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22화 – 곧 폭풍이 불 거야

비뢰도 2권 22화 – 곧 폭풍이 불 거야

곧 폭풍이 불 거야

여러 사람을 재기불능의 상태로 몰고 간 승천무제의 입격자 발표 후! 지금 남창의 밤은 너무나 휘황찬란하고, 뜨겁고, 화려하고 황홀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에는 풍악이 넘쳐흘렀고,

골목골목마다 달콤한 주향이 진동을 했다.

거리에 퍼져 있는 주루들과 기루들은 일월(日月)이 바뀌어도 안팎에 걸린 등에 불을 꺼트리는 일이 없었다. 계속 열두 시진(24시간) 주야(夜) 영업중인 것이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그 달이 기울어도 성 내의 들뜬 열기는 잠잠해 질 줄을 몰랐다. 일월(日月)의 순환적인 교체 법칙도 그들을 제지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 이었다.

일월의 변화를 깡그리 무시하는 며칠 동안의 축제 같은 날들이 열풍처럼 남창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소수의 선택받은 자에게만 기 회가 주어지는 천무학관 특별 전형시험 날이 밝은 것이다.

천무학관이 지정한 관내 시험 장소로 내노라 하는 일류 문파들의 기대주들과, 촉망받는 후기지수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들었다. 승룡패(乘龍牌)를 지니지 못한 이는 규정상 시험 장소에 입장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모두 품 안에 승룡패를 지닌 비류연의 경쟁자들이었다. 물론 비류연은 그런 따 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비류연은 이곳저곳 관내를 구경하러 다니는 데 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마침내 시험이 시작되었다. 승천무제와 비교했을 때, 이 특별 전형 시험은 한 단계 더 어려운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여지없이 깨부수고, 천무 학관의 특별 전형 시험은 생각 외로 간단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여러 가지 관문과 기구, 규칙이 까다롭게 지정되어 있어 그것에 따라야 했던 승천무제와는 달리,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간결하고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사실 비교할 기준도 없었으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특별 전형 시험의 진행 방식과 규칙, 그리고 합격 판단 기준은 외우기도 쉽고 따라 하기도 쉽게 단 하나였 다.

자기 자신이 남보다 뛰어난 존재임을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우수성을 만인들 앞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그 수단과 방법이 어찌되었든지 간에……. 하지만 무림에 몸을 담고 무도(武道)의 길을 걷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란 어차피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서로가 몸으로 직접 부딪혀 상대를 체험하고, 병장기를 들어 손속을 겨루는 것뿐이었다. 말보다는 실력 지상주의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서로 겨루어 자신이 가진 무공과 그 성취 정도의 우수성을 입증하라는 이 야기였다.

승천무제에 주어졌던 많은 과제와 험난한 관문은 수많은 인파 중에서 사람을 골라내기 위한, 자갈밭에서 옥석을 가리기 위한 시험이었다. 그러니, 승천무제에서의 비무는 상대방과의 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하고 이겨야 했다.

하지만 오늘 이 특별 시험장에서의 비무는 반대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시험이었다. 비무 상대는 그저 단순히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승패와 관계없이 시험관은 지원자의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고수는 상대의 동작 하나, 초식 반 초를 보고도 상대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좀더 높은 경지에 다다른 절정 고수라면 그 사람의 가능성까지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 사람의 근골과 성품이나 싸움의 성향을 보고 어느 정도의 자질과 성취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고수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여기는 고수(高手)가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천무학관(天武學館)! 이곳과 맞먹는 수의 고수가 포진하고 있는 곳은 이 백도 강호 전체를 통틀어 봐도 오직 한 곳 무림맹뿐이었다. 때문에 시험 판정관들 역시 모두 하나같이 절정 고수라서 지원자들의 비무를 척 한 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심사가 가능했다. 무공이 이 제는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무의 지평을 열려는 도(道)의 경지에 올랐다고 칭해지는 인물들이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충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시험일수록 그 기준이 다소 애매하고 아리송하며 작위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었다. 고수의 눈은 범인의 눈과는 달리 일반인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생각지 못한 부분을 생각하기 때문에 범인과는 관점(觀點)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절정 고수들은 그들만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정한다. 그래서 종종 하수들은 그들의 판정에 불복하며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비류연의 실력과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해 낸 사람은 없었다. 그의 진신 전력과 무공 수위는 구름 속 신룡처럼, 탁류 속을 헤엄치는 미꾸라지처 럼,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소용돌이처럼 혼란하고 혼잡스럽기 그지없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했다.

오리무중(五里霧中)!

