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는 달빛을 타고
– 정오의 다향(茶香)
흑단 같은 긴 머릿결, 가녀린 목선!
가냘프면서도 우아한 자태!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이슬 같은 청량감이 느껴지는
여인이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그 미모의 여인은 지금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 자신 앞에 나타난 반응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후우… 하아.”
옥 조각 같은 여인을 향한 부러움이 담긴 몽롱한 시선이었다. 그러나 동성이 보내는 눈길이었기에 뜨거움은 없었다. 일종의 선망이 담긴 시선이었다.
“왜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냐? 손님 앞에서 보기 좋지 않구나!”
넋을 놓고 있는 이진설에게 보다 못한 나예린이 한마디 충고를 해주었다.
“정말 예쁜 사람이죠?”
이진설이 감탄하며 말했다. 나예린도 물론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대단한 미모였지만 은설란에게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차가운 달빛과 따뜻한 봄바람의 차이라 고나 할까?
“그렇구나.”
나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외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여인이었다. 얼어붙은 마음의 소유자인 자신이 봐도 호감이 갈 정도 였다. 나예린에게 타인의 미모를 향한 질투 같은 시답잖은 감정은 애초부터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기품 있는 여인이에요. 우앙! 부러워라.”
이진설은 아무래도 은설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은설란도 이진설을 전혀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미모를 칭찬하는 데 싫다고 할 여인 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이 귀엽고 깜찍한 소녀에게서 나온 칭찬이라면 더욱더 그랬다. 단번에 진심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은설란이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나 소저 앞에서 미모에 대해 칭찬을 듣다니 정말 부끄럽네요.”
“아니에요, 언니!”
이진설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니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의미였다.
“분명 나 언니의 미모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워요. 하지만 나 언니와 은 언니는 느낌이 다른걸요! 난 은 언니의 느낌이 너무 좋아 요. 이건 진심이에요.”
이진설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 깜찍한 아가씨가 정색까지 하며 말하는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호호호, 고마워요! 한층 더 기쁘네요.”
이진설은 만남이 깊어질수록 대화가 즐거운 아가씨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한참 마주 보며 교소(嬌笑)를 터뜨렸다.
“이 소저는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느닷없는 은설란의 기습 질문이었다. 방심을 틈탄 은설란의 기습에 이진설은 말문이 턱 막혔다.
“예? 조… 좋아하는 사람이요. 아니… 그… 그런 사람이… 저…….”
순간 얼굴이 새빨게진 이진설은 차마 뒷말을 조리 있게 연결하지 못했다. 그 정도 눈치면 충분했다.
은설란이 살짝 미소지었다. 참으로 보면 볼수록 귀여운 아가씨였다. 마치 없던 여동생이 한 명 생긴 듯한 흐뭇한 기분이었다.
“어머! 있군요!”
은설란이 일부러 크게 교성을 터뜨렸다.
이진설은 머쓱한지, 쑥스러운지, 부끄러운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그것이 은설란의 입가를 더욱 미소짓게 만들었다.
“누구에요?”
이런 궁금사항을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은 벌 받을 짓이었다. 그것은 지식과 지혜를 모독하는 죄악이었다. 그런 범죄를 은설란은 차마 저지를 수 없었다. “효… 효공자요! 효자 룡자 쓰시는 분이시죠?”
“네에? 뭐… 뭐라구요?”
은설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은 새총 맞은 비둘기 눈이었고, 그녀의 떠억 벌어진 입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진설의 질문은 그녀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자기통제가 가능한 그녀를 뒤흔들 정도로 말이다.
듣고 있던 나예린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은설란의 이런 격한 반응은 그녀로서도 처음이었다.
‘경악, 난감, 의혹, 혼란 그리고 호감, 기쁨, 환희…….?
여러 가지 감정이 혼재되어 그녀의 의식 표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당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였 다.
“서… 설마 그 효룡 공자 말인가요?”
충격의 정도는 말까지 더듬을 정도였던 모양이다.
“…네!”
만추(滿秋)에 붉게 물든 단풍을 무색케 할 만큼 이진설의 얼굴이 더욱더 짙게 붉어졌다.
“…..”
은설란은 잠시 할 말을 찾기 위해 침묵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평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던 은설란의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자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낀 이진설이 되물었다.
“절대로 안 돼요! 이 소저! 그 남자만큼은 절대로 안 돼요. 다시 생각해 볼 수 없나요?”
