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8권 10화 – 우리는 동문(同門)! 진짜로?

비뢰도 8권 10화 – 우리는 동문(同門)! 진짜로?

우리는 동문(同門)! 진짜로?

-마검자 고약한 노사와 미중년 노사 천익검(天劍) 늑기한

은설란 그녀가 생각해 낸 방법은 정말 기가 막히고, 절묘하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 증거로 천관도들, 특히 그중 사내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않은가.

아마 모두들 허가 찔린 느낌일 것이다. 그 증거로 다들 이렇게 입을 쩍 하니 벌린 채 말을 더듬고 있지 않은가! 현재 이들이 얼마나 정신적 혼란 속에 내동댕이 처 져 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라 할 수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비웃어 줄 수 있기에 재미가 있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파악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뜬 채,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선집중의 대상이자 원인(原 因)이자 좀 더 본질적 원흉(元兇)인 그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진난만 그 자체의 얼굴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사중화 은설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분과 같은 백도의 뛰어난 영재들과 같은 자리에서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은 소녀에게 크나큰 영광입니다. 미숙하고 처음이라 모르는 것도 많지만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애교가 한 움큼 묻어있는 생기발랄한 인사였다.

“와아아아아아아!”

곧바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환상, 또는 누군가의 농간이 아닌 것을 알게 된 남자관도들이 지르는 열광의 함성이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던, 그것이 과거 든 현재든 아니면 미래든지 간에 남자들의 본성은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그만 자리에 앉아라!”

한껏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단 한 사람의 목소리에 의해 싸늘하게 변했다.

무뚝뚝한 목석같은 목소리! 보는 이에게 공포감마저 안겨주는 얼굴 전면을 사등분으로 가르는 기울어진 사선십자상처!

그는 바로 오늘부터 천무학관 화산규약지회 대비 특별관리조를 담당하게 된 마검자(魔劍) 고약한이었다. 은설란 때문에 한껏 고조되었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울 적해지고 말았다.

그를 처음 접하는 관도든 익히 그를 잘 알고 있는 고학년의 관도든 그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엿 됐다…….”

“저분은 누구죠?”

비류연은 험상궂은 인상파 소유자인 고약한을 가리키며 장홍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역시 이런 자잘한 궁금 해결에는 장홍을 이용하는 편이 제일 빠르고 정확했다. 역시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장홍은 그의 궁금증에 술술 답변해 주었다.

걸어 다니는 무림 백과사전을 옆에 두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편리한 일이었다.

“아니, 자네 저분도 모르나?”

“새삼스럽게 왜 물어요? 그렇게 유명한 분이세요?”

비류연이 일반보편적인 상식을 모르는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매번 놀라 반문하곤 하는 장홍이었다.

“아! 저분이 바로 가장 수업받기 무서운 노사 투표에서 당당히 일위를 차지한 마검자 고약한 노사일세. 성질이 고약하기로 유명하지. 옛날 흑도의 명문 귀검문(鬼 劍門)의 마지막 직계라는 소문이 있다네, 공공연한 비밀이지. 삼십 년 전 흑도에 회의를 느끼고, 전대 천무학관주 철검 군천무 노사와의 인연으로 이 학관에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네. 굉장히 냉정하고 극단적인 성격 때문에 학관 내에서 인기순위 최하위지. 물론 본인은 그런 거에 전혀 신경 안 쓰겠지만 말이야.”

“귀, 귀검문이라면!”

효룡이 나직한 경악성을 터트렸다. 난 그게 뭔지 알고 있습니다, 를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알아?”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비류연이 효룡에게 물었다.

“자넨 몰라?”

“몰라!”

비류연은 모른다는 완강함의 표시로 고개를 좌우로 설래설래 저었다. 그러자 효룡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옛날 깃털이라는 의심을 받아 흑도의 총공격을 받고 멸문한 비운의 문파지. 그 일이 있기 전만해도 흑도 9강(九强)으로 인정받았던 검의 명문이야. 생존자가 거 의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아직 살아남은 이가 있었군. 게다가 그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천무학관의 무사부로 계시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야.”

