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품평회
왁자지껄한 북새통 가운데 천무학관의 문제아,
걸어다니는 사고뭉치, 불타는 화약고, 또는
여자의 적이라 불리는 천무쌍귀영 당철기와 천소해는
눈알이 반전(反轉)할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만든 단 아래에는 수많은 관도들이 그들을 향해 소리를 내지르며 손을 내뻗고 있는 중이었다.
지옥(地獄)의 아귀(餓鬼)를 방불케 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그 둘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들게 두 사람은 한 뭉치씩 들고 있는 종이쪽지를 나눠 주기에 바빴다.
지금 천무쌍귀영 두 사람이 나눠 주는 흰 종이쪽지는 바로 일종의 배당표였다.
배당표! 내기나 도박을 할 때 돈을 건 증표로 받는 그 배당표가 맞다. 그렇다면 이곳이 일종의 내기 도박판이란 말인가? 라고 묻는다면 모두들 이렇게 대답할 것이 다.
“아니오! 이곳은 안목품평회장입니다.’
그렇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이곳은 우승자를 가리는 자신의 안목(眼目)과 운(運)을 시험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자리였다.
이곳은 바로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생겨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장소, 안목품평회장(眼目品評會場)인 것이다.
안목품평회(眼目品評會)란 그럼 무엇인가?
이 고상하고 왠지 있어 보이는 이름은 사실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내기 도박판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하지만 비록 승패에 따라 수많은 돈이 오가고, 울고 웃는 자의 편이 갈린다 해도 누구도 이곳을 내기 도박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기 도박이란 말은 너무 천박하게 여겨지고, 이름부터가 불법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까닭이다.
그래서 천무학관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이것을 안목품평회(眼目品評會)라 부른다. 상대의 실력 고하를 가늠하는 자신의 안목(眼目)을 시험해 본다는 그런 의미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결코 내기 도박을 한 적이 없다고! 그저 자신의 안목을 한 번 시험해 봤을 뿐이다, 라고. 단 약간 의 수업료(授業料)를 곁들여서……, 라고 말이다.
체면이 있고 명예가 있지, 차마 도박판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백도명문의 굳건한 의지(?)인 것이다. 물론 뚜껑을 열어 보면, 하는 짓은 내기 도박판이랑 너무나 똑같아 차이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걸 보고 눈 가리고 아옹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런 일이 이름 높은 천무학관 안에서 공식적으로 버젓이 벌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2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저질러 볼 호기심과 능력이 내재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피가 끓는 삼성무제 기간이다. 원래 비무 시합은 내기가 걸리면 열 배는 더 재미있는 법. 자기 자신이 응원하는 사람이 치르는 시합을 볼 때와, 그렇 지 않은 시합을 볼 때 기분의 차이는 천지 차이이다.
실력이 부족해 애석하게도 직접 참가할 수 없는 사람들은 도박으로라도 끓어오르는 열기를 식히려 하는 것이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라고 할까!
학관 측에서도 아마 묵인해 주는 눈치인 것 같다. 음성적인 것보다 오히려 양성적인 게 부작용이 덜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득도(得道)한 선인(仙人)들만 집 단서식(集團棲息)하고 있지 않은 이상, 이런 유형의 일에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간에 내기란 것이 성립될 수밖에 없다. 그걸 계속 단속하다가는 점점 더 음성적으로 되어 가고, 점점 더 깊숙이 스며들어 종국에 가서는 안에서부터 곪아 썩어 문드러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학관 측의 판단은 옳았다. 학생들은 정도와 선을 알고 절제할 줄 알았다. 아무래도 양성적으로 되다 보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자체검열과 자정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 서로가 서로의 규칙을 가지고 화합, 조절해 나갔다. 그것이 이제는 굳어져 전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첫 대회 때부터 기괴하고 독특한 일을 즐기는 반항아는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모범 기재이길 바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 일 뿐이다. 한 명의 혁신적(?) 반항아(또는 외도아!)의 시도 이래로 대를 물리며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결과, 이제 안목품평회는 천무학관의 전통 비슷하게 굳어져 버 린 모양이다. 언제나 시키지도 않는데 나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이 안목품평회를 100년 가까이 이어 온 것이다. 위에서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잘해 온 것이다. 이 좋은 기회를 천무쌍귀영이 놓칠 리가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안목품평회의 진행과 운영은 천무쌍귀영이 맡게 되었다.
