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5권 3화 – 불케인시

불케인시

불케인시는 역시 영주가 사는 지방 도시인만큼 수많은 인간들로 북적거렸다. 다크가 불케인시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숙식을 해결할 곳을 찾 는 일이었다. 일단 이곳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또 전과는 달리 사람의 이목이 많은 곳이라서 나무 위에서 잘 수도 없었다.

다크가 적당히 물어서 찾아간 곳은 식당과 여관을 함께 하는 ‘흰 토끼 여관’이었다. 4층 건물이었는데, 중원에는 2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는데 비 해서 이곳은 거의 대부분의 집이 몇 층씩이나 되었다.

다크가 문을 턱 열고 들어가자 살찐 흰 토끼마냥 덩치가 대단한, 살이 투실투실 찐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음, 역시 이름이 주인과 잘 어울리는군.’

감탄하며 바라보는 다크에게 그녀가 물었다.

“묵으실 거예요?”

다크가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조금 까딱 하자, 그녀는 이렇듯 말 없는 인물들도 익히 여럿 겪어 봤는지 별 표정 없이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말은 있어요?”

다크가 고개를 좌우로 젓자 그녀는 또 이어 물었다.

“지금 식사, 목욕, 수면? 어떤 걸 원해요?”

“식사.”

다크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자 그녀가 또 물었다.

“뭘 드실 건데요?”

“그런대로 맛이 괜찮으면 아무거나………….”

“그럼 술은?”

“맥주.”

다크는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맥주는 다크가 블레어 가족과 지내면서부터 가끔씩 마시기 시작한 술이었는데 쌉싸름했지만 찬 맥주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이 있었다.

다크는 음식을 먹으면서 맥주를 조금씩 마셨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고, 여기서 말하는 요리들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는 다크로서는 설혹 맛이 수상한 게 나왔다고 하더라도 뭐라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다크가 2년 동안 지낸 곳은 사냥꾼 가족이 살던 시골구석의 외딴 집이었다. 그들이 음식을 만들어 먹어 봐야 얼마나 다양했겠는가? 그냥 푸딩 몇 종 류하고 채소를 이용한 몇 가지 요리, 고기는 삶거나 굽거나 튀기거나…………. 그 외에 과자 몇 종류하고 빵 외에는 먹어 본 게 거의 없었다.

다크가 앉아 있는 테이블 옆쪽에 또 다른 손님들이 앉았다. 이들은 이미 이곳에 묵은 지 좀 된 듯 2층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다음 여러 가지를 주문했고, 음식이 나오기 전에 맥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행은 일곱 명이나 되었는데, 그중에 두 명은 여자였다. 한 명은 날렵하게 차려입고 2척 반 정도 길이의 얄팍한 검을 차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는 특이한 흰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외의 남자 다섯은 모두들 그냥 여행자들이 흔히 입는 옷들을 입고 있었지만 무장은 각기 달랐다. 어떤 자는 얄팍한 2척 정도 길이의 검을, 어떤 자는 3척 정도, 어떤 자는 무려 5척(약 1.5미터)에 달하면서도 두툼한, 너무 무거워 보여서 휘두를 수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검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검을 차지 않고 탁자 옆에 세워 두었다.

“샤헨으로 가는데 꼭 그쪽으로 둘러 가야 해?”

“이런, 미디아는 이쪽으로는 안 와 본 모양이군. 물론 브루툰 쪽으로 가면 빠르지. 하지만 그쪽 숲에는 드래곤이 산다구. 성질 더러운 그린 드래곤 이. 그래서 그쪽은 접근 금지 구역이야.”

“으응…….”

이 세계 최강의 생명체는 드래곤이다. 그들의 힘은 도시 하나를 완전히 파괴하는 데 한 시간도 안 걸릴 정도로 강력하다. 5백 살이 넘어 성체가 된 드래곤의 경우 먹지 않아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구역을 침범하면 그 관례를 깨고 침입자를 디저트로 먹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드래곤의 영역에 침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크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또 이런 말은 여기서 처음 들어보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은 여기저기를 많이 떠돌아다닌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거기에 척 보아도 꽤나 노련함을 풍기는 그들

다크는 식사를 중단하고 옆 좌석으로 가서는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샤헨이라면 트루비아의 수도였고, 아무리 작은 왕국의 수도라도 왕이 사는 곳이 니까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에는 그곳이 좋을 듯했다.

“실례합니다. 샤헨으로 가십니까?”

“예, 왜 그러시는지?”

