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33화
처음에 언년이는 고니시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 안에 떨었으나고니시는 진심으로 기도만을 올렸다. 언년이는 고니시가 무슨 일을 하는 하는지는 몰랐지 만, 점차 어린아이 특유의 직감으로 이 왜장이 꼭나 쁜 것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긴장이 풀려 잠이 들고 말았다.
‘가엾은 아이…..’
고니시는 잠든 언년이에게 자신의 겉옷을 덮어 주었 다. 잠든 언년이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다. 고니시는 이 아이를 정말 딸로 삼기로 작정했다. 그래야 자신 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이 참혹한 전쟁과 피해받는사 람들에게 다만 얼마라도 속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고니시는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흐뭇해졌다. 한 번 언년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으나 그 이름은 너무 부르기가 힘들었다. 왜국말은조선어와 달리 받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하나 지어주어야겠구나. 무어라고 할까?’
그때 밖에서 새벽을 알리는 딱딱이 소리가 들려왔 다. 고니시는 순간 묘한 점을 생각해 냈다. 그날 밤 에는 그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 다.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리던 목소리였는데…….
‘어허, 희한하구나. 이 아이가 있어서 그런 일도 잊 고 있었구나. 항상 그러려고 마음을 가다듬기는 했 으나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맑았고기도도 지성으로 올렸다. 그래서 그 사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고니시는 기뻤다. 그리고 목소리 생각과 더불어 갑 자기 본국으로파견 보냈던 겐키의 일이 떠올랐다.
‘겐키는 잘하고 있을까? 오다 가문과 아케치 가문의 일을 캐내려면…… 겐키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리고 그 목소리의 사탄이 방해를 할지도……………’
이내 고니시는 그런 생각을 애써 지웠다. 공연히 걱 정해 봐야 좋을것은 없었다. 모든 생각을 접고 언년 이의 잠든 얼굴로 다시 눈을 돌려언년이를 안아 올 렸다. 언년이는 마냥 쌔근쌔근 자면서 고니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고니시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이 아이 덕분에 오늘 하루는 그 기분 나쁜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몹시 기분이 좋았다. 고니시는 잠시 생 각에 잠겼다.
‘이 아이를 오다라고 부르자. 오다 가문은 거의 몰 락의 길을 걷고있지만 한때는 천하를 지배했던 가문 이 아닌가? 좋다, 그렇게 하자. 그리고 세례를 받게 하고 세례명도 지어주리라. 그리고 이 아이를 반드 시 지켜주리라. 반드시…….’
고니시는 방금 ‘오다’라고 이름을 붙인 언년이를 마 치 갓난아이처럼 안고 어르면서 이 아이의 세례명은 무엇으로 해야 좋을까 생각에잠겼다. 비록 밤을 꼬 박 새웠지만 근래 보기 드물게 기분 좋았다. 날이 밝자 고니시는 오다를 편한 곳으로 옮겨 자기 뒤를 잘 따라오도록 하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말에 올랐다. 다시 진군하는 것이다. 밤을 지새웠으나 기 분은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니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국왕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전쟁은 계속될 것이고 무수한생명이 위협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간 파쿠님이 전쟁을 그만두실 리는없다. 그러니 어서 조선국왕을 잡아야만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피를 덜 흘릴 수 있다.’
생각을 접고서 고니시는 부관에게 명해 두 사람을 불렀다.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調信 유천조신)와 겐소(玄 蘇 현소)대사를 불러라.”
두 사람이 도착하자 고니시는 명을 내렸다.
“야나가와는 즉시 기마병을 인솔하여 급히 평양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겐소 대사는 이전에 조선에 와 보 셨으니 길 안내를 하고 조언을해주시오.”
그러자 겐소는 합장을 하며 말했다.
“무슨 조언이 필요하겠습니까?”
겐소는 하가다(博多 박다)지방의 세이후구지(聖福 寺 성복사)의 주지승으로 있던 출가승이었는데, 학 식에 밝아 대마도주 소오 요시도시의외교고문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 불교는 사회 참여적인 면모가 많아 안고 구지安國寺 안국사)에게이 惠 혜경)처럼 직접 군대를 이끌고 종군한 승려들이 많았는데, 겐소 역 시 불문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종군하였다. 그러나 겐소는고니시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오 요시도시의 영향을 받아 약간은 반전론자였으며, 야나가와도 소 오 요시도시의 가노(家老, 집안 대대로 내려온가까 운 신하)였다. 고니시가 일을 시키기에는 좋은 부하 들이었다.
고니시는 야나가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의 첩보에 따르면 조선왕은 평양에 있고 그 주변에는 오합지졸뿐이라 한다. 속히 들이쳐서 조선왕을 잡거나, 항복을 받아 내라. 나는 이 전쟁 을 질질 끌고 싶지 않다.”
그리고 겐소에게 말을 건넸다.
“대사는 이전에 조선에 여러 번 와 보셨으니, 신하 들 중 현명한 사람을 알 것이외다. 이제 조선은 마 지막이오.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항복하라 설득 하면 그리 될지도 모르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으면 속히 전격적으로 움직여서 조선국왕을 잡으시오. 이 일, 반드시 성사시키기 바라오.”
그러자 겐소는 깊이 합장을 해보였다.
“고니시님의 뜻,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야나가와도 한 마디 거들었다.
“조선국왕을 꼭 잡아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보병대나 총병대 같은 느린 부대 는 놓아두고 날쌘 기병대 수천을 차출하여 급히 평 양을 향하여 진격하기 시작했다.
조선조정은 또다시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한양에 서 잠시 주춤하던 왜군부대들이 다시 진격을 개시하 였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지금 임시로 평양에 행재소가 차려지고 속속 병사들을 모집하고 있기는 했으나, 병사들은 아직 오합지졸이었고 장비도 부족 하였다.
특히 5월 28일에 이르러 전라감사 이광이 여기저기 서 끌어모은 병력 5만 명으로 한양을 수복한다고 올라오다가 용인에서 와기사가 야스하루坂安治협판안치)가 지휘하는 불과 1천6백 명의 왜군에게 패배한 사건은 조정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역시 오합지졸로는 아무 것도 아니 되오. 무턱대고 저항해 보아야백성들의 목숨만 헛되이 버리는 것이 니, 일단은 다시 피신하는 것이옳을 줄로 아뢰오.”
조정의 중론은 대개가 다시 몽진하는 것에 일치를 보았다. 특히 이항복과 이덕형, 유성룡과 이원익 등 의 총명한 신하들은 왜군의 기세가 주춤해진 것이 보 급로가 길어진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따라서 한 번 더 멀리 피난을 간다면 왜군들의 진격 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하여 다시 어가가 피난을 가는 것이 기정 사실 화되었으나, 문제는 어디로 피난을 가는 것이 합당 하느냐에 귀착되었다. 대개 조정의 중신들은 함흥으 로 피난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항복은 그의 견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함흥은 비록 멀고 왜군의 발길이 닿기 어렵다고는 하나 명과 교통할 수 없소. 그러므로 일단 영변(寧 邊)쪽으로 어가를 뫼시고 하루라도 빨리 명에 사신을 보내어 명군의 참전을 유도하는 것이 타당하오.”
당시 이항복은 큰일 없이 어가를 잘 수행한 공로로 개성에 어가가당도하였을 때 이조참판과 오성부원군 에 봉해졌다. 그리고 평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역 시 그 공로를 인정받아 형조판서에 임명되어 있었 다. 그간의 여정은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 많았으나 이항복은 특유의기지와 명석한 판단으로 일을 잘 처 리하였고, 그 공로를 고집불통이던선조도 인정하였 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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