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그 너머
-비뢰문에 검법은 없나요?
“사부, 검법 하나만 가르쳐 줘요.”
“검법? 대낮에 잠꼬대를 다 하는구나.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냐, 바보 제자야?”
“없어요?”
“없다.”
“숨겨진 검법, 비장의 한 수, 그런 거 없어요? 에이, 시시해.”
“시시하다고? 비뢰도만 있으면 충분한데, 검법 같은 거 배워서 뭐 하려고? 무라도 썰 셈이냐?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구나.”
“혹시 비뢰도가 없어지거나 도둑맞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검밖에 없으면 검법을 써야 하는데, 아는 검법이 없으면 못 쓰잖아요.”
“던지면 되잖아.”
사부의 대답은 간단했다.
“멋이 없잖아요.”
“이기면 장땡이지 멋이 밥 먹여주는 줄 아느냐? 그리고 비뢰도를 도둑맞아? 그땐 그냥 죽어. 사문의 비보를 뺏긴 놈이 뭣하러 사느냐? 낯짝도 두껍구나.”
“우우, 정말 매정하시네요. 진짜 사부 맞아요?”
“확인해 볼 테냐?”
사부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아뇨, 확실히 사부 맞는 것 같네요.”
사부는 수염을 잠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흠, 그러고 보니 없는 건 아니지. 검법 말이다.”
“아깐 없다면서요?”
“비뢰문 무공 중에는 없지.”
“그럼 타 문파의 무공인가요? 옆집 아미파 같은?”
“아니. 거기 것보다는 좀 더 세지. 시전자에 능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 무슨 검법인데요?”
“연습용.”
“연습용이요?”
“그래, 연습용. 마침 얘기가 나왔으니 보여주마.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니까. 슬슬 그런 단계이기도 하고.”
그리고는 옆에 있는 나무 가지를 툭 꺾은 다음 대충 다듬어 손에 쥐고는 말했다.
“자, 못 피하면 죽으니깐 조심해라.”
말은 설렁설렁했지만,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급작스럽다.
“자, 잠깐만요. 좀 전에 연습용이라면서요?”
“그래, 연습용 맞잖아. 자, 수련 방법은 간단하다. 노부가 어떤 검법을 펼친다. 너는 비뢰도를 써서 그 초식을 막는다. 어때, 간단하지?”
“음, 듣고 보니 간단하네요.”
하지만 뭔가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불길하다.
“그래,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 이거 못 막을 거다.”
“자, 잠깐만요. 그럼 나보고 죽으라고요? 이 아까운 제자 목숨 하나 사라지는 거라고요.”
“왜?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지.”
“그게 뭔데요?”
“새로운 오의를 터득하면 된다. 노부가 펼친 검법을 파훼할 수 있는 새로운 오의 말이다. 지금까지 배운 걸 토대로 말야. 어때? 간단하지?”
“가, 간단하긴 개뿔이 간단합니까.”
“간단해. 제자야, 넌 할 수 있다! 걱정 마라.”
“전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 표정으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문답무용!”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자, 그럼 간다.”
““자, 잠깐! 정지! 멈춤! 안 돼에에에에에에!”
그리고 소년은 암흑에 뒤덮였다.
***
“그땐 정말 죽을 뻔했었지.”
그땐 정말, 저 멀리 펼쳐진 꽃밭과 맑은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던 듯한 기분이 든다. 다행히 살아났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후로도 여러 번 죽을 위기에 처했 다. 단 한 번에 새로운 오의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사부는 가능하다고 했고, 정말 그게 가능할 때까지 제자를 몰아붙였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하군.’
그래도 어쨌든 살았고, 그 지긋지긋한 오의들도 터득하게 되었다. 극한에 몰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교육관은 사부로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연비는 검을 들어 칠상흔을 겨누었다. 사부에게 엄청 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워진 검법, 원래는 비뢰도의 상급 오의를 터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검법을 펼치기 위해서. 사부로부터 유일하게 배운 검법이었다.
칠상흔 역시 검을 든 연비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초짜의 자세가 아니었다. 검을 오래 들어본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적어도 좀 전에 우산을 휘두 를 때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깊이가 있었다.
칠상흔도 진심으로 부딪치기로 했다. 그동안의 성과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저 연비라 불리는 이만큼 적절한 상대도 없었다. 남 자니 여자니 하는 건 지금 그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저 실력은 진짜였다.
“슬슬 끝을 내야겠군요.”
“동감이다.”
이제 서로 마지막 한 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연비로서도 이렇게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자를 만난 것은 정말 오래간만의 일이었 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말이 필요한 단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무엇을 할지 축적된 경험과 본능을 통해 알고 있었다.
‘마지막 일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최후의 일도.’
