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권 10화 – 동호회란 게 뭔데?
동호회란 게 뭔데?
옥현진인의 무도 총론 수업이 끝나고
일각의 여유가 주어진 휴식 시간.
다시 한 번 옥현진인의 옛날 이야기를 곱씹으며
음미하고 있던 비류연 곁으로 효룡이 다가왔다.
“자넨 그자가 두렵지 않나?”
“누구 말이야? 내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니 금시초문이군……..
싱긋 웃으며 비류연이 말했다. 비류연의 대답은 물론 효룡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 왜 그러나. 그자 말일세, 바로 그자.”
차마 직접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지는 못하고 효룡은 대명사를 사용했다. 효룡에게도 두려움을 안겨 줄 만큼 대단한 존재인가? 비류연은 다시 한 번 신선한 경이로 움을 느껴야 했다.
“근데 내가 왜 그자를 두려워해야 되지?”
“그… 그건…….?
비류연의 갑작스런 질문에 효룡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어렴풋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생각을 비류연에게 전할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던 탓이다. 솔직 히 말하면 자신도 뭘 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자는 흑백 양도의 모든 무림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일세.”
효룡이 외치듯 내뱉은 말에 비류연은 묘한 시선을 답례로 보내 주었다. 이상한 생물 쳐다보듯 효룡을 바라보며 비류연이 말했다.
“자네 설마 모든 무림인들이 그를 경외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무… 물론 아니지.”
하지만 그의 말에는 확신이 없었다. 비류연의 말에 가슴이 뜨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 다행이고. 난 또 네가 그런 어리석은 주장을 펼칠 멍청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네.”
“그건 쓸데없는 기우였군.”
온몸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숨기며 효룡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자넨 정말 그자를 두려워하지 않는군.”
효룡은 아직까지 그자와 그의 세력을,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재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무림에서 이름 높은 명사나 절 정 고수라 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조금씩은 그자에 대한 공포를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있었다. 그런 효룡에게 비류연은 특이한 존재로 내비칠 수밖에 없 었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던 옛말이 사실이었어.”
옛 선인들의 지혜에 감탄하는 효룡의 이번 독백은 비류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비류연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별 쓰잘데기 없는 걸로 다 감탄하는군. 내가 왜 아직 만나 보지도 못한 존재에 대해 공포를 품어야 하지? 자넨 그 천겁 혈신이란 자를 만나 봤나?”
비류연이 대놓고 천겁 혈신의 이름을 거론하자 효룡의 안색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 이름을 그렇게 쉽게 거론하지 말게나. 물론 만나 보지 못했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내가 왜 아직까지 만나 보지도 못한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만날 수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존재에 대해 지레 겁을 먹고 꼬리를 내려야 하나? 겨우 옛날 이야기 한 토막 들었다고 그런 꼴사나운 짓을 할 수야 없지 않겠나.”
효룡은 물론, 장홍이나 윤준호의 경우는 그 옛날 이야기가 한 번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려서부터 그자와 그의 조 직에 대해서 들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비류연의 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일세. 비록 그것이 전설이 되었다 할지라도 말일세.”
“글쎄, 직접 만난다 해도 내가 그자에게 공포를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야. 내가 무서워하는 건 가난에 찌든 잡부 같은 제자의 삶뿐이야. 자네도 쓸데없는 걸 무서워 하느라고 체력 낭비하지 말라고.”
말을 끝낸 비류연의 시선이 홱 선회하더니 윤준호에게 가서 박혔다.
“너도 마찬가지고.”
“예? 왜요?”
갑작스런 지적에 뜨끔한 윤준호가 되물었다.
“아까부터 그 뭐냐… 천겁령과 그 혈신이란 녀석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고 있잖아. 알았어?”
비류연의 진심 어린(?) 충고에 윤준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비류연이 드물게 사고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태극신군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사람인데…….?
비류연은 방금 전 수업 시간에 들었던, 무림 역사 이야기에 등장한 한 사람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디선가 언뜻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뭐, 별 상관없나…….?
