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권 17화 – 비류연에 관한 첩보 입수

비뢰도 3권 17화 – 비류연에 관한 첩보 입수

비류연에 관한 첩보 입수

비류연이 위지천의 한쪽 소매를

피 묻은 걸레로 만든 것과 같은 시각,

구정회의 두뇌 격인 형산일기 백무영은

2명의 사내 때문에 한창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둘 때문에 평소보다 3배는 족히 넘어가는 사고 활동량으로 뇌를 혹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방금 들어온 또 하나의 새로운 정보 때문에 뇌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물론 사실이겠지만 너무나 황당한 정보였기에 백무영은 잠시 자신 앞에 서 있는 일비(一秘)를 쳐다보았다. 비영각 직속 정보 대원인 일비가 가져온 정보에 오류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 자신도 그의 능력을 굳게 믿었다. 그는 어쨌든 천무학관이 자랑하는 최고의 정보 조직 비영각 휘하 십비대(+秘隊)의 우두머리였 다.

그는 곧 자신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했다.

“제가 실언을 했군요.”

일비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크게 괘념치 않겠다는 표시였다. 백무영은 다시 침중한 얼굴로 보고서를 천천히 들여다 보았다. 그 작은 보고서 안에 자신을 경악시킬 만한 사실이 적혀 있다는 것이 영 못마땅한 듯한 태도였다. 더 이상 자신의 뇌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주변 여건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모양이었 다.

“그자가 염도 노사와도 관계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남과 어울리기를 그토록 싫어하는 그분이 그자와 함께 사건을 벌였다니…….”

백무영은 염도를 노사(老師)라 칭하고 있었다. 그가 이미 천무학관의 무사부 중 한 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얼마 전 호아장에서 있었던 매 우 불미스러운 일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호아장 사건과 비류연이 뭔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추측은 했었지만 이토록 깊이, 그것도 의외의 인물과 함께 얽혀 있었으리 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염도 노사의 후계자로 봐야 되는 걸까요?”

우선, 혹시 그 비류연이라는 남자가 염도의 제자가 아닐까 가정해 보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겠지요. 그의 머리 색깔을 봐도 그가 화령신공을 익혔다는 증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특전(특별 전형 시험)에 1등할 정도라면 어느 경지 이상의 무공을 지 니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의 무공이 화령신공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특전에서 사용한 무공도 화령신공이 아니었죠. 지금 지니고 있는 무기도 도(刀)가 아니 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비류연이 일신상에 무기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은 체술의 달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가장 타당한 생각이겠죠.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는 정말 무서운 인물일 수도 있겠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제껏 침묵으로 일관하던 일비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가끔 이렇게 질문해 주는 것에 대해 답해 주는 걸 즐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상관의 유희에 부흥해 주는 것도 아랫사람의 도리 중 하나였다.

“당연한 것이겠지요. 본신의 절기를 숨기고 천무학관에, 그것도 1등으로 입관할 정도의 실력을 지닌 사람이 범상한 인물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겠지요.”

일비도 그의 의견에 순순히 동의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백무영의 의견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이 예상은 빗나가길 바랍니다. 한낱 기우로 끝났으면 더 바랄 게 없겠군요. 만일 이 예상마저 맞게 된다면 우리는 또 한 명의 막강한 경쟁자를 두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거야말로 슬프기 그지없는 비극이지요.”

모용휘 한 명만으로도 지금 상황이 복잡해진 판국에 그와 비슷한 비중을 지닌 경쟁 상대가 또 등장한다면 상황은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난마(亂麻)처럼 뒤엉킬 게 불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현 상황의 혼란은 그들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는 막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칠절신검 모용휘 건만으로도 상황은 불투명합니다. 그자 이외의 큰 변수가 또 생긴다면 수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확 제거해 버릴까요?”

백무영이 일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일비도 백무영도 잘 알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일을 크게 확대시킬 수는 없었 다. 어쨌든 그들은 정통 명문 정파인 구파의 후예였다. 비겁한 꽁수를 써서 상황을 바꾸려 한다면 흑도와 무엇이 다를 게 있겠는가. 정신이 말짱히 박혀 있는 이상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우행을 저지를 마음은 없었다.

“감시를 늘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보 수집에 좀더 열중해 주세요. 아직 다른 인물에 비해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군요.”

백무영이 추가로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비영각 요원을 동원해서 정보 수집에 좀더 집중하겠습니다.”

그가 한 번 한다고 약조했으니, 백무영은 며칠 내로 자신의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보고서들과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일비를 믿었다. 그리고 이제껏 일비가 그에게 실망을 안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자는 정말 엉뚱한 인물들하고 어울리길 좋아하는군요. 그가 만난 인물 중에 소홀히 할 만한 인물들이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의 말에 일비는 토를 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 녹아 그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인물들만으로도 그는 위험 인물로 낙점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입니다. 진성곤 임성진, 천무쌍귀영 당철기와 천소해, 비연태……. 정 말 제대로 된 인간을 만나는 재주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군요.”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위험천만하고, 정신 상태의 이상 유무가 심히 의심되는 사고뭉치 인간들만 만나고 다닐 수 있는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백무영 으로서는 비류연의 이런 괴상망측한 사교 기술을 절대 환영할 수 없는 처지였다. 비류연의 행동이 마치 벽력탄을 하나로 길게 이어 붙인 듯한 인상을 그에게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낱개의 개체로 떨어져 있을 때보다 하나로 뭉쳐진 벽력탄의 위력이 수십 배는 더 크다는 사실은 굳이 실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이었다.

