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29화 – 평범하지 않는 자들의 만남
평범하지 않는 자들의 만남
검혼관과 조금 동떨어진 곳에 위한 한 전각의 꼭대기. 고요함과 단정함이 물씬 풍겨 나오는 방 안에서, 두 사람의 청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은 의자에 앉아 있는 청의 무복의 청년으로
몸에 세 자루의 검을 메고 있었고,
창가에 서 있는 또 다른 한 명의 백의 청년의 손에는
감청색 수실이 달린 백학선이 들려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 사람 모두 어디에 내놔도 뒤질 것 같지 않은 빼어남을 갖춘 준재들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신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도는 절 정 고수를 방불케 했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다향을 음미하고 있는 청삼 무복의 청년을 향해 경치를 감상하는지 창 밖을 응시하던 백삼 귀공자 풍의 청년이 접혀진 섭선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실패를 했다는군!”
뭐가 실패했다는 것일까? 실패라는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면서도 청년의 목소리에는 잔잔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래?”
“그래. 이 각(약 30분) 전에 사감실로 끌려갔다는 군. 이제 끝장났다고 보는 게 옳을 걸세.”
“이 각이라……. 역시 자네의 영민한 이목에는 못 당하겠군. 벌써 거기까지 정보를 얻어내다니 말이야.”
백의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지. 우리 회의 이목은 이보다 더 광범위하고 영민하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런데 실패했다니 생각보다 재주가 있었나 보지?”
진녹색 수실이 달린 두 자루의 검을 등에 비켜 매고, 붉은 수실의 검을 허리에 매달고 있는 세 자루 검의 청의 청년이 화제를 돌렸다. 우선 급한 건 이쪽이었다. 자 신들 조직의 정보력에 대한 자화자찬은 나중에 해도 시간은 충분한 것이다.
“그래, 그 녀석 둘이 끼여들었는데도 실패했다니 좀 의외의 일이었네. 검혼관 일층 기관 장치가 거의 모두 무용지물 고철 덩어리로 변해 버렸다고 하더군. 이번 피 해를 수습하려면 강 사감이 진땀 꽤나 빼야 될 걸세.”
“그 녀석 둘이야 어디 안 끼는 데가 있어나? 멀쩡한 일도 끼여들어 엉망으로 만들고 크게 부풀리는 게 주특기가 아닌가. 단지 표면에 들어 나지 않을 뿐이지…….. 청의 청년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그리고 얼굴 위로 순간적인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
“자네의 입이 진리를 말했군. 그 녀석 둘이 끼여들었으니 이 일도 조용히 매듭짓기는 힘들겠지. 나도 아직까지 그 사고뭉치들이 언제 일을 조용히 끝내는 걸 본적 이 없네. 하지만 이번 건 좀 건수가 컸어!”
단아한 턱선이 매우 인상적인 백의 청년의 말에도 그들에 대한 탐탁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에게 ‘그 녀석 둘’로 지칭되는 인물들은 결코 좋 은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일의 경과가 어찌되었든 호천강의 실패는 우리로서도 어느 정도 바랬던 일이 아닌가?”
청의 청년이 반문했다.
“맞네. 그들 손으로 체면치레를 하게 할 수는 없지. 우리들까지 싸잡아 모욕한 놈이 아닌가. 그런 놈을 팔대 세가와 군소 방파의 공동 전선에 의해 처리되게 놔 둘 수야 없지.”
단숨에 남창 제일 무장원 호아장을 군소 방파의 하나로 전락시켜 버리는 백의 청년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이지. 우리 얼굴에 칠해진 먹칠을 그게 지저분하다 해서 부끄럽게 남의 손을 빌려 닦을 수야 없지.”
“물론이네. 이 정도 일로 체면을 구겨서야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지.”
백의 청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사문이 받은 모욕은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갚음하는 게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기에 제고의 여지조차 없었 다. 호천강도 나름대로 사문의 모욕을 갚으려 했겠지만, 겨우 군소 방파의 제자 따위가 먼저 선수를 치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언뜻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 처럼 보이지만 그들로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아, 금년에 드디어 그가 들어왔다고?”