은설란이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예고되는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나 의외의 반응에 이진설이 당황할 정도였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진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였다.
“절대 그 남자와는 행복해질 수 없어요.”
은설란이 단언하듯 말했다.
“왜요?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되나요?”
이진설이 물었다.
“아뇨!”
“심성이 고약한가요?”
“아뇨! 너무 여려서 탈이죠.”
“여자를 밝히나요?”
“아뇨! 거의 숙맥이에요.”
“책임감이 부족한가요?”
“아뇨! 곤란할 정도로 투철하죠.”
“돼먹지 않은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나요?”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은설란은 극구 부인했다.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진설의 질문 중 어느 하나도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없었다.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해 도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에요? 효 공자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알고 계시는 듯하네요.”
이진설은 의아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이진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녀의 눈망울 가득 경악이 일렁거렸다.
‘아차! 내가 너무 말이 많았나?”
뭔가 눈치를 챘다면 큰일이었다.
이진설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자 은설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이러지?”
돌발 사태였다. 은설란은 적당한 대응책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서… 설마… 별도로 연정을 품은 여자가 있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그 대상이 설마…….’
눈동자를 일렁거리며 울먹이는 이진설의 시선이 은설란을 향했다. 그 시선의 의미는 명확했다. 혹시 그 여자가 댁이 아니신지요? 하는 의미를 품고 있는 시선이었 다.
이런 오해는 화급히 대피해야만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은설란은 단숨에 도리질 쳤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와 이 소저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어요. 이 세계에 있는 이상 그 높은 벽을, 오랜 세월 깊게 패인 감정의 골을 뛰어넘을 수는 없어요. 그게 이 세계, 강호의 법칙이에요.”
이진설에게 호의가 없었다면 이런 충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설란은 눈앞의 귀엽고 깜찍한 아가씨가 무척 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충고를 해준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러나 별 효과는 없는 듯했다. 오히려 이진설은 안심한 듯했다. 그것이 은설란을 더욱 의아하게 만들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이진설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번엔 은설란이 놀랄 차례였다.
“정말요?”
그것은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안다면 효룡은 존재 자체가 이곳에 있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가 밀정(密偵)의 존재를 두 눈 뜨고 봐주겠는가? 그런데도 눈앞의 이 아가씨는 거기까지 몽땅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이에요. 그러나 그 정도로 포기하지는 않아요.”
“말은 생각하면서 하거라.”
가만히 듣고 있던 나예린이 엄중한 주의를 주었다. 아직 미묘한 상황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좋은 느낌은 분명 아니었다.
“언니!”
이진설이 소리 높여 나예린을 불렀다. 원망이 조금 담긴 어조였다. 그러나 나예린의 차가운 태도에는 일말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쉽게 내뱉지 말거라.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는 것이 아니다.”
“전 할 수 있어요.”
이진설이 소리쳤다.
‘이 아이가 나에게 이리도 언성을 높이다니…….’
이진설이 나예린 앞에서 언성을 높인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애정(愛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아직도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나예린이었다.
이진설의 문제로 고민하는 그녀의 눈앞에 갑자기 비류연이란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게다가 그 영상은 뻔뻔스럽게도 슬며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응? 왜 이 남자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거지?”
나예린은 비류연의 얼굴을 애써 잊으려 노력했다. 계속 떠올리고 있어 봤자 일생에 도움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남자였다. 괜히 남의 심리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 었다.
지금은 이진설의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오기와 열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나예린은 어떻게라도 이진설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싫어요.”
이진설은 막무가내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은설란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모했다. 그녀의 얼굴과 머릿속은 지금 의문부호로 가득 차 있었다.
“설마 나 소저도 이 공자의 진정한 정체를 안단 말인가? 설마 바보 같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은설란은 그렇게 결론짓고 싶었다. 한 명도 아닌 두 명 이상은 너무 수가 많았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이곳에 오고부터는 모든 일이 의문투성이였다. 은설란은 이 의외의 꿈같은 상황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전 언니가 아무리 말려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래도! 설란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바로 대답하기에는 질문의 비중이 너무 컸다. 은설란은 심사숙고를 해야만 했다.
“언니…….”
이진설이 불안감에 말꼬리를 흐렸다.
“…..”
그러나 은설란은 금방 굳은 표정을 풀고 부름에 응답해 주지는 못했다.