기억 안 나는 걸 뇌를 쥐어짜면서까지 억지로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행위는 비류연의 취미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곧 생각을 멈추고 잊어버렸다. 앞으로 당분간은 그에 관한 사항이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떠오르겠지 뭐.”
속 편한 소리만 지껄이는 비류연이었다.
태극신군도 죽지 않았다. 비단 저승길에 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바로 천무학관의 설립과 필요성을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최초의 초대 천무학관주가 되어 인재 양성에 힘쓰다 돌연 30년 전에 은퇴하고 그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 뒤의 행적은 무림맹 비각과 천무학관 비영각에서 끊임없는 추적을 계속했지만 그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흐흠, 노사들은 나를 지루해 죽게 만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도 몰라.”
한숨 섞인 목소리로 비류연이 투덜거렸다.
마침내 오늘 하루 수업이 전부 끝난 것이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수업이었지만 첫 시간의 천겁령 이야기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둘째 시간은 ‘비도술 응용’에 관한 내 용이었던 것이었다. 비류연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는 분야였다.
“모용휘를 좀 본받아 보게. 얼마나 열심인가.”
모용휘는 뭐가 그리 열심인지 수업 시간 내내 한시도 손에서 지필묵을 놓는 법이 없었다. 지켜보는 이가 다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비류연은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차라리 나보고 죽으라고 해. 그런 일은 두 번 죽었다 깨어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깐.”
“후후, 실없는 소린 그만 하게. 자네도 흥미가 있으니 잠자코 듣고 있는 것 아닌가. 전 강호의 젊은이들이 꿈에도 바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불평하지는 말게.” 장홍이 주의를 주었다. 그 수업은 강호인이라면 만금(萬金)을 들여서라도 들어오고 싶어하는 천무학관의 무학 강의인 것이다.
“그런가…….?
장홍의 주의를 듣고도 비류연은 여전히 잘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자자, 그곳보다 지루하다니 내가 재미있는 곳에 데려다 주지.”
더 이상 비류연과 의견 교환을 하는 것은 지독히 어리석은 일이었기에 장홍은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어디로?”
비류연이 냉큼 물었다. 이제 그의 머리 속에는 수업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언제나 그의 호기심은 끊임없이 샘솟는 샘물처럼 왕성하기 그지없었 다.
“따라와 보면 알게 된다네.”
그러면서 앞장서서 성큼성큼 보폭을 벌리며 길을 걸어가는 장홍의 등은 비류연 일행의 궁금증만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장홍이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큰길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묘한 장소였다. 그 거리는 떠들썩한 소음과 생기로 가득 찬 힘이 넘치 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그곳에 모여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한자리에 모인 만큼 그 혼잡함과 소란스러움은 엄청난 것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각 건물들은 자신들의 건물 앞에 크고 작은 현수막과 형형색색의 장식으로 몸을 단장하고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흰 무명천으로 만든 기다란 현수막에는 ‘절 대환영! 최고의 편법, 백화만난의 꿈을 위하여!’, ‘검중지성(劍中之聖)! 검의 새로운 경지를 원하는 분 모두 환영!’, ‘도중지성(刀中之聖)의 길을 향해!’, ‘비도풍운 (飛刀風雲)! 섬전 같은 일격 필살을 위하여!’ 등등의 현란하고 자극적이며 선동적인 말들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현수막 가득히 적혀 있었다. 게다가 현수막으로 는 부족하다 느꼈는지 그 앞에는 몇 명의 관도들이 나와 여러 가지 유혹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대충 들어 보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도를 통해 무학 최강의 경지에 오르고 싶으신 분은 누구나 저희 도백회(刀魄會)에 가입하십시오. 도법의 끝이 이곳에 있습니다.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도(刀) 의 극의(極意)에 도달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입실 허가 시간은 내일까지입니다. 더 이상 망설이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 지 마십시오.”
