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0권 5화 – 전서응 날다!

비뢰도 10권 5화 – 전서응 날다!

전서응 날다!

푸드드득! 푸드드득!

각 문파와 무림맹을 향한 전서구들과 전서응들이 비응각에서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들은 각각 전통을 다리에 매달고 바람을 타며 창공 위를 날갯짓하여 날아갔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을 목 빼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들이 전할 소식은 바로 화산규약지회 대표 선발전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 은 모두 이번에 치러질 환마동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므로, 조속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정해진 날짜까지 천무학관으로 오라는 내용의 전서였다. 오늘 이때를 기다리 며 기량을 닦아온 수많은 무사들이 환호성을 내지를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우 위험 가능성 때문에 이 반가 운 소식을 기피할 사람은 없었다.

전서응들은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소림, 무당, 화산, 아미 등의 구대문파와 개방, 남궁세가, 사천당가를 포함한 팔대세가 그리고 그 외의 각 중소방파로 빠짐없 이 날아갔다.

이제 본격적인 화산규약지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앞으로 각 문파에서 엄선된 정예들이 천무학관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들은 바로 모두가 다 예전에 천무학관을 졸업한 선배들이었다.

‘천무학관의 모든 과정을 수료한 선배들이 대거 몰려든다!’

이것은 늑기한과 고약한의 신경전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단순한 신경전이 아니었다. 18년 만에 다시 개방되는 환마동이었다.

화산규약지회에 참석할 자격을 지닌 사람은 현 천무학관도들뿐만이 아니었다. 자격 시험을 통과하는 30세 이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 시험에 참석할 수 있 는 자격이 주어졌다. 즉 천무학관의 졸업생들도 이 시험에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대거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개중에는 자신들의 사형이나 사저, 혹은 혈육들이 있 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에 양보란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천무학관의 모든 수업 과정을 거친 이들이었다. 그들 또한 경쟁자였다. 누구보다 강하고 까다로운 경쟁자였다. 즉 현 천무학관 관 도들은 자신들이 화산규약지회에 나가기 위해 선배들과 기량을 겨루어 그들을 능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화산규약지회의 대표 선발전은 어려웠다.

“괴물들과 빌어먹을 자식들이 대거 몰려들겠군.”

못마땅한 얼굴로 장홍이 중얼거렸다.

“원치도 않는데 밉상들을 봐야 하다니……. 내 비위는 그만큼 좋지 못하다고. 젠장, 젠장, 젠장! 하다못해 그 녀석만이라도 낯짝을 안 봤으면 원이 없겠건 만…….?

계속해서 술을 홀짝홀짝거리며 중얼중얼거리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불안과 짜증으로 점철된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거지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효룡과 윤준호 로서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다시 장홍이 쭈욱 한 잔을 들이켰다. 윤준호가 보기에 너무 폭음을 하는 것 같았다.

“저… 저런!”

윤준호가 안타까운 듯 소리를 질렀다.

“그냥 냅두자고! 저러다가 취하면 저 자리에서 쓰러져 자겠지.”

효룡의 의견에 윤준호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사람은 때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감싸줄 때가 아닌 내버려둘 때였다. “하지만 특이한 일이군.”

효룡 역시 내색하지 않았을 뿐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연장자인 형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장홍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항상 여유 넘치던 그 모습은 온데간 데없었다.

“저대로 놔두어도 괜찮을까요?”

근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윤준호였다.

““내버려 두기로 약속했잖아. 사람은 누구나 하나 둘쯤 가슴속에 남들에게 말 못할 사정을 묻어두고 있지. 그럴 때는 혼자 내버려두는 게 최고야.”

지금 장홍에게는 술만이 유일한 위안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폭음을 하는지는 윤준호도 효룡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심히 길을 걸어가는 사내는 길 가던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번 돌아볼 정도로 헌앙한 기도를 가진 장부였다. 열에 여덟은 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 기도에 감탄할 정도였다.