공공연한 비밀이 된 이 장소에 약간 뚱뚱해 보이는 보라색 비단 무복의 청년이 들어섰다. 그는 바로 강호 제일 상가라는 금호상회의 후계자이자 주작단의 일원인 금영호였다.
금영호에게 주작단 전원의 돈이 맡겨진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이쪽 방면에는 탁월한 조예가 있기 때문이다. 가문이 가문인지라 어려서부터 훌륭한 금전 감각을 교육받으며 자랐다. 때문에 그의 능력과 판단력을 믿은 친구들이 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 것이다. 물론 투자를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고 모험이 다. 하지만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험이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을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자신들의 대사형이란 작자가 좀 미덥지 못하기는 하지만 각오를 하고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손에 들린 묵직한 가죽 주머니로부터 전해 오는 책임을 빨리 처리하고 한시름 놓고 싶은 금영호이지만,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차례가 돌아오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일
다경(-茶傾: 약 15분) 정도 기다린 끝에야 겨우 금영호에게 차례가 돌아갔다. “어라? 이게 누군가? 영호 아닌가!”
바쁜 와중에도 먼저 그를 아는 체한 사람은 천무쌍귀영(天武雙鬼影) 중 한 명인 천소해였다. 원래 그의 신념은 일단 부잣집 아들은 사귀어 놓고 보자는 것이었기 에 이처럼 발이 손이 되고, 눈 돌아갈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아는 체했다. 그의 모습은 천관 최고의 사고뭉치라는 평과 다르게 항상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 데, 지금은 워낙 바빠 복식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허나 여전히 말쑥한 그의 얼굴을 본다면 도저히 사고뭉치라 여겨지지 않는 명문 제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수고하네. 여전히 성황이군. 이문이 적지 않게 남겠어!”
상인의 자손답게 이문에 집중하는 금영호였다. 운집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부대끼자니 그 복잡함이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돈의 흐름으로 보였다.
“하하하! 이거 갓난아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라니까! 그래, 자넨 누구에게 걸 텐가? 역시 삼절검 청흔인가?”
“역시 최고의 기대주는 삼절검 청흔 그 사람인가 보군.”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물론일세. 누가 있어 그의 날카로운 검기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승률이 최고인 만큼 배당은 낮질 않나!”
당연히 승률이 높고 사람의 표가 몰린 곳일수록 이겼을 때 배당은 낮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물론 반대로 승률이 낮아지면, 그만큼 배당은 올라가게 된다. 대신 위 험 부담은 그만큼 더 크다.
“오호! 자네 다른 곳에 걸려고 하고 있군. 어디서 돈 냄새를 맡았는지 궁금하군! 그렇다면 누구에게 걸 텐가? 자네의 예리한 감각이 원하는 곳을 말해 보게.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최대의 변수, 칠절신검 모용휘인가?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도 지금까지 상당수 있었다네. 새로운 바람을 기대하는 것이겠지.”
그의 말대로 지금 판은 청흔과 모용휘 양측으로 갈려 있었다. 검성(劍聖)의 이름은 사람들이 청흔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게 하는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래도 역시, 아직까지 부동의 1위는 삼절검 청흔이었다. 천소해로서도 금영호의 판단에 흥미가 있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이지만 천무쌍귀영과 금영호는 몰래 학관을 빠져 나가, 성내의 도박장에서 주사위를 흔들며 남다른 우정을 키워왔던 것이다. 때로는 적(敵) 으로, 때로는 동지(同志)로……. 밤하늘 아래서 펼쳐지는 도박판에서 금영호는 과연 강호제일의 상회인 금호상회의 후계자답게 금전 감각뿐만 아니라 도박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여 주었다. 그의 탁월한 감각은 천소해랑 당철기도 내심 인정해 주는 터였다. 또한 그 능력이 주작단으로 하여금 모든 판단을 그에게 일임케 한 이 유이기도 했다.
