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7권 11화 – 드래곤의 아들 찾기

드래곤의 아들 찾기

“뭐야? 그런 사람 모른다고? 이 녀석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분명히 아들놈이 여기서 산다고 했다구. 네 녀석 상관 데려와.”

아르티어스 옹께서는 한 몇 달 레어 안에 틀어박혀서 무료함을 달래느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도저히 아들과 함께 지냈던 그 단란했던 시간 을 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 생활이 무료한 만큼 그때의 기억은 더욱 새록새록 그의 신경을 자극해, 드디어는 참지 못하고 크라레스 왕궁으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놈의 호위병들은 도대체가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을 뿐, 제대로 대답을 해 주는 놈은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 지금 아르티어스의 생김새는 이제 갓 20대 초반의 정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미남자인데, 그가 아들을 찾는다면 갓난아기란 말밖에 더 되나? 왕궁이 탁아소가 아닌 바에야 이런 말을 하는 놈이 미친 놈인 것은 분명한 사실.

“그래서? 내 아들이 여기 없다는 말이냐?”

“당신 아들은 탁아소에 가서 찾아보시구려. 아니면 고아원이나……”

“이런 빌어먹을 녀석들이! 죽어랏! 화염구(球)!”

그와 동시에 엄청난 불덩어리가 아르티어스의 손바닥에서 날아갔고, 여태껏 이죽거리고 있던 병사 둘은 순식간에 구수한 향기를 풍기는 통구이가 되어 버렸다. 갑자기 왕궁 정면에서 마법을 사용해 근위병을 죽이는 사태가 벌어지자 사방에서 병사들이 몰려 나왔지만, 이미 혈압이 꽤나 상승한 아르티어스 옹의 눈에는 그게 개미 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르티어스는 쏟아져 나오는 병사들을 향해 곧장 손을 일(一)자로 가로저으며 주문을 외웠다.

“풍검(風劍)!”

그의 손에서 나온 바람의 검날이 뻗어 나가며 수십 명의 몸통을 상하로 분리시켰다. 원래가 골드 드래곤은 바람의 정령력을 가진 존재인 만큼 바람에 관계된 마법 은 더욱 가공스러웠다.

“크하하하, 내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럼 다 죽어 버려랏!”

이때 왕궁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세 명의 무사가 달려왔고,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시체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아르티어스를 향해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누군데, 크라레스의 왕성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요?”

“나? 아르티어스라고 하지. 네 녀석도 물론 내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

“당신 아들이 어디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소? 보아하니 당신 아들은 이제 갓난아기 정도일 텐데 왕궁에 와서 찾을 필요가 무에 있겠소? 그래, 겨우 그것 때문 에 병사들을 학살했다는 말이오?”

“갓난아기가 아냐! 이제 열일곱 살 정도 됐다구. 그리고 저놈들을 죽인 것은 감히 이 아르티어스 님에게 반항한 죄야. 그래, 네놈들도 반항해 볼 텐가?”

기사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 젊은 마법사를 쳐다봤다. 기사를 상대로 마법사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 그런데도 기사를, 그것도 세 명이나 앞에 두고 저 오만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었다. 제일 앞에 서 있던 기사는 그것 때문에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저는 왕실 근위기사단 소속 기사 알프레드 그루지에라고 합니다. 우선 귀하의 아들이 이곳에 있는 게 정확한지, 또 귀하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그래 야 피차간에 실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상대의 정중한 말에 아르티어스는 콧방귀를 뀌며 이죽거렸다.

“흥! 내가 몇 번이나 말했나? 내 아들 이름은 다크 크라이드 남작이야. 그리고 내 이름은 아르티어스고……. 더 이상 알려 줄 이유는 없다. 만약 두 시간 안에 내 아들을 여기로 데려오지 않는다면 저런 싸구려 왕궁 따위 통째로 날려 버리겠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아니면 정신 이상자가 헛소리해 대는 것 같은 최후통첩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마법사이니만큼 정신 이상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알프레 드는 열심히 궁리했다.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기사 몇 명, 아니 국가 하나쯤은 신경도 안 쓰는 최강의 존재…….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알프레드의 등골에는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 혹시 드래곤이십니까?”

