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25화 – 너무나 재수 없는 미궁

비뢰도 2권 25화 – 너무나 재수 없는 미궁

너무나 재수 없는 미궁

넓었다. 아아, 너무 넓었다.

천무학관은 정말 엄청나게 넓었다.

이렇게 넓어서야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길을 잃고 미아가 되기 딱 십상일 정도로 관내는 지지리도 넓었다.

해를 가릴 정도로 높은 담과 바람의 행로를 가로막을 정도로 넓은 건물들의 숲은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렇게 넓으면서도 관내 에는 안내판 하나 제대로 부착된 곳이 없어 더욱 더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었다. 하긴 천무학관이 아무리 배움의 요람이라고는 하나 엄연한 무림의 조직. 최우선 적으로 적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그에 대처하는 대응책이 설립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곳의 건물들은 모두 치밀한 오행 팔쾌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져 있었다. 즉 이 천무학관의 건물 배치는 일종의 거대한 진법을 따르고 있어 만약 모 르는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마치 미로 속의 쥐처럼, 혹은 눈먼 까마귀처럼 길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오행 팔쾌의 법칙에 따라 복잡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거 대한 진법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즉 일부러 사람의 이목을 흐리고 방향 감각을 상실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닌 고의적인 건축이란 이야기다.

그런데도 천무학관에서는 신입 관도들에게 안내자를 붙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와 잠자리로 찾아오라는 의미였다. 겨우 이 정도의 간단한 진법조차도 파해 하지 못하고서 어찌 앞으로 그 어렵고 험난한 수업을 견뎌 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이쪽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미 그들의 수행은 시 작된 것이다.

지금 신입 관도들이 찾고자 하는 곳은 ‘무혼지’라고 불리는 곳으로, 일종의 남자 기숙사 단지였다. 그곳에는 무혼, 검혼, 도혼, 창혼 등으로 이름 붙여진 공동 숙소 건물이 수십 채 세워져 있는데 천무학관에 입관한 관도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된다. 물론 천무학관이 광대할 정도로 넓은 만큼 관내에는 음식점과 주루와 다루 등도 여러 군데 설치되어 있지만 이용 시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관도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했다.

조금 전에 청심관에서 본 할아버지는 무혼지(무의 혼이 살아 숨쉬는 대지)의 관리인 겸 총책임자인 모양이었다. 그 할아버지 똑똑한 목소리로 이 무혼지 내의 시 설과 지리, 규칙 등을 설명해 주었지만, 애초부터 규칙 준수와는 거리가 먼 비류연은 그런 자질구레한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효룡도 그와 비슷한 상 황이라 유유상종이란 말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비류연은 물론이고 효룡 역시 무혼지로 향하는 지리를 몰라 지금 둘이서 이곳을 헤매고 있는 중 이었다.

이런 걸 두고 자업자득이라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이 말을 쓸 기회를 찾기 힘들 것이다. 반 시진 가량을 헤맸을까? 애초에 진법과는 거리가 먼 비류연은 반 시진 동안을 헤매면서도 아직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슬슬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르려 할 때 둘은 한 사람을 만났다. 반 시진의 방랑 끝에 만난 최초의 사 람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관내를 배회하는 것이 영락없이 그들과 같은 신세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금년 신입 관도라 하기에는 첫인상 이 너무 늙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수삼 년은 족히 제초(除草)되지 않은 듯한 봉분에, 마구잡이로 난 잡초같이 삐죽삐죽한 턱수염과, 가늘지만 왠지 연륜이 있어 보 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눈이 도저히 이십대 초반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입가에 매달린 느긋한 미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의 형색은 완전한 아저씨의 그것이었다. 먼저 눈치를 챈 것은 그 아저씨 쪽이었다. 그 아저씨가 먼저 비류연과 효룡을 보고는 손을 번쩍 들 어 흔들며 아는 체 했다.

“여어? 혹시…….”

아마 두 사람이 길을 알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말을 건네 왔는가 본데, 그의 희망은 여지없이 보기 좋게 부서졌다.

“몰라요, 우리도.”

