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4화 – 지금은 음흉한 계획중
지금은 음흉한 계획중
사색(思索)이란, 사물의 이치를 쫓아 파고들어
깊이 생각하는 일체의 정신적인 활동을 말한다.
요즘 들어 비류연은 사색에 잠겨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지는 주변 사람들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왠지 불안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류연은 조용히 생각 이라는 이름의 호수에 깊숙이 잠겨 있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비류연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제자가 없으니 지루하고, 심심하고, 피곤하다는 사실이었다. 밥을 지어 줄 제 자도, 일을 대신 해 줄 제자도, 돈을 벌어 줄 제자도, 수발 들어 줄 제자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비류연이었다. 그럴수록 얼마 전 떠나 보낸 16명의 제 자들이 못내 그리웠다. 그들과 함께 하는 동안, 비류연은 정말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했었다. 그 대신에 밥 지어 주고, 일해 주고, 청소해 주고, 빨래해 주고, 돈도 벌어 주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편했었던가.
그의 안락하고 편안했던 생활은 모두 16명의 제자들 덕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지상 명제는 단 하나, ‘어디서 쓸 만한 제자를 한 명 구해 야 되겠는데!’라는 것이다. 비류연은 어떤 제자를 어떻게, 무슨 수를 써서 구할까 요즘 한창 고민중이었는데, 한 가지 사실이 그를 아주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불쾌감은 생각이라는 이름의 고요한 심연의 호수에, 짜증이라는 이름의 돌을 던져 고요하던 수면에 거친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열 받음’ 이라는 이름의 파 도가 그를 사색의 호수 안에서 현실의 호숫가로 끄집어 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심기를 현저하게 괴롭혀서 심한 왕짜증까지 나게 했다. 바로 반대편에서 자신을 씹어먹을 듯이 살기 등등하게 노려보고 있는 한 놈 때문이었다. 듣기 로는 중양표국의 국주 십팔검 장우양의 외아들 장우강으로, 현재 26세라고 하는데 정말 십팔놈이었다. 물론 언어를 순화해서 적었기에 십팔 놈이지 사실 씨팔놈이 었다.
여기서 잠깐!
사람들은 종종 열불 받아 욕지거리를 사용할 때 용법의 오류를 자주 범한다. 욕도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애용되는 욕인 ‘십팔놈’이 있다. 물 론 언어로 이것이 나올 땐 ‘십팔(八)놈’이 아니다. 강한 억양이 첨가되어 ‘씹팔놈’으로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고쳐져야 마땅할 틀린 용례이다. 있지도 않 은 씹(삐-)을 어떻게 판단 말인가. 씹(삐-)이란 여성의 비밀스런 음부를 나타내는 은어이자 비속어로 여자에겐 달려 있지만 사내에겐 달려 있지 않은 신체 중요 기관 이다.
사내일 경우는 ‘씨팔놈’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씨란 씨앗의 준말로 임신의 양대 요소 중 하나인 정자(精子)를 가리키는 것이며, 팔은 팔다, 또는 매매(賣買)의 의미 를 지닌 말이다. 즉 ‘씨팔놈’이란 종마(種馬 : 우수 품종마의 번식을 위해 쓰이는 숫말)처럼 씨나 파는 놈(씨매매자(氏賣買者)), 혹은 여성용 남창(男娼)이란 뜻을 가 진 비속어이다. ‘씹(삐-)팔년’은 말 그대로 씹(삐-)이나 파는 잡년(삐-)이란 뜻을 지닌 말로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자, 즉 창녀(娼女)를 가리키는 아 주 좋지 않은 말이다. 여기에 씨받이는 들어가지 않으니 주의하여 혼동하지 않도록 하자.
그러므로 이 비속어의 올바른 용례는 욕할 상대가 남자일 경우 씨팔놈, 여성일 경우 씹팔년이라 할 수 있겠다. 욕이나 은어, 혹은 비속어라 해서 함부로 쓸 수 있는 언어란 이 세상에 없다.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물론 여성에게 뻽팔년이란 모욕적인 언사(事)를 감히 쓰는 남자가 있다면 그 놈은 진정한 삐-팔놈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 씨앗이나 팔 저놈의 장우강 자식이 만날 때부터 첫 인상이 안 좋았는지, 아니면 뭐가 그리 불만인지 표행 내내,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것이었 다. 자신을 마치 ‘원수’로 여기는 듯한 악의와 적의에 가득 찬 눈동자는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신경 가장자리를 바가지 긁듯 긁어 대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불쾌해 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손을 좀 봐 줄까, 아니면 그 누구처럼 몇 번 만져 줄까? 라는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일단은 눌러 참았다. 털이 나도 양심은 양심이라는 아름다운 (?) 사상을 가지고 있는 비류연에게 있어서 이 일은 좀 꺼림칙한 일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자제라는 것을 도를 닦는 기분으로 한때 행해 보기도 했 다. 하지만 역시 한때는 말 그대로 한때, 한 순간일 따름이었다.
