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14화 – 단기 집중 속성 특별 강화 훈련

비뢰도 7권 14화 – 단기 집중 속성 특별 강화 훈련

단기 집중 속성 특별 강화 훈련

– 기(氣)가 아니라 의(意)로 움직여라

자신의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천무학관도들은 지금 염도의

거칠고 무지막지한 지도 아래 수련에 정진하고 있다.

이름하여, 단기 집중 속성 특별 강화 훈련(短期集中速成特別强化訓練)!

한여름의 땡볕은 살갗이 탈 정도로 따갑기만 했다.

“기(氣)가 아니라 의(意)!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움직여라.”

맨 먼저 염도가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오장(五丈 : 약 15미터) 밖에 놓여 있는 항아리 속의 물을 움직여라!”

“단 내공을 쓰지 말고!”

마지막 조건이 치명적이었다.

“예에?”

모두가 다 기겁하는 게 당연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무척이나 힘든 일인 건 분명했다. 과연 그들의 현재 능력으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가 아니라 의로써 물체를 움직여라! 기로 움직이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기를 짜내어 사물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의로써, 뜻으로 사물을 움직여라. 하라면 해!”

못 한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둘 염도가 아니었다.

“그… 그런

울상을 지으면서도 천관도들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만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땀이 비 오듯 등줄기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선을 오 장 밖의 종 위에 고정시키고 도검을 앞으로 쭉 뻗은 채 기마자세로 버티고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틀린 채 비 명을 질러 댔다. 하나 무심하게도 오장 밖에 떨어진 항아리 속의 물은 미동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검기(劍氣)를 쓴다면 항아리 깨뜨리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건만! 왜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짓을 계속해야 하는지 모두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건 하루 만에 해내야지!”

염도가 호통을 쳤다. 특훈을 시작한 지 벌써 이틀이 지나고 있었다.

“존재에 대한 지배권을 가져라! 기를 움직이려 하지 마라. 뜻으로 움직여라. 뜻이 생기면 기는 저절로 일어나는 법! 집중해라!”

“집중력이 떨어졌다 해서 상대는 절대 봐주지 않는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집중해라!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갈 때 고수는 다른 세계, 다른 시간 속에 머문다.”

염도의 가르침은 엄격했다. 그에게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감이 있었다.

“엄살 떨지 마라!”

천관도들은 쓰러질 듯 말 듯 용케도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천관도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간단했다. 그저 도검으로 항아리를 가리키고 앞으로 쭈욱 뻗은 채 다 리는 마보세를 취하고 석상처럼 몸을 굳히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정신을 집중해!”

염도는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

“한 번 모인 정신이 흐트러지면 그걸로 끝이다. 흐트러진 정신이 다시 모이기 전에 적의 칼이 너희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염도의 말에는 엄격함과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지금은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지금 그들은 죽음의 칼날 위에서 아슬아슬한 춤사위를 펼쳐 보이고 있는 중이었

다. 사방이 포위당한 상태에서 이처럼 혹독한 수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덤 파고 묘비 세우는 일이었다. 보기엔 간단하지만 엄청난 체력과 심력을 요구하는 수련이 었다.

단기 집중 속성 특별 강화 훈련에 임하는 염도의 목소리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너희들 옆에 명부의 사자가 대기하고 있다. 맥없이 그들에게 끌려가느냐, 아니면 힘차게 엉덩이를 치며 비웃어 줄 것인가는 모두 너희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 다. 새겨들었느냐?”

“예!”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몸에서 열정적인 노력의 산물인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여지껏 흘러내린 땀만 해도 한 양동이는 족히 되리라.

그러나 이것도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시련의 벽은 여전히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시련의 장애를 뛰어넘을 것인가, 아니면 그 아래 주저앉고 말 것인가는 이제 모두 스스로의 의지 여하에 달려 있었다.

아직 물은 고여 있었다.

“왜 비류연은 이 수련에 참여하지 않습니까?”