희뿌연 짙은 안개가 깔린 늪지에서 난 좁은 길 찾기처럼 묘연해 그 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판정관들의 결정을 어렵게 했다. 그를 합격시킨다는 것 은 일종의 도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하의 패가 될지 모를 패를 쥐고서 재산 말아먹을 가능성이 다분한 도박(賭博)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특별 전형에 참가한 사람들은 근본부터가 여타의 일반 무림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각각의 문파들, 그것도 일류급 이상이라고 평가되는 문파들에서 십수 년 동안 심혈을 쏟아 부어 길러 낸 수제자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각 문파의 보증 은표나 다름없는 이미 일 차 검증을 거친 이들이었다. 천무학관 측도 이를 인정한 다.

그래서 거의 모두가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고 탈락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무했다. 간단한 상호간의 비무 후 지원자의 합격 여부가 판단되는 데 그것은 모 두 시험관 하기 나름이다. 특별히 입관 인원이 명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시험관의 재량에 달렸다. 그러니 이 특별 시험이란 무늬만 시험이 고 실제로는 간단한 실력 분류 평가일 뿐인 것이다. 그 실력 평가 분류단이 절정 고수라는 점을 뺀다면 말이다. 하지만 역시 절정 고수들 중에는 특이하고 기이하며

변덕스러운 이들이 많아 의외의 판정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이 시험 역사상 추천자의 대부분이 시험관의 눈을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 부도난 불량 은표는 그 수가 매우 희박했던 것이다. 작년에도 그리고 제작년에도 이 특별 전형에서 탈락한 자는 없었다. 일류 문파라 엄선된 곳에서 매년 최고라고 불리는 인재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기껏 최고의 기재라고 추천한 제자가 비무에서 진 것도 아니고, 재능과 가능성이 불투명해서 탈락을 당했다면, 그 문파는 수치심으로 인해 십 년 봉문 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였다. 아마도 천무학관 특별 전형 역사상 가장 많은 탈락자가 나온 시험으로 기록될 것이다. 당분간은 이 기록이 깨지기 힘들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인 탈락이 아닌 타발적인(?) 탈락으로 사상 초유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탈락한 자들도 탈락하고 싶어서 탈락한 게 아니었다. 누가 사문의 명예를 있는 대로 몽땅 걸고 임하는 이 중요한 시험에서 탈락하고 싶어하겠는가. 마음은 날아갈 듯 급하지만 기어가기도 힘든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기권을 선언한 것이다. 몸이 온전해야 입관을 해서 열심히 무공을 연마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떻 게 사지(四肢)가 완전히 부러진 상태로 입관(入)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사태를 유발시킨 인물은, 주위를 둘러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바로 문제아 비류연이었다. 신성한 시험을 앞두고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시켜 주는 주특기를 유 감없이 발휘하는 비류연이었다.

처음에는 비류연도 이 정도 심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살살하고 끝내려고 엄숙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참가자들이 자신들이 명문정파의 출신이랍시고 품위와 예의도 모르고 깝죽대기 시작했고, 그게 결정적으로 비류연의 섬세한(?) 신경을 건드리고 말았다. 비류연은 도무지 눈꼴시어서 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 을 좀 과하게 썼다.

첫 번째 상대는 자기가 무슨 오악의 하나인 화, 무슨 산의 떨어지는 꽃 봉우리 출신인 놈이었는데 자기네 검(劍)은 오악 제일이자, 나아가 무림 제일이라고 시건방 떨며 입을 나불거리던 놈이었다. 얼굴도 희멀건 하고 입고 있는 옷도 때깔 번지르한 비단 옷이었는데 그 옷의 왼쪽 가슴에는 붉은 매화 문양 다섯 송이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것은 그가 그만큼 화산파에서 높은 신분이며 사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나 무림 정세에 눈이 어두운 비류연이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혹 가르쳐 준다 해도 그딴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 놈은 턱주가리에 일격 정권을 얻어맞고, 하악 분쇄골절(아래턱뼈가 여러 동강으로 연속적으로 부러진 증상)과 더불어, 이빨이 왕창 나가 버려 당분간은 물론 이거니와, 잘못하면 평생 죽하고 물만 먹고살게 될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불쌍한 놈!

두 번째 놈은 점창파의 검식을 쓰는 놈인데 이 놈도 위의 놈과 이하 동문인 놈팡이였다. 자기 문파가 명문 검가면 명문 검가지 왜 지가 날뛰어, 날뛰긴. 이 녀석은 사지가 각기 향해서는 안 되는 방향을 향하게 되어 기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분간은 뼈가 어긋나고 근육이 멋대로 뒤틀려 골격이 제대로 원상 복구되려면 한참 은-아마도 한 일 년 열두 달 정도 걸릴 것이다.