도법에 관련된 곳인 모양이었다. 그들이 차고 있는 병기 또한 모두 도(刀)였다. 그 건너편 측의 선전 내용은 또 달랐다. 그들은 모두 허리춤이나 등에 오직 검(劍)만 을 멘 이들이었다.
“저쪽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무학의 최고봉은 누가 뭐라 해도 바로 검법입니다. 백일창(百日槍), 천일도(千日刀), 만일검(萬日劍)이라는 세 살배기 코흘리개 어 린애도 다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감히 만병지왕(萬兵之王)이 검(劍)이라는 사실에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는 이야기는 비류연도 아미산 시절에 들어 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한 가지 무기를 제대로 익히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바로 창은 백 일, 도는 천 일, 검은 만 일이라는 말이었다. 즉, 각각 석 달, 삼 년, 삼십 년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검을 익히기는 어려우며 함부로 검을 안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였다. 이런 가르침 대신 비뢰문에는 한 구절이 뒤에 더 붙어 있다. 바로 ‘일억일(億日) 비뢰도(飛雷刀)’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삼백 번 이상의 전생 을 거치며 생(生)과 사(死)를 뛰어넘어 배워야 한다는 광오하기 그지없는 자신감의 표현인 것이다. 비류연의 사문다운 구절이었다.
아직 양측 선전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모든 무학은 검법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검법이야말로 효과적인 살육 따위의 비천한 이유보다 자기 자신의 수련에 목적을 둔 진정한 무도(武道)이기 때문입 니다. 어떻게 도(刀) 따위가 감히 검(劍)에 비견될 수 있겠습니까. 자, 검의 최절정 고수가 되고 싶습니까? 천하 제일검을 향한 목표를 불태우고 있는 사람은 저희 검 혼회(劍魂會)에 가입하십시오. 새로운 검의 경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검기(劍氣), 검풍(劍風), 검강(劍剛)의 모든 경지를 여러분은 만나 보실 수 있을 겁 니다.”
가장 건물이 크고 사람들도 가장 많은 두 곳에서 들려 온 목소리였다. 선전 내용도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허위 광고의 부도덕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철전지 원수나 다름없는 경쟁자 관계가 분명했다.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바쁜 그들의 선전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다른 곳도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자신들의 취미에 동참 하라는 뜻의 선전을 열띤 경쟁과 함께 펼치고 있었다.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선전 내용도 가지각색이었다.
“도대체 이 정신사나운 곳은 어디야? 이곳에 있으면 조용하다고 죽을 일은 없겠군.”
이렇게 많은 젊은 후기 지수들이 모여 정신 사납게 떠들고 있는 모습은 비류연으로서는 처음 보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도대체 이곳이 어디야?”
궁금증을 참지 못한 비류연이 장홍에게 재차 물었다. 그가 이곳으로 끌고 온 장본인이니 분명히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게 비류연의 논리 정 연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의 추리는 다행히 틀리지 않았다.
“어, 몰랐나? 이곳이 바로 천무학관의 명물 중 하나인 동호회의 거리라네.”
“동호회의 거리?”
셋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어리둥절해 있는 셋을 위해 장홍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하고 내일이 마침 동호회 가입 신청일이라네. 그래서 이곳에 온 걸세. 자네들도 뭔가 하나씩 동호회에 가입해야 되지 않겠나?”
“아, 오늘이 바로 동호회 가입 신청일이었군.”
그제야 효룡이 손바닥을 탁 치며 자신이 이해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비류연 쪽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천무학관은 물론 강호 전반에 대해 아는 게 성장기에 들어선 다섯 살짜리 유아 수준과 동등 혹은 그 이하였기 때문이다.
“그게 뭐 하는 날인데? 그리고 동호회란 게 도대체 뭔가?”
비류연이 약간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동호회란 특정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여러 명의 개인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친목 무학 연구 수련 단체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
비류연이 약간 불만스러운 투로 말했다.