돌연 뭔가가 생각난 듯 청의 청년이 백의 청년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을 들은 백의 청년의 눈빛이 미묘하게 일렁거렸다. 그의 왼손이 무의식중에 오른손에 쥔 섭선 을 만지작거렸다.
“그렇다네. 공교롭게도 그 녀석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더군.”
청의 청년의 눈에 언뜻 놀라움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그래? 위험은 없겠지?”
약간 근심 어린 목소리로 청의 청년이 물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에서 한데 얽히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과 교분을 갖는다는 것을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군.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걸세.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안심하라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백의 청년이 말했다. 그제야 청의 청년의 얼굴이 밝게 펴졌다. 그만큼 백의 청년을 향한 그의 신뢰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번엔 너무 이외의 인물들이 많이 합격했네. 특히 그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지. 그가 가세함으로서 팔대 세가 녀석들의 힘이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하지만 우리 9파 이외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도록 할 수야 없지.”
“걱정 말게. 항상 감시의 눈길을 놓지 않고 주의하고 있다네. 천관의 주도권이 우리 9파(派) 이외의 세력에게 넘어 가게야 할 수 없지. 정파의 기둥은 아홉 개만 으로 충분하다네. 여덟 개의 불필요한 곁다리가 볼썽사납게 끼어 들게 할 수는 없지.”
“자네만 믿네.”
“걱정 말게. 내가 끓인 차 맛만큼이나 확실하니깐. 내 보장하지.”
“그런가? 그렇다면 믿을 만 하겠군. 정말이지 훌륭한 솜씨일세. 자네의 다도(茶道)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군.”
청의 청년이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면 말했다.
“후후, 조촐한 취미일 뿐일세.”
창 밖을 응시하고 있던 백의 청년이 몸을 돌려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더 이상 차가 식기 전에 찻잔을 들어 차를 음미했다. 지금 이하로 찻물의 온도가 내려간다면 그건 차에 대한 모독이었기 때문이다. 차의 온도가 너무 높으며 그 열기에 혀의 미각이 마비되어 맛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고, 반대로 또 너무 식으면 냉기가 차로부 터 맛과 향을 빼앗아 간다. 그는 자신의 절친한 벗 중 하나인 차(茶)를 모욕하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조용히 차를 음미하며 마시는 두 사람의 소매에는 모두 같 은 무늬의 화려한 용(龍)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천무학관의 관도 기숙사 중 하나인 검혼관에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히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비류연과, 그런 그를 멀뚱히 바라보기 만 하는 관조적인 자세로 공 헌도에 일조한 효룡과 장홍은, 사막을 덮친 정신나간 홍수, 또는 사막의 어의 없는 폭우라고 표현될 만큼의 기적적인 천우신조로 사감으로부터의 처벌을 피하고 무 사히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천만다행히도 입관 즉시 퇴관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 나중에 검혼관 관도들 사이에서는 구구한 억측 이 나돌았으나 어느 것 하나 세인들의 불타는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을 만한 명쾌한 의견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비류연은 방 배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데 아쉽게도 장홍과 효룡하고는 떨어져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배정된 방이 서로 틀렸던 것이다. 비류연은 701호, 효룡과 장홍은 702호를 각각 배정 받았다. 바로 옆에 붙어 있긴 했지만 그들 사이에는 하나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모처럼 사귄 죽이 잘 맞는 지우(知友)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1년 차 관도의 숙소는 검혼관 맨 꼭대기인 7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느 기숙사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1년 차가 가장 높은 곳에 숙소를 잡는 것이 이곳의 암묵적인 관례였다. 그리고 연차가 올라갈수록 점차 배정된 방의 위치가 아래층 방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낮은 곳에 살수록 높은 학년인 것이다. 이러한 관례의 이 유는 바로 동선의 길이 차에 따른 불편도의 차이 때문이었다.