세 번째 놈은 금복 산장인가 뭔가 하는 곳의 장주 둘째 아들인데, 아마 이 금복 산장이라는 곳이 돈이 뒤집어지게 많은 곳인 모양이다. 온몸을 금은 보화로 떡칠 한 데다가 얼굴에는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게, 외면을 받아야 마땅할 혐오스러운 용모의 소유자로, 꿈에서 볼까 징그러운 정말 재수 없게 생긴 놈이었다. 게다가, 어려 서부터 황금을 물 쓰듯이 써서 어렵사리 구한 기약 영초를 배가 터지게 먹었다느니, 자신의 정력 – 약발로 형성된 정력이다 – 이 대해(大海)와 같아, 밤을 위해 거느 리고 있는 여자들이 두 손 두 발로는 도저히 다 셀 수 없다는 등, 전혀 무인답지 않는 자랑만을 늘어놓는데, 이 놈과는 도저히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소름끼치고 역겨웠다. 그래서 눈 딱 감고 자기 희생하는 마음으로 오물 처리와 환경 미화, 그리고 자연 보호의 심정으로 단호하 게 처리했다.

몸에 좋은 건 다 처먹었다는 놈이 막상 실험을 해 보니 장광설(長廣舌)과는 달리 어찌나 허약 체질인지, 배때기에 한 방 얻어맞더니 바로 내장이 꼬여 버렸고, 팔다 리를 두어 번 주물러 줬더니 대번에 팔다리뼈가 토막쳐졌다. 아마도 어릴 적에 불량 영약을 과다 복용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뼈가 그렇게 푸석푸석할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그 부작용으로 이렇게나 골격이 허약한 약골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기에 약(藥)은 가려서 먹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옛 격언을 지키지 않 은 놈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마지막 한 놈은 권술(拳術)의 명가 진주 언가 출신의 고수였는데 비류연이 내지른 주먹 한 방에, 내질렀던 주먹이 으깨져 버려 피떡이 된 주먹을 부여잡고 한바탕 땅바닥에 뒹굴다가 식솔들에 의해 의원으로 급하게 실려 갔다. 이놈은 아까 전에 시험 장소에 입관하기 전에 정문 앞에서 명가의 자손이랍시고 식솔들을 떼거지로 문 앞까지 이끌고 와 비류연의 눈 밖에 나게 되었던 녀석이다.

비류연의 비위를 건드려 그를 아니꼽게 만들었던 사인(四人)의 말로는 충격적이고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이 입관 시험을 너무 녹녹하게 본 것인지도 모른 다. 그들은 겸양을 몰랐고 예의를 몰랐으며,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고 결정적으로 너무나 방심했다. 그리고 세상에 비류연 같은 성질 더럽고 괴팍한 놈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너무 오만방자하게 날뛰었다.

사문과 가문의 명성이 자신의 몸을 보호해 주는 방패가 아니라, 오직 본인의 실력만이 무림을 살아가는 힘의 근원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간과한 것이다. 그러 니 사실 이런 결과가 벌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네 사람은 당분간은 무공을 연마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고, 하는 수 없이 입관 자격을 포기하고 각 소속 문파로 되돌아갔다. 네 사람 모두 도저 히 혼자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동문들이나 수행원들이 들것이나 가마에 싣고 짐짝처럼 지고 가야 했다.

이것으로 비류연이 네 개의 거대 일류 문파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것에 신경 한 올조차 쓰 지 않은 채 희희낙락, 유유자적했다.

겉보기에는 매우 간단하고 장난 같은 손짓으로 네 명의 장래가 촉망받던 후기 지수를 재기 불능의 상태로까지 몰고 간 비류연의 실력은, 비록 잔인하게 여겨지기 는 했지만 그 위력만은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시험관들은 그의 품성과 인격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심과 심사숙고를 거쳤지만 실력 면에서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류연은 합격되었다. 당연 한 결과였다. 이리하여, 비류연은 손쉽게 시험에 통과하여 천무학관에 입관이 확정되었지만 그의 과격하고 잔인한 손속은 시험관들에게 주의의 대상이 되었고, 입 관과 동시에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특수 관리 대상자로 분류되어 천무학관의 철저한 감시와 관리를 받게 되었다. 천무학관의 모든 이들이 그

를 주시하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비류연의 입관이 천무학관과 나아가서는 강호 무림 전체를 뿌리째 뒤흔들 폭풍의 전조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 다. 하지만 아직은 부드러운 미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