처음에는 중양표국을 우려먹고, 부려먹고 있는 처지라 ‘참아도 줄까?’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비류연의 마음은 그리 넓은 편이 되지 못했다. 가슴 작은 여자는 용서 해도 허리 굵은 여자는 용서 못 한다.’는 투철한 신념을 갖고 있는 비류연이었다. 앗, 아니군! 방금 제기된 예시는 잘못된 것이고 다시 하자면 ‘면도하는 관운장은 용 납할 수 있어도,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용납될 수 없다.’라는 신념으로 행동해 오던 비류연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혼을 내기에는 주위의 시선도 있고 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신세지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우려먹고, 부려먹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급구! 구인 제자’ 이외에, 어떻게 저놈을 골려 주고, 혼을 내 주어야, “참 잘했어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심도 깊고 난해한 고민이었다. 그런데,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이 조금도 틀리지 않을 일이 며칠 뒤 벌어지고 말았다.
며칠을 고민하던 비류연은 아주 기발하고 뛰어난 몇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물론 이런 생각 – 옛 격언의 진실성 증명은 비류연 혼자의 생각이었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까지 동감한 것은 아니었다. 작전명 ‘두 마리 토끼!’ 벌써 자신이 세운 작전에 이름까지 붙여 놓은 비류연이었다. 다시 한 번 검토해 봐도 아주 흡족한 계책이 었다. 이제 상황에 따라 적절한 것을 골라서, 상황에 따른 변수를 대입한 다음 상황에 적용시키기만 하면 만사 완료였다. 계략 – 이건 책략보다 계략이라 불러야 마 땅하다-을 단수가 아닌 복수로 생각한 것이 바로 비류연의 무서운 점이었다. 계략과 책략이 서로 다른 점은, 계략은 크고 깊은 꾀, 계책(策)과 모략(謀略)을 한데 묶은 의미를 가진 말로 모략(謀略)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만 생각하지 않고, 상황과 그에 따른 변수를 상정하여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는 점이 바로 비류연의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점이었다. 만약 한 가지 계획을 세
워 놓았을 때 그 계획을 실행시킬 수 있는 환경이나 상황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대로 분루를 삼키며 포기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겨 우겨우 짜 놓은 계획의 실패 여부에 따라 분루 따위를 삼키는 한심한 취미 따위는 비류연에게 없었다. 그의 계획은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상정된 것들이었고, 예외 (例外)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과 그에 따른 변수를 가정하여 그에 맞는 각각의 작전들을 세워 두는 것이다.
만일 하나가 잘못되어도 또 다른 하나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추어 골라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뛰어난 책략가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른 대응책을 준비해 야 하는 법이다.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과 같은 수의 책략을 세워 두어야 비로소 우수한 책략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어날 가지 수를 최소한으로 조정하고 조작하는 것이야말로 책사의 진정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비류연이 괜히 예전에 천재(天災)라 불렸던 것이 아니다. 다 이유와 근거가 있기 때문 이었다.
“크ᄒᄒᄒ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비류연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 배우가 모두 모이지 않아 무대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획책함에 있어서 초 조함은 절대 금물이다. 연극은 배우가 모여야 시작되는 법,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때를 기다리며 상황에 따라 공연할 작품을 정하고, 그 작품에 맞는 배역을 맡아 줄 명배우를 물색하고 고르는 일이었다. 유쾌한 기분이 된 비류연은,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불쾌한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大)자로 벌렁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 보았다. 끝을 알 수 없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니 막힌 곳이 시원하게 뻥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없이 높아 보이는 창공(蒼空)은 맑고 깨끗하기만 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그 푸른빛에 취해 간만에 느끼는 느긋하고 평온한 기분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구름 한 점 없는 겨울의 창공(蒼空), 어두운 회색 빛을 벗고 푸른 빛을 되찾은 맑고 높은 하늘은 끝을 향해 한없이 높게 날개 짓하며 날아 올라가는 푸른 새처럼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