“간단해. 그냥 비슷한 취향이나 취미를 지닌 사람들끼리 모인 거야. 그리고 자기들끼리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 관심 분야에 대해 자발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연 구하지. 노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말일세. 음… 뭐 조언 정도야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취지가 관도들의 자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함에 있다는 데는 변함없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약간 변질되기도 했지만 말이야.”
장홍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 뒤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을 보자 장홍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모양이군. 내가 다시 설명해 주지. 이번에는 부디 이해에 성공해 주기 바라네. 그래야 내 입도 편할 테니까 말이야. 세 번씩이나 같은 말을 반 복하게 만들면 미안해서 어디 얼굴을 들 수 있겠나.”
잘 경청하겠다는 태도로 3명은 장홍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알다시피 천무학관의 설립 취지와 교육 이념은 새로운 무공 주입과 비급 독해를 통한 실력 향상이 아니라 관도들의 개인에 대한 기존의 일신 무공에 대한 이해력 을 높이고, 그것을 갈고 다듬고 개선 발전시킨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고 그건 아직도 변함이 없어. 수많은 무공에 대한 일방적인 주입과 두서없는 교육은 개인의 발 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천무학관은 오랜 세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거지. 새로운 수원(水原)을 발견하고 싶다면 가능성이 높은 장소에서 한 곳만 깊이 파내려가야지, 두서없이 이곳 저곳 찔러 봐야 말짱 도루묵인 것과 같은 이치지.”
“거기까지는 이해했어. 계속해.”
비류연이 설명을 재촉했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여전히 가르침은 일방통행을 벗어나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천관은 생각했지.”
“무엇을?”
“어떻게 하면 학생 개인의 향무열과 자립심을 기르고, 덤으로 협동심도 기를 수 있을까 말일세. 천무학관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어했지. 또 학생들도 자신들 의 관심 분야에 대해 서로 모여 타 문파와의 무학(學), 무리(武理) 교류를 통해 이해력을 높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 고인 물은 언젠가 썩기 마련이거든. 좌정관 천(坐井觀天)해 봐야 개구리 빈대떡밖엔 안 된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지. 게다가 폐쇄된 강호 사회에서 이곳만큼 수많은 문파가 모인 예는 어디에도 없거든. 그래 서 그들은 서로 의견 일치를 보게 되었지.”
“그러니까 자네 말은 그렇게 해서 바로…….”
“맞아. 그렇게 해서 수많은 동호회가 학관 내에 생겨나게 됐지. 검을 사랑하는 이들은 검법을 연구하는 모임을, 도를 아끼는 이들은 도법을 연구하는 모임을, 연수 합격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합격술 연구 동호회를 이렇게 독(毒)이면 독, 암기면 암기, 기관이면 기관, 진식이면 진식. 수많은 관심사에서 수많은 동호회가 생겨났 지. 그리고 그 와중에 얼토당토않은 동호회들도 함께 생겨나게 된 거야.”
“이젠 좀 알겠어.”
비류연과 효룡, 윤준호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희망이 보이자 장홍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것 참 다행이군.”
“즉, 나한테는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로군.”
비류연이 수긍했다.
“자네 전혀 이해하지 못했군.”
장홍이 가볍게 그를 비난했다.
“왜? 내가 틀린 말 했나?”
“물론이지. 그것도 아주 잘못된 말을 했어.”
“하지만 사실인걸.”
비류연이 솔직하게 말하고 일행 중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했다.
“잠깐!”
왜 불러, 라는 표정으로 비류연이 돌아보았다.
“성급하기는. 자넨 입관 설명회 때 도대체 뭘 들었나?”
졸았는지 그에 대한 기억은 그의 머리 속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슨 하늘을 나는 그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천무학관도라면 누구나 1개 이상의 동호회에 의무적으로 적을 두고 있어야 해. 예외는 없어.”
장홍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천무학관 학생은 누구나 하나 이상의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해야 한다는 것은 학관 관규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비류연은 다시 고민해야 했다.