“빨리 결정하게. 보시다시피 난 지금 바쁜 몸이라서…….”
금영호랑 대화하는 와중에도 천소해는 연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신경을 분산시키고도 그는 행동에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 듯 척척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신기 하기만 했다.
“아닐세! 난 비류연에게 걸도록 하겠네. 여기 든 전액을 그쪽에다 걸어 주게.”
단호하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주머니를 불쑥 내밀었다. 주머니를 받아드는 천소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류연의 이름 석자를 들은 당철기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비류연! 우리 후배님한테 말인가?”
금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류연이 애소저회에 든 것은, 게다가 모용휘까지 끌어들인 것은 학관 내에 파다하게 퍼진 일이었다.
“후회하지 않겠나? 이제까지 우리 후배님한테 돈을 건 사람은 세 명뿐일세. 그것도 미미한 액수에 불과한 수준이지. 게다가 내가 그 사람들을 아는데, 아마 친교 관계 때문에 걸었을 가능성이 십 중 구할이야. 다들 우리 후배님 친구 녀석들이거든.”
“세 명! 건 사람이 있기는 있단 말이군. 난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네. 있는 게 더 놀랍군!”
예상대로라면 비류연에게 건 사람은 자신들뿐이어야 된다. 당연하다. 누가 검증되지도 않은 실력을 지닌 1학년 애송이에게 피 같은 돈을 건단 말인가. 주작단과 금영호는 이겼을 때 내기 판을 싹쓸이 하자는 심정으로,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있었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게다가 종합 우승자로서 말이다. 그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저들이 돈 걸었을 때 다들 주위에서 미친 놈 취급했을 게 분명했다. 미친 짓 그만하라며 만류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 자신도 그 미친 놈 취급당하는 걸 무릅쓰고 비류연, 아니 대사형에게 돈을 걸고 있는 것이다. 주작단이 청룡단과의 결전을 준비하다 미쳤다는 소문이 나돌 날 도 며칠 안 남은 것 같았다. 금방 소문이 들불처럼 번질 게 눈에 밟혔다. 이미 각오한 바였다.
그래도 그들은 남들이 모르는 극비 정보를 알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것도 내기의 행방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지 모를 정보를 말이다. 남들하고는 사정이 틀리다. 그런데, 이들은 뭘 믿고 이곳에다, 비류연에게 돈을 걸었단 말인가? 만약 이들이 대사형의 실력을 꿰뚫어보고(어딜 뜯어봐도 전혀 고수 같지는 않지만) 걸었다면 이 들은 아마 천재일 것이다. 사람 보는 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들의 안목은 천하제일(天下第一)일 것이다. 아니면 그저 단순한 바보이거나…….
금영호는 그들이 바보이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적수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후회하지 않겠나?”
주작단 한 달 생활비 및 운영비가 고스란히 담긴 주머니를 건네 받으며 마지막으로 천소해가 물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얼른 바꾸라는 의미가 듬뿍 담긴 말이었다.
“후회하지 않네. 내 선택은 변함없어.”
금영회의 눈빛은 단호했다. 찌를 듯이 강렬한 눈빛이 지금 그 자신이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천소해도 더 이상 토를 달거나 저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겠네.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하는 위험한 도박이로군. 자네의 판단에 행운이 따르길 기원하겠네. 이긴다면야 200배로 튀기는 것도 꿈은 아닐 걸세. 이긴다면 말일세.”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한 천소해는 자루 속의 돈을 확인하고 배당표를 나누어 주었다. 배당표를 받은 금영호는 배당표에 적힌 금액과 사람을 꼼꼼히 확인한 다음 조심스럽게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가 맡은 일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일을 마친 금영호는 북적대는 인파를 피해 밖으로 몸을 빼냈다.
