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10화 – 무서운 쥐새끼들의 침입

무서운 쥐새끼들의 침입

국경 근처가 잘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다섯 명의 인원들이 지도를 펴 놓고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여행자처럼 담요 대신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두터운 로브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국경은 이미 폐쇄된 지 며칠이나 지난 상태였기에 여행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저곳인가?”

“예, 저곳이 국경이옵니다, 전하.”

국경이라고 해봐야 다른 곳과 그렇게 크게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잘 포장된 도로 근처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알렌 왕국의 검문소와 코린트 제국의 검문소는 1백 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었고, 두 곳 다 서너 명 남짓의 인원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양국을 관 통하는 이곳 주 도로(主道路)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인원이 통과했기에 위법 물건 따위가 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비병이 수십 명씩 배치되었지만, 지금은 양국의 국경이 통제되어 더 이상 통행인이 없어지자 경비원의 수를 줄인 것이다.

“국경 치고는 너무 인적이 없는 것 같군. 녀석들의 최전선 기지는 어디지?”

“옛, 이곳에서 2킬로미터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한 카라엔 요새이옵니다. 코린트는 이곳 국경 검문소보다는 카라엔 요새에서 검문을 한다고 여 기 적혀 있사옵니다. 주둔 병력은 1개 여단 정도이옵니다.”

“카라엔 요새라. 그건 그렇고 정말 잘 포장된 도로군.”

“옛, 도로의 너비만 봐도 열 명의 중장 보병이 횡대로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이옵니다. 이렇게 넓은 포장도로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아마도 기사단은 몰라도 병력의 90퍼센트 이상은 이곳 크라무스 대로를 따라 이동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옵니다.”

“맞는 말이다. 놈들의 병력이 많은 만큼 잔재주 부리지 말고 힘으로 밀어붙여 준다면 서로가 편하겠는데 말이야. 안 그런가?”

“옛, 전하.”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자.”

“예? 하지만 너무 위험하옵니다, 전하.”

“상관없어. 말은 여기다 세워 놓고 가기로 하지. 믹, 자네가 여기를 지키도록.”

“예, 전하.”

믹이라고 불린 사내는 다섯 필의 말을 돌보기 위해 남았고, 나머지 넷은 국경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이 달려가는 속도는 도저히 인 간들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거의 시속 1백 킬로미터는 될 것 같은 엄청난 속도. 그들은 도로 위를 달리지 않고 국경 경비대를 피해서 국경을 넘었다.

“저곳이 카라엔 요새이옵니다.”

“상당한 규모로군.”

“옛, 전하. 이걸 쓰시지요.”

부하가 건네는 길쭉한 원통형의 막대기를 보며 다크는 물었다.

“어? 이게 뭔가?”

“예? 이걸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사옵니까? 망원경이라고 하는 것이옵니다. 멀리 있는 것을 보는 데는 그만이지요.”

“어떻게 쓰는 거지?”

“이렇게 해서 초점을 맞추면 되옵니다.”

부하는 슬쩍 원통의 길이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고, 다크는 부하가 가르쳐 주는 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도중에 선명하게 보이는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오, 대단하군. 아주 잘 보이는데? 이런 물건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

“흔히 사용되는 물건은 아니옵니다. 매우 고가의 물건인 데다가 구하기도 쉽지 않지요. 각국의 군대나 첩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아옵니다.”

“그래. 요새가 대단히 큰 규모로군. 하지만 군기가 그렇게 엄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보초병들끼리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승리의 여신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럴 만도 하겠죠.”

“이거 가지고는 잘 모르겠는데?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아니, 놈들이 집결 중이라는 바실리시에도 한번 가 보기로 하지. 얼마나 호화찬란하게 하고 있 는지 한번 구경을 해 주는 게 예의 아니겠어?”

“전하, 아니 되옵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부하는 아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상관의 검술 실력은 최고 중의 최고.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녀가 다칠 확률은 적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뭐야?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가 어떻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네놈은 그곳에 나를 능가하는 실력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부하는 일단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검술 실력 하나만으로 공작에 추대된 인물. 말로만 듣던 소드 마스터. 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상관이 검 쓰는 것을 본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상관을 아무리 자세히 봐도 뛰어난 검객에서 뿜어 나오는 그런 강인한 힘 따위는 느껴 지지 않았다. 그들이 봤을 때 입만 거친 예쁘장한 계집아이에 불과했기에 도대체가 신뢰성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전하. 하지만 놈들의 기습을 당할 수도 있고, 마법사를 만날 수도 있사옵니다. 마법사의 기습 공격은 위험하옵니다, 전하.” “헛소리 말고 가자.”

