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22화 – 비류연대 천살 초혼검

비뢰도 7권 22화 – 비류연대 천살 초혼검

비류연대 천살 초혼검

박터지게 싸우는 염도, 지살과는 달리

비류연과 천살의 대결은 조용하기만 했다.

일단 이 두 사람의 특징은 말싸움부터 먼저 한다는

점에서 다짜고짜 도검을 휘두르는 염도, 지살과는 달랐다.

“호오! 그렇다면 과연 네녀석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보도록 할까?”

비류연은 서슴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는 거리낄 게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부끄러운 생각을 서슴지 않고 품고 있는 사람이 었다.

“그거야 물론 실력이죠.”

“어린놈이 광오하구나!”

상대하면 할수록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광오가 아니라 진실이죠! 명명백백한 진실! 요지부동의 사실!”

눈 앞의 애송이가 진심을 선언한 후부터 천살은 갑자기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이성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의 본능이었다.

흠칫!

갑자기 뿜어져 나온 알 수 없는 기운에 천살은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냄새 때문이었다. 그 기운에는 죽음의 냄새가 깃들어 있었다. 천살의 본 능이 확실하게 그것을 경고해 주었다.

천살에게도 비장의 한 수는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귀요안(鬼妖眼)이었다. 하지만 천살도 체통을 생각해서 하수들에게는 함부로 이 기술을 쓰지 않았다. 정정 당당 같은 쓸데없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까지 쓰지 않아도 죽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내공이나 심력 소모가 커서 함부로 남발할 기술도 아니 었다. 게다가 나예린에게 몰래 사용하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류연이 손에서 묵룡환을 벗는 순간 천살은 지금이 바로 귀요안을 써야 할 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전신의 내공을 조용히 끌어올리며 자신의 눈에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술을 걸 때는 상대가 모르게, 얼마나 은밀하게 기술을 시전하느냐 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상대가 미리 알아채고 방어나 대비를 했다가는 난감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천살은 자신에게 정체 불명의 두려움을 안겨 준 애송이를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려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견(見)!”

천살의 눈이 요기를 띠며 빛났다. 요사스런 천살의 눈빛을 받고도 비류연은 얼굴을 돌리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보긴 뭘 봐요?”

비류연이 한마디 툭 내던졌다. 바보라도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 어떻게 멀쩡할 수 있지?”

천살의 목소리가 믿을 수 없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두려움에 덜덜 떨렸다. 벌써 두 명이나 자신의 초혼섭령대법이 발동된 귀요안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 다. 그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날린 큰 상처였다.

천살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여지껏 자신의 귀요안 섭령 안에 걸려들고도 심지를 이토록 곧게 변함 없이 유지한 놈은 아무도 없었다.

“말도 안 돼!”

다시 한 번 천살은 전신의 심력을 끌어모아 초혼섭령술 비기인 귀요안을 전개하려 했다.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비류연이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나 그만두라 해서 멈출 천살이 아니었다. 그들이 여태껏 남의 말에 귀 기울인 적이 있던가? 단언하건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초혼섭령대법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비류연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순간 비류연의 눈이 황금빛 섬광처럼 빛났다고 느낀 것은 천살 자신 만의 착각이었을까?

“크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산 전체에 반향되며 울려 퍼졌다. 천살은 자신의 두 눈을 움켜잡았다. 귀요안의 요력이 반사되어 튕겨 나온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시력을 잃은 천살은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미증유의 두려움과 공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기술이냐?”

“영사심결 비기 절대정신방어(絶代情神防禦) 허무도(虛無道)!”

이렇게 해서 천살 초혼검은 자랑하던 귀안(鬼眼)의 요력(妖力)을 잃었다. 더불어 고고하던 자신감도 함께 꺾여 버렸다. 그가 섭혼술을 쓰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천살은 진정한 공포를 느꼈다. 심장을 먹어치우는 듯한 서늘한 공포였다.

자연스럽게 들어올려진 비류연의 오른손이 천살의 목을 겨냥했다.

‘컥!’

그것만으로도 천살은 보이지 않는 비도가 자신의 목젖을 관통하는 듯한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그는 옴짝달싹 못했다. 발버둥쳐 보지만 그를 옥죄는 살기의 그물은 점점 더 강하게 옭아맬 뿐이었다.

비류연의 눈동자엔 지금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만년빙정보다 차갑고 강철보다 단단한 철벽의 마음! 어떠한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는, 견고하 기 그지없는 지고의 마음!

절대부동심(絶對不動心)!

어떠한 변수도 그의 눈동자에 흔들림을, 파문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했다.

“철컥!”

비류연이 오른손에 차고 있던 묵룡환을 풀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묵룡환이 땅에 떨어졌다. 묵룡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이 움푹 파였다.

“스윽!”

비류연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밀어진 비류연의 오른손에 무한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힘과 공포였다.

‘헉!’

천살은 내심 헛바람을 들이삼켰다. 어찌된 영문인지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그 즉시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본능이 이성을 뛰어넘은 것인 가?