“이보게, 자네.”
그때 그들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목소리는 분명 효룡을 향한 것이었다.
“지금 저를 부르셨나요?”
효룡이 등을 돌리며 자신을 호명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황의 무복을 입은 청년의 강력한 눈빛과 당당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일견하기에도 상당한 수련을 쌓은 인물인 것 같았다. 그의 허리춤에는 붉은 수실을 단 오색 창연한 검 한 자루가 매여 있었다.
“자네 천무학관 최대 최고 최강의 동호회인 검혼회(劍魂會)에 들어오지 않겠나?”
사내가 말했다.
“저 말인가요?”
효룡이 검지로 자신의 턱을 가리키며 확인했다.
“그래, 자네 말일세.”
황의무복의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왼쪽 가슴에는 5개의 검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다섯 마리의 용이 새겨진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오검룡(五劍龍)! 대 문파의 적전 제자를 능가한다는 무학의 귀재들이었다. 천무학관 안에서도 거의 찾아 보기 힘든 몇 안 되는 소수의 실력자 중 하나였다.
“누구시죠?”
“아, 내 소개를 안 했군. 난 청성검파 출신의 청풍검 소천군이라고 하네. 천관 3년차로 검혼회 사대 검주에 속해 있지.”
사대 검주라는 말을 할 때 그의 가슴이 쫙 펴지는 걸 보니 검혼회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 속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에게 자랑할 만큼 높은 신분이라도 상대가 그것을 알지 못하면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불초는 태을검문의 효룡이라고 합니다.”
효룡이 포권지례를 하며 화답했다. 상대가 자신의 사문을 밝혔기에 강호 예의상 그도 자신의 사문를 밝힌 것이다.
“태을검문? 본인의 지식이 부족한 탓에 기억에 없군. 그런 문파가 있었던가?”
소천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을 표시하자 효룡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일인단맥의 문파니 알려지지 않았을 수밖에요.”
“허허, 그런가? 역시 강호에는 숨은 인재가 많군 그래. 그것이 또한 강호의 흥미로운 점이지.”
효룡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다시 효룡을 바라보며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자네의 근골과 자세를 보니 검을 깊이 익힌 자 같군. 어떤가? 우리 검혼회에 들어오는 것이. 우리 검혼관은 천관 최대 최강 최고의 동호회로 수많은 검재와 검귀 를 보유하고 있다네. 만일 자네가 한 사람의 검객으로서 우리 검혼회에 들어온다면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되네. 자네에게 득이 될지언정 절대 해는 없을 걸 세.”
“검혼회요?”
“우리 천무학관에 가장 크고 강력한 힘을 소유한 최대 최고 최강의 동호회지. 강호의 최고 후기지수들이 모여 검 속에 담겨진 오묘한 진리를 연구 발전시키는 모 임이라네. 자네도 이곳에 들어오면 새로운 검의 경지에 올라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걸 내 장담하지.”
그의 호언장담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곳인가요?”
“물론일세. 아무리 검학에 대해 수강한다 하더라도 이해를 못 하면 말짱 헛일이 아닌가. 일방적인 가르침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지. 그걸 보강하기 위한 것이 바로 동호회 활동이라네. 누구나 꼭 하나 이상의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해야 한다네. 학칙에 적혀 있는 문서화된 규칙이지. 어떤가, 가입하겠나?”
“흠… 그럴까요?”
효룡도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일이 곧이어 일어났다.
“그런 오판은 다시 한 번 검토해 보는 게 좋을걸.”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분명한 것은 그들 일행 사이에서 난 목소리가 절대 아니란 것이었다. 소리의 근원지에는 허리에 투박하게 생긴 도(刀) 를 찬 거친 인상의 흑삼 청년이 한 명 서 있었다. 굵고 짙은 눈썹과 강인한 턱을 지닌 패도적인 기운을 내뿜는 사내였다. 그를 본 소천군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 졌다.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소천군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야 자네의 마수에 빠진 한 마리 어린 양을 구하러 온 정의의 사도라고나 할까.”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흑삼 청년이 빈정댔다. 흑삼 청년의 가슴에도 소천군과 똑같은 수의 오검룡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와 막상막하의 실력자라는 반증이었 다.