“깃털이라면 바로!”

옆에 앉아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윤준호는 하마터면 교실이 울리도록 경악성을 터트릴 뻔 했다.

“깃털이 뭔데?”

비류연이 얼굴에 의문부호를 그렸다. 효룡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모른단 말인가? 여전히 어이없는 사람이로군!”

“그래 난 모른다. 내가 모르는데 보태준 게 없으면 아는 데라도 보태주는 성의를 발휘해 보게.”

비류연이 삐죽거렸다.

“깃털이라 함은 ‘그자’의 추종세력인 ‘그곳’의 잔존세력으로 그곳이 백 년 전 대회전(大會戰)에서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의 건재를 철통같이 믿고 어둠 속 에서 은밀히 활동하던 사람들이지.”

효룡을 대신해 장홍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곳? 아아! 천겁령(天劫靈)!”

비류연이 손뼉을 치며 아는 시늉을 했다. 천겁령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이 대번에 싸늘하게 변했다.

“흉한 이름이니 함부로 입에 담지 말게.”

장홍과 효룡이 동시에 쉬쉬하며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손가락을 입에 가져간다 해서 큰 효과를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다. 다시 장홍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핵심이 되는 몸통은 없고 깃털만 있다 해서 그들을 천겁우(天劫羽)라 불렀다네. 귀신같은 놈들이지.”

장홍은 생각하기도 싫은 표정이었다.

“비록 잔존세력이라고는 하지만 매우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집단으로 철저한 점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아직도 뿌리를 뽑았다고 확언할 수 없는 상대일 세. 매우 비밀스럽고 무시무시한 집단이지!”

“흐흠! 꽤 하는 놈들인가 보지?”

“좀 하다 뿐인가. 그 깃털들의 가장 무서운 점이 뭔 줄 아나?”

비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호사에 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비류연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묘하게도 천무학관의 교양과목인 강호무림역사 시간에도 천겁령에 대해서만은 쉬쉬거리며 가 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천겁령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미비했다. 별로 마음에 드는 행동은 아니었다. 도대체 입 다물고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으면 원래 있었던 과거의 역사가 뒤바뀌기라도 한단 말인가?

장홍이 으스스한 얼굴로 말했다. 반드시 이 이야기로 상대에게 겁을 줘야 한다고 작정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

“그건 말일세, 그들이 흑도뿐만 아니라 우리 정파 내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일세. 아주 아주 은밀하고 그 깊이가 보이지 않는 검은 뿌리 말일세.”

“흐흠. 간세(間稅)란 말인가?”

장홍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까지 정사를 막론하고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네. 하지만 오십년 전 있었던 털뽑기 작전(정식 명: 천겁우 공동소탕작전)에서도 천겁우에 당해 느닷없이 등 뒤를 찔린 사람이 많았다고 하네. 어때, 무시무시하지?”

비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제야 이야기가 좀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는군.”

비류연의 대답에 장홍은 아연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이었다.

쾅!

교실 전체를 짜르르’ 통채로 진동시키는 소리! 그리고 이어져 터져 나온 살기등등한 대갈성!

“조용히 해라!”

그에게 보통의 무사부 같은 예의는 없었다. 모든 예의와 허례허식은 그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엄청난 박력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고 노사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시선을 찌릿 주었다. 송곳으로 지르는 듯한 살기였다.

모두들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긴장시켰다. 인식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왠지 교육의 현장이 아니라 전장에 서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라. 여기가 어린애 놀이터인 줄 아나? 이렇게 노닥거리고만 있다가는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고 노사는 이긴다고 하지 않았다. 화산지회에서 우승할 수 없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단순 명쾌하게 ‘죽는다’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한 마디는 교실 안의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힘이 들어있었다.

“수업을 시작하겠다.”