청년은 비취색 취의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그의 얼굴을 더욱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는 순백의 검이 메어져 있었는데 그 끝에는 특이하게도 적(赤), 청(靑), 홍(紅), 황(黃)의 사색 수실이 매달려 있었다.

청년의 발걸음이 한곳에 이르러 우뚝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정문의 커다란 현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체로 ‘천무학관(天武學 館)’이라 적혀 있었다.

“이곳도 오래간만이로군!”

그의 목소리에서는 정이 느껴졌다. 그는 거침없이 발을 옮겨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행보가 얼마나 거침이 없었는가 하면 정문을 지키는 위병들조차도 신원 확인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였다.

보초 근무를 서고 있던 천무학관 관도 둘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멈춰라!”

챙챙!

정문을 지키던 정일건과 정대추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청년은 유연한 신법으로 그 둘 사이를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한 줄기 바람이 자신들을 지나간 듯한 느 낌을 받았다. 그리고 너무나 맥없이 돌파당한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고수다!”

정일건이 비상 호각을 꺼내들어 불려던 참이었다.

“하하하하하. 미안, 미안.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 장난 좀 쳤다네. 하하하하! 놀랐다면 미안하이. 내 사과하지! 그러니 그 시끄러운 걸 불 생각은 접는 게 어떻겠나?”

청년이 호탕하게 웃으며 정일건의 행동을 막았다. 두 사람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다. 취의 청년이 품속에서 은(銀牌)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패를 보 자마자 두 사람은 얼른 포권하며 예를 취했다.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선배님!”

취의 청년이 내보인 패는 바로 그가 무림맹 소속임을 뜻하는 패였다. 게다가 그 패는 철패(鐵牌)도 동패(銅牌)도 아닌 은패였다. 그만큼 청년의 신분이 높다는 것 을 뜻했다. 게다가 그 안에 새겨진 천무검룡(天武劍龍)의 문양은 그가 바로 천무학관의 졸업생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혀 있는 그의 이름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더욱더 놀라야만 했다.

“이제 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그럼 수고하게나.”

취의 청년의 그림자가 멀어져 가자 정대추가 정일건에게 약간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 저 사람이 바로!”

정일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 사람이 틀림없어. 저 검에 매달린 사색 수실을 보고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글쎄 말이야. 이런 쓸모없이 한심한 눈깔을 보았나. 저 사람이 바로 전번 화산규약지회의 사강(强) 중 한 명인 취영검(劍) 신유성이 틀림없어.” 그 두 사람의 눈에 선망의 빛이 어른거렸다. 그 청년은 바로 자신들이 되고자 하는 목표였던 것이다. 취의 청년은 바로 그들의 우상 중 한 사람이었다.

관주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신유성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자가 방금 그의 곁을 스친 것이다.

‘서… 설마?”

신유성의 뇌리에 문득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자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보다는 훨씬 어리고 또 순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누구랑 많이 닮았군. 자네!”

효룡은 느닷없이 나타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청년을 보고 놀랐다. 그는 은설란, 모용휘와 함께 식당으로 가던 길이었다.

“누구시죠?”

효룡이 물었다. 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아니 자네 날 모른단 말인가? 아니 어떻게 나처럼 유명인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다 좋은데 신유성은 가끔씩 경박한 면이 돌발적으로 나타난다는 게 문제였다.

“본 학관의 졸업생이자 전회 화산규약지회의 4강 진출자인 날 모른다는 건 문제가 있지. 자네 정말 날 모르나? 난 이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초유명 한데? 날 모르면 간세로 취급될 정도인데 나를 정말, 진짜로 모른단 말인가?”

그의 호들갑은 멈출 줄을 몰랐다.

“옛?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박하긴 해도 악의 없는 농(弄)이었지만 화들짝 놀라버린 효룡이었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좀 침착하게. 쯧쯧, 자네의 그런 어수룩한 행동을 보고 누가 간세로 생각하겠냐마는……. 너무 어수룩하군.”

“죄…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효룡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악의가 없는 게 가장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다… 당신은…….”

