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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27화


한편 겐끼는 한양에서 고니시의 명을 받고 바로 부 산포로 내려갔다. 그기간이 닷새가 걸렸다. 그 다음 부산포에서 도공들의 둘레를 수소문 한뒤, 도공으로 변장하는데 걸린 시간이 사흘. 겐끼는 이번에 다른 닌자 형제들 (다같은 핫도리가의 사촌형제들이었 다.) 두 명 모두와 동행하고 있었다. 고니시가 맡긴 임무의 중요성이 크다고 판단되어, 만의 하나를 대 비하여 형제들 모두와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도공들의 숙소를 알아낸다음에 형제 중의 하나는 그리로 미리 들어가있자고 하였으나 겐끼는 고개를 저 었다.

“별로 좋지 않다. 지금 들어가면 취조관들이 도공들 의 실력을 판가름하려고 취조를 계속 할 것이다. 너, 정말로 도자기를 구울 줄 아느냐?”

그러므로 겐끼는 부산포에서 숨어 지내며 기회를 보 다가 왜국으로 수송선단이 건너갈 무렵에 그 배를 숨어 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보초병 몇 만 쥐도새도 모르게 처치하면 숨어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 사이 겐끼는 심심하기도 하고 혹시 도움이 될지 도 몰라서 며칠동안 부산포 부근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였다. 부산포는 지금 한참 왜병 들과 잡혀온 포로들이 들끓어 거의 일본화 되어가 고 있는 중이었다. 많은 병사들의 가족들도 속속 들 어와 조선인들이 살던 집을 차지하여 아예 살림을 차 리기 시작하였으며 길거리에도 거의 왜국 사람들만 이 돌아다녔다. 혹 조선인들이 보이더라도 대부분은 포로가 아니면 왜국식으로머리를 민 변절자 들이었다. 왜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왜국말을 가르키고 모든 풍습을 왜국 식으로 뜯어고치기에 바빴다. 겐 끼가 알기로 이 전쟁은 조선을 완전히 점령하여 명 나라를 칠 교두보로 삼는 것이니 그런 장기적인 준 비가 필요할 것 같기는 했다. 또 한편에서는 커다란 저택들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곧 바다를 건너 올 간파쿠님의 저택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한양도 점령 되었으니, 곧 간파쿠님이 오셔서 병사 들을 직접 지휘하실것이다. 그러면 곧장 명국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어느 술집에서 대낮부터 술에 취해있던 장교 한사람 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겐끼는 놓치지 않았다. 아무 래도 전쟁 전부터 소위 대영주들은 오지 않고 소영 주들만 전쟁을 벌였다는 수근거림이 있는 터여서 간 파쿠인 히데요시가 직접 온다는 것은 상당히 사기를 고무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현재 일본 내의 최대의 영주는 도꾸가와 이에 야스(德川家康)과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등이었 으나 실지로는 이 영주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고 소영주들만이 전쟁에 참여하여 의아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대영주들은 전쟁에 필요한 군비와 물자를 충당하기 는 하였으나 직접적으로 병사를 파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30만에 달하는 정규군을 동원하고 도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히데요시가 직접 군대를 지휘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 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파쿠인 히데요시가 직접 온다면 지금 다소 둔화된 진격속도 는 더욱빨라질 수도 있었다. 겐키의 형제이기도 하 며 코가 크고 발이 빨라 덴구(天)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지는 형제 한 명은 겐끼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형님은 이번 전쟁으로 명국이 정벌될 것으로 보십 니까?”

“글쎄.”

“지금 우리군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한양을 점령 한 고니시 부대조차보급로가 길어져서 진격을 늦추 고 있다고 합니다. 명국까지 갈 경우에 어떻게 보급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무리인 듯 합니다.”

덴구는 나이가 젊어 조금 혈기가 끓었다. 닌자로서 는 좋지 못한 습관이다. 겐끼는 조금 인상을 써보였 다.

“그렇다면?”

“몇몇 사람들은 간파쿠님께서 천하통일을 이루었으니, 이제 무장들을소멸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고들 합니다만.”

그러자 겐끼는 웃었다.