드디어 마검자 고약한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고약한의 눈빛이 사납게 좌중을 훑었다. 관도들은 마치 자신들이 그의 눈빛 아래 낱낱이 해부되는 듯한 소름끼치는 인상을 받았다. 그 눈동자는 왠지 모 를 귀기와 살기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불만 있나?”

한밤중의 묘지를 연상케 하는 스산한 목소리.

불만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백도는 보통 사람을 죽이는 살검(殺劍) 대신에 사람을 살리는 활검(活劍)을 추구한다. 물론 개중에는 되지도 않는 칼질로 내가 활검입네 우기는 얼간이들도 있지 만, 그런 류의 사람들은 대부분 엉터리로 보통은 일반적인 살인기로 끝나고 만다. 원래 병기란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살리는 것은 병기의 원초적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검이든 도든 병기가 가진 본래의 의무에 충실하다 보면 당연히 살검, 살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활검이 뭐냐고 너희들이 물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검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살인검(殺人劍)이지 어떤 방식인 지 전해지지도 않는 방법으로 사람을 살리겠다며 사람 죽이는 활인검(活人劍)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활검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것과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노부는 활검이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주제에 남을 살린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그래서 난 있는지조차 의문인 활검을 너희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다.

그러나 살검이라면, 살인술이라면 너희에게 가르쳐 줄 것들이 아주 많다. 그리고 병기가 가진 원래 의미조차 터득하지 못한 채 활검한다고 깝죽대지 마라. 그딴 건 다 추잡한 위선일 뿐이다.”

“하지만 노사님! 저희들은 정도(正道)를 걷는 무도(武道)의 진정한 본질은 활인검과 자기수양에 있다고 배워왔습니다.”

용감하게 고약한의 말을 반박한 이는 놀랍게도 남궁상이었다. 고약한의 시선이 비도처럼 남궁상에게로 날아가 꽂혔다. “자기수양?”

고약한의 입가에 걸려있는 것은 아무래도 비웃음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기수양, 좋지! 난 그걸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론만 잔뜩 세워본들 그것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단 자신이 그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면 그때 가서 수양해도 말리지 않겠다. 살·아·만·남·는·다·면, 말이다.”

지금 관도들은 고약한의 박력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고약한이 계속해서 말했다.

“우선은 자신이 살아야 한다. 자신이 죽어버리면 어디 가서 자기 수행의 길이라는 꿈만 같은 이상적인 짓거리를 할 수 있겠느냐! 저승가서 한다고? 미쳤냐? 자신 이 가보지도 못한 곳 이야기는 들먹이지도 마라. 자신이 살고 싶다고? 그럼 간단하다. 자신이 죽기 전에 남을 죽이면 된다. 상대보다 빠르게! 그리고 상대보다 강하 게! 알겠느냐?”

좌중은 을씨년스런 침묵을 유지한 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말 과격(過激), 극단(極端), 급진(急進) 그 자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고약한은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의 수업을 경청하고 있는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러나 난 여기서 확실히 말한다. 내가 추구하는 건 어설프게 허울만 좋고 뼈대도 없는 가식적인 활검이 아니라, 얼마나 상대를 더욱 빠르고 더욱 간단하게 더욱 이 힘의 낭비 없이 격살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살검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이다.”

백도의 검은 명문으로 갈수록 살상보다는 제압에 중심을 둔다. 그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 고약한은 그것들과는 정반대에 놓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의 박력과 살기에 질려버린 관도들은 이제 아무도 반박할 생각을 품지 않고 있었다.

“넌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갑자기 질문을 받은 이는 비류연이었다. 돌발적인 질문을 받았음에도 그는 의외로 허둥대거나 놀라지는 않았다, 딴청을 부리다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류연이 한가하게 입을 열었다.

“대상에 따라 다르겠지요.”

“대상(對象)?”

주변 관도들의 표정은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여주었다.

“네! 그 상대가 저 자신이냐 아니면 적이라 불리는 상대편이냐에 따라 죽음이란 것의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고약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의 한쪽 눈썹이 흥미로 꿈틀거렸다. 꽤나 특이한 놈이었다.