“흉포함과 무식함으로 똘똘 뭉쳐진 도백회(刀魄會) 떨거지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가소롭기 짝이 없군. 일도파쇄 구창!”
적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청풍검 소천군이 가소롭다는 듯이 반격했다. 상대방도 지지 않았다.
“음흉함과 간사함의 대명사인 검혼회 일당에게서 그런 말을 듣다니 돌아가신 조상님이 비웃으시다 배꼽 빠지시겠네. 우습기 짝이 없군.”
“뭐라고!”
소천군과 구창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그 대립의 흉포함은 맹수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평소부터 감정이 무척 안 좋은 모양이었다. 사실 검 혼회와 도백회는 천무학관 내에서도 불구대천의 원수지간만큼이나 사이가 나쁘고 철저한 경쟁 관계였다. 사이가 좋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 것이다. “자네!”
구창이 효룡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효룡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그로서는 뭐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구창의 시선이 그의 쌍둥이 검에 가서 머물렀다. “저기 있는 검술 놈팡이가 자네를 꼬시는 모양인데, 내 자네의 미래를 위해 충고하지. 그런 보기에만 화려하고 겉멋만 잔뜩 든 검이 뭐가 좋다고 그러나? 사나이라 면 역시 힘과 속도를 겸비한, 강함의 대명사 도(刀)를 익혀야 하지 않겠나? 저런 비실비실한 동호회는 당장에 거절하고 우리 도백회에 가입하게나.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아. 사나이는 역시 도일세.”
“닥치게. 그는 누가 뭐라 해도 훌륭한 검객이야. 자네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구. 그런 그에게 무식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으며 우아함이라고 는 찾아 볼 수 없는 도를 배우라고 강요하다니 어불성설일세. 웃기지 말게. 자네!”
마지막 말은 효룡을 부르는 말이었다.
“예?”
“저런 무식쟁이 도잡이 말은 듣지 말게나. 자넨 누가 뭐라 해도 훌륭한 검객이야.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그런 자네가 무식하고 흉칙한 도법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걸 내 어찌 볼 수 있겠나. 그건 자네의 앞길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행동일세. 저런 돼먹지 못한 자의 말은 듣지 말고 당장 우리 검혼회에 가입하게.”
“흥, 가입해봤자 신경도 안 써 줄 검혼회에 가입해서 어쩌겠다는 건가?”
“이번엔 또 무슨 모함을 하려고 그러나?”
싸늘한 어조로 소천군이 말했다.
“흥, 자네 검혼회가 썩어빠진 구파九派)의 앞잡이란 걸 모르는 이가 이 천관에 누가 있나. 아무리 재능 있는 자라 해도 구파의 인물이 아니면 소외되고 무시되고 마는 것이 너희 검혼회가 아닌가.”
구창의 말은 신랄하기 짝이 없었다. 소천군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구창의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난 그렇지 않아.”
“흥, 네놈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딴 놈까지 그렇다는 법은 없지. 게다가 네놈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야.”
갑자기 소천군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안색이 침중한 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구창의 말은 거의 사실이었다. 검혼회는 거의 구정회(九正 會)의 그림자이자 분신적인 성격이 강해 구파의 인물이 아니라면 대접받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구파 이외의 인물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 은 도백회 쪽도 마찬가지였다.
“무리를 지어 작당하는 건 네놈들도 마찬가지 아니냐.”
“흥, 네놈들이 무리 짓고 작당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로군.”
구창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엄연히 틀리지. 잘 알면서 왜 그러나. 우리 도백회는 팔가회와 군웅회의 인물들이 모여 만든 곳이야. 겨우 아홉 문파끼리 작당하는 자네들과 비교하지 말아 줬음 좋겠군. 저 녀석은 당연히 구파의 인물이 아니니 우리 도백회에 들어야 하지 않겠나.”