알프레드의 혹시나 하는 조심스런 물음에 아르티어스는 픽 비웃음을 터뜨린 후 수긍했다.

“그래.”

“저, 그렇다면 사라진 아드님은 헤즐링?”

드래곤이 신경 쓰는 대상은 헤즐링뿐이었기에 한 물음이었지만, 그것은 잘못 짚은 거였다.

“아니, 인간이다. 내 양자(養子)야.”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 이후로 두 시간 동안 크라레스 왕성은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 하나를 찾는다고 난리가 났다. 다크 크라이드라는 남자를 찾기 위해 아래로 는 왕궁에 고용된 하급 관리들로부터 시작해서, 수도 근위 사단의 병사들, 장교들, 그리고 고관대작들까지 철저히 알아봤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 때문에 크라레스 왕실 근위 기사단은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왕궁 근처에 유령 기사단을 포함한 타이탄을 가진 기사들을 끌어 모으며 난데없는 드래곤과의 일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전방에 나가 있던 콜렌 기사단 소속 기사들도 속속 공간 이동을 해 왔고, 아르티어스가 눈치 채지 않도록 비밀리에 각 타이탄들에게 대 (對)드래곤 전투를 위한 창(槍)을 지급했다.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는 근위 기사단장에게 젊은 황제는 약간 짜증 섞인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 궁중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기사단장은 지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난데없이 미친 드래곤 한 마리가 나타나서는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고 있사온데, 속히 피신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사옵니다.”

“말도 안 되는 시비라니?”

“예, 다크 크라이드라는 자기 아들이 이곳 왕궁에 있을 테니 내 놓으라는 것이옵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그런 인물은 찾을 수가…….”

잠시 생각을 하던 황제는 짚이는 이름이 있었기에 다시 확인했다.

“다크 크라이드라고 했나?”

“예.”

“이상하군. 그건 로니에르 공작의 옛날 이름인데? 분명히 아들이라고 했나?”

“그러하옵니다.”

“그 드래곤에게 아들인지 딸인지 다시 한 번 알아 보거라.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만약을 대비해서 유령 기사단의 타이탄 사용 허가를 내리겠다. 준비하라 이르도 록!”

”, 폐하. 하지만 폐하께서 직접 드래곤을 만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옵니다. 다시 한 번 생각을..”

“에잉, 자네는 시키는 대로 해. 나도 그래듀에이트다! 상대가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아. 알겠나?”

“예, 폐하.”

아르티어스는 새로 나타난 젊은이의 옷차림이 근사한 데다, 그 젊은이가 나타나자 사방의 병사들이 바짝 긴장해서 더욱 호위에 만전을 기하려고 애쓰는 걸 보고 그의 신분을 대강 눈치 챘다. 젊은이는 아르티어스 옹에게서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침착하게 물었다.

“그대가 드래곤이십니까?”

아르티어스는 완전히 신분을 드러낸 자신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상대를 보고 약간 흥미로운 표정을 잠시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 이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내 아들은 어디 있지?”

“다크 크라이드라는 이름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자입니다. 그렇기에 그대가 찾는 아들은 아마 딴 곳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알기 로 다크 크라이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녀 한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국왕의 말에 아르티어스 옹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찾아 온 것이다.

“호오, 바로 찾아왔군. 바로 그 아이야. 내 아들이 말이야.”

아르티어스가 한 말은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여자 애가 아들이 될 수 있는가? 하지만 드래곤이 그렇다는 데야 그 누구도 감히 반론을 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내 아들은 어디 있지? 아빠가 왔으면 당연히 모습을 나타내야 정상이 아닌가?”

“그녀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치레아 총독으로 파견되어 있습니다. 이름도 다크 로니에르로 바뀌었죠.”

“흐음, 알 만하군. 그 때문에 아는 녀석이 없었군. 인간들은 왜 계급이 올라가면서 성(姓)이 계속 바뀌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쨌건 성급히 손을 쓴 점은 미안하 게 생각하네. 자네가 이 나라의 왕인가?”

“예.”

아르티어스는 젊은 황제를 흥미롭다는 듯이 잠시 바라봤다.