“호오! 어째서냐?”

왠지 가소롭다는 표정이라고도 해석될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질문을 받은 비류연은 서슴지 않고 자신의 지론을 피력했다.

“만일 그 대상이 적이라면 그 죽음이란 녀석은 소리도 없이, 가장 빠르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절대 피할 수 없는 회피 불가능한 접근을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는 알 아챌 시간도 주지 않고 찰나지간에 그의 목숨과 영혼을 취하겠지요. 어떤 여인의 손길보다 부드럽고 감미롭고 잔혹하게….

비류연의 말을 듣는 고 노사의 눈동자는 점점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지금 비류연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살검의 가장 기본적인 요결인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임에도 모두가 다 알고, 또 체득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도 했다.

고 노사의 상태에는 손톱만큼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은 채 비류연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만일 저 자신이라면 그 ‘죽음’이란 녀석은 세월이라 불리는 가장 느리면서도 가장 무디고, 그러면서도 가장 확실한 검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저 의 영혼을 취해가기란 불가능할 겁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과 제 자신의 무(武)가 그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주거만(宇宙慢)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저런 낯 뜨거운 말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류연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했 다.

“광오하기 짝이 없구나! 너의 그 드높은 자존심을 올려다보다간 늙은 내 목뼈가 부러지겠다. 너의 그 터무니없을 정도로 드높은 자존심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냐?” 고약한이 보면 볼수록 비류연이란 녀석은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자신의 수업시간에 한눈 파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부터 열 까지!

“그거야 물론 실력이죠!”

다시 한 번 비류연은 자신의 광오함을 마음껏 뽐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활짝 웃는 얼굴로 만인 앞에서 가슴 펴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라고 주위에서 외 쳐주고 싶은 기분을 들게 만들어 주었다.

“…..”

순간 싸늘한 침묵이 주위를 감싸 안았다.

이 순간 비류연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품었다. 곧 고약한의 우수가 박력 있게 비류연의 대갈통을 내려칠 것이다. 이제 저 녀석은 죽었다. 오늘 송 장 하나 치운다! 라고…….

아마 모두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공명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비류연은 태연작약하게 고약한의 얼음송곳 같은 시선을 향해 자신의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피가 튈 것만 같은 긴장감.

“흡!”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러 있던 고약한의 몸에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것은 조용한 호수에 던져진 돌의 파문처럼 거세게 그의 전신으로 격렬하게 퍼져나갔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도저히 그 냉정, 싸늘, 잔인 무쌍하기로 소문난 고약한이라는 인간의 몸에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박력 있는 웃음소리였다. 마치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터 트려내는 듯한 거침없는 웃음소리였다. 그런데 듣는 사람들에겐 그 웃음소리마저도 공포스러웠다.

뚝! 허리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대소를 터트리던 그의 움직임이 갑자기 칼로 베어진 듯 뚝 멈췄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싸늘한 한광을 발하고 있었다. “건방진 놈!”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는 그 뒤로 딱 한 마디를 더했다.

“오늘 수업 끝!”

수업이 끝났다. 하지만 나예린에겐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수수께끼가 직접 와서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줄 모양이었다. “어머, 예린! 정말 반가워요. 이제 수업시간에도 얼굴을 맞댈 수 있겠네요.”

자신의 옆자리에 앉게 된 나예린을 향해 은설란은 활짝 미소지었다. 지금은 수업이 모두 끝난 터라 다들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수업참관을 허락받을 수 있었죠?”

의아한 얼굴로 나예린이 물었다. 그녀가 궁금증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흑도 출신에다 무당산 참변 진상조사관이기까지 한 은설란이 어떻게 이 교실에 앉아 있단 말인가? 그것도 화산지회를 준비하기 위해 편성된 특별 수련조에?

“참관이 아니라 수강이에요.”