석상처럼 굳어 있던 그녀의 얼굴에 변화가 찾아왔다.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붉은 석류 같은 입술 한가운데에서부터 우아한 곡선을 그 리며 양끝으로 차츰 번져나갔다.
겨울의 대지에 봄의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침내 은설란은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호호호! 아니에요! 이 소저! 당신은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있군요. 축하해요. 진심으로 경하 드려요.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진심으로!”
“정말요?”
도가 지나친 축하와 칭찬과 응원은 당사자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그럼요. 물론이죠! 그 사람이라면 절대 여자를 울리거나 하는 천인공노할 짓은 못하는 사람이죠. 그만큼 순수한 사람이니까요. 열심히 해봐요. 진심으로 응원할 테니까요!”
“네, 언니!”
어느새 이진설의 얼굴에는 태양도 무색할 만큼 밝은 웃음꽃이 만발해 있었다. 나예린은 그런 이진설의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너무 바람을 넣은 게 아닐까??
은설란은 잠시 감정의 흐름대로 행동했던 방금 전 행동을 떠올려 보았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과연 그녀의 결심에 힘을 실어준 것이 잘한 짓인지 의 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이진설과 효룡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사상 최대의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그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당사자들 사이의 문제였다. 결 과는 이제 오직 하늘만이 알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게 겨우 어제 오후였는데…….’
그 다음날 저녁에 외따로 떨어진 은밀한 장소에서 이런 포옹 장면을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목격해 버리고 만 것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으아앙! 나 어떻게 해…….?
이진설이 안절부절 못하며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바로 그때! 그녀가 몸을 숨긴 나무에는 거미 한 마리가 평화롭게 집을 짓고 아름다운 날개를 펄럭이며 날 아다니는 나비 등을 잡아먹으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거미는 자신의 집 밑을 서성이는 거대한 물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야 말았다. 거미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향해 용감히 강하를 시도했다.
“꺄악!”
일반인에게까지도 들릴 만한 소리. 고수의 귀에는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
“누구냐!”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효룡이 돌아봤다. 좀 우스운 꼴이었지만, 완전히 긴장을 이완시키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진설은 부리나케 도망가지 못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우뚝 못 박혀 버렸다.
이진설이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비치는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달님이 심술궂게 그녀의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내 주었다. 푸른 달빛의 영향인지 그녀의 얼굴 이 더욱더 창백해 보였다. 정신적으로 심한 타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 이 소저!”
효룡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딸꾹질을 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허파에 헛바람이 들어간 듯했다. 효룡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뭍에 나온 붕어처럼 입 만 벙긋벙긋 하는 것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평가할 수 있었다.
“뜨어어어억! 이… 이 소저! 오해에요! 오해!”
화들짝 놀란 효룡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은설란의 몸으로부터 양손을 떼며 만세를 불렀지만, 이미 볼장 다 본 이후였다. 효룡은 어떻게든 이 난감무쌍한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양손으로 전력을 다해 손사래를 쳤지만 이진설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글썽글썽하고 있었다. 눈물은 곧 결정이 되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흐…흐….흑!”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는 휑하니 몸을 돌려 달려갔다.
“이 소저어어어어어!”
그녀의 가냘픈 등이 그의 시야에서 저만치 멀어져 갔다. 효룡은 목청이 찢어져라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한심하게도 다리에 힘이 풀려 쫓아갈 수가 없었다. 오해의 소지가 없게, 정확히 말하자면 쫓아가서 붙잡고 할 말이 빈궁했기에 힘이 빠진 것이었다.
풀썩!
효룡은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낙심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저어…….”
처량하고 궁상맞은 모습으로 주저앉은 채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효룡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은설란이 말문을 열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효룡이 고개를 돌려 처량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은설란은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치도 보통이 넘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바로 감지했던 것이다.
“오해받은 걸까요?”
살짝 웃는 그녀의 얼굴은, 당신 참 곤란하지 않느냐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오해의 현장을 연출하는 데 그녀가 매우 결정 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
효룡은 이제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머릿속이 멍한 게 어떠한 타개책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겠죠?”
콕콕! 그녀가 손끝으로 살짝 그의 등을 찔러 보았다.
여전히 봉합된 두 입술! 정지되어 버린 혀!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역시 그런가 보네요. 휴우……..”
그녀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다 시선 둘 데를 찾을 길이 없자 멍하니 달을 바라보았다. 궁상맞은 한 남자의 모습과 무척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긴 했지만 달빛이 참 곱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