“자네, 결혼은 했나?”

“예, 그런데 그건 왜?”

“딸을 가진 부모는, 험험! 아, 아닐세. 잠시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야. 과연 그 아이의 윗사람이 될 만한 자격은 있는 것 같군.”

아르티어스가 손을 앞으로 뻗고 ‘공간 이동(空間移動)’이라고 용언 마법 주문을 외우자 곧이어 그의 손바닥에 희미한 빛이 일어났고, 곧이어 빛이 사라지며 그의 손바닥 위에는 1.5미터가 넘는 호화롭게 장식된 거대한 바스터 소드가 들려 있었다. 이것은 과거 아르티어스의 친구였던 레드 드래곤에게서 선물 받은 검이었고, 보물 창고 벽 높직한 곳에 걸려 있던 것인데, 그걸 이쪽으로 공간 이동시켜 온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딴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물건만을 공간 이동시켜 이쪽으로 가져오는 데는 엄청난 기억력이 요구된다. 그 물건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시술 자가 알고 있는 그 장소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처럼 움직이는 생물은 계속 좌표가 바뀌기에 강제로 공간 이동시켜 데려온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만, 물건이라면 드래곤의 엄청난 기억력으로 봤을 때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르티어스는 그 검을 젊은 황제에게 내밀었다.

“이 검은 레드 드래곤 ‘브로마네스’가 만든 마력검(魔力劍)이다. 물론 드래곤이 만든 만큼 불필요한 마나의 소모는 없지. 이걸 사용하면 이 검신에 수놓아져 있는 5사이클급까지의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네. 이 검을 받게나. 쓸데없이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본인의 미안함과 사과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게.”

황제는 아르티어스가 자신에게 검을 내미는 걸 보고 엄청나게 놀랐다. 원래가 드래곤이란 족속들은 그 광포한 성질과 엄청난 힘을 기반으로 자존심 높기로는 견줄 자가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이건 실수였어. 없었던 일로 하자구”라고 말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런 자존심 높은 드래곤이 인간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멋진 보검까지 주면서…….

드래곤이 이런 환상적인 보검(寶劍)까지 주면서 뒷수습을 하는 것은 당연히 다크 로니에르 공작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잘 아는 황제는 사과의 뜻으로 건네주는 그 검을 정중히 받았다. 그래야만 자신이 상대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또 황제가 그 검을 보고 욕심이 안 생겼다면 그것은 완전히 거짓말 이리라.

황제는 꿈을 꾸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붉은 광택을 띠는 아름다운 검신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 검은 황금을 물 쓰듯 해도 구하기 힘든 진품(眞品)이었던 것이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있었던 일은 서로 간의 오해로 빚어진 불상사였던 만큼, 아예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자네는 말귀를 잘 알아듣는군. 어쨌든 이걸로 일단락되었고……. 치레아는 어디로 가면 되지?”

“직접 찾아가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마법사를 한 명 붙여 드리겠습니다. 그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신경 써 줘서 고맙네.”

“천만에요. 제가 아끼는 부하의 아버지신데, 당연히 그 정도는 해 드려야 도리지요. 하하하.

늙은 마법사의 안내로 아르티어스는 곧장 치레아 총독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제의 칙명으로 아르티어스를 데려온 마법사는 당연히 궁정 제1마법사인 토지에르 였다. 상대가 그 이름도 공포스러운 존재인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황제에게 슬며시 귀띔 받고 토지에르는 그에게 최대한 사근사근하게 대했다.