하나하나 주의 위험 인물로 간주되어 있는 천관 명물들의 이름을 읊조리며 백무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사태가 어느 쪽으로 발전될지 예측 불가능했다. 자칫 잘못하다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하나로 엮어진 벽력탄이 눈먼 불똥에 동시에 폭발한다면 그 폭발에 휩쓸린 구정회(正會)는 무사하 지 못할 것이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고,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한 일은 그 위험성을 최 소한으로 줄여 놓을 필요성이 절실했다.

“약간의 제재를 가하도록 합시다.”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두 손 놓고 지켜보다 뒤통수 맞는 것보다는 훨씬 건설적인 생각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게다가 뭔가 찔러 보아야 훨씬 더 나오는 게 많을 것 아닌가.

“누구를 보내시겠습니까?”

“그자들이 검혼관 소속이니 일은무영(日隱無影) 추일태를 보내도록 합시다.”

“그자를 말입니까?”

일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백무영의 의견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자에게 일을 맡기는 게 불안합니까?”

일비의 싫은 기색을 읽었는지 백무영이 물어 보았다. 그는 이렇게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비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자는 구정회라 하기엔 너무나 경박한 자입니다. 그가 어떤 자인지 벌써 잊었습니까? 인선에 좀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일비는 어디까지나 신중했다.

“저도 그 사람이 검에 대한 본분을 잊고 은신잠행술에 심취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별호도 그쪽과 관련된 것으로 얻었더군요. 일은무영(日隱無影)이 라……. 대낮에도 그림자 하나 없이 몸을 숨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 것 같군요.”

“그는 구파의 후예이면서 검을 소홀히 하고 잡술(雜術)에 심취한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일을 맡겼다가는 또 한 번 구파의 명예를 실추시킬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 다.”

“그의 인격과 성품을 믿지 못하겠단 말이군요.”

“물론입니다. 그자의 인격을 믿을 바엔 차라리…….”

차라리 지나가던 똥개의 인덕을 믿는 편이 낫다고 말하려다가 일비는 간신히 씹어 삼켰다.

“그는 정말 불신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군요. 하지만 그러기에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요?”

“예?”

이 일은 재미를 논할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는 이독제독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두 쪽 다 서로에게 피해를 준다면 저로선, 아니 우리 구정회로선 더 바랄 게 없지요. 이용할 수 있는 걸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자의 인품과 인격이 미덥지 못하다 하더라고 그 실력까지 싸잡아 욕할 수는 없었다. 객관적인 평가로 무공 면에서는 누구도 무시 못 할 실력을 지닌 자였 다. 인격만 받쳐 준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세상만사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리지는 않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가 함께 처리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을 텐데.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군요?”

겨우 일비를 납득시킨 백무영이 물어 보았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비각 요원인 당신이 은신잠행술을 그렇게 낮게 평가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잡술이라니요? 정말 의외로군요.”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은밀함으로 먹고 사는 비각 정보 요원에 있어서 은신잠행술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이었다. 자신의 생명과 연관된 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 을 한낱 잡술로 치부하다니…….

“저도 구정회의 일원입니다. 검(劍) 속에 담긴 무궁한 도(道)에 비하면 은신잠행술 따위야 하찮은 방류 기술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필요에 의해서 익혔을 뿐 좋아하 지는 않습니다.”

일비의 생각은 단호했다.

“그건 정말 모순이로군요. 십비대에서 가장 뛰어난 은신술을 지닌 당신이 은신술을 가장 싫어하다니……. 정말 일은무영 추일태와는 정반대로군요. 추일태를 그 렇게 못마땅해 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세부 사항으로 지시할 일은 없으십니까?”

오래 끌어 좋을 만한 화제가 아니었기에 일비는 화제를 바꾸었다. 백무영도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방법은 맡긴다고 전하십시오. 어차피 제가 방법을 알려 준다 해도 제멋대로 행동할 사람 아닙니까. 묘수를 알려 준다 해도 헛수고겠지요.”

자신의 머리를 헛되이 돌리는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일비는 백무영의 이번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원체 제멋대로인 그 인간이 제대로 지시를 수행할 거 라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역시 천무학관 최고의 두뇌답게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다. 그리고 어떻게 써야 가장 유용하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잘 알 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떠나라는 신호였다. 용무를 마친 일비는 언제나와 같은 허깨비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그 자신이 설령 자신의 은신잠행술을 경시한다 해도, 그 누구도 그의 실력마 저 경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파의 기둥은 오직 우리 구대 문파입니다. 다른 곳에 넘길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 각오를 다져야 할 때입니다.”

혼자 남은 어두운 집무실에서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백무영이었지만, 잠시 후 또다시 그의 귀로 비류연과 위지천의 충돌 이 보고됨에 따라 그는 또다시 머리를 감싸 쥐게 되었다. 지금 취하는 휴식은 찰나처럼 짧은 귀중한 휴식인 것이다. 당분간 그는 두 발 뻗고 맘 편하게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것이었다. 그 원인은 모두 비류연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