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권 16화 – 소림사의 흉계

소림사의 흉계

머리를 빡빡 밀어 버린 민둥머리의 스님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곳을 이름하야 ‘절(寺)’이라고 부른다. 그중 어떤 곳은 가련한 민생들을 현혹하여 주머니를 털 어 개고기나 처먹고 계집질이나 하는 못된 놈들이 모여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진짜 ‘스님’이라고 불리어 마땅한 인물들이 사이좋게 모여 불도(佛道)를 닦는 곳도 있다.

하면 그 ‘스님’이란 양반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그건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다 알 듯이 저 숭산의 소실봉 중턱에 위치한 소림사(小林寺)라는 절이다. 소림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분분한 설들이 많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북위의 효문제 때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이다. 그 이후로 증축에 증 축을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8천을 헤아리는 승려들이 쥐 떼마냥 바글거리고 있는 거대한 사찰로 발전해 왔다.

소림사의 경우 일반의 사찰과는 달리 불법(佛法)보다는 무술로 더 유명한 수상한(?) 곳이다. 원래는 오랜 면벽수련(面壁修練) 따위를 하다 보니 발생하는 체력의 저하를 막기 위해 간단한 육체 수련이나 하던 것이 달마조사 어르신이 역근(易筋)과 세수(洗髓)의 두 진경(眞經)을 전하면서 급속히 무공이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 러서는 무림의 태두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강대한 폭력 집단으로 변모해 왔다.

소림사는 승려라는 점을 들어 무림에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는 불법을 익힌다는 구실로 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무림이 안정되면 겨울잠을 마친 곰마냥 곳곳을 어 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수많은 혈(血)이 무림을 휩쓸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노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무림인들이 뒤에서 욕지거리를 하기도 하지만 소림사라고 이에 대해 변명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소림의 무공은 72종이나 되는 방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가 불법에 기초하여 상승무공으로 갈수록 광명정대하여 괴이악독(怪異惡毒)한 살초(殺初) 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소림의 무예가 심신의 수양에 있고 살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또 소림의 승려들도 그 점을 들어 될 수 있으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드는 것이다.

하지만 소림사의 무예로도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소림사는 세칭 속가제자도 받는데, 그들의 경우 소림의 상승무공까지 익히지는 못하지 만 어느 정도 무공의 맛은 보고 나올 수 있다. 그들 중에는 군관들도 있고, 무림에서 활동하는 고수들도 있으며, 타락하여 산도적 나으리가 된 놈들도 있다. 그 사람 들이 광명정대한 소림의 무공을 사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니, 소림사의 주장이 온전히 맞다고 보기도 힘들다.

소림사는 여태껏 수많은 고수들을 배출했고, 그중에서 무림을 풍미했던 초고수들도 몇몇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소림사의 이름에 어울리는 선행과 덕행을 베풀 어 세인들의 찬사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소림사의 무공이 지니는 독특한 특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뭔 말인가 하면, 소림의 무공은 상승 의 경지로 올라갈수록 불도와 연관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상승의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말은 곧 불심이 깊다는 말이 되고, 그 때문에 소림의 초고수들은 모두 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고승(高僧)들이었다.

소림의 무예들 중에서 가장 익히기가 난해하다는 역근, 세수의 두 진경. 그렇기에 그것을 깨달은 고승들이 자신이 창안한 무공에 그 무공의 일부를 토막 쳐서 삽입 하여 불도에 깊게 빠져 들지 못한 젊은 승려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소림의 무공은 어떤 면에서 봤을 때는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거기에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불세출의 기재가 정말 대단한 무공을 개발했을 때는 너무 패도적이라느니, 너무 잔인하다느니, 불심이 얕다느니, 마도(魔道)에 빠졌다느니 별의별 트집을 잡으면서 그 무공을 배척했다.

이런 식으로 세월이 흐르자 소림의 상승무학이 실전(實戰)과는 점차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무림태두의 자리를 무당 (武當)이나 서문세가에게 위협받기에 이른 것이다.

숭산의 중턱에 위치한 거대한 사찰, 소림사. 그 소림사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방장실에 다섯 명의 고승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들 안광이 정순한 것이 상당한 수준 의 무예를 닦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자그마한 다과상을 놓고 빙 둘러앉아 모두들 차를 한 잔씩 들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 었다. 그런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놀랍게도 불법에 관한 것이 아닌 살인에 관한 모의였다.

40대 중반의 근엄한 얼굴의 승려가 차를 홀짝이더니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덕진(德津) 사형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제가 지객당(知客當)을 책임지다 보니 세상의 소문이라든지 여러 가지 소식에 빠릅니다. 여태 껏 모은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그의 무공 수위로 봤을 때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그러자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인자한 얼굴을 가진 덕혜(德慧)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108나한(百八羅漢)과 12금강(十二金剛)에 32수좌승(三十二首座僧)까지 포함시켜 대정(正) 사숙께 드린다면 그를 없애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32 수좌승이라면 소제가 거느린 8대호원 최고의 정예니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가장 상석에 앉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인자한 얼굴의 승려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흐음, 덕진 사제의 말대로 그들의 힘은 웬만한 문파를 순식간에 허물 수 있는 강대한 것이지만…….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네만 본사의 승려들은 썩 실전 경험 이 많다고 볼 수가 없네. 하지만 상대는 무림에 수많은 피바람을 불고 온 장본인. 개와 늑대의 차이지. 설혹 그를 응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 될 것이야.”

