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46화
사실 흑호는 앞의 복잡한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얼떨떨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그러나 뭔가 결론이 잘못 내려지고 있다는 것만이 선명하게 인식이 되었다. 은동도 긴장한 듯 그 자그마한손으 로 흑호의 팔을 꽉 쥐고 있었다. 흑호는 그 팔을 쥐 는 은동의 힘이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어라? 이 녀석이 언제 기운이 이리 세졌나? 물론 별 것은 아니지만 센걸?’
바로 그 순간, 흑호는 은동의 얼굴을 보며 퍼뜩 떠 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홍두오공과 싸웠을 적에 은 동의 몸에 들어간 인혼주! 그 인혼주의 힘이 은동 의 몸에 들어갔기 때문에 은동의 힘이 세진 것이 틀 림없었다. 그 인혼주는 마수 홍두오공의 머리에서 떨어진 것으로 이십 명의 조선군의 영혼이 들어간 것이 아니던가?
뭔가 잡힐 듯 말 듯하면서도 흑호의 단순한 머리로 는 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가만……………. 이게 뭔가가 뭔가………….’
그 사이, 태을사자의 몸이 작아지며 둥근 구체 안에 갇혀지고 있었다. 괴로운 표정을 짓는 태을사자를 보며 운동은 눈물을 흘렸다. 호유화도 낯빛이 변했 지만 무명령은 흐흐 하고 웃었다.
“놈……,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해? 인간의 영혼이 없어졌다고? 염라대왕이 딱 맞다고 증언을 하는데. 흐흐흐흐…….”
그때 흑호의 머릿속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그때 홍두오공은 신립이 죽은 싸움터에서 영 혼을 채간 것이분명혀! 그런데 숫자가 딱 맞는다는 건 이상혀! 이십 명의 영혼은 은동의 몸에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숫자만큼은 비어야 하는 것 아니 여?’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흑호는 느닷없이 무섭게 포효 하며 막 봉인되려는 태을사자에게로 달려갔다. 그리 고 태을사자를 잡고 어마어마한힘으로 끄집어냈다.
“저…… 저놈이 무슨 짓을!!”
무명령이 소리를 지르며 한 줄기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흑호는 그 기운을 이를 드러내며 노려보더니 ‘탁’ 앞발로 쳐내버렸다. 그 품새 를 보자 무명령은 놀랐다.
무명령의 법력은 호유화만큼은 못해도 거의 이천 년 수위에 달했다.
그런데 얕잡아 보았던 흑호가 무명령의 공격을 한방 에 쳐내 버린 것이다. 흑호의 공력은 원래 팔백 년 수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판관의 법력을 얻음으로 써 천오백 년 수위를 넘을 정도로 강해졌던 것이다.
“저… 저 생계의 미물이………….”
“나쁜 놈은 너여!”
흑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머릿수가 틀려! 머릿수가! 네 놈이 마수들을 시켜 조작했지!”
“무…… 무슨 소리냐?”
그러자 흑호는 이를 드러내며 은동의 몸을 번쩍 들 어올렸다.
“이 아이 몸 속에는 신립이 패하던 날, 홍두오공이 뺏은 이십 명의영혼이 있어! 그런데 하나도 틀림이 없다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엉!”
그때 호유화의 눈이 빛났다. 호유화는 흑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호유화는 갑자기 희망에 차올랐 다. 그러나 호유화는 말을 하기보다 먼저 흑호에게 로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흑호는 놀라서 피하려 했 으나 호유화는 그럴 겨를도 주지 않고 흑호의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에그그, 망측해라!”
순진덩어리인 흑호는 너무 놀라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무명령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흑호였는데……….. 그러 나 호유화는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 했다.
“고양이! 너 알고 보니 머리가 좋구나! 앞으로 안 놀릴께!”
그러고는 호유화가 몸을 돌렸다. 여태 증거가 없어 서 죄를 고스란히 뒤집어쓸 판이었다. 그러나 이제 는 증거가 생긴 것이다. 호유화는당당하게 외쳤다.
“지금, 이 아이의 몸 속에는 신립의 군대가 전멸하 던 날 죽은 이십명의 조선군의 영혼이 들어 있소! 그건 마수 홍두오공의 인혼주에서나온 것이고, 그것 이 우연히 이 아이의 몸 속에 흡수된 것이오. 그런 데염라대왕, 명부의 숫자가 딱 맞다고요? 하나도 없 어진 영혼이 없다고요?”
그러자 염라대왕은 몹시 놀란 낯빛을 지었다.
“하…… 하나도 없어진 영혼은 없었는데……….”
“그럼 내가 보여 드리지!”
호유화는 기세 등등하게 은동에게로 몸을 돌렸다. 은동은 그 순간,몹시 놀란 듯했다. 자신이 천하장사 가 되어 힘이 강해진 것이 다른 스무 명의 영혼들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란 말인가?
그때 흑무유자의 구름이 조금 일렁하는 것이 보였 다. 태을사자는그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곧이 어 흑무유자 뒤편 공간이 일렁거렸다. 흑무유자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마침 막 구체에서 빠져나 오려고 허리를 굽혔던 태을사자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공간이 흔들린 것으로 보아 필경 중간계 밖으로 무엇인가 연락을 취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태을사자는 소리를 치려 했으나 막 구체에서 빠져나 오는 중이라서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태을사자는 잠 시 여유를 두고, 나가자마자 곧그 사실을 알리고 조 치를 취하면 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은동은 얼이 빠진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은동이 놀라서 말을 더듬자 호유화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은동아. 그래, 사실이다. 미안하구나. 너는 이제 천 하장사가 될 수없어. 이번에 영혼들이 나오면 네 힘 은 없어질 거야. 그래도 괜찮겠니?”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호유화는 은동의 몸에서 영혼들을 꺼내보여줄 수밖에 없었으나 속으로는 은 동이 기껏 얻은 천하장사의 힘을잃는다는 것이 아까 웠다. 그러자 은동이 화난 표정을 지었다.
“내………… 내 몸에 스무 명이 갇혀 있다구요? 맞나 요?”
“그래…….”
호유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동이 날카롭게 외쳤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았나요?”
가볍게 탄식하며 호유화가 대답했다.
“그래. 네가 정신이 들고 힘이 강해진 다음에 그걸 알았지. 그래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네가 천 하장사가 되어 나는 너무 기뻤거든. 그러나…”
은동이 입을 꼭 다물고 몸을 떠는 것을 보고 호유화 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속상하기도 하겠지. 여러 사람들한테 칭찬을 들었……..’
호유화는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없어. 힘이 없어졌다고 너 …….”
순간 은동은 화를 이기지 못하여 소리를 질렀다. 정 말 화가 단단히난 모양이었다.
“호유화는 나빠!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 어요! 내가 힘이세진다고………… 그런다고 스무 명이 나 되는 사람들을 가엾게도…. 가엾게도…”
은동은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해 말을 잇지 못했다.
“어? 은동아, 나・・・・・・ 나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왜 나를 속였어?”
“난・・・・・・ 나는 널 위해서…….”
“그게 어떻게 날 위하는 거란 말이야! 넌 나빠!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