은설란이 친절하게 나예린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참관일 경우 한번으로 끝날 수 있지만 만일 수강이라면 계속해서 듣는다는 이야기였다.

“관주님께 부탁드려 특별 수강을 허락받았어요. 비전전수(秘傳傳授)가 아닌 경우는 들어도 좋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진가의 행동은 정말 엄청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이 정도의 파격을 저지를 수 있는 마진가라는 사람이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이야기였 다.

‘도대체 마 숙부께서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걸까??

나예린은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조사는 어쩌시구요?”

그녀는 천무학관의 학생이 아니라 마천각의 학생이었고, 지금의 신분은 조사관이었다. 그녀가 지금 해야할 당면과제는 공부나 수련이 아니라 조사였다. 은설란이 당당하게 말했다.

“전학생이기도 하니까요. 학생은 언제 어디서든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거죠.”

너무나 당연한 말인지라 비록 현실에 잘 적용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예린은 반박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특련조에?”

특련조는 그 성격상 가르침도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게 많았다. 그러니 더욱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자파의 무공은 함부로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는 게 강 호의 관례였던 것이다.

절기의 유출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그녀를 이곳에 넣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어머! 그 이유야 당연하죠!”

은설란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느냐는 투였다. 그러나 나예린은 알 수 없었다.

“어째서죠?”

“그야 당연히 저의 호법 세 분이 모두 이 조(組) 소속이기 때문이죠!”

“세 분?”

그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은설란 그녀의 수신호위는 자신과 모용휘 두 명밖에 없었다. 그 외 한 명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어머 예린, 아직 못 들으셨나요?”

은설란이 친근한 목소리로 나예린을 불렀다. 그 부름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에 관한 다른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뭘 말이죠?”

“어머 정말 모르고 있었네. 그분 말이에요! 그분!”

“그분?”

처음에 나예린은 은설란이 누굴 지칭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 저번에 저잣거리에서 자객들의 암습이 있었을 때 저희들을 도와주셨던 그분 있잖아요. 분명히 그 소협 성함이… 비류연이라 하셨죠, 아마?”

“예에?”

의외의 경악성은 나예린보다 바로 그녀 좌우 옆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나예린의 양편에 아직도 황당한 얼굴을 바꾸지 못한 독고령과 이진설이 서있었 다. 아까 전부터 그녀는 나예린 옆에 붙어있었지만 차마 은설란과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해 여태껏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비명만 지르지 않았다 뿐이지, 놀라기는 나예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남자가 나와 같은 수신호위로…….’

비류연만 연루되면 왠지 자신의 평정심이 깨지는 것 같아 나예린은 그게 싫었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이니 임의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은설란 자신이 부 탁 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머, 둘이 친한 사이 아니었어요?”

나예린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설란을 향해 돌아갔다.

“어떻게 하면 그런 식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죠? 친밀하다니요?”

나예린은 자신의 머리가 매우 혼란해 짐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그런 방식의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예린에게 은설란은 수수께끼의 존 재였다.

“매우 가깝고 친밀한 사이처럼 보였는데, 내가 잘못 봤나요? 그런 쪽으로는 꽤 정확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나예린은 지긋한 눈빛으로 은설란의 눈을 통해 마음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용안은 은설란의 말이 그녀의 진심을 담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왜 농담이 아닌 것이지?

그녀는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은설란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런 입맞춤을 허용할 수 있는 건 아무에게나 가능한 게 아닌데…….”

마침내 은설란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말았다. 그것도 들어서는 안 될 누군가가 있는 곳에서! 반응은 당장에 나타났다.

“뭐라구요?”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독고령이었다. 그녀는 진실여부 확인을 위해 은설란의 멱살이라도 뒤흔들 듯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

독고령의 옆에서 은설란의 폭탄 발언을 같이 들은 이진설은 발갛게 상기된 볼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둘은 전혀 상반된 감 정으로 은설란의 정보를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못된 자식이 또 그랬단 말인가요?”

독고령은 그의 하나 남은 외눈에서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사정없이 내뿜고 있었다.