토지에르는 다크라는 인물과 만나게 된 것은 정말이지 위대하신 신의 뜻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만큼이나 그녀의 무술 실력은 뛰어났다. 처음에는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 사탕발림으로 크라레스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지 않은가? 거기에다가 이번에는 다크의 의부(義父)라고 주장하는 드래 곤까지 나타났으니, 그녀의 이용 가치는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드래곤과 인간이 친분을 맺기는 정말이지 어려웠다. 모험가 등으로 트랜스포메이션하여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던 드래곤이 인간과 친해져 그를 도와준다는 영웅 전설은 각 나라마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흔했지만, 사실 드래곤이 인간을 도와준 적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드래곤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족의 일에 참견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래곤은 원래가 타 종족보다 자신들이 월등하게 우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타 종족들을 벌레 보듯 했다. 트랜스포메이션하여 사귄 인간이라 해도 마찬가 지였다. 그들은 그 상태에서 인간들을 사귀면서, 벌레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체험하며 즐기는 정도로만 생각했기에 사실상 실질적인 교류(交流)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손가락으로 셀 정도지만, 드래곤이 인간을 도와준 적이 있기는 했다. 그때 드러난 드래곤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그들은 간단하게 도시를 파괴하고, 거대한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만큼 엄청난 존재인 드래곤……. 그런 드래곤이 언제 사귀었는지 다크를 찾는 것이다. 잘하면 다크를 이용해 이 드 래곤을 크라레스 제국에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토지에르는 가급적 아르티어스라는 이 드래곤이 크라레스란 국가에 대해 반 감을 가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토지에르와 아르티어스는 근래에 건설한 치레아 총독부 구석에 만들어져 있는 거대한 이동 마법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동 마법진은 스바시에에서 모든 타이 탄을 한 곳에 집중하여 전투를 하는 것이 엄청난 효과가 있었음을 실감한 후, 요즘 들어 크라레스 제국이 곳곳에 건설하거나 건설 중인 이동 마법진 중의 하나였다. “저쪽입니다, 아르티어스 님.”

아르티어스는 멀찍이 보이는 거대한 건물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아들이 이런 근사한 곳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매우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호오, 제법 괜찮은 곳이군.”

“예, 과거 치레아 왕궁이었습니다만, 병합 후 치레아 총독 관저로 쓰고 있습니다.”

이때 이들이 총독 관저로 온다는 긴급 연락을 받은 무사 한 명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금발을 조금 길게 기른 젊은이였는데, 꽤나 무술을 익힌 듯 그렇게 달렸 음에도 불구하고 호흡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재빨리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토지에르 경. 오신다는 연락을 방금 받았습니다.”

“공작 전하께선 어디에 계시나? 멀리서 아버님이 찾아오셨다고 전했겠지?”

토지에르의 물음에 기사는 조금 머뭇거렸다.

“저, 그게 말입니다. 토지에르 경. 지금 전하께서는 여기에 안 계십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예, 전하께선 모든 것을 부총독 각하께 일임하신 후, 보름쯤 전에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그 말에 토지에르의 안색이 핼쑥해지더니 다그쳐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총독 전하께서 여행을 떠나셨는데, 왜 왕궁에는 보고하지 않았지?”

“저 그게, 잠시 여행을 떠났다 올 테니, 폐하께는 알리지 말라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곧 오실 줄 알았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기다리다 보니 벌써 보름 O…….”

“이런 빌어먹을! 부총독은 어디 있나?”

“따라오십시오, 토지에르 경. 이쪽입니다.”

토지에르는 아르티어스와 함께 그 기사의 뒤를 따라가면서 물었다.

“호위는 데려가셨나?”

“예, 기사 두 명이 따라갔습니다, 토지에르 경.”

“기사? 그래듀에이트인가?”

“아닙니다.”

“뭐야? 그럼 너희들은 공작 전하께서 호위도 변변치 않은 것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시겠다는데 반대도 안 했다는 것이냐? 응?”

토지에르가 죄도 없는 기사를 닥달하자, 아르티어스가 토지에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토닥거렸다. 자신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사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 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해 두게나. 그 녀석이 한 번 결정했을 때는 그 누구도 뒤집을 수 없다네. 정말 고집이 보통 센 게 아니거든. 응? 그런데 저건 뭔가? 드래곤을 저렇게 재미있게 그려 놓은 것은 정말 처음 보는군.”

아르티어스가 자신을 위로하자 적이 안심하고 있던 토지에르의 얼굴색이 완전히 하얗게 질려 버렸다.

“저걸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니……. 큰일 났다.’