비류연의 말은 단호했다. 그는 내심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여긴 언제와도 헷갈린단 말야…….”

“예, 지금 뭐라고?”

그는 아주 미약한 소리로 중얼거렸기 때문에 옆에 서 있던 비류연과 효룡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응, 아냐, 아냐.”

아저씨는 도리질을 치며 어색하게 둘의 질문을 무마시켰다. 흐흥… 둘은 아저씨를 향해 진하고 농후한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아저씨는 어색한 미 소를 한 번 지어 보이고는 포권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장홍! 올해 새로 입관한 신입 관도일세.”

“거짓말!”

둘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느냐는, 거짓말 치지 말라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었다. 일견하기에도 그의 얼굴은 전혀 이십대 초반으로는 볼 수 없는 인상이었다. 그러자 장홍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머쓱해 했다. 장홍의 오른손은 애꿎은 자신의 뒷머리만 자꾸 긁적이고 있었다.

“정말이라니깐……”

하지만 그의 말은 결코 남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 말에 실린 믿음의 무게는 한 장의 낙엽보다도 더 가벼웠다.

어차피 같이 길을 헤매다 만난 사람. 그런 사람이 길 찾아가는 데 무슨 쓸모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비류연과 효룡은 장홍과 만난 이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관내를 헤매고 다녀야만 했다. 역시 장홍은 그들의 짐작대로 길을 찾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다. 혹시나 자신들의 예리한 육감이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데 미량의 희망을 걸어 본 두 사람의 도박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 시진 반을 미로 찾기에 매진한 끝에 세 사람은 어떤 길고 커다란 바위 앞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장정 둘을 합쳐 놓은 크기에 계란형으로 우뚝 세워져 있는 장대한 바위의 겉면에는 무혼지(武魂地)라는 세 글자가 장쾌하게 음각 되어 있었다. 마치 무인의 혼이 당장이라도 느껴지는 듯한 멋진 솜씨였다. 그 뒤로는 숲에 둘 러 쌓인 길이 나 있었는데, 그 너머로 멀리 건물 수십 채가 세워져 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혼지 검혼관이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지도 벌써 한 식경을 넘기고 있었다. 벌써 걸음을 옮겨도 이삼백 걸음은 옮기고 남았을 시간임에도 그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석 상처럼 길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적지를 찾았는데도 왜 세 사람은 입구에 서서 들어갈 생각을 않고 길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 일까?

이윽고, 효룡이 눈을 돌려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의견을 묻는 것이리라. 비류연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정말 걸어가고 싶지 않은 길인데!”

비류연이 툭하고 한마디 내뱉었다. 그의 말에 효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미 뭔가를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재수 없어 보이지?”

“너무 재수 없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군.”

“정말이지 무슨 생각으로 도로 공사를 이딴 식으로 하는 건지.

효룡의 말에 비류연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홍만이 그들 뒤에서 묘한 눈빛을 발하며 건물까지 나 있는 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다른 두 사람의 눈빛과는 그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그의 눈에서 기기묘묘한 이채가 흘렀다.

“드디어 시작이군. 천무학관 전통의 신참 신고식. 신입생 난관문, 궁극의 신참 괴롭히기!’

장홍은 아마도 뭔가를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장홍은 그가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정보를 입 밖에 내어 동행들에게 무언가 언질을 주거나 하지는 않 았다. 그는 그럴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웬만하면 사양하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하군. 이럴 땐….

다시 비류연의 입이 열렸다. 그의 얼굴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이럴 땐?”

효룡이 반문했다.

“강행돌파!”

비류연이 당연하다는 듯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강행돌파!”

효룡과 장홍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물론 그들의 시선에서는 ‘생각이란 것을 조금 정도라도 한 다음,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책의 빛이 역력했 다. 하지만 비류연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의 눈빛은 그처럼 무식한 방법을 진짜로 행할 기세였다. 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듯 비류연이 한 발짝 앞으로 성 큼 발을 내딛었다.

“피흉!”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화살 한 대가 곧장 비류연의 얼굴을 노리면서 날아들었다. 예고나 경고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습 공격이었다.