구파의 분신인 검혼회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바로 도백회였다. 구파의 독주를 막고, 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조직인 것이다. 팔대 세가가 주축이 된 팔가회와 기타 대소 방파들이 모인 군웅회가 한데 힘을 합친 곳이 바로 도백회인 것이다.
그래서 검과 도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간판을 걸어 놓고 실상은 세력 싸움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두 곳 다 검과 도에 인연이 먼 사람들도 가입해 있었다. 즉 팔대세가 인물이라면 검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검혼회는 제쳐 두고 도백회에 가입하는 뭐 이런 식이었다. 동호회 본래의 취지에서 삼만사천 장(丈) 정도 는 벗어나 있음을 양측 다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물과 기름, 또는 견원지간처럼 섞이지 못하고 항상 티격태격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둘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 묘한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재주도 빼놓을 수 없는 특기 중 하나였다. 언제 어디서 만나 더라도 서로에게 충분한 악감정을 심어 줄 수 있었다.
천무학관 동호회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양대 거대 동호회가 바로 검혼회와 도백회였다. 둘 모두 강호에서 가장 널리 애용하는 양대 병기를 연구하 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회원 수가 많은 건 당연했다. 둘은 회원 수와 세력, 그리고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매년 우열을 논하기가 어려웠다. 요즘은 계속해서 검혼회 쪽 이 한 발 정도 앞서 있는 실정이었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 도백회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혼회와 도백회는 항상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며 힘 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두 곳 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일치단결하고 있는 데다가 강 호의 이해 관계까지 연루된 관계로 화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연약한 검법!”
“무식한 도법쟁이!”
이 말들은 검혼회와 도백회 사람들이 서로를 깎아내릴 때 가장 빈도 높게 애용되는 욕이었다. 물론 서로 정해진 욕들을 교환한 그들은 발끈했다.
“뭐라고? 이런 시건방진 녀석!”
그 둘을 둘러싼 분위기가 점점 더 살벌해지고 있었다. 공기가 살기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무형지기(無形之氣)로군.”
장홍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무형지기란 절정 고수 이상 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무형의 검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무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경지의 기술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위력 또한 노고수를 방불케 하는 힘이었다.
“저런, 저러다간 양쪽 다 무사하기 힘들겠군.”
장홍이 혀를 차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무형지기가 맹렬히 얽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따지고 보면 같은 동문인데, 그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었다.
“점점 더 기세를 올리고 있군. 쉽지 않겠는걸.”
둘의 실력은 막상막하로 보였다. 한쪽이 절대로 우세한 위치에 있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형지기를 동원한 힘 겨루기는 내공 대결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 다. 하지만 2명 다 결코 기세를 늦추려 하지 않고 있었고, 오히려 점점 더 강력해져 갈 뿐이었다.
“이봐, 효룡? 자넨 저 둘 중에 누가 이길 것 같나? 저기 무식한 도잽이, 아니면 저쪽 호리호리한 몸매의 검꾼?”
두 사람에 대한 비류연의 평은 가차없었다. 원래 이런 살벌한 분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기는 게 비류연의 또 다른 취미였다. 기회가 된다면 종종 일부러라 도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보기도 하는 전적이 있기도 했다.
“글쎄? 아마 저쪽 청풍검 소천군 쪽이 다소 유리할 것 같은데.”
“에이, 혹시 같은 검객이라고 편 드는 거 아냐?”
“아니, 이건 매우 객관적인 평이야. 승부의 행방에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집어넣을 만큼 바보는 아니라구. 저쪽 도백회 형씨는 겉도 속도 모두 흥분해 있는 게 눈 에 보여. 하지만 검혼회의 소천군은 겉으로는 흥분한 것처럼 꾸미고 있어도 속은 얼음 결정처럼 냉정하기 그지없을걸. 투명할 정도로 맑은 그의 눈동자가 모든 걸 말해 주지. 상당한 수련을 쌓은 모양이야. 웬만해서는 저런 경지에 오른다는 건 힘든 일인데 말이야.”