“또, 라뇨? 어머, 그럼 전에도 이런 일이 또 있었단 말인가요?”

은설란의 눈이 독고령의 살기를 밀어내고 흥미로움으로 반짝였다. 대단한 아가씨였다.

“내 이 녀석을 당장….”

독고령은 당장이라도 검을 빼들고 그 뭐뭐한 자식을 찾아갈 모양이었다. 찾아가서 당장에 그 버릇 나쁜 입이 달려있는 부위 전체를 검으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냉정하기로 유명한 독고령이 단 하나 이성을 잃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어여쁜 사매인 나예린에 관한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매에게 위해(危害)가 발생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그런 정체를 알 수 없는, 왠지 보기만 해도 화가 치미는 녀석에게는 더욱더 그랬다.

“사저! 참으세요.”

당장이라도 살인사건을 벌일 듯한 독고령을 잡아 세운 이는 바로 나예린이었다.

“하지만 사매!”

이번만은 말리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그녀는 나예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예린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조금 부주의 했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의외로 놀랍게도 나예린은 살짝 웃었다. 자조의 웃음이라고 봐야 할까? 그러나 그 안에는 사람의 혼을 사로잡는 놀랍고도 신비로운 아련한 매력이 깃들어 있었다. “사매…….”

하는 수 없이 독고령은 검을 움켜진 손을 풀고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릿한 슬픔마저 느끼게 만드는 저런 표정으로 말하는 나예린은 절대 거역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비류연은 독고령과의 칼부림을 아슬아슬 간발의 차로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여! 안녕하세요.”

반갑게 그녀들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비류연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비류연이 바로 그 꼴이었다. 독고령은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검을 뽑을 뻔했다. 그러나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나예린의 손 덕분에 살인미수범 일보직전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화가 풀린 건 아니었다. 그러나 무 턱대고 화를 터트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비류연은 자기 혼자가 아니라 꽤나 이름 쟁쟁한 사람들을 옆에 붙여왔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칠절신검 모용휘와 주작단주 남궁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효룡과 장홍 등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독고령의 눈에 밟힌 사람은 그 정도였다.

다행히 두 명의 친구를 방패삼아 비류연은 독고령과의 칼부림을 피할 수 있었다. 역시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친구란 참으로 유용한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꺄악! 언니, 저기 좀 보세요.”

갑자기 흥분한 이진설이 깡충깡충 뛰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얘는… 호들갑은! 도대체 왜?”

독고령이 마지못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꺄아! 꺄아! 꺅! 꺅! 어머어머! 까르르르르!”

수 명의 여관도들이 한 명의 남자를 둘러싸고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귀가 쟁쟁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누구야?”

나예린이 물었다.

“어머 언니 몰라요? 요즘 최고로 인기 좋은 천익검 늑기한 노사님이잖아요. 이번에 최연소로 백검조의 담당 노사를 맡게 된 천익검 늑기한 노사님, 언니 설마 몰랐 어요?”

나예린의 얼굴은 모른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진설은 졌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러나 나예린이 다시 한 번 그 늑기한이란 노사를 바라보게 하는 계 기는 되었다. 나예린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젊군!’

일단 실제 나이가 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무사부라고 하기엔 너무 동안인 얼굴이었다. 도저히 무사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게 다가 나예린은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 기준에서 보면 그는 매우 보편적인 미남이었다.

이때 그 참새 떼를 연상케 하는 그 무리들이 비류연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꺄꺅’ 수다 떠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에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음(陰)이 있으면 양(陽)이 있다고 한다.

천익검 늑기한이라 불리는 이 노사는 마검자 고약한과는 정반대되는 소위 말하는 초절정 인기가 있는 노사였다.

그는 무척 잘생겼다. 그리고 엄청 젊었다.