그제야 남자가 누군지 눈치 챈 은설란은 깜짝 놀랐다. 오히려 의아한 것은 신유성 쪽이었다.

“소저, 혹시 저와 만나신 적이 있었던가요? 이상하군요. 소저 정도의 눈부신 미녀를 제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요?”

“아… 아니에요. 소문으로만 듣던 취영검 신유성 소협을 처음 봐서 놀랐을 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과연 듣던 대로 훌륭한 기도로군요.”

그녀의 태도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칠칠치 못한 신유성은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제야 은설란을 자세히 본 신유성은 그 미모에 입을 쩌억 벌리며 감탄했다. 미녀를 보고 헤벌쭉하는 지금 그의 모습을 보고 누가 전회 화산규약지회 4강 진출자라고 여기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신유성은 오히려 헤벌쭉거리며 싱글벙글 웃었다. 은설란 같은 초절정 미녀가 자신을 확실히 인정해 주는데 기분 나빠할 이 누가 있겠는가?

“하하하하하, 별 말씀을! 오늘 소저께서 저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오늘을 기념해서 앞으로 일주일 간은 세수를 안 해야겠습니다. 하하하하하.” “호호호, 관심은 고맙지만 작업은 나중에 해주세요.”

은설란이 생글생글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작업에 들어가시기 전에는 꼭 절차를 밟으셔야 하거든요?”

“절차요? 오오, 그런 것도 있나요?”

신유성은 호기심이 동하는 모양이었다.

“헉!”

모용휘는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은설란이 옆에 있던 자신의 팔짱을 끼었던 것이다. 은설란은 활짝 웃었다. 마치 백만송이 꽃이 만개하는 듯한 미소였다. “저… 는 소저… 아니… 그게…….?

그녀의 말과 돌발적인 행동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모용휘는 당황스러웠다.

“호오, ‘정인(人)’인가요?”

신유성이 모용휘의 아래위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모용휘는 무척이나 불쾌한 기분이었다.

“뭡니까? 그렇게 사람의 허락도 받지 않고 훑어보다니. 너무 무례한 행동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아, 미안하네. 앞으로 한 여인을 두고 나와 경쟁자가 될 남자를 살펴본 것뿐이야. 불쾌했다면 미안하군.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융통성을 모른다더니……. 자네의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검기를 보니 자네가 바로 요즘 강호에 이름을 날리는 칠절신검 모용휘로군.”

신유성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다. 말로만 미안하다 해도 사과가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것은 정말 크나큰 오산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사과는 사과일 수가 없다.

신유성이 금세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자 모용휘는 깜짝 놀랐다. 한없이 가볍기만 한 사람 같았는데 눈썰미는 예리했던 것이다.

“저에게 소저의 방명을 알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신유성이 지나칠 정도로 정중하게 물었다

“인사가 늦었군요. 흑천맹에서 조사 임무를 띠고 파견된 은설란이라고 합니다.”

“아! 소저가 바로 그!”

그제야 그도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놀라운 신분에도 불구하고 크게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

“하하하하.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출신이나 소속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호호호. 왜 제가 걱정을 해야 될까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이죠.”

은설란이 웃으며 재치 있게 그의 말을 받아넘겼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하하하하.”

신유성은 멋쩍게 한 번 웃고 나서, 이번에는 모용휘를 바라보고 포권하며 말했다.

“앞으로 우리 둘은 경쟁자가 될 모양이니 잘 부탁하겠네. 우리 둘 모두 최선을 다하세나.”

“예……? 에예…….”

얼떨결에 같이 인사해 버린 모용휘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어이! 효룡, 휘이! 밥 먹으러 가는 거라면 같이…….”

효룡의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은 바로 장홍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다가오며 소리치던 장홍의 목소리가 한순간 멈추었다. 그것은 바로 장홍이 신유성을 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저… 저 빌어먹을 녀석이 왜 여기에?”