“스윽!”

그러나 비류연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히는 간단한 동작 하나 만으로 화살을 피한 다음 가볍게 다음 걸음을 내딛었다. 날아왔던 화살은 파 공성만 허공 중에 남긴 채 비류연의 뒤에 있는 나무에 날아가 박혔다. 비류연의 안색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뒤에 있던 효룡과 장홍의 얼굴에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하는 의미의 표정이 떠올랐다. 이 둘도 이미 길에 노방路傍: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세 사람은 반 시진에 한 식경을 헤맨 끝에 간신히 목적지의 입구를 찾아내어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들의 육감이 그들에게 심한 경종을 울리며 경고했다. 저 길은 함부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고……. 오랜 세월, 엄청난 수련을 거치며 단련된 그들의 예감이 빛나가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들은 자신의 감각에 확신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건물들까지 뻗어 있는 소로가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자연의 냄새는 나지 않고 인공적인 조작이 충만한 냄새를 잔뜩 풍기고 있었는데 쉽게 발을 내딛을 엄두가 나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희미한 핏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나직한 혈향도 아직 채 사 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게 아무래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그들의 신체를 위협하는 그 무언가가 말이다.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십 점 만점 정 중앙에 적중하고 말았다. 겨우 한 발짝을 내딛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노방이 작동한 것이다. 성급하기도 하지……. 그러나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파바밧!”

두 걸음 째엔 세 대의 화살이었다. 그것도 상단, 중단, 하단을 정확히 노리며 날아오는 무서운 연환 수법이었다. 그러나 비류연은 이것도 역시 몸을 한 번 슬쩍 흔들 어 주는 것만으로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기관 함정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더 무시무시하고 더 교묘한 장치들이 계속해서 숨어 있다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하나씩 선을 보였다. 자신의 존재를 뽐내기 위해 무작정 달려드는 이 아가씨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비류연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아가씨들은 도무지 사양이란 걸 모르고 품이나 전신으로 다 짜고짜 달려드니 어느 남자가 좋다 하겠는가.

이번 아기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비침(飛)들이었다. 이건 장난이 아니란 이야기다. 비침의 색깔로 보아 독은 묻어 있지 않은 것 같지만, 눈을 노리며 날아 들어오는 수십 개의 비침이 지극히 위험하다는 사실에는 별 변함이 없었다. 원래 이런 비침은 목표물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미약하기 때문에 십중팔구 독이 나 약품을 묻혀 놓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것은 없었다.

비침 다음은 뭘까, 기대해 봤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아까도 겪어 본 화살 비였다. 다만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하 지만 그 차이라는 것이 사실은 사람의 목숨을 오락가락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차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둘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들의 생각 엔 비류연이 이번엔 도무지 그 화살 세례를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전방위를 점하고 날아오는 화살 비를 피할 방도란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방법이 있다면 엄청난 실력으로 막아내는 것뿐일까? 하지만 비류연은 이 런 예상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다. 그의 몸이 흐물흐물 흐느적거렸다.

“저… 저건 마… 마… 마치…….?”

“예에, 정말 마치 문어 같군요.”

장홍은 너무 놀라 말을 더듬다 더 이상 잇지 못하고 눈만 부라렸고, 그런 장홍이 안쓰러웠는지 옆에 있던 효룡이 대신 경악을 토해 주었다. 장홍과 효룡은 진짜 경 악했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도저히 자신들의 눈으로 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새 시력이 나빠졌나? 아니면 내 가 언제 안법을 수련하는 데 있어 소홀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자책 섞인 의구심마저 들었다. 혹시 저번에 밤새워 비급을 읽던 게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저따위 회피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리고 저런 걸 어떻게 벌건 대낮에 버젓이 실행할 수 있단 말인가?

비류연의 신체 동작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경악할 움직임이었다. 몸 안에 있던 뼈다귀란 뼈다귀는 다 어디에 팔아 버렸는지 모를 연체 동물 마냥 온몸이 흐느적거리며 흐물흐물 움직이는 동작은 그 하나 하나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