그때였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돈밖에 없는 금호상회의 외동아들이신 금영호, 금 공자가 아니신가?”
불유쾌한 목소리! 금영호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점박이! 젠장 재수없게시리…….?’
비꼬는 음색이 다분한 어조로 그를 불러 세운 사람은 별로 만나기 싫은, 이야기 나누기도 껄끄러운 청룡단의 기환검쾌奇幻) 도광서였다. 환(幻과 쾌快), 그 의 별호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비쩍 마른 몸에 긴 팔, 그리고, 날렵한 몸을 연상한다. 하지만 그를 직접 본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큰 착각을 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는 쾌검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무거운 몸매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태산만큼 튀어나온 아랫배와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살들 속에서 어떻게 그런 환(幻)과 쾌(快)가 나올 수 있는지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학년은 같지만 형산파 지룡백무영의 사제이며, 그에게 절대 복종하고 있다.
어느 정도 약간의 열등감도 가지고 있지만, 깊이 감추고 있는 편이다. 구대 문파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인간 중 하나로 백무영의 위세를 믿고 자주 까불어 서, 타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고 호가호위하는 놈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고 있다.
그의 인상 특징 중 하나로 오른쪽 볼 한가운데 볼썽사납게 찍혀 있는 커다란 점 때문에 사람은 그를 ‘점박이’라고 불렀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 솔직히 금영호로서 도 의외였다. 그렇지 않아도 상종하기 싫은 청룡단 녀석들인데, 지금 눈 앞에 있는 녀석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기분이 어찌 좋을 리 있겠는가.
“자네 바본가?”
내뱉는 첫 마디부터가 싸가지의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저급한 언어였다. 당장에 금영호의 얼굴에 쌍심지가 돋우어졌다.
도광서도 곁에서 금영호가 비류연에게 전액을 거는 것을 지켜봤던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요즘 들어 청룡단과 주작단 사이는 마치 담당 사부 사이처럼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사건건 시비가 붙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가르치는 사부들에 게 감정이 전염된 모양이었다.
“드디어 주작단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군 집단으로 미쳐버리기라도 했나? 아니면 눈이 삐었나? “
“무례한 언동! 저급한 혀 끝! 듣기가 심히 거북하군!”
“도대체 뭘 보고 저런 애송이에게 돈을 거는건가?”
“다른 건 몰라도 자네 따위보다는 10배는 더 강해 보여서 뽑았다네. 왜? 불만 있나?”
금호산장의 적자도 지지 않고 안색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며 반박했다.
게다가 그들이 비웃는 상대는 자신들의(족보야 어찌되었든) 대사형이다. 자신들이 욕할 수는 있어도 남이 욕하게 둘 수는 없었다. 이건 기분 문제였다. 왠지 다른 사람에게 비류연이, 대사형이란 사람이 욕먹으면 그들 전체가 줄줄이 연쇄적으로 욕을 먹는 듯한 더러운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눈이 썩었다고 해도 될 거에다 걸어야 하지 않겠나? 주변에서 남들이 자네들의 식견을 어리석다 깔볼까 봐 걱정스럽군!”
도광서는 자네라는 표현 대신 자네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금영호의 개인적 판단뿐만 아니라 주작단 전체의 식견을 걸고넘어질 생각인 것이다.
과연 청룡단의 독사 새끼! 빈 틈을 주지 않으시겠다는 물귀신 작전이로군!”
금영호에게는 눈 앞의 점박이의 말은 혹시라도 지금의 상황이 천무학관 내에 소문이 나지 않는다면, 피곤하고 번거롭지만 자기가 직접 나서서 소문의 진원지가 되 어 주겠다는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제로도 그러했다.
“자네의 걱정 따위를 필요로 할 만큼 우린 궁하지 않다네. 어느 쪽 식견이 더 훌륭한지는 대회가 끝나봐야 알 일이지. 그렇게 호언장담했다가 일이 틀어지면 얼굴 을 어찌 들고 다니려고 그러시나?”