“헛소리다.”

“네? 하지만…”

“헛소리라고 했다.”

그러나 덴구는 납득이 가지 않는 듯 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말한 것 같은 소문은 나도 듣고 있다. 우리나 라는 수백년동안 전쟁만 치러서 무장들이 너무 많 지. 그건 사실이다. 이제 통일되었으니 싸우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는 무장들은 도리어 위험한 존재 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간파쿠님이 그들을 소멸 시키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어째서입니까?”

“상황을 보아라. 지금 간파쿠님에게 반대할 수 있는 대영주는 도쿠가와공과 마에다 공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은 참전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파쿠 님은 무어라 말하지 않으셨다. 이후의 내란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면 그 두 분의 군사들 부터 소모시킴이 옳을 것이다. 간파쿠님은 명석하기 가 비할 데 없는 분이다. 그 정도 생각이 없으실 것 같으냐?”

겐끼는 혈기에 들떠 남의 이야기만 듣는 덴구가 안 스러워서 조금 길게 이야기했다. 비록 임무에 걸리게 되면 친형제나 부모간이라도 베어야 하는 것이 닌자 이다. 그렇지만 그런 임무를 맡지 않은 이상에서는 또한 혈육의 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덴 구는 비록 몸이 날렵하고 발이 빨랐지만 닌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유약한 면이 잇어서 늘 안스 럽게 여겼던 터였다. 보호본능이라고 해도 좋다. 좌우간 겐끼는 동생을 타이르려 길게 이야기를 한 것 이었지만 덴구는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들 합니다. 무리 하게 간파쿠님이 출병을 권한다면 모반이 먼저 일어 날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에 강권하지않으셨다는 이야기도…”

그러자 겐끼는 그만 두고 싶어졌다. 덴구는 무엇보 다도 닌자이다. 닌자는 그런 일에 너무 관심을 기울 여서는 안된다. 스스로의 소견이 있으면 거치장스러 워지는 것이 바로 닌자였던 것이다. 겐끼는 짧게 잘 라 말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것은 늑대를 쫓으려고 호랑이를 들이는 것이 아니냐? 간파쿠님은 다른 뜻 이 있으실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간파쿠님은…” 겐끼는 잠시 말을 끊고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 다 음 말했다.

“….. 아마도 망녕이라도 드신 것일게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을 수 없다.”

겐끼는 그만두자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인데 덴구는 아직도 그치려 하지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지난 번 쓰루마쓰(鶴松)님의 죽음 때문에..”

겐끼는 움찔했다. 쓰루마쓰는 히데요시가 낳았던 단 하나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히데요시의 자식이 아니라 소실 요도도노(淀殿)이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쓰루마쓰가 태어난 것은 1589년, 히데요시가 52살 때였다. 나 이로 볼 때 좀 문제가 잇다 하지않을 수 없다. 더구 나 히데요시는 수없이 많은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전 에아이를 많이 낳았던 여자도 히데요시에게서는 자 식을 안겨주지 못했고, 간혹 히데요시의 소실로 있다 가 다른 곳에 재가한 여자들이 무난히 아이들을 낳 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쓰루마쓰가 히데요시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그 아이를 끔찍스러울 정도로 사 랑하며 길렀고 몹시 기뻐하며 그런 소문에는 전혀 개의치않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쓰루마쓰는 작년, 그러니까 1591년 8월에 갑자기죽어 버렸다. 히데요시는 그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상투까지 잘랐고 그이후 갑자기 명나라와 조선에의 출병이 본격적으 로 현실화 되었던 것이다.

그 이전에도 히데요시는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얻 겠다’고 말해왔었지만정말로 그 계획을 발표할 것이 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간 에서는 ‘히데요시가 자식이 죽어서 미쳤다’는 풍설 이 끊임없이 돌았었다. 그리고 실제로 누구도 이 전 쟁이 제정신하에서 일어났다고는 믿지 않았다. 수많 은 피를 흘리고 통일전쟁을 치른 것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막 상 그것이 얻어지자마자 다시피를 흘려야 하는 것은 무엇때문이란 말인가?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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