즉 7층에 방이 있으면 움직일 때 동선이 길어져 불편했다. 그래서 낮은 학년이 윗층을 쓰는 것이다. 신참이 다른 고참의 불편함을 투철한 장유유서의 정신으로 감 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사회의 법칙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속마음에 투철한 장유유서의 정신이 결핍되어 있다 하더라도 겉으로는 어느 정도 모양을 차려 주 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주위의 비난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위험들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무공 고수쯤 되면 7층 정도의 높이는 땅 짚고 헤엄치기지만, 이건 기분의 문제이자 고리타분한 예의와도 관계되는 것이라 쉽사리 바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도 없었다. 7층 정도의 높이면 대략 10장 정도의 높이로 고수라면 두 번 도약이면 가볍게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힘들게 익혀 놓 은 경공술은 장식품이나 전시용이 아닌 것이다.
겨우 7층 계단 오르락내리락 거린다고 죽는 소리나 하고 있는 놈이 있다면 당장 그 놈의 부정 입학 여부부터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경신법 하나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놈이 천무학관에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개중에는 일부러 전망 좋은 7층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 사내를 어떻게 표현해야 적절할까. 철저한 완벽함? 천고기재? 절세미남? 질릴 정도로 완벽한 외모와 절제된 기도(氣道), 형형한 안광(眼光), 당당한 풍채(風 采), 유백색 무복에 화려하게 양감 되어진 허리춤의 보검(寶劍)은 그 생김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런 모습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인물이라면 가히 천하 기재라고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미 실제로 천고 기재로 불리고 있는 중이었다. 비류연은 철두철미한 완벽함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 보았다.
같은 사내라면 한 번쯤 질투를 느낄 만한 용모와 기도였건만, 비류연은 그런 쓸데없는 감정을 느끼는 데 정신과 시간을 낭비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 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를 상대했다.
이 녀석은 자신을 팔만 사천 세계 삼라만상 우주 제일의 초절정 절세 무적 극한 극도 미남 기재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고작해야 천하 제일 기재쯤 되는 조촐한(?) 녀석한테 질투심을 조장 받을 용무가 없었던 것이다. 못 가진 자들이나 꼴사납게 가진 자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지, 더 많이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질투하고 시 기하는 경우는 없다.
객관적이며 보편적으로 천하 기재로 평가받고 있지만 비류연에게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인재로 강등을 당한 사내는, 어떻게 생겨 먹었든 앞으로 일 년 동안 그와 함 께 같은 방을 쓰고 같이 생활할 인물인 것이다. 지금이 바로 첫 대면이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난 비류연이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먼저 비류연이 격식이라고는 하나도 갖추어지지 않은 인사를 하며 먼저 말을 건넸다. 마치 죽마고우라도 되는 양 허물없는 인사였다. 둘은 물론 죽마고우가 아니 었고, 더욱이 오늘 첫 대면한 상대였으므로 비류연의 인사는 상대방의 불쾌감을 조성시키는 무례한 행위였다.
“하남 모용세가의 모용휘라고 하오. 잘 부탁하오.”
사내의 이름은 모용휘였다. 비류연의 형편없는 인사를 받고도 모용휘는 불쾌한 기색 없이 정중히 포권지례를 취하며 인사를 했다.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보며 비 류연이 말했다.
“참 딱딱하네!”
“뭐가 말이오?”
잘 생기긴 잘 생겼는데 정말 틀에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찍어 놓은 것만 같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녀석이란 평가가 바로 자신의 방 친구에 대한 비류연의 첫 인 상이자 평가였다. 딱딱하고 재미없으면 지루할 게 뻔했고, 지루함이란 비류연에게 있어서 죄악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는 것 힘들지 않아? 편하게 가자고. 같은 동기끼리 너무 어색하잖아?”
“초면인 사람에게 함부로 평어를 쓰고 싶지 않소.”
무뚝뚝한 모용휘의 대답에 비류연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꼭 초면인 상대에게 반말을 지껄이는 자신을 꼬집어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비류연은 강호에 출두한 이후 그 주위의 몇 명을 빼놓고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존댓말을 썼다. 이번에 모용휘에게 존댓말을 안 쓴 게 이상할 정도로 비류연은 존댓말 을 썼다. 하지만 그동안의 존댓말 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경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조소와 비웃음만이 넘칠 정도로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의 가식적인 존대는 존대가 아닌 가벼운 조롱에 불과했다. 예외의 1할을 제외한 9할은 모두 같은 경우였다. 때문에 그가 평어를 쓰는 상대는 그 자신이 인정한 상대뿐이었다. 그는 그가 인정하지 않은 상대에게만 비아냥거리는 존대를 들려 주어던 것이다. 물론 비류연의 상대방에 대한 평가 분류 기준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개인적이었다. 비류연이 혼자 중얼거렸다.