금영호의 말에 가시가 숭숭 돋혀 있었다.
“하하하하! 고명한 식견! 잘 보아 두네! 나중에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하지나 말게나!”
분노(忿怒)가 머리 꼭대기에 정상등극(頂上登極)했지만 금영호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자네들의 식견이야말로 볼품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다니 한심해서 한숨밖에 안 나오는군.”
비웃는 듯한 말투로 금영호가 쏘아붙였다. 저쪽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질 수 없었다.
“이유를 들어 볼까?”
팔짱을 낀 채 오만한 표정으로 도광서가 말했다.
“어차피 자네들의 식견이라고 해 봐야 거창하게 설명할 것 없이 남들 다 하는 것, 따라 한 것밖에 없지 않나. 삼절검 청흔! 주위를 둘러보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돈 을 걸고 있는 곳이지. 아마 여기 있는 대부분이 그에게 돈을 걸겠지. 그들하고 잘난 체하며 뻐기는 자네하고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우스운 일이군. 자네들은 자네들의 판단대로 내기 하나 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미 논리정연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말이 안 되도 상대방을 쏘아 붙여 줄 수 있기만 하면 충분했다.
“흥! 삼절검 청흔 공자 말고 누가 천무삼성무제에서 우승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의 눈과 귀는 허투루 달린 모양이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걸 여태까지 잘도 달 고 있었구만. 자네의 그런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
둘의 설전은 점점 감정 싸움으로 치닫고 있었다.
“칠절신검 모용휘도 있지 않은가! 그도 만만히 봐서는 안 되지!”
이번 대회의 파란이라고 하면 역시 칠절신검 모용휘의 약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소문만 무성하던 화려한 무위를 공개한 첫 번째 비무 이후 그에게 판돈을 거 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어차피 청흔 쪽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있었다. 모험 심리와 검성(劍聖)이란 이름의 그림자가 모용휘 쪽에 표를 몰아 주고 있었다.
“그러는 자네는 왜 모용휘에게 걸지 않고 이름도 없는 무명소졸 애송이게 걸었나?”
‘저게 또!’
금영호의 인상이 와장창 구겨졌다. 내 언젠가 기필코 이놈을 절단 내고 말리라. 금영호는 단단히 결심했다.
“그야 우리들이야 남들보다, 특히 자네들보다 세 단계는 뛰어난 안목(眼目)과 탁월한 식견(見)을 가지고 있는 덕분이라 할 수 있지. 뭐 자네들의 안목 부족과 식 견 부족이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말일세.”
금명호가 온힘을 다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도광서도 지지 않았다.
“그 어처구니없는 자신감 잘 보았네. 그 웃음이 언제까지 갈지 너무 궁금해. 앞으로의 수면이 걱정이군. 그렇게 자신 있다면 나와 내기를 할 자신이 있는가? 꼬리 를 만 개처럼 달아나도 잡지는 않겠네.”
이런 말을 듣고 도망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금영호로서도 바라는 바였다.
“자네야말로 도망치지 말게! 스스로 무덤을 팠으니 그 기특함을 인정해 이 몸이 손수 흙을 덮어 주겠네.”
금영호와 도광서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둘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상대를 응시하며 결코 기세를 양보하지 않았다.
“조건은?”
금영호가 물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자신의 안목이 낮음을 인정하며 삼고구배한 후, 남창제일루(南昌第一樓)에서 가장 성대한 저녁을 사는 것으로 하지!”
삼고구배란 이마를 땅에 세 번 찍으며 아홉 번 절하는 것으로 스승에 대한 최고의 예의였다. 하지만 그것이 동연배로 내려왔을 때는 최고의 수치이기도 했다. 명예 가 내기의 조건으로 걸린 것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가 조건으로 걸린 이상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승부인 것이다.
내기가 정해지고 나서야 둘은 서로에 대한 매도를 겨우 끝냈다. 허나 아직 금영호에게 닥친 고난이 모두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뚱땡이 둘이 모여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느냐? 여기가 동물 농장인 줄 아느냐?”