효룡의 눈이 부릅떠졌다.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녀석 중 하나를 본 것이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신유성이 장홍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그 역시 장홍을 어디선가 만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장홍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남자의 추파는 사양하는 바입니다. 선배님! 은 소저가 거절했다 해서 저한테 이러시면 곤란하지요.”

“내가 미쳤다고 자네 같은 늙은 아저씨에게 추파를 던지겠나? 사람 모함하지 말게!”

순간 신유성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머, 그런 취미셨어요? 참 고상한 취미시네요.”

옆에서 은설란까지 거들자 신유성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효룡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설마 나한테 아는 척을 한 것도 그럼……?”

효룡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모용휘도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 저…….”

신유성은 갑작스런 오해의 물결 속에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으니 다음에 다시 차분한 마음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서둘러 인사를 한 신유성이 그들 앞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꼬시다!”

장홍이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말했다.

“저 녀석만 없었어도 저 네 개의 수실은……..

다시 떠올려도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효룡과 은설란과 장홍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쿡!”

은설란은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큭!”

효룡도 마찬가지였다.

“…..??”

모용휘만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호호호호!”

동시에 터져 나온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한참 동안이나 배꼽을 잡고 웃었다.

“효공자, 저 사람을 조심하세요.”

“네?”

그녀의 얼굴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방금 전 그와 함께 배꼽을 잡고 웃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가 않는 변모였다. 모용휘와 장홍은 용무를 핑계로 잠시 먼저 보낸 터였다.

“저 사람이 바로 저번 화산규약지회 때, 형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중 한 명이었던 사람입니다. 겉보기에는 가벼워 보여도 그 검기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형님 과 막상막하의 기량을 선보였었죠. 간발의 차로 패하긴 했지만 형님께서 여러 번 저 자의 검에 낭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저렇게 바람둥이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결 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저자가 들고 있는 검병에 달린 사색 수실이야말로 그가 화산지회 4강 진출자라는 증명이죠. 그리고 그는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절대 요행으로 얻은 것이 아니죠.”

효룡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형과 비등한 실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사내를 과연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비류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동안 자신이 지내 왔던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꽤나 신세를 진 처지였다.

“드디어 떠나는가?”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허 의원님.”

“허허허,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거의 자연 치유에 의해 낫지 않았나.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네. 이제 몸은 괜찮고?”

“예, 많이 좋아졌습니다.”

비류연이 대답하자 허주운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떠올랐다.

“그렇게 허약한 몸으로 환마동 시험을 치를 수 있겠는가?”

허주운의 말에서 잔정이 묻어 나왔다.

“열심히 노력해야죠. 게다가 만일 잘못되더라도 허 의원님이 계시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비류연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이런. 늙은이 고생시킬 생각하지 말고 몸조리 잘하게. 항상 건강 조심하고!”

“네!”

허주운은 무척이나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비류연은 주섬주섬 책과 여타 물건을 챙겨 짐을 쌌다. 그날까지 비류연은 병실에서 수련은 제쳐두고 줄곧 놀기만 했다. 밤이면 밤마다 월담이 그의 일상 생활이었 다. 좀더 완벽한 외유(外遊)를 위해 여러 가지 잠행술을 서책을 스승 삼아 익히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었다.

“그럼 가보게나.”

“예, 수고하십시오! 이만 가보겠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한 비류연은 성큼성큼 발을 움직여 의약전 밖으로 나왔다. 찬연한 햇살이 그의 온몸에 스며들었다.

“아아, 한낮의 태양 아래를 당당하게 걸어본 게 그 얼마 만인가…….”

비류연은 감개무량했다. 창백하던 뺨에 분홍빛 혈색이 돌아오고 약간 앞으로 구부정하던 어깨와 등이 꼿꼿이 펴졌다. 은은한 달이 순식간에 타오르는 태양으로 바 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병약한 미소년 연기는 너무 힘들단 말이야…….”

체질에 맞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니 온몸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그런 설정은 되도록 자제해야겠다고 그는 결심했다.

꾀병으로 천수신의 허주운의 이목까지 감쪽같이 속여 넘긴 그의 연기력은 요즘 들어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