효룡은 솔직히 감탄했다. 하지만 그의 어조에는 약간의 감탄만이 서려 있을 뿐, 동경의 감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의 말투는 자신은 이미 그 경지에 오래 전에 도달했다는 여유스런 태도였다.
“피 터지게 싸우면 참 흥미진진할 텐데 말야. 모양새를 보니 아쉽게도 서로 신경전만 벌이다가 끝낼 기색인걸.”
불구경 놓친 어린애 같은 비류연의 아쉬운 말투에 효룡이 고소를 머금었다.
“참아. 본격적인 천관 생활 처음부터 싸움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야. 그건 어제 검혼관 신입생 환영회 사건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하다고. 어제는 일년치 사고를 한꺼번에 몰아친 것 같은 느낌이었단 말이야.”
그는 어제의 일을 일년치 일어날 사고의 결정이라고 표현했지만 불행히도 본격적인 사고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고 있었다. 앞으로 미래에 그의 주위에 일어날 일들 에 비하면 어제 있었던 호천강 발악 사건 따위는 새발의 피만도 못한 미약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읽는 용한 재주가 없는 효룡으로서는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건 장홍과 윤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저긴 둘 다 들어갈 때가 못 되는 것 같아.”
비류연의 평에 효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맨날 저렇게 티격태격해서야 신경이 남아날 것 같지가 않군.”
아직도 승부는 갈리지 않은 채 점점 더 기세만 험악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천무학관에서는 한 사람이 한 동호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되어 있어. 학문에 관계된 동호회든 무술에 관련된 동호회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 도록 해. 그거야 개인의 자유니깐 말일세. 하지만 잊지 말게. 그것이 어디든 꼭 한 곳은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일세.”
장홍이 단호하게 말했다. 비류연과 효룡은 어떤 종류의 동호회에 들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도 동호회는 어때?”
효룡이 한 곳을 추천했다. 그쪽은 평소부터 관심이 많이 가던 분야였다.
“그쪽은 사양하겠어.”
비류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왜?”
“그쪽으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이야. 비도는 내 것으로도 넘칠 만큼 충분해. 딴 걸 찾아 보자고.”
비류연 자신에는 비뢰도가 있었다. 비도(飛刀)와 사검(絲劍)의 결정판인 비뢰도를 익힌 그에게 더 이상의 비도 수업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다 그의 눈 에 어린애 장난으로 보일 뿐이었다.
막상 가입할 곳을 정하려 하자니 들 곳이 영 마땅치가 않았다. 수십 개나 되는 동호회들이 도로 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미가 당기는 데가 없었 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사이에도 소천군과 구창의 무형의 암투暗鬪)는 점점 더 그 정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2장 떨어진 곳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촉. 서로의 무형지기가 격돌하면서 발생하는 날카로운 예기가 피부를 찌르는 게 느껴졌다. 이제 둘은 최대의 무형지기까지 발출하며 서로를 견제하며 노 려보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발전하다 보니 이젠 수습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무형지기가 뒤얽힌 영역에 함부로 발을 내디뎠다가는 심맥이 끊어져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형지기가 지배하는 공간은 이미 다른 공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절정 고수들은 이 무형지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하니 그 위 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은 쳐다보기만 해도 죽는다는 것이 바로 무형지기였다.
소천군과 구창은 자존심과 승부욕에 불이 붙었는지 양보의 미덕 따위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여차하면 생사까지도 갈라 보자는 태도였다.
“어이 이봐, 자네들 재미있는 걸 구경하고 있군.”
윤준호가 황급히 놀라 고개를 뒤로 홱 돌렸다. 등 뒤의 목소리가 지척까지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실전이라면 목이 베여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는 위협이었다. 그와는 달리 비류연과 효룡, 장홍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