등 뒤에서 들려온 거칠고 우렁찬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금영호는 하마터면 심장마비로 즉사할 뻔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점박이 녀석에게 절도 받지 못한 채 죽고 싶지는 않았다.
‘서, 설마…….’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금영호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여, 역시!’
눈 앞이 캄캄해졌다. 설마 했는데, 재수 억세게 없게도 염도 노사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불타는 듯한 광채를 눈에서 내뿜으며……. 아무리 담이 크다 해도 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느냐, 금렛돈호?”
소리를 내지른 존재가 염도인 것을 안 도광서 녀석도 상당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당황해 봤자 금영호만큼이야 할까?
목소리의 주인은 근 반 년 동안 주작단을 악몽(惡夢) 속에 몰아넣은 공포의 존재, 염도 사부의 목소리였다.
계산상 절대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지금 이 자리에 버젓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죽었다!’
‘…난 죽었다. 친구들이여, 나의 묘비에 주작단원 금영호가 비명에 횡사했다고 새겨다오! 너희들을 두 번 다시 못 본다는 사실이 안타깝구나! 아아…….?’
방금 전까지 생기(生氣)가 충만하던 금영호의 안색이 단번에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그의 머릿속은 현재 온갖 별의별 생각이 한꺼번에 휘몰아쳐 폭주 상태였 다.
헉! 이런 자리에서 염도 노사를 만날 줄이야. 지옥에 들러 염라대왕을 만난 기분이었다. 벌써부터 일그러져 있을 염도 노사의 인상이 힐끗 훔쳐보기도 무서울 정도 였다. 아직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염도의 입에서 터져 나올 호통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했다.
“이런 바보 천치 같은 놈! 해야 할 수련이 얼만데, 이런 데서 내기 도박이나 즐기며 땡땡이가 웬 말이냐! 아직도 정신을 덜 차렸구나. 내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지도 교육해 줄까? 너 죽고 싶냐?”라고 노호성을 터뜨리며 무지막지한 주먹질을 해댈 듯한 무시무시한 분위기였다. 온몸을 찌르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미리 써두지 않은 유언장이 못내 아쉬웠다.
금영호는 잘 알고 있었다. 염도(焰刀)는 논리와 이치가 전혀 통하지 않는 그런 부류의 인물임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이런 부류의 인물은 절대 정상적인 대화 (對話)가 통하지 않는다. (염도로부터 사사받은 반 년의 시간이 그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절대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 그 주장이 틀릴지라 도 말이다. (그러니 설득과 변설, 또는 이치로 납득시킬 수가 없다) 상인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상대하기 제일 골치 아픈 부류의 존재인 것이다.
논리가 먹히고, 이치가 들어먹혀야 무슨 이야기를 진행하든가 접든가 할 것 아닌가. 제 성질대로 행동하고 절대 자신의 주장을 굽힐 줄 모르니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즉, 금영호의 생명은 지금 염도의 기분 하나에 달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일 살아남는다면 자식놈은 절대 저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금영 호였다. 만일 살아남는다면……. 하지만 생존 확률은 너무나 미약했다.
억겁(億劫) 같은 한순간이 지났다. 눈을 질끈 감은 채 금영호는 다가올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가 이상을 눈치챈 것은 영원 같던 찰나가 막 지난 후였다.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 다물고 있는데 날아와야 될 게 날아오지 않고 있 었다. 억겁(億劫) 같은 침묵이 흐른 후, 더 이상 참지 못한 금호가 실눈을 빼꼼이 뜨고 살짝 염도를 훔쳐보았다. 아직 칼은 들려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먹으로 과 격하게 해결할 생각인지도 모른다.
으으으…..깨끗하게 한 방에 끝낼 것이지. 여러 방은 사양하고 싶었다.
“노사님! 나오셨습니까!”
금영호는 얼른 포권지례를 취하고, 허리를 잔득 숙인 채 인사했다. 제자의 인사를 받은 염도의 인상은 더욱 더러워졌다. 그리고 고함이 터져 나왔다.