수련 도중 청흔이 물었다.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자세는 여전히 풀지 않은 채였다. 그의 다리 근육이 열심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젠장 쓸데없는 질문을……’

되도록 이런 식의 대답하기 힘든 질문은 알아서 삼가 주었으면 하는 게 염도의 속내였다. 어떻게 요즘 애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손톱만큼도 없단 말인가! 염도가 내심 투덜거리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차피 가망이 없는 놈이니 해 봤자 시간 낭비다. 지금 감시역을 시켜 놨으니 무시해 버려라!”

안 보이는 기회를 틈타 짧게 화풀이하는 호사를 누려 보는 염도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오겠는가!

지금 비류연은 한창 중대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염도는 그 일을 결코 아이들에게 말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은 그와 자신, 둘만의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비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꼴사납게 얻어맞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들 따가운 땡볕 아래에서 특훈으로 한 말의 땀을 흘리고 있을 바로 그 시각! 숲 속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탐색하는 이가 있었다. 앞머리가 너무 길어 눈까지 가려 버린 사내, 그는 바로 비류연이었다.

“어디가 좋을까.

긴 앞머리에 가려진 그의 시선은 신중하고 진지하기 그지없었고, 사명감마저 띠고 있었다. 삼십육 방위를 이 잡듯이 뒤지던 그의 시선이 섬광을 발하며 한 곳에 머 물렀다. 드디어 찾고 있던 목표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시선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변했다.

‘바로 저거야! 드디어 찾았다!’

비류연은 속으로 지화자를 외쳤다.

한 번에 다 안을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 아래 펼쳐진 널따란 그늘은 가히 예술이었다. 귓가를 살랑이는 산들바람 또한 기분 좋을 정도로 알맞았다. 어디를 둘러봐 도 이곳만한 명당은 찾기 힘들 듯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아아! 좋다! 바로 이거야!”

하늘은 높고 햇살은 따스하며 바람은 상쾌했다. 울창한 신록의 내음을 한껏 들이켜며 비류연은 그늘 아래 대(大)자로 벌렁 누웠다. 대지에 파묻혀 바라본 하늘에 는 흰구름만이 여유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평화롭군!”

평화로워?

천지사방에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숨통을 끊으려는 적들이 포진해 있는 이 상황의 어디가 평화롭다는 것일까? 무척이나 독특한 감성이 아닐 수 없었다. 비류연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땀띠 나는 수련과 뜨거운 열정에 지극히 무관심을 보이며,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을 피해 여태껏 목 좋은 낮잠 잘 자리를 구하고 있 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쏟아 부은 노력이 헛되지 않아 기막힌 명당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낮잠이나 한숨 자 볼까!”

주위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살랑이며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평화로웠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갔다.

주작단과 천검조들이 바보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염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점점 능숙해져 가고 있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가르치는 만큼 효과가 나타나는 걸 보면 바보들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래도 유능하다는 인재들을 엄선했다고 생각하는데 바보가 있으면 큰 실례였다.

염도의 가르침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지만 모두들 조그마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 심즉검(心卽劍) 검즉심(劍卽心)!

말은 쉽지만 이 말의 실천만큼 어려운 것도 세상에 드물었다. 그러나 염도의 강압적이고 엄격한 교육과 재능 덕분에 점점 더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정신일도의 상 태로 신검합일을 유지해 나가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

마음을 하나로 모아 외쳐 보지만, 항아리 속의 물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나흘째 되던 날 드디어 변화가 찾아왔다.

오장 밖에 떨어진 항아리 속 물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건방지게 미동도 않던 녀석이 움직인 것이다. 항아리의 수면 위로 작고 동그란 파문이 그려졌다. 작은 동그라미 하나의 움직임이었지만, 멈추어 있는 것과 눈곱만큼이라도 움직인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무(無)에서 유(有)가 생겨났다는 것과 동 일한 의미였다.

뜻이 힘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를 다루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기를 움직일 생각도 없었는데, 신체로부터 기가 자연스럽게 일어나 스스로 의지라도 가진 것처럼 항아리의 물을 움직이기 위해 움직였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 워 기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조차 제대로 알아채기가 힘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면 기가 저절로 움직이는 의기합일 경지의 초입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무에서 유가 생겨난 지 다시 사흘이 지났다.

이레째 되던 날!