움직이려 하지만 발이 지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 발자국만이라도 움직이면 죽을 수 있다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생소한 감정 이었다.

“설마 시… 심검지도(心劍之道)란 말인가? 아무것도 아닌 손 그림자 하나로 나의 움직임을 동시에 봉쇄하다니!”

순간 비류연의 얼굴이 마귀처럼 보였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샘으로부터 신경질적인 처절한 공포가 용솟음치듯 솟아났다. 이 분출을 막기엔 속 수무책이었다.

“이제 남의 말을 믿을 만한 마음이 생겼나요?”

비류연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마치 사신(死神)의 미소 같았다. 녀석은 지금 자신을 가지고 놀려고 하고 있었다.

“크윽!”

손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려 애쓰지만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벌레처럼 꿈틀대기만 할 뿐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런이런! 무모한 짓은 그만둬 주시는 게 어떨까요?”

스윽!

“컥!”

손이 다시 한 번 쭈욱 앞으로 내밀어졌다. 무시무시한 중압감과 압박감에 숨이 덜컥 막혀 왔다. 아무래도 쉽사리 떨쳐 버리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승부는 이미 난 듯했다.

비류연의 손속은 가차없었다. 자신에게 살의를 품은 존재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그의 마음은 넓지 않았다.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때는 자신도 상처 입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살인이라면 더욱더! 어떠한 결과도 인과의 법칙에 따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 는 업보인 것이다.

“스윽!”

비류연의 손가락이 슬쩍 움직였다.

“크억!”

천살의 소중했던 것들이, 그의 기반을 이루던 것들이 하나하나 비류연의 손가락질에 떨어져 나갔다.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신형을 움직이며, 옆으로 피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류연의 손가락은 자신의 이마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쨍!”

먼저 그의 왼쪽 손목에 달려 있던 방울, 사람의 심령을 조정한다는 초혼령이 산산조각 깨져 버렸다. 다시는 그의 손목에서 초혼령이 울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크아아아아악!”

그 다음으로 비류연이 요구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천살의 애검 귀혼은 두 번 다시 그의 오른손에 들려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천살의 오른팔은 그의 신체의 일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오른팔은 두 번 다시 술잔과 검을 들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천살은 두 눈을 뜬 채 멍하니 이 악몽 같은 광경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왜 피할 수 없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손의 환영에 사로잡힌 채, 자신은 매달린 사람처럼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마치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천살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단 하나, 상대방의 자비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높은 곳에 있다가 밑바닥에 추락한 자는 그 높이만큼이나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천지쌍살은 한때 무의 최고봉에 위치하던 자들이었다. 주위에서는 항상 그들을 경외시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들의 무공이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순간에 그들의 영광은 끝났다.

죽는 것보다도 못한 치욕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닐 굴레요 업이었다. 오늘의 패배와 그가 느낀 처절한 공포는 그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두 번 다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난다 해도 말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의 천지쌍살에게 있어서는 그 찬란했던 영광의 끝일 뿐이다. 영광의 종언을 고하는 소리가 그들의 주위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저게 뭐지?”

지살은 염도와 격전중에 멍하니 악몽이라 불러 마땅한 꿈의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갑자기 온몸 가득 엄습해 오던 뜨거운 열기가 차갑게 식는 듯한 느낌이었다.

‘믿을 수 없어! 말도 안 돼!’

그의 절친한 동업자인 천살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한 애송이에게 검객의 생명과도 같은 오른팔을 내준 것이다.

그 어떤 저항의 몸부림도 없이 초혼령이 깨지고 귀령이 반 토막 나고, 마지막으로 그의 오른팔이 떨어졌다. 그것은 너무도 현실감 없는 몽환 같은 장면이었다. 현 실감 없이 귓가로부터 너무도 먼 곳에서 동업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의 친구 천살의 오른팔이 잘려 나간 것도 진실, 그가 지금 염도의 진홍십칠염(眞紅十七炎) 검염기(劍焰氣) 아래에서 자칫 잘못하면 통돼지 구이가 될지 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도 진실이었다.

“크윽!”

차갑던 피부와 정신에 다시 온몸을 태울 정도의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갈증이 전보다 더욱더 심하게 그를 괴롭혔다.

아직도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살은 천살이 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이후 심적으로 매우 동요 한 듯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염도가 지살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지살의 패색이 짙었다. 거의 확정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 내는 대충 정리되어 있었다.

“갈증이 나나?”

염도가 여전히 힘있게, 지치지도 않고 강력한 일도를 휘두르며 물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에 지살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만큼 해갈에 대한 욕구는 절실했다. 목이 바짝 말라 타들어 가는 듯했다. 지살은 수치심에 그렇지 않아도 달구어져 있던 벌건 얼굴이 더욱 벌겋게 변했다.

염도의 적안(赤眼)에서 심혼을 꿰뚫는 듯한 섬광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해갈시켜 주지! 단, 당신의 피로 말이야!”