‘역시 딱딱해! 금강석보다 더 단단할지도 모르겠는 걸. 정말 하품 날 정도로 재미없는 녀석이군.’
이 말은 혼자만의 중얼거림이라 다행히 모용휘는 듣지 못했다. 언제나 남들의 선망이 되어 온 그가 언제 이런 하찮은 취급을 받아 본적이 있었겠는가? 그동안 주 위로부터 받아 온 것은 언제나 선망과 질시, 그리고 찬탄뿐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대가 아무리 전 무림 후기지수들의 선 망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기린아(麒麟兒)라 해도 그런 간판이나 후광에 꿀리거나 신경 쓸 비류연이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비류연으로서는 모용휘를 어려워하거나 껄끄럽게 대할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물론 그는 젊은 나이에 벌써 강호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유명 인 물 모용휘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남들이 알면 그 무지함에 기절초풍하고 말았을 것이다.
서로 첫 인사를 나눈 후 서로에 대한 평가는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 둔 채 모용휘는 묵묵히 자신의 짐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지고 온 짐들을 하나하 나 꺼내 정리하는 모용휘를 바라 보는 비류연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다. 그의 짐 정리는 특기할 만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점점 자신의 짐을 정리해 나가 는 걸 보면 볼수록 비류연의 안색은 창백해져 갔다. 그는 지금 무엇에 대해 놀라고 있는 것인가? 다시 이 각 후 잠자코 모용휘의 행동을 바라보기만 하던 비류연은 자신의 참을성에 종지부를 찍고 입을 열었다. 그의 물음에는 궁금증이 한 가득 널려 있었다.
“꼭 그렇게 해야 돼? 그렇게 하고 싶어?”
“뭐가 말이오?”
모용휘는 자신이 하던 행동을 묵묵히 계속하면서 흑옥 같은 눈을 들어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대화의 도중에도 그의 행동은 멈추질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꼭 그렇게 관물에 각을 잡아야 하냐는 거지? 무슨 측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관물을 정리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 힘들고 귀찮지 않아?” “이건 원래 본인의 버릇이니 신경 쓸 것 없소!”
모용휘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의 관물들과 짐들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날 정도로 자로 잰 것처럼 반듯했다. 이불 하나만 봐도 완전히 사각의 각이 완벽하게 딱 잡혀 있는 게 그 모서리가 마치 무슨 무시무시한 흉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청소와 정리 정돈에 목숨을 건 것도 아니고, 자신의 짐 하나하나를 빈틈 없이 완벽하게 정리 정돈하는 것으로 봐서 모용휘는 일종의 결벽증을 가진 듯 싶었다. 결 벽증(潔癖蒸). 유난스럽게 깨끗함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자신의 주위가 어지러우면 정신의 안정을 얻을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병. 일명 ‘무한 청소병’이라고도 불린 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먼지 한 알갱이도 용납하지 못하는 이 병의 정확한 치료법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결벽증 증세가 의심될 정도로 단 하나의 삐뚤어짐이나 어긋남도 발견할 수 없을 철두철미한 정리였다. 대충 모든 것을 어질러 놓는 비류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 도였다. 하지만 비록 비류연이 모용휘의 각 잡힌 완전무결한 관물 정돈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의 쓸데없는 시간과 체력의 낭비에 대한 끈기와 용기 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저 그의 독특함에 대한 감탄에 불과할 뿐 자신은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자신을 정상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터였 다.
비류연은 모용휘를 보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이란 말을 떠올렸다. 그만큼 그의 결벽증과 완벽함은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었 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 년 동안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의 결벽증을 보는 순간 꼭 그렇지만도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결코 유쾌하지는 못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