염도는 일출과 동시에 사람들을 그저 세워 놓았을 뿐이었다. 머침내 약속한 마지막 날이었다. 주위를 가득 메운 살기로 볼 때도 더 이상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듯했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해의 움직임과 함께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이 점점 더 흐를수록 천검조와 주작단의 신색은 말이 아니었다. 항아리에 가득 담긴 물의 수면에 하나의 파문이 생기더니 그 수를 한 겹 한 겹 더해 갔다.

“털썩!”

십여 겹의 파문이 생기기 시작할 때 첫번째 낙오자가 나왔다. 그는 바로 천검조의 이진설이었다. 사실 그녀에게 이 수련은 아직 무리였다. 수련 시작 후 두 시진(네 시간)이 흐른 후였다.

파문이 한 겹 한 겹 더해 가더니 마침내 천천히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탈락자가 나왔다. 이번엔 주작단 소속의 화산파 제자화설옥이었다. 그녀의 여린 다리는 더 이상 이 수련에 견딜 수 없음을 선언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단목세가의 단목수수가 쓰러졌다. 그녀의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으로도 더 이상의 인내는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풀썩!”

다시 한 명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의외로 이번엔 사내녀석이었다. 주작단 남자 단원 중 최초의 탈락자는 바로 금호상회의 금영호였다. 그의 푸짐한 몸매가 드디 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오늘 꽤나 많은 근수가 땀으로 화해 그의 몸을 빠져 나갔을 것이다.

금영호가 쓰러지자마자 덩달아 쓰러진 이는 꼴사납게도 노학이었다. 그는 주작단 사내 중 최초의 낙오자가 되기 싫어 이를 악물고 오기로 여지껏 버텼던 것이다. 때문에 더 이상의 인내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황보옥연이 쓰러졌다. 황보세가 장녀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도 더 이상 그의 신체를 구속하지 못했다.

소용돌이가 점점 더 깊어 갔다.

항아리 속의 소용돌이가 점점 깊어 가고 속도가 점차 빨라질수록 낙오자는 하나 둘씩 늘어 갔다. 한 명씩 한 명씩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이들의 심력과 체력은 이 미 한계에까지 와 있었다.

무뚝뚝함의 극치인 소림사의 일공은 이번에도 조용하게 침묵 속에서 주저앉았다. 수련 시작 후 네 시진이 지난 후였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열다섯 명도 채 되지 않 았다.

그들의 온몸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내색하지 않더라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전신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음을 열 발자국 떨어진 옆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섯 시진째가 되자 항아리에 담긴 물이 부르르 떨리며 넘쳐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의 회전력이 항아리의 구속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섯 시진째!

여기까지 버틴이들은 괴물이라 불려 마땅할 인내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들의 정신 상태는 이미 극한에 다다라 있었다.

남은 이들은 이제 열 명으로 좁혀져 있었다.

남자 중엔 모용휘, 청흔, 남궁상, 현운, 효룡, 장홍 그리고 놀랍게도 윤준호가 남았다. 여자 중엔 진령, 남궁산산, 나예린이 남았다. 그녀들은 천무칠봉(天武七鳳)의 일좌답게 마지막까지 남아 위신을 지켰다. 주작단의 당문혜와 모용세가의 모용취는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낙오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웬만한 남자보다 재 능, 실력은 물론 인내력 또한 더 뛰어났다. 그녀들은 남자들의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들이 보호해 줘야 하는 남자들이 이 세상에는 지나칠 정도로 수두룩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다. 고통의 환상은 이미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간 이후였다.

해는 어느덧 서산 너머로 황혼과 함께 지고 있었다.

주작단 여자 단원 중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은 진령과 남궁산산이었다. 그들은 천무칠봉의 두 명답게 가장 오래까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천무학관도 여성 중에서 가 장 오래 버틴 이는 그녀 둘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항아리에 담긴 물이 점점 더 많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물을 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외인 것은 윤준호가 끈질기게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항상 존재감이 없던 그가 이 정도까지 해냈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항 상 어리숙하고 둔해 보이는 윤준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윤준호가 합숙 훈련 참가 자격이 충분히 있음을 입증해 주는 일이 되었다.