소녀가 먼저 달려가기 시작하자 그 부하들도 마지못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툭!

자그마한 돌멩이가 자신의 주위에 떨어지자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는 돌이 날아온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물론 자신의 동료 가 살짝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동료는 손짓으로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그는 서둘러서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상당한 속도로 달려 가는 사람이 네 명 있었다.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장이나 인원 편성 따위가 어떤지는 보이지도 않지만 저렇게 달려가는 것을 보면 모두 기사들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마법사를 향해 속삭였다.

“본대에 연락해라. 박쥐가 들어왔다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마법사가 적을 보기 위해 시선을 들었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 수련을 거친 기사의 시력은 마법사보다 훨씬 뛰 어났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뷰 마나 포스의 주문을 사용해서 상대를 파악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보다는 상부에 보고를 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인원은 네 명. 모두 기사다. 검은색 로브를 걸치고 있다. 저 녀석들은 곧장 바실리시로 달려가고 있다. 달리는 속도로 미루어봤을 때 아마 30분 후 에는 도착하게 될 것 같아. 그런데, 저놈들도 되게 멍청하군. 정찰을 하겠다는 놈들이 저렇게 백주 대낮에 달려가는 것은 정찰대 노릇을 하면서 처음 보겠군. 멍청한…….”

하지만 그의 말은 여기서 끝났다. 왜냐하면 바로 그 네 놈이 자신들이 있는 곳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 중의 한 명은 정말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남은 세 명과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들킨 건가? 이렇게 먼 거리에서? 제길!”

사내는 재빨리 자신의 품속에서 원통형 막대기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그런 다음 그 막대기를 들고는 막대기 아래쪽에 붙어 있는 작은 구조물을 힘 껏 당겼다. 그러자 곧장 푸쉬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신호탄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구조물을 당기면 그 힘으로 심지가 점화 되는 방식이었기에 빨리 발사할 수 있는 이점도 있었지만, 이 신호탄은 밤에는 잘 보이지만 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내는 주위 에 퍼져 있는 다른 정찰 매복조가 그것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날린 것이지만 동료들이 밝은 대낮에 그걸 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신호탄을 쏜 후 사내는 검을 뽑아 들었다. 상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먼저 자신의 동료가 상대를 저지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상대는 그걸 무시하고 달려드는 듯 보였다. 그사이에 금빛 같은 것이 번쩍였고, 곧 뛰어들었던 동료의 허리가 토막 나며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상대는 정말 엄청난 실력을 가진 검객이었다. ‘잘하면 대어(大魚)를 잡는 공훈을 세울 수도 있겠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상대는 벌 써 자신에게 육박해 오고 있었다.

“컥! 안 보여…….”

두 번째 사내가 쓰러졌을 때, 마법사는 한참 주문을 외워 대고 있었다.

“멈춰!”

하지만 마법사는 주문을 계속 외웠다. 그러자 상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툭…………

마법사의 목이 떨어져 나가자 거의 완성 직전에 있었던 주문은 파괴되어 집중되었던 마나는 자연스럽게 대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다크는 금빛 나 는 검을 검집에 천천히 밀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조심스럽게 가야겠군. 저놈들이 있다는 것은 바실리시가 멀지 않다는 말인가?”

뒤늦게 도착한 부하들은 이리저리 시체를 살펴보고 있는 상관을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바라봤다. 소드 마스터. 그게 엄청난 실력을 가진 검객들만 이 가지는 호칭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달려가는 속도도 무시무시했지만, 단칼에 상대를 죽이는 무서운 검술.

“이제부터는 조심해서 가야겠다. 저 녀석이 통신 마법을 쓴답시고 마나를 집중시키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할 뻔했다. 나중에 돌아간 후에 우리 쪽 정찰대 놈들에게도 너무 성급하게 마법을 쓰지 말라고 전해라.”

“옛, 전하.”

다크 일행은 시체를 철저하게 뒤진 후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이곳에는 방문객 다섯 명이 도착했다. 그들은 시체들을 살펴보며 인상

을 찌푸렸다.