그러자 덕호(德浩)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이냐?”

“방장 사형께서 금제(禁制)된 12진경(十二眞經) 중 세 가지만 해제해 주십시오. 그들에게 그것을 익히게 한다면 훨씬 더 피해가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자 상석에 앉은 방장 사형이라 불린 그 승려는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흐음, 나도 덕호 사제가 말한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사실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네. 설혹 장생전(長生殿)에서 그것이 받아들여진다 하 더라도 그 위력만큼이나 익히기가 힘들지. 그것을 익히는 데 도대체 몇 년이 더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네..

“정 안된다고 하더라도 항정멸법신공(抗正滅法神功)만은 금제가 해제되어야 합니다.”

항정멸법신공이란 말에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경악한 표정의 방장 스님이 말했다.

“자네는, 자네는 그 사악한 마공이 뭔지 알고나 입에 담는 것인가?”

상대가 경악해서 물어봄에도 덕호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미(慈嵋) 사조(師祖)께서 남기신 뛰어난 무공이죠. 그 자체가 가지는 위력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최고의 장점은 소림무예의 극성(極性)이라는 것에 있지요. 72종 절기를 토대로 그 허점을 교묘히 공격하여 파해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니 그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그 자체가 지니는 뛰어난 점은 망각하고 극성이라는 이유 단 하나 때문에 본사(本寺)에서도 극비로 치부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것만은 꼭…….?

그러자 그의 왼편에 앉아 있던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얼굴의 덕진이 찬성하고 나섰다.

“덕호 사제의 말이 맞네. 방장 사형, 소제는 거기에 최소한 파마멸혼검법(破魔滅魂劍法)까지 금제를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자 장문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덕진 사제, 자네까지. 그 악마의 무공까지 거론하다니 자네들에게 마가 끼인 모양이군. 아미타불….

장문인의 말에 오른편에 앉아 있는 덕진이 반박했다.

“아미타불, 상대는 악마입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정통 무공을 사용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원래가 파마멸혼검법은 혜인(忍)사조께서 사마외도(邪魔 外道)를 멸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들여 완성한 본사의 하나뿐인 검법. 그런 무공이 사장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자 여태까지 말없이 왼쪽 뒤에 앉아있던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덕수(德修)가 말했다.

“덕진 사형의 말씀이 틀렸습니다. 본사에는 또 달마삼검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반박을 덕진이 아닌 덕혜가 대답했다.

“그건 자네가 틀렸네. 달마삼검법은 말이 달마삼검법이지 실은 불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도가(道家)의 검법이야. 원래 본사에는 검법이 없었는데 백옥봉이란 도사가 각원사조님의 인품을 높이 사 그가 지닌 검법을 전했는데, 이것이 달마삼검법이라네. 헌데 도가의 무예를 배운다는 것이 본사의 명예에 누를 끼치게 되는 것이기에 달마조사께서 창안하신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이지.

사실 달마삼검도 완전한 것이 아닐세. 1검에 3로, 2검에 3로, 3검에 2로.. 왜 3검에만 2로겠는가? 원래는 1로가 더 있었지만 너무 도가적인 것이기에 제외되 었는데, 전체를 물려받았던 각원 사조님의 검법과 그 1로가 빠진 후대의 것과는 위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생겨 버렸지.

달마삼검법은 자네도 익혔겠지만 뭔가 허전한 감이 있고 또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 그것은 달마삼검법 자체가 오로지 내공만으로 펼치는 검법이 아니 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본사에 하나뿐인 검법이 파마멸혼검법이라는 말이 맞는 것이지. 이것은 본사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서 장경각에서 본사의 일 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자네는 잘 몰랐을 거야.”

“예,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일단의 말다툼이 정리가 되자 덕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에 들어 본사의 위상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재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뛰어난 무공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뛰어난 것이 있음에도 금제를 가해 익히지 못하게 하니 당연한 결과가 아닙니까?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그가 무림을 설치고 다닌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아직도 요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본 사에 고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를 없애기에 적합한 무예를 익힌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까? 사실상 그와 일대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고수는 본사에 없습니다. 지 금 은거 중이신 대사숙조께서 나서신다 해도 승산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청부를 해서 암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소 편법을 쓰더라도……..”

“흐음, 자네들의 의견은 잘 알겠네. 장생전을 설득하도록 노력해 보지. 하지만 자네들이 말하는 무공들이 원체 문제가 있는 것들이라 허락이 떨어지려면 시일이 약간 걸릴 거야.”

“지금까지도 참아 왔습니다. 조금 더 기다린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지요. 그리고 금제가 풀리더라도 그들이 무공을 익히려면 최소한 5년은 잡아야 하지 않을 까요? 그리고 장생전의 사숙들이 반대하신다 하더라도 그 무공들을 익혀야 될 필요성과 익히는 자의 수를 소수에 국한시킨다면 아마도 허락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알겠네. 아미타불, 부처님의 뜻대로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