토지에르는 아르티어스가 가리키고 있는 총독부 건물 앞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로니에르 공작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처음에 로니에르 공작이 그걸 문장으로 선택했을 때 별 괴상한 취향도 다 있다고 생각했었다. 드래곤은 문장에 꽤나 자주 쓰이는 단골손님이었지만, 저렇듯 기괴하게 그리 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크의 아버지라는 드래곤을 만나고 저 문장을 보는 순간, 토지에르는 그 문장이 뜻하는 바를 얼핏 짐작할 수 있었고, 정말이지 그 때문에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기절할 시간 여유조차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잘 둘러 대서 아르티어스가 자신이 짐작한 것과 같은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하 지만..

“저건 총독 전하의 문장(文狀)입니다. 로니에르라는 성을 황제 폐하께 하사받으시면서 선택하셨다고 하더군요. 총독 전하께서는 저 문장이 매우 마음에 드시는지 화가(畵家)를 여러 명 불러 들여 총독부 건물 앞에 저렇게 크게 그려 놓으셨지요.”

토지에르가 뭔가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기도 전에 눈치 없는 기사는 진실을 말하고야 말았고, 그 설명을 들은 아르티어스의 얼굴은 그야말로 똥색으로 바뀌기 시작 했다. 저 그림이 나타내는 게 뭔지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노무 자식이!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하다니!”

토지에르는 아르티어스의 반응으로 그가 골드 드래곤이며, 저 문장이 아르티어스를 비꼬아 놓은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르티어 스가 성질이라도 부리는 날에는 저 문장만 박살 나는 것이 아니라 문장 뒤에 있는 화려한 총독부 건물이 통째로 날아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에르는 순간적 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순간적으로 한 가지 잔꾀를 생각해 내고는 뻔뻔스럽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저, 고정하십시오. 아르티어스 님. 무슨 일이십니까? 뭔가 저 녀석이 실례되는 말이라도?”

“끄응……. 그게, 그러니까, 에…, 아들 녀석 보려고 먼 길을 찾아왔는데, 만나지 못하니 신경질이 나서 그러네. 신경 쓰지 말게나.”

아르티어스 옹께서는 당연히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아들 녀석이 제발 여자다워지라고 잔소리 좀 한 걸 가지고 이렇듯 치졸하게 복수를 한 것을 떠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이 녀석들은 자신이 골드 드래곤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은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는 궁색 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토지에르는 아르티어스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화를 억누르는 것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또다시 능청스레 말했다.

“예, 저희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사전에 알려드리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토지에르 일행이 기사가 안내한 총독 집무실로 들어서자, 그곳에 앉아 있던 50세 정도의 노기사(老騎士)가 재빨리 일어서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 또한 이번 방문 객이 어떤 인물들인지 벌써 본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토지에르 궁정 제1마법사가 동행하고 있으니 자연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부총독인 카알 폰 카슬레이 백작입니다. 카알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카슬레이 백작은 정중하게 푹신한 의자를 권했지만 아르티어스의 눈길은 카슬레이의 옷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황금색 드래곤의 문장이 백작의 가슴에 큼 직하니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걸 보기만 해도 평소에 아들놈이 가슴에 문장을 그려 붙인 옷을 입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아르티어스 옹의 머릿속에 떠 올랐고, 그러자 피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이놈의 시키를……!?

“앉으시지요. 차를 내오도록 이르겠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르티어스 옹.

“으응? 응.”

아르티어스와 토지에르가 자리에 앉자 카슬레이는 정중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공작 전하께선 어디로 가셨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로 수소문해 본 결과 아르곤 제국으로 가신 것 같습니다. 벌써 일주일 전쯤에 친위 기사단 소속 그래듀에이트 세 명과 마법사 한 명을 아르곤으로 급파했습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아냐, 여기서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도 아들 녀석을 찾으러 그 아르곤이란 곳에 가 봐야겠어.”

“그러시다면 잠시 기다리시지요. 조금 있으면 파견대로부터 연락이 올 겁니다. 하루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연락을 해 오니까요. 그들과 공간 이동해서 합류하시면 혼자 가시는 것보다 공작 전하를 찾기 한결 수월하실 겁니다.”

“흐음, 그편이 좋을 것 같군.”

아르티어스의 말에 토지에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직접 모셔다 드려야 하겠지만, 본국에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이라서 말입니다.”

“상관없네. 난 혼자 다니는 걸 더 좋아하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