‘그 일도를 휘두르는 날, 나는 나를 뛰어넘는다!’
“나는 새로운 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다!’
잃어버렸던 나를 오늘에서야 다시 찾는다!’
칠상흔은 자신이 과거 속에 묻어두고 잊으려 노력했던 두 자루의 쌍도를 힘차게 움켜잡았다. 칼자루를 타고 보이지 않는 힘이 사지백해로 뻗어가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내가 나 자신에게 충실한 적이 있었던가??
지난 구 년 동안 내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 지금 나라는 존재가 이곳에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 바로 나다!’
이 두 자루의 칼이야말로 내가 누구인지 가장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증거였다. 그런데 그동안 그것들을 관 속에 처박아둔 채 못까지 박아놨으니 이 얼마나 어리 석은 일인가. 수년간 자신은 껍데기만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쌍칼을 다시 잡음으로써 비로소 영혼이 돌아온 듯했다.
“감사한다, 다시 나의 과거와 맞닥뜨리게 해준 것에 대해.”
“별말씀을.”
“보답으로 무림 최강의 도법을 보여주마.”
“최강의 도법은 만날 봐서 지겨운데.”
칠상흔은 연비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넌 절대 이 일도를 막을 수 없다.”
쌍도를 들고 자세를 취하며 칠상흔이 말했다.
“그거야 해봐야 아는 거죠.”
그러자 칠상흔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해볼 필요 없다, 이건 그런 초식이니까.”
칠상흔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의 육체와 정신은 오직 하나의 도법을 펼치기 위해 맞추어져 있었다.
‘때가 되었군.’
연비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이제 자신은 생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예정이었다. 이 앞은 그 역시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한계 너머에 있는 곳이니까.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음인지 혹은 삶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자, 그럼 가볼까!?
연비의 호안석 같은 눈동자에서 검은빛이 사라지며 황금빛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순간 연비 주위로 흙먼지가 일어나며 그 몸을 감추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관중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철컹!
마침내 연비의 오른 손목에 차여 있던 봉황환이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는,
쿵!
이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두근!쿵쾅쿵쾅 쿵쾅쿵쾅! 두근! 쿵쾅쿵쾅 쿵쾅쿵쾅!
“…...!”
소리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봉황환이 풀리는 순간, 연비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막고 있던 힘이 사지 백해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 힘은 거칠고 사나웠다. 상냥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힘에, 온몸의 근육과 혈관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 각 날 것 같았다. 눈앞이 새빨갛게 변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금세라도 폭발할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신경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온몸이 미친 듯이 부르르 떨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폭포 아래에 힘없이 서 있는 초라한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장강의 세찬 흐름에 휩쓸린 한 잎의 나뭇잎 같기도 했다.
붉은 시계(視界) 속에서 칠상흔이 입술이 움직인다. 그러나 움직이는 모양만 보일 뿐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청각이 날아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어 느새 혀가 마비되어 있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뚝문을 연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오고 있었다. 아직 사지가 뜯겨져 나가지 않고 붙어 있는 게 더 신기했다.
‘역, 시…… 미… 친, 짓…… 이었네.’
자조의 쓴웃음이라도 짓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칼날 같은 야수의 발톱이 몸 구석구석을 누비며 찢어발기는 듯했다. ‘이미…… 돌이…… 킬 수…… 는…… 없어.’
살아남으려면 다른 수단을 찾아야 했다. 이 세찬 격랑이 그의 존재를 말살시키기 전에. 가루 하나 남기지 않기 전에.
거스르지 말자.
이 흐름에.
거스른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났다. 막으려 하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뿐.
연비는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는 더 잘 흐를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가로막혀 있던 것들이 격랑에 부딪쳐 차례차례로 부서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격렬한 고통이 연비를 괴롭혔다. 그리고 마침내 그 흐름은 뇌에 이르렀다.
쾅!
머릿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그리고 연비는 기나긴 암흑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감각도 공간도 시간도 그 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과 공간이 없는 세계에서 연비는 눈을 떴다. 아직 하늘에서는 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저장된 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미칠 듯하던 격랑도 어느 시간이 지나자 점점 유속이 느려지더니 어느덧 대하가 되어 유유히 흐르고 있었 다. 여전히 강대한 흐름이었지만, 예전처럼 장마철 불어난 강물처럼 미친 듯한 격랑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언젯적 이야기지??
시간 개념이 뒤죽박죽이었다.
‘좀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뭘 보고 뭘 느꼈지??
기억이 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이었다.
‘도대체 좀 전에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말로 설명해 보려 해도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가 일어났다는 사실만은 불변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움직였다!
이번엔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움직였다.
시선을 든다.
들렸다.
아직 칠상흔은 공격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였다.
‘왜 아직도 공격을 하지 않고 있을까? 시간은 충분했을 텐데?”