“저도 샤헨으로 가는 길인데, 동행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죠.”

그들은 다크를 아래위로 찬찬히 살폈다. 아마도 다크가 과연 도움이 될 사람인지, 아니면 짐이 될 사람인지 가늠해 보는 것이리라……………

다크는 7일간의 여행을 거쳐 이쪽으로 왔지만, 여행을 시작할 때 정든 블레어 가족이 여행용 옷을 새로 장만해 줬기에 옷만 봤을 땐 완전히 신출내 기처럼 보였다. 거기다 다크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니까……………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는 얄팍한 검. 그건 다크가 여강도로부터 구경값이라는 정당한 (?) 대가로 받은 것이었지만, 아무튼 그 모양으로 봤을 때 이들에게는 좀 어리숙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어쩌면 짐이 될지도 모 를 상대를 데리고 가야 할까, 말까 상당히 고심했다.

그중 한 명이 다크를 지그시 보더니 말했다.

“검을 쓸 줄 아십니까?”

“그런대로………….”

그러자 그중 두터운 검을 가진 인물이 약간은 걱정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샤벨(Shabel)을 가지고 여행을 하기는 상당히 힘들 텐데요…………… 그걸로 어떻게 흉폭한 몬스터를 상대하려고 그러시오?”

그러자 다크는 슬쩍 미소 지었다.

“이걸로도 충분하죠. 당신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 거니까 같이 가면서 길만 알려 주면 되오.”

그러자 상대 남자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크를 세심히 살펴보았다.

“뭐, 샤헨까지는 그렇게 어려운 길도 아니니 같이 가기로 하지요. 나는 팔시온 엘마리노라고 하오. 이제 서른넷이 되지요. 앞으로 잘 부탁하오.” “나는 다크라고 불러 주시오. 나이는, 이제 스물다섯이지요.”

다크는 나이를 말하면서 잠시 고심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내 나이 일흔이 넘었소’라고 한다면 상대는 분명히 ‘아, 그렇소? 우리는 미친놈하고는 같이 안 가니까 혼자 가쇼’라고 할 게 뻔했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을 봤을 때 정말 최대한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나이를 내려 말했다. 너무 젊어도 골 치 아프기 때문이다. 괜히 잡일만 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스물다섯? 도저히 그 정도까지는 안 되어 보이는데… 꽤 동안(童顔)이군. 자, 이쪽은 미네리아 로안스에르 사제님. 대지의 여신 케레스(Ceres)를 섬기는 사제시지. 도저히 서른다섯 살로 보이지 않지만 사실이야.”

자신의 소개를 팔시온이 해 주자 대단한 미모를 갖춘 여인이 방긋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리고 이쪽은 미카엘 드 로체스터. 무예 수업을 한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우람한 덩치에 두툼한 근육질을 소유한 짧은 콧수염을 기른 상당한 미남이 인사를 건넸다. 그 남자는 탐스러운 금발을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도록 기르고 있었다.

“미카엘이라고 부르게.”

이런 식으로 첫인사를 주고받았다. 미네리아는 신을 받드는 사제이기에 모두의 존경을 받는 듯했다. 그녀 외에 팔시온, 미카엘, 미디아, 가스톤은 거 의 나이들이 비슷했기에 서로에게 말을 놓았다. 그 외에 지미와 라빈은 갓 스물을 넘긴 정도의 애송이들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존대를 해 주고 있 었다.

그렇기에 다크가 대강 생각해서 말한 자신의 나이 스물다섯 살은 그 두 그룹의 중간에 위치하며, 한쪽에서는 존대를 받고, 또 한쪽에는 존대를 해 줘 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안 그러면 그런 건방진 놈을 파티(Party:패거리)에 받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간에 탐색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면서 다크가 알아낸 사실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사실 방금 만난 인물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시시콜콜 물 어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크는 자신을 팔시온 엘마리노라 소개한 남자의 두툼한 검에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그 검을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 남자는 별 생각 없이 옆에 세워져 있는 검을 들어서 다크에게 건네줬다. 다크는 그 검을 잡는 순간 깜짝 놀라 검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검 의 주인인 팔시온이 재빨리 잡더니 의외라는 듯 말했다.

“마력검(魔力劍: Magical Power Sword)이라는 걸 눈치 챘군. 놀라운 안목이야.”

그러자 다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력검이 뭐지요?”

경악한 팔시온이 되물었다.

“설마? 마력검이 뭔지 몰라서 묻는 건가?”