과연 누가 최후의 한 명이 될 것인가?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게 뭐지?”

모용휘는 갑자기 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주위의 시간이 느려지고, 사물 하나하나가 똑똑히 보였다. 마치 여러 개의 눈을 가지고 사방을 동시에 보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었다. 어떤 미세한 소리라도 똑똑히 들렸다. 모든 소리가 분리되고 정보화되어 자신의 귀로 분명하게 전해졌다.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뇌전(雷電)이 전신을 관통하는 듯한 기이하고 강렬한 느낌이었다. 은하유성검법(銀河流星劍法)의 극의를 보았을 때 이후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강렬한 느낌 이었다.

정수리의 백회혈에서부터 발바닥의 용천혈까지 벼락이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듯한 짜릿한 느낌! 그 후로 얻으려 해도 다시 얻지 못한 감각. 그 신비한 감각이 지금 다시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이런 생경한 경험을 접한 사람은 모용휘뿐만이 아니었다. 남아 있던 여덟 명은 자신의 존재조차 잊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아홉 시진째!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던 근육의 떨림이 멈췄다. 비 오듯 흐르던 땀도 거짓말처럼 분출을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그들의 몸이 정지했다. 살갗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싸늘하게 식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린 듯했다.

고요 속에 잠긴 사람처럼, 그들은 침묵과 밤의 어둠 속에 동화된 채 서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해가 달로 바뀐 지도 이미 오래였다. 달이 뜨고 기울어 가 는데도 그들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었다.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인 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자연에 동화된 듯 평온해 보였다.

정지한 듯 고요한 그들에 비해 그들 앞에 놓여진 항아리 속 물은 미친 듯이 회전하며 넘쳐 흐르고 있었다.

효룡은 더 이상 자신의 실력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수련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꺼내 보이며 정면으로 부딪쳐 보려 했다. 이대로는 자신의 실력이 부 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은 장홍도 마찬가지였다.

“앗!”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진령이 짧게 교성을 터트렸다. 마침내 윤준호가 쓰러진 것이다. 진령은 일곱 시진째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남궁산산과 함께 낙오 해 지금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지켜보는 게 고작이었다.

윤준호는 아주 조용히 쓰러졌다. 그는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잠시 동안 쓰러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항아리 에는 물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입가엔 만족스런 미소가 어려 있었다.

열두 시진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새벽의 어둠을 뚫고 금빛 가루를 뿌렸다. 어느덧 하루가 지난 것이다. 새벽의 여명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며 빛의 무 리를 뿌렸다.

모두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쩌적!”

“저것 봐요!”

남궁산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곱 명 앞의 항아리로 향했다. 아직 남아 있는 이는 모용휘, 청흔, 효룡, 남궁상, 현운, 장홍 그리고 놀랍게 나예린이었다.

그들의 눈에 미세한 균열이 잡혔다. 7일 간의 특별 수련으로 그들의 오감은 비약적으로 발달되어 있었다.

“거칠게 소용돌이치던 항아리에 금이 가고 있어!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곧 깨어질지도 몰랐다. 이런 현상은 일곱 명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일곱 명의 시선이 멈추어져 있는 곳은 항아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존재 너머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한 번 간 균열이 점점 커지며 항아리 전체로 그 세력이 퍼져 나갔다. 거미줄 같은 균열이었다.

“쩌저적!”

“파삭!”

“펑!”

마침내 일곱 사람의 항아리가 동시에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소용돌이치던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마치 마른하늘에 비가 내리는 듯했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물보 라가 잠시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들의 시선이 다시 수련장으로 향했을 때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끝내 최후의 한 명은 없었다. 체력, 심력을 모두 소모한 일곱 사람이 동시에 쓰러진 것이다.

새벽 여명을 받으며 이들 일곱 사람은 사이 좋게 잠이 들었다. 그들의 얼굴엔 고통 대신 만족스런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쓰러진 그들 위로 햇살이 비치고, 지켜보 던 이들의 귀에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려 왔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의 관문을 밤새 지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제의 그들과 오늘의 그들은 달랐다. 그들은 변한 것이다. 그것도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뿌듯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