“대단한 실력이군. 검을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모두들 당했어.”

“하지만 대장님, 정찰 나오는 기사들은 실력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게 정석입니다.”

“아니야, 놈은 진짜다. 아마 네 놈인 것 같군, 그렇지 않나?”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중 한 명의 발자국은 굉장히 작은데, 아마 여자인 것 같군요.”

“그래 잘 봤다. 여자야. 사령부에 긴급 통신을 넣어라. 쥐새끼 네 마리가 잠입했다고 말이야.”

“옛!”

마법사는 목이 날아간 시체를 치우고 거기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 앞에 앉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신호탄이군. 으음, 이 위치에서 신호탄을 쏜다면 밤에나 보일까? 저쪽에 있는 정찰조가 알아보기는 힘들었겠는데?”

“옛.”

이때 저 밑쪽으로 내려갔던 두 명이 올라왔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이리로 달려왔습니다.”

“뭐야? 정확한가?”

“예, 발자국의 간격을 봤을 때 상당한 속도로 달린 것이 확실합니다. 거의 전력 질주에 가까운 보폭입니다. 그런데 보폭의 거리로 봤을 때 그래듀에 이트, 그것도 상위급에 랭크되는 실력자들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보폭, 검술. 모든 게 놈들의 실력을 말해 주고 있어. 그런데 내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 먼 거리에서 어떻게 이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바꿔 달려왔지?”

“글쎄요. 설마 눈치 챈 것은 아닐까요?”

“이봐, 자네는 저 먼 거리에서 정신없이 달리면서 이쪽에 어떤 놈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나?”

“아뇨. 하지만 여기 숨어 있던 녀석들이 혹시 실수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실수로 검에서 빛이 반사되었다든지, 예, 어떤 물체에 반사된 빛을 놈들 이 우연히 봤을 수도 있죠.”

“음. 가능성은 낮지만 그럴 수도 있겠군.”

이때 마법사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백작님, 사령부 연결되었습니다. 혹시 더 전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 말에 우두머리인 듯 보이는 그 사내는 수정 구슬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후 수정 구슬에 비춰지고 있는 상대방 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쥐새끼는 남자 셋, 여자 한 명. 모두들 대단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놈들이다. 그리고 그중 한 명 정도는 대단한 실력인 것 같아. 혹시 딴 정찰조에서 연락 들어온 것은 없나?”

“없습니다. 백작님.”

“놈들의 실력으로 봤을 때 타이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사단의 투입을 원한다고 후작 각하께 전하도록!”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여기 76정찰조 매복 위치에서 바실리시 쪽 직선 거리상에 몇 개의 정찰조가 배치되어 있지?”

“12개입니다.”

“좋아. 그 12개 정찰조가 매복한 곳을 향해 기사단을 보내라고 말씀드려라. 빨리.”

“옛!”

“자, 우리도 움직이기로 하지.”

시체들의 몸을 수색한 후 또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소녀를 향해 엘터는 재차 말했다.

“더 이상은 위험하옵니다, 공작 전하.”

“뭐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것이지?”

“오는 도중에 벌써 일곱 개 정찰조에 걸렸습니다. 모두 다 죽였다고 하지만 곧 우리들의 행적이 밝혀질 것이옵니다. 더 이상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 위이옵니다.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주시옵소서.”

“자네들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하나?”

“예.”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돌아가기로 하자. 엘터 자네가 귀로를 생각해 봐.”

“예, 여기서 남쪽으로 3킬로미터 정도 내려간 후 동쪽으로 돌아서 귀환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3킬로미터 정도 내려갈 정신이 있을까? 지금까지의 예로 봤을 때 거의 1킬로미터 거리로 1개 조씩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이제부터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상대를 보자마자 그렇게 죽이지 마시구요.”

“좋아. 하지만 그건 놈들이 이쪽을 눈치 못 챘을 때에 한해서야. 가자구.”

이제 백작 일행은 사령부 쪽에서 달려와 합류한 인원들까지 모두 35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처음에 전멸당한 제76 정찰조에서 직선거리에 있는 각 매복조에 다섯 명씩의 기사들을 투입했는데, 그들이 모두 뭉쳐 버린 것이다.

