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3권 10화 – 지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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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3권 10화 – 지하 감옥!

지하 감옥!

햇빛이 닿지 않는 음습한 지하.

이끼가 낀 두텁고 차갑게 생긴 철문.

습기로 인해 누렇게 녹이 슨 자물쇠 사이로 열쇠 하나가 끼워졌다.

곰팡내와 썩은 냄새가 안개처럼 떠돌고, 축축하고 눅눅한 공기가 자연스레 사람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다.

어느 누구의 침입도 허용되지 않는, 단 한 번의 면회를 위해서도 온갖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뇌옥이었지만 노인에게는 아무런 장애도 될 수 없었다.

거무틱틱한 구릿빛 열쇠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곧 열쇠와 자물쇠가 맞물려진다.

“철컥!”

열쇠의 주인이 손에 힘을 주자 거친 소리가 울리며 자물쇠가 열렸다.

끼이이이익!

이윽고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함께 돌쩌귀가 비명을 질렀다. 철문은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서서히 열렸다.

“들어가시지요.”

열쇠를 든 간수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노인의 신분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이 가져온 증명서류에는 자신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높으신 분의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기는 어렵다는 금마뢰! 지금 그 금마뢰의 한 독방이 거친 음악과 함께 열렸다.

“누군가?”

이 어둡고 칙칙한 독방의 주인, 전 철각비마대 대주 구천학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러나 방문객은 지긋이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간수장이 얼른 독방 안의 횃대에 불을 붙였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구천학은 너무 밝은 빛에 적응이 되지 않는지 심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수고했네. 둘만 있고 싶으니 잠시 물러가 있게!”

“예!”

노인의 손짓에 간수장이 정중히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

귓가를 스치는 바람 같은 잠깐의 정적. 결코 편안한 숙면과는 가까워 보이지 않는 딱딱하고 차가운 철제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구천학이 마침내 고개를 들어 오랜만의 방문객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대답하고 물러난 목소리는 짧았지만 그 목소리가 간수장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이 금마뢰에서 저토록 정중하게 울리는 간수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가슴께까지 드리워진 회색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그제야 그는 방문객의 인상착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신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노인이 허허 하고 웃는다.

“이렇게 하면 기억나겠나?”

노인이 오른손으로 얼굴을 한번 스윽 훔쳤다.

구천학은 하마터면 오랫동안 자신의 애창 겸 식사 도구로 애용하고 있던 젓가락을 반 토막으로 부러트릴 뻔했다.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쿠당탕탕!

그는 서둘러 가부좌를 풀고 침대에 튕겨나오듯 굴러 내려와 바닥에 이마를 대고 고두례(叩頭禮)를 취했다.

노인은 그의 이런 행동에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뇌옥 안을 이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이 어둠의 저편을 꿰뚫었다.

치사한이 방문했을 때보다 뇌옥 안의 벽은 한층 더 빽빽하게 변해 있었다. 노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솜씨가 많이 늘었구나.”

감격과 격동이 넘치는 떨리는 목소리로 구천학이 대답했다. 정말 우습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이지만 눈물이라도 날 것처럼 뿌옇게 눈앞에 수막이 둘러쳐졌다.

“과, 광영입니다! 태존(太尊)! ”

흑천맹 최고무력집단 중 하나며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는 철각비마대의 전 대주 질풍묵흔 구천학의 눈에 눈물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리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었다.

“허허, 비가 오는 모양이군! ”

이런 지하의 독방에 웬 비? 하지만 구천학만은 이해했다. 그의 눈물을 자신은 보지 못했다는 배려인 것이다.

“오랜만이구나.”

근엄하지만 자애한 목소리가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지만 노인의 얼굴에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비틀어진 주름은 보이지 않았다.

“지, 직접 존안을 뵌 지 어언 십 년이 흘렀습니다.”

“벌써 그렇게나 되었나…….”

노인은 구천학의 우상이자 태양이었다. 만일 노인이 없었다면 철각비마대를 호령하던, 아니 한때 호령했던 지금의 구천학도 없었다. 노인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그 는 철각비마대의 대주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다네.”

“부탁이라 하오시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지닌, 신이나 다름없는 이 노인에게 남에게 부탁할 만한 일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저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 행될 텐데도 말이다. 그러나 구천학에게는 질문할 자격이 없었다. 단지 대답의 의무만이 존재할 뿐.

“명령만 하십시오. 신명으로 완수하겠습니다!”

이마를 차가운 돌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숙이며 구천학이 대답했다.

“자네가 가줘야 할 곳이 있네!”

노인은 짧고 간단하게 자신의 용건을 밝혔다. 노인의 태도는 담담하고 평온하기 그지없었지만 구천학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경청하고 있던 그의 얼굴이 점점 더 기묘한 빛을 띠며 변하기 시작했다.

구천학은 알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그 감정이 해소될 수 있는지도 역시 알고 있었다. 그는 깨닫고 말 았다. 그자와 결착을 내기 전까지 이 기분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기회가 왔다.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용건을 모두 말한 노인이 물었다. 구천학은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최대한의 경의와 경애를 담아 오체복지했다.

“신명을 받들어!”

짧지만 그의 모든 의지가 함축된 말이었다.

노인도 만족스러운 듯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네는 석방일세!”

노인이 선언하듯 말했다. 그때였다.

“송구스럽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구천학의 얼굴은 무척 진지했다.

“뭔가? 특별히 필요한 것이라도 있나?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겠네.”

잠시 망설이던 구천학이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저…, 이 젓가락, 가져가도 될까요?”

잠시 젓가락과 구천학의 얼굴을 번갈아 본 노인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홍소가 터져 나왔다.

쑥스러운 건 아는지 구천학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방문자 무(無)

수감자 무(無)

출옥자 무(無)

그날 금마뢰 뇌옥일지에는 어떠한 기록도 공식적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천무학관 대표단이 출발하기 일주일 전, 흑천맹 금마뢰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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