다크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상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이라서 그런 상식적인 것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 다. 그는 다크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시골에서 갓 올라온 모양인데,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지. 마법을 쓸 수 있는 검을 보고 마법검(Magic Sword)라고 부르는데, 그 마법검에는 두 가지가 있지. 마력검과 봉인검(Seal Sword)이야. 그 둘은 좀 차이가 있어. 마력검은 검의 외부에 새겨진 주문 외의 마법은 쓸 수 없지. 또 마법을 쓰려면 마나도 많이 필요로 하고 말이야. 그에 비해 봉인검은 상당히 다르지. 주문 따위가 새겨져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 (Undine)가 봉인되어 있다면 운디네가 쓸 수 있는 모든 하급의 정령 마법을 다 쓸 수 있지. 또 정령 마법 자체가 마나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대단한 효과가 있고……………”

그러나 다크는 더욱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마나(Mana)란 게 뭐지요?”

주변 인물들이 모두 딱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크를 바라봤다. 그중 가스톤 기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도저히 검사로는 보기 어려운 가냘픈 체구의 남자가 더 이상 다크의 무식함에 참을 수 없다는 듯 참견했다.

“마나도 모른단 말인가? 마나란 세상의 근원적인 힘이지. 마나는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란 말일세. 그렇기에 마나가 있음으 로 해서 세상이 생명으로 넘칠 수 있는 것이고,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몸속에 마나를 가지고 있지. 저 마력검이나 봉인검은 마법을 사용하게 해 주 지만 일반인이 사용했을 때는 엄청난 마나를 빼앗기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능숙한 검사는 많은 마나를 몸속에 축적하고 있고, 또 마법사는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주변의 마나를 흡수해서 사용할 수 있지. 또 그걸 다 소모한다 하더라도 대기에 떠도는 마나를 빠른 속 도로 흡수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마나를 상실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어.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다르지. 잘못하면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마나까지 뺏겨 죽을 수도 있다네.”

‘아…, 기(氣)를 보고 마나라고 하는군. 이제야 저놈의 검을 잡았을 때 내력이 빠져나간 이유를 알겠군.’

“흐음, 이제야 이해를 하겠군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령이란 건 또 뭡니까?”

그러자 가스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세상에 정령도 모른단 말인가?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정령술사의 눈에는 보인다고 하더군. 물을 관장하는 정령, 불을 관장하는 정 령, 뭐 하여튼 여러 종류가 있지. 어쨌든 내가 눈으로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런 게 있다고만 알고 있게.”

다크는 팔시온의 검을 다시 받아 들었다. 아주 미약한 기가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일단 내력이 빠져나가는 이유를 알아냈으니 더 이상의 미지의 물 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이 정도쯤의 내공이야 별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다섯 자의 길이에 두께만도 4치(약 12센티 미터)가 넘는 검치고는 너무 가벼웠다.

“이건 특별히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진 검인 모양이죠? 아주 가볍군요.”

그러자 팔시온은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건 마법이 걸려 있기에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지. 일부 검에는 경량화(輕量化)의 마법을 걸지만, 사실 검의 무게를 줄여 봐야 파괴력만 떨어지지. 검의 무게가 줄어들면 아마도 적의 공격으로 검이 부서지는 경우는 줄일 수 있겠지만 제 위력이 나오겠나? 검의 무게도 공격에는 한몫을 하는데 말이 야. 이 검에는 파워 업(Power up) 마법이 자동으로 걸려 있어. 그래서 아주 가볍게 느껴지지만 힘이 평소의 두 배 정도 강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왼손으로 딴 물체를 들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다크는 왼손으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맥주잔을 들어 본 다음 팔시온이 한 말을 대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동 마법이란 게 뭡니까?”

“하하, 지금 그 검처럼 사용자가 쥐자마자 자동적으로 마법이 실행되는 것을 보고 자동 마법이라고 부르지. 실제로 그 검은 너무 무거워서 마법 없 이 들고 다니려면 상당히 힘이 드는데, 그 검을 들 때마다 ‘파워 업!’하면서 주문을 외우기는 귀찮은 일 아닌가? 이처럼 마법을 사용할 때 자신이 사용 할 마법의 시동어를 외쳐야만 발동하는 게 수동 마법이지.”

다크가 대강은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걸 본 팔시온이 덧붙여서 말했다.

“마법을 쓸 수 있기에 들고 다니기도 좋고 사용하기도 좋지만…, 별로 좋은 마력검이 아니라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수가 몇 개 안 된다는 게 흠이 지. 그 검을 들고 ‘파이어 블레이드(Fire Blade : 화염 칼날)’라고 외쳐 보게나.”

