는……………》
《타이탄은 막대한 양의 마나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마법생명체다. 우리 눈에는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의 덩어리로 보일 수밖에 없지. 특히 그 심장인 엑스시온은 눈으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밝아. 인간의 눈에는 강철인형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것이 저런 빛나는 존재로 보인다는 게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지.>
<…….>
베타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알파17은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내가 마법으로 주위를 탐색해 봤는데 더 이상의 그래듀에이트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지 않나? 타이탄은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야.》
미네르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제기억도 그렇습니다. 타이탄에는 서포트할 수 있는 정찰조 및 마법사가 함께 움직이죠. 타이탄의 전력이 막강하긴 합니다만,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극소수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 또한 있습니다. 그런 만큼 어이없는 실수로 타이탄을 상실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움직이는 거죠. 하지만 제 기억에는 단독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간혹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예를 든다면 어떤 경우 말인가?》
《첩보활동이 대표적이지요. 첩자들을 여럿 파견해 봤지만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가 없을 때, 기사단에 지원을 요청해 오너를 동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움직이기 힘든 상황인 경우, 아주 강한 자를 한둘 보내는 게 더욱 효율적이니까요. 어쩌면 지금까지의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동료들이 죽어버려 그 녀석 혼자만 남은 것일 수도 있고, 동료들은 다른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알파17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확실히 자네는 정규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었던 모양이군. 자네 실력이 뛰어난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과찬이십니다.》
《어쨌거나 내 생각은, 링카 성의 타이탄 분대가 웜을 포착해서 사냥해 버린 것 같다. 그것 외에는 웜을 죽일 수 있는 존재로는 떠오르는 게 없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뜻밖에도 알카사스 기사단이 적극적으로 언데드를 사냥하고 있는 모양이야. 알파3과 의논을 좀 해봐야겠어.》
공간이동으로 순식간에 본부로 돌아온 알파17은 알파3을 찾아가 방금 전에 자신이 찾아낸 것에 대해 보고했다.
역시 알파17의 보고에 알파3은 큰 우려를 표시했다.
《웜이 죽은 것과 콘도르 기사단이 증원된 게 연관이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땅속을 돌아다니는 웜을 포착할 수 있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타이탄이 막강한 병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찾아내야 처치할 수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함정에 걸려든 것일 가능성이 크겠지. 워낙 먹성이 좋은 녀석들이라 먹이라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니까.》
《그렇다면………… 당한 게 그거 하나뿐일까요?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다.》
알파17의 의문에 알파3도 충격을 받은 듯 검은 기운이 꿈틀거렸다.
곧이어 안정을 찾은 알파3이 말했다.
《알파22와 45에게도 연락해 모든 웜들이 살아있는지 확인을 해보는 게 좋겠군. 특히, 알카사스 인근에서 활동하고 있는 녀석들을 우선해서 말이야.》
<011.>
알파3을 비롯한 그 휘하의 모든 알파들이 각 웜에게 배당된 지역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생존 상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또 한 마리의 웜 사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위치 또한 처음 웜의 사체가 발견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즉, 웜들을 죽인 범인이 알카사스의 기사단이라는 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알파3과 그 휘하의 모든 알파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알카사스에 대한 정보수집은 알파22가 전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회의는 알파22의 현황 보고로 시작했다.
《링카 성의 동태로 봤을 때, 전면전을 시작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판단됩니다.》
《확실한가?》
《틀림없습니다. 콘도르 기사단은 각 요새에 분산 배치되어 방어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사막 안으로 침공해 들어올 생각이었다면 그런 식의 병력 배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 알파22는 타이탄 분대가 주둔하고 있는 요새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각 요새에 주둔하고 있는 기사들의 규모를 설명했다.
기사들이 가장 많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방어의 핵심인 링카 성이었다.
과거부터 이곳에 배치되어 있던 분견대의 기지였으며, 대사막의 동부 전역을 감시하는 용기사대의 기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콘도르 기사단이 사령부로 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연히 걸려들어 죽임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을 듯하군. 자네는 다른 일은 제껴두고 알카사스에 대한 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알파3은 알파17에게로 고개를 돌려 지시했다.
《웜 하나를 따로 줄 테니 중부지역을 확실하게 평정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 외에 다른 건 필요 없나?》
《성상의 보권이 몇 개 더 필요할 뿐, 그 외에는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