염도의 도가 한 줄기 홍선(線)으로 화해 허공을 가로질렀다.

“툭!”

잠시 후 바닥에 묵직한 물건 하나가 떨어졌다. 그것은 한 사람의 팔이었다. 지나치게 포동포동한 팔의 주인은 지살임이 분명했다. 사지 분리의 유력한 용의자로 염 도의 애도 홍염이 지목되었다.

“푸아아앗!”

“크아아아아악!”

지살의 어깻죽지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어때 약속을 지켰지?”

피를 뒤집어쓴 염도는 악귀를 연상시키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승부는 이렇게 결정되어졌다.

흑도에서조차 악명의 대명사인 천지쌍살이 이렇게 맥없이 당할 줄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 놓은 흉성악명(兇性惡名)이 한순간에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다시는 천지쌍살의 이름이 악의 대명사 중 하나로 거론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명성이란, 비록 그것이 흉명이라 해도 물거품 같은 것!

유구한 무림 역사의 호적에서 그들의 이름이 파내어졌고, 그들의 시대는 오늘 부로 막을 내렸다.

“그분께서 네놈들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너무나 진부한 대사! 이 한마디를 남겨 둔 채 쌍살은 꽁지 만 개처럼 도망갔다. 완전히 숨통을 끊어 놓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쟤들도 한물 갔군!”

그들이 남긴 마지막 한마디를 들은 비류연의 평이었다. 옆에서 염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전적으로 동조해 주었다. 수치스럽게 남의 힘을 빌려 다른 사람을 협박하 려 하다니. 왕년에 공포란 이름으로 피바람을 몰고 왔던 천지쌍살답지 않은 짓이었다.

“그분이라…….”

잠시 머리 속에 담아 두고 염두를 굴려 보았다. 그러나 애당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너 알아?”

고개를 남궁상 쪽으로 획 돌린 비류연이 물었다.

“아뇨!”

남궁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무 추상적이잖아.”

그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고나 가지! 남에 대한 배려가 무척이나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남은 건 청흔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갈효봉뿐이었다.

“이제 저 한 사람뿐인가?”

비류연이 흘끗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시야 안으로 요란스럽게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청흔과 갈효봉! 아마 또래 중 이만한 실력을 가진 이 가 또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들의 무위는 뛰어났다. 한편 모용휘는 서둘러 응급 처치는 했지만 아직 생사지간을 헤매고 있었다.

지금 청흔과 갈효봉은 평생의 강적을 만나 자신의 모든 기량을 다해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격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판이 나 지 않고 있었다. 모용휘와 접전을 벌이며 그만큼 진기를 소모하고도 아직 여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처리한다?”

우두머리가 도주하고 적들도 뿔뿔이 흩어진 이상 남은 건 갈효봉뿐이었다. 그의 쌍도는 처음의 폭발적 위력에 비해 무척이나 무뎌져 있었다. 슬슬 기력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역시 죽일 수밖에 없나?”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한시라도 빨리 일을 마무리짓는 것이었다.

덥썩!

비류연이 갈효봉의 처우를 두고 이리저리 염두를 굴리고 있을 때 그의 어깨를 잡는 이가 있었다.

“왜?”

비류연이 의아한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죽이지는 말아 주게!”

부탁하는 효룡의 얼굴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왜?”

“…..”

효룡은 비류연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비류연도 쉽사리 그의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듣고 싶었다. 이럴 땐 친구한텐 미안하지만 약간의 공갈이 꽤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효룡! 너도 알다시피 저자는 지금 이지(理智)를 상실했어! 보통의 방법으로는 제압이 불가능해. 비록 제압한다 해도 이미 상실한 이지가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 지! 그러니 가장 손쉬운 방법은 죽이는 것뿐이야!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건 안 돼! 절대 안 돼!”

효룡이 핼쓱해진 얼굴로 절규하듯 외쳤다.

“이유는?”

여전히 시선을 갈효봉에게 고정시킨 채 비류연이 물었다.

“그는… 그는…….”

효룡은 눈을 찔끈 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눈 앞에 있는 비류연이라면 뭔가를 해 줄 것 같은 막연한 기대 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 기대심리가 허상이라도 좋았다. 그는 지금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처지였다.

마침내 효룡은 이빨을 악 물었다.

“그는… 그는 바로 나의 친형일세!”

중인들이 경악에 찬 얼굴로 효룡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불신이 가득했다. 그 시선에서 예전의 따스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싸늘함만이 그를 반길 뿐이었다.

“호오!”

비류연에게서 기대했던 비난은 날아오지 않았다. 비류연은 잠시 고개를 돌려 효룡을 일별한 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얼굴이로군!”

“저벅저벅!”

비류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접전중인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유람이라도 하듯 한가한, 여유로운 발걸 음이었다.

“어딜 가는 건가?”

효룡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산보(散步)!”

되돌아온 비류연의 한가로운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