“귀관께서도 놈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예, 저희들이 연락을 받고 왔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단일 국가 소속도 아니고, 이렇게 모두들 쉬시다가 달려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도 황망 중에 명령을 받고 출발했기에 마법사를 데려오지도 못했고, 그래서 이들의 시체를 보면서 어떻게 행동을 할까 망설이던 중입니다.” “잘되었군요. 저와 함께 행동하시면 될 겁니다. 일단은 쥐새끼들을 잡아야지요.”

백작은 서둘러서 무리들을 이끌고 놈들을 향해 달려갔다. 물론 모인 인원들을 통솔할 권한 따위가 백작에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작 일행은 그날 지명된 다섯 개의 순찰조들 중의 하나였다. 이렇듯 수십 개 국이 약간씩의 병력을 보내 주어 구성되어 있는 연합군 체계에서는 일 단 지휘자가 있어야 했고, 정식으로 놈들을 추격해야 하는 명령을 받은 것은 백작 일행이었다. 나머지는 그 백작을 도와주기 위해 파견된 형식이었기 에 지휘권을 놓고 군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백작 일행의 인물들도 추격이 계속되면서 처음에는 토끼 사냥하는 기분으로 따라다니다가 점차로 마음이 바뀌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솜씨야. 이 친구는 쓰러져 있는 모양새를 보니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갔구먼.”

“저기 있는 마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작님, 추격을 계속해야 할까요? 이게 제일 마지막에 포진하고 있던 정찰조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놈들이 도망친 방향을 추정해 보면 아르곤 쪽입니다.”

“시체를 보면 죽은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시체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을 정도지요. 이런 상태에서 추격을 포기한다면 남들의 비웃음거리밖 에 안 됩니다. 못 잡더라도 추격을 해야만 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전력으로 뜁시다.”

20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사들의 발걸음 속도로 봤을 때 거의 30킬로미터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것도 느린 속도로 움직 이는 것이 아니라 전력으로 달려도 거리를 줄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그런 상대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죽은 시체를 봤을 때 그들은 포기할 수 없 었다. 만약 거의 4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추격을 해서 겨우 네 명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20분 전쯤에 출발한 인물들을 잡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명예뿐 아니라 자신들의 조국에까지 먹칠을 할 여지가 있었다.

그들이 추격을 단념한 곳은 아르곤 제국과의 국경선이었다. 놈들이 만약 알렌 왕국으로 도망쳤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었겠지 만, 상대가 아르곤으로 도망쳐 버렸기에 그놈들이 알렌 쪽, 아마도 크루마 지원군 쪽의 정찰대라고 짐작은 되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살라만더 기사단, 정식으로 말한다면 크라레스 유령 기사단 크루마 파견대 내에서는 은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둘씩, 혹은 셋씩 모여 쑤군거리 면서 퍼져 나가는 소문. 그건 딴 사람들에게는 별로 해당 사항이 없을지 모르지만 살라만더 기사단 소속의 대원들에게는 대단한 낭보(朗報)였다.

“글쎄 말이야. 세상에 나는 달리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그 먼 거리에서 놈들을 포착하고는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시더니 단칼에 끝장을 내시더군.”

“정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렇게 해서 죽인 놈들의 정찰조만 해도 15개는 될 걸? 기사 30명에 마법사 15명이야. 놈들의 품속을 뒤져서 가져온 지 도가 몇 장인지 아그리오스 백작님께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잖아.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소문대로 그렇게 검술이 대단해?”

“내 생전 그렇게 빠른 검술은 구경도 해 본 적이 없어. 한 칼에 한 명씩. 정말 정확하더군. 소드 마스터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했었는데, 눈으로 보 니까 정말 끝내 주더군. 저런 분이 우리 사령관이시니까 아마 승리는 보장된 거나 다름없지 않겠어?”

타이탄 자체가 뛰어난 무사가 탈수록 괴력을 발휘하는 무기였고, 또 타이탄을 상대할 무기는 타이탄뿐이었기에 이 시대의 모든 전쟁은 타이탄의 숫 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각국이 타이탄을 아무리 많이 끌어 모은다고 하더라도 수백 대 정도가 고작이었기에 전략과 전술이 그렇게 발전하지 못한다는 단점 또한 안고 있었다. 기사단이 나간다면 그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과 마법사로 구성된 정찰조가 쫙 깔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습을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기에 몇몇 예외의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타이탄 대 타이탄의 육박전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