그러나 그의 자세와 기세로 보아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영겁의 시간이 흐른 듯했는데…….’
이 세계에서의 시간은 거의 정지해 있었던 모양이다.
참 얄궂은 일이었다. 하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폭발적인 진기와 대치하는 도중에 공격당했다면 결코 무사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마침내 칠상흔의 도가 뻗었다. 그것은 매우 느려 보였다. 어떤 변화도 없는 듯했다. 이거라면 쉽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상했다. 회피를 위해 몸을 분 명히 움직이고 있는데 자신과 도의 사이는 똑같았다. 아니, 좀 전보다 더 가까워진 듯했다. 분명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거리에는 변함이 없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칼 끝에서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칼날이 집요하게 쫓아오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절대로 떨쳐 버릴 수 없는 유령 같았다.
‘이건!’
그제야 연비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며 날아오는 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심검(心劍)이다! 틀림없어.’
아니, 이 경우는 칼로 펼쳤으니 ‘심도(心刀)’라 해야 옳았다.
‘잡았다!’
라고 칠상흔이 쾌재를 올린 순간, 불쑥 튀어나온 칠흑의 검이 도의 궤도를 가로막았다.
흠칫 놀란 칠상흔이 연비를 바라보았다. 연비의 눈동자가 기묘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정도로 끝이라고 생각하시면 섭하죠.”
“무슨 방법이라도 있느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심검에는 심검. 뭐, 그런 거죠.”
아름다운 은빛 문양이 수놓아진 흑검이 다가오는 칠상흔의 도를 향해 정면으로 뻗었다.
검극과 도극이 티끌보다 작은 한 점에서 부딪쳤다.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말도 안 돼!”
그러자 연비가 대답했다.
“말 돼요.”
‘사부한테 속은 것을 안 것은 언제였을까?”
한 열두 번 정도 내리 당하고 난 이후였던 것 같다. “싸부, 날 속였죠!”
사부의 검법은 검법이면서 검법이 아니었다.
그 수련은 대 심검용 수련이었다. 그러니 딱히 형태가 있는 초식이 있을 리 없었다. 마음 가는 대로 검이 가는 것이 바로 심검의 경지 아닌가. 결과만 생각하면, 몸 이 자동적으로 그 과정을 찾아내는 경지라고도 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무의식이겠지. 그러니 일반적인 초식을 위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그 검초를 깨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이름이 없는 그 검법은 형태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만큼 자유자재했다.
기술을 보다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그 검법을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검법을 깨기 위해서는 하나의 경지를 더 넘어서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그 경지를 깨뜨 릴 수 있었다.
마음 가는 대로 펼쳐지는 검법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마음 가는 대로 자유자재로 비뢰도를 펼치는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경지일 경우 다른 변수가 승패를 좌우한 다. 그것은 바로 순수한 힘이었다.
무명검(無名劍).
그것이 바로 지금 연비가 펼치고 있는 검법이었다. 이 검법에는 이름이 없다.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비뢰도라는 비전이 전해지는 비뢰문에 이 검법이 이름을 올릴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이 검법은 필요했다. 그러나 끝내 이 검법에 이름을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보다 상승의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했다.
무명검.
그것은 심검이라는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 마련된 수련이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두 사람이 격돌했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사방을 휩쓸었다. 얼마나 강력한지 주위의 돌멩이와 흙이 발생하는 여파에 의해 위로 쓸려 올라갔다. 그 리고 승부의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
관중들은 당황했다. 야유를 퍼붓는 이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을 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런 항의에도 흙먼지는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 관중들은 그저 손에 땀을 쥔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어!’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자신하던 마지막 일도가 연비에게 가로막히자 칠상흔의 마음 한구석에서 불신이 싹터올랐다. 그가 펼친 경지는 분명 심도의 경지지만, 이제는 그 심도에 잡생각이 끼어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싹튼 불안감이 검은 먹물처럼 그의 마음 전체를 좀먹었다. 마지막 일도에 대한 확신은 이순간 깨어지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도초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아직 미완성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생겨났다. 그 의혹은 거대한 암흑이 되어 그의 도초를 집어삼켰다. 그러자 자연 도법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뚝 끊기고 말았다.
마음을 비우고 확신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거기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의연히 빛나는 연비의 황금색 눈동자가 칠상흔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향 했다.
“믿음이 깨졌군요. 그렇다면 이 승부, 내가 가져가겠어요!”
무명검(無名劍)오의(奧義).
묵뢰살(墨).
연비의 검이 흑과 은이 섞인 뇌광이 되어 칠상흔을 향해 쏟아졌다. 불신이 깃든 그의 쌍도는 이 절초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흑과 은의 뇌전 속에 그대로 삼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