다크는 속는 셈치고 따라했다.

“파이어 블레이드!”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다크의 손에 쥐어진 팔시온의 검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화염의 칼날이라고 할만했다. ‘양강의 무학을 익히지도 않고 단지 기만을 주고도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다니, 놀랍군.’

“저, 이거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그러자 팔시온은 멋쩍은 듯 싱긋 웃었다.

“그냥 검을 손에서 잠시만이라도 놓으면 되지.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는 신경을 써 놓지 않은 검이라서·

다크가 검을 손에서 놨지만 달아오른 칼날은 간단하게 식지 않았고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태우기 시작했다. 뭉클뭉클 연기가 조금씩 올라왔지만 딴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검 주인이나 여관 주인이 신경을 안 쓰는데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그 외에 간단한 방어 마법 두 개와 공격 마법 하나가 더 있지.”

그러자 저쪽에서 가스톤이 다시 말했다.

“다크, 그런 실험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팔시온이야 마법을 배웠기에 저 정도의 마나 소모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자네 같은 경우 마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이상 마나를 검에게 뺏기면 잘못하다 수명이 줄어들지도 몰라.”

하지만 다크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말했다.

“그래도 모처럼 알게 되었으니 실험을 해 보고 싶군요. 이번에는 뭐라고 하면 되죠?”

“화살 같은 걸 막아 주는 포스 실드(Force Shield : 물리력 방어막)하고 마법을 막아 주는 매직 실드(Magic Shield: 마법 방어막)가 있어.”

포스 실드는 물리적인 공격만을 막아 주고, 매직 실드는 마법 공격만을 막아 줬다. 그러니까 포스 실드를 친 상태로 싸우는 적에게 화살을 쏘면 별 타격을 줄 수 없겠지만, 마법 공격을 하면 곧장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이치다. 이 둘을 한꺼번에 막을 수 있는 방어 마법으로 3사이클의 바리어가 있었 지만 팔시온의 마법검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마법은 모두 1사이클에 속하는 수준 낮은 마법들뿐이다.

“흐음…….”

다크는 바닥에 꽂혔던 검을 다시 들어 잠시 시간을 끌다 외쳤다.

“포스 실드!”

그러자 짧은 화살 하나가 보이지 않는 막에 튕기며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다크는 싱긋 웃었다.

“제법 효과가 있군요. 그럼 공격 마법은 뭐죠?”

튕겨 나가는 화살을 보고 잠시 멍해졌던 팔시온이 대답했다.

“공격할 대상을 향해 검 끝을 향하고, 파이어 볼(Fire Ball)하고 외치면 되네.”

이때 두 번째 화살이 포스 실드를 향해 날아왔지만 역시 뚫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검 끝은 창문 밖을 향했고, 다크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 졌다.

“파이어 볼!”

검 끝에서 둥근 형태의 불덩어리가 나와 빠른 속도로 어떤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에는 다크를 향해 화살을 날린 사내가 세 번째 화살을 석궁에 장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쓸모없이 화살을 장전하진 않았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보고 경악한 그가 나무 아래로 뛰어내리자마자 불덩어리가 나무에 적중되었고, 나무는 곧 화염에 휩싸였다. 아래 로 급히 뛰어내린, 아마도 너무 급하게 뛰어내렸기에 떨어지는 것만큼 타격을 입었는지 다리를 절뚝거리는 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달아나는 모습이 잠시 보였다.

“하하, 정말 대단한 위력이군요.”

여태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던 일행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다크를 쏘아봤다. 하지만 다크는 의문에 가득 찬 시선을 받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너스 레를 떨었다.

이들의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 이 정도로 마나를 왕창 써먹었다면 지금쯤 축 늘어져야 정상인데…………. 이자는 그렇지가 않았다. 거기 에다가 상대가 공격할 타이밍까지 잡아 가며 포스 실드를 동작시키지 않았던가?

팔시온이 가진 마력검은 겨우 1사이클의 마법을 쓸 수 있기에 그 실드가 미치는 공간은 아주 작다. 즉, 1인용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두 발이나 되는 화살이 다 실드에 맞고 튕겨 나갔다면 그 공격은 이 ‘다크’라고 자신을 소개한 수상해 보이는 자를 노린 것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드디어 저쪽에서 의심스런 눈길을 던지고 있던, 흰색의 헐렁한 옷에 검은색의 각종 문양이 다채롭게 수놓아져 있는 옷을 입고 있는, 미네리아 로안 스에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방금 그 화살, 당신을 노린 거죠?”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실드를 펼치자마자 날아왔으니. 하지만 나는 시골에서 방금 전에 올라왔고,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다크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말을 하는 도중에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하 지만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자는 ‘여자’였는데?