그리고 굉장한 무공 기재였다. 아직도 그가 세운 최연소 무사부 역임 기록은 아직 누구에게도 깨지지 않고 있었다. 그 미모와 식견과 젊음과 패기와 정열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항상 여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주위에는 소녀들의 재잘거림이 그칠 날이 없었다. 게다가 늑기한 또한 지겨워하지 않고 일일이 상대 해 주고 있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모양이었다.

“늑 노사님! 노사님께서는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운명적 사건과 조우한 적이 있나요?”

한 소녀가 물었다. 자신의 우상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궁금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이런 형식의 질문은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나 중요한 사건을 들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물론이지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늑기한은 대답을 했다.

“그를 만난 것은 저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답니다. 그분을 만나고서 전 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죠.”

늑기한이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누구예요?”

한 여관도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으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얼굴을 밝히는 모양이다).

“후후… 글쎄요. 비밀입니다.”

늑기한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생긋 웃었다. 그의 새하얀 치아에 햇빛이 부딪쳐 찬란하게 빛났다.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남자들은 미식거리 는 속을 최우선적으로 다스려야 했다.

“재수 없어! 우우우우우’

지켜보던 남성관도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늑기한은 어디를 뜯어봐도 도저히 삼십대로는 보이지 않는 초 동안의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나이 삼십 대 초반에도 불구하고 십대 같은 싱싱한 젊음과 미모를 최대의 절세 신공으로 삼고 있는 그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신기하게도 그의 주위 에는 항상 여성관도들이 나비처럼 꼬였다. 물론 일부남성관도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게 무슨 나비야? 파리지!’라고 말하겠지만 그의 인기노선에 이상무라는 사실 은 변함이 없었다.

때문에 방금 전의 애교 섞인 미소 같은 무모에 가까운 용기 있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그저 잠자코 지켜보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여자들은 열광할지 몰라도 비류연이나 효룡 같은 남자들에게는 그것을 참는다는 것은 무한에 가까 운 엄청난 인내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얼떨결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효룡의 인내도 거의 임계점에 이르고 있었다. 이런 인륜에 어긋나는 고문은 금지시켜야 마땅한 것이었다.

“저… 저런 닭살스러운 행동을 저렇게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니.

그것은 정말 어떤 신공마공보다도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효룡은 소름이 오싹 끼치는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팔에 돋는 소름을 탈탈 털어냈다. 왜 저런 걸 여자들은 좋아하는 것일까? 일부 특수한 여성들의 심리 에 대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효룡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진설이 늑기한에게 호감을 가지고 열광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각이라도 빨리 늑기한이 이곳에서 멀어지기를 효룡은 전심을 다해 빌었다.

끼이이익! 탁!

녹슨 경첩이 날카로운 쇠 소리를 내며 울렸다. 사람의 신경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기름칠이라도 해야할 듯했다. 고약한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며 그렇게 생각했다.

방 안은 어둡고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고약한은 일단 방안에 상주하고 있는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등잔에 불을 붙였다.

화락불꽃과 함께 빛이 일어나며 어둠을 몰아내었다.

“어땠습니까?”

느닷없이 그림자가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홀로 방안에 서있는 고약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방을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 온 데다가 모습마저 제대로 나타내지 않고 있는 불청객이지만 고약한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떤 제지도 가하 지 않았다.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재밌더군!”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 장난감을 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죠.”

여전히 몸을 드러내지 않은 채 검은 인영이 말했다.

“꽤나 쓸만하더군. 그놈처럼 날 어처구니없게 만든 놈은 근래 들어 없었네!”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꽤나 이쪽 이야기에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기대해도 좋을 걸세. 보통 놈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더군. 간만에 재미있는 소일거리를 찾았어.”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너무 금방 죽이진 마세요. 그럼 별로 재미가 없으니깐 말입니다.”

“걱정 말게! 아주 아주 천천히 가지고 놀면서 서서히 말려 죽일 테니깐.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지.”

별 감정이 들어있지 않기에 더욱 싸늘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확실히 처리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걱정 말게. 그럼 용건은 끝난 듯 하군.”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그럼!”

장막 뒤의 기척이 순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