“누가 지금 너 보고 인사하래? 본인이 지금 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느냐? 그새 귀가 먹었냐? 내가 뚫어 주랴?”
개차반에 붙은 불길이 아직 진화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고함 소리였다.
“에…… 저, 그러니깐 말입니다…….”
아무리 뱃심이 좋다고 해도, 금영호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 불문곡직하고 저 세상으로 날아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희망은 있었다. 그 것이 비록 쥐꼬리만하다 해도…….
“저기 이번 시합에서 누가 우승할 건지에 대해 이쪽 친구와 의견이 엇갈려서 말입니다. 그래서 잠깐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식은땀을 비 오듯 줄줄 흘리며 금영호가 변명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하라는 수련은 안 하고 지금 뭐하는 짓거리냐고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 다. 있는 힘을 다해 청룡단과 부딪쳐 이겨야 된다고, 삼성무제에도 참가 못 하게 한 염도 노사가 아닌가. 이런 꼴을 그냥 넘어가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네놈은 누구한테 걸었느냐?”
“예에?”
금영호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염도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불호령 떨어지는 것만 남았다. 십 중 십이할은 주먹을 동반한 불호령일 것이다. 염도의 불 호령과 난무하는 주먹은 항상 붙어 다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였다. 이제 금영호는 고민해야만 했다. 자기 혼자 다 뒤집어 쓸 것인가 아니면 공동 책임을 분배해서 질 것인가? 끄응! 선택이 쉽지 않았다.
“저어…, 비류연 사…, 에게……?”
청룡단 녀석 앞이라 차마 사형이란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사형인지 사제인지 대충 생각하도록) 적당히 얼버무렸다.
“저기 청룡단 놈은?”
염도도 도광서가 청룡단 녀석임을 알아본 모양이다. 아마 도광서의 소매에 수놓아진 청룡수를 보고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신을 쏘아보는 염도의 곱지 않은, 무시 무시하기까지 한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도광서는 찔끔하며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저 청룡단 놈은 삼절검 청흔에게 걸었습니다.”
타오르는 지옥의 겁화 같은 눈빛이 금영호를 향했다. 열심히 빌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실패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크으으으으!”
염도의 시선은 너무나 강렬하고 뜨거워 자신의 몸을 다 태워 버릴 정도였다. 전신이 그의 시선 아래에 해부 연소되는 것만 같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사느냐, 죽음 이냐? 생사 판결의 결정권은 모두 염도의 손에 쥐어져 있고 금영호는 그저 판결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툭!”
금영호가 자신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염라전 앞에서 할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금영호 앞으로 주머니 하나가 떨어졌다. 소리로 보아 은자가 분명했다. 돈 소리를 구분하지 못할 자신의 귀가 아니었다.
“내 것도 모두 비류연에게 걸어라! 그리고, 내기든 비무든 싸움박질이든 무조건 그 얼음땡이 제자들보다는 잘 해야 되고 반드시 이겨야 돼! 알겠느냐?”
“예…, 예! 사부님!”
그리고는 휙 몸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금영호는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염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휴우! 10년, 아니 족히 30년은 감수한 것 같구나…….”
염도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금영호는 겨우 참았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온몸의 맥이 탁 풀렸다. 오늘은 정말 저 세상 구경 가는 줄 알았다. 하마터면 수명을 마감할 뻔했던 것이다. 여벌의 목숨을 하나 더 얻은 듯한 뿌듯한 느낌이었다. 벅찬 희열이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올랐다.
고개를 돌려 보니 도광서 녀석도 멍하니 사라져간 염도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놀랐을 것이다. 자신도 이만큼이나 놀랐는데 지가 안 놀라고 배기겠는가. 특 히 도광서를 잡아먹을 듯 쏘아보던 염도의 마지막 시선은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염도 노사가 비류연에게 돈을 걸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녀석의 얼빠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심 통쾌했다.
염도도 비류연에게 한 표 던져줬다. 더욱더 안심이 되는 금호였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때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