하지만 다크의 설명을 들은 그들은 창문 밖에서 볼 때 다크에게 가려진 한 인물에 주목했다. 즉, 그자와 창문 사이에 다크가 위치했으니까, 아무래도 가장 기초 지식인 ‘마나’도 모르는 인물보다는 ‘미카엘’이라 불린 그쪽이 더 원한을 살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리라……………

미카엘 드 로체스터라는 남자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무예 수업자(Paladin)로, 3척 반 정도 길이의 롱 소드(Long Sword)를 가지고 있었다. 두 툼한 근육질의 이 미남자는 짧으면서도 멋진 콧수염으로 보아 외모에 신경을 쓰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다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의 이목이 자신에 게 집중되자 미카엘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런 시선들 보내지 말라구. 나한테 원한 품은 인물들이 워낙 많아서 누군지 감도 안 잡히니까…………….”

“흠, 아무래도 미카엘에게 날아오던 화살들이 다크가 뿜은 실드에 막혔다는 게 더 신빙성(信憑性)이 있는 추리겠군요. 어쨌든 운도 좋다니까………….”

이런저런 말로 쑤군거리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문이 덜컥 열리며 두툼한 갑옷을 걸친 세 사람이 들어섰다. 그들의 갑옷은 통짜 철판으로 된 것이 었지만 움직이기 편하게 상체만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허리에 달린 롱 소드를 철그럭거리면서 들어와서는 술집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파이어 볼을 날린 놈이 누구야?”

“본인이 날렸습니다만…………….”

옆에서 듣고 있던 다크가 간단히 시인을 하자 그들은 다크에게 다가왔다.

“감히 도시 한복판에서 파이어 볼을 날리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안 그러면 내가 먼저 죽을 텐데, 날리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러면서 다크는 옆에 떨어져 있던 두 대의 화살을 그들에게 보여 줬다.

“나무 위에 숨은 녀석이 이걸 날리는데, 그럼 반격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여기 술집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증인이라구요.”

그러자 그들은 다크의 말을 확인하겠다는 듯 술집 주인을 쳐다봤고 술집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들이 술을 마시는데 밖에서 화살이 날아왔습죠.”

그러자 다크를 추궁하던 무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가지 한복판에서 파이어 볼을 날리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러자 다크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게 그 정도로 무식하게 큰 불덩어리가 날아갈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그러자 그 무사는 다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놔.”

“예?”

“시의 재산인 가로수(街路樹)를 태웠으니, 배상금을 내야 할 거 아냐?”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1골드. 저 숲에서 나무를 하나 파다가 여기다 심으려면 그 정도 임금은 줘야 되지. 다행히 다른 피해는 없으니 1골드만 내면 되는 줄 알라구.”

사실 숲에서 나무 하나 파다가 심는 데 1골드나 되는 돈이 들어갈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시에 소속된 수비대 원(Guard)들이기에 시비가 붙어 봐야 좋을 거 하나 없기 때문이다. 뭐 남는 돈으로 그들이 술을 퍼마시든, 계집과 하룻밤을 즐기든 자신의 돈을 뺏기 는 게 아닌 바에야 참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크는 더 이상 상대하기도 귀찮아서 돈주머니를 꺼내 1골드를 상대에게 건네줬다. 그들은 돈을 받더니 휘파람을 불면서 우르르 나가 버렸다. 방금 여기서 돈을 빼앗으니 그들의 얼굴 가죽이 아무리 두껍다고 해도 여기서 곧장 술을 마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다크는 팔시온에게 물었다.

“여기 옷가지나 칼 같은 거 팔 수 있는 집은 없나요?”

“그건 왜 묻나?”

“팔 것이 조금 있는데……

“그렇다면 여기 풀어 놔 보게. 여기서 팔릴 만한 것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더니 술집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향해 외쳤다.

“이보시오. 이 친구가 방금 돈을 뺏겨서 여비를 장만하려고 물건을 염가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혹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좀 구입하십시 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모여 들자 다크는 여강도에게 관람값으로 거둬들인 것들을 꺼내 놨다. 그가 꺼내 놓은 것은 외투나 망토, 작은 단 검 등 여행에 꽤나 필수적인 품목들이었기에 순식간에 몽땅 팔려 버렸다. 다크가 부른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