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5화
“모두 준비된 듯하니까. 각자 짐을 실고 떠날 준비를 해야지.”
“그럼 계산은 제가 할게요.”
그러면서 이드가 카운터로 나아갔다. 이 녀석은 보석을 처분한 덕에 지금 현재 돈이 남아도는 중이었다.
“여기 계산이요. 그리고 9인분 도시락으로 2개요.”
그리고 각자 도시락을 받아든 사람들은 각자의 말에 올랐다. 그리고 말을 타고 천천히 마을을 빠져나왔다. 완전히 마을을 빠져나왔을 때부터는 약간의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일란은 말을 달리며 기사단의 단장인 라크린에게 이드에게 들었던 라스피로라는 공작에 대해 물었다.
“라스피로 전하 말씀이십니까? 그분이라면 잘은 알지 못합니다. 대충 아는 정도는 젊은 시절에는 상당히 방탕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몇 년 전까지도 그러셨고요.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지셨죠. 정치에도 참여하시고요. 물론 궁정 일을 맡았을 때 잘 처리하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러시다가 얼마 전에 갑자기 물러나셨습니다.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다른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분에 대한 것은 어째서…..”
“아! 아닙니다. 그냥 얼핏 들어서 물어본 것입니다.”
‘아직 이야기해서 좋을 건 없지.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달린 일행들은 점심때쯤에 식사를 위해 적당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정도를 더 가서야 작은 숲이 나왔다. 물은 없었으되 나무는 꽤 있어서 그늘은 되었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으~~ 더워라……”
“야! 그래이 눕지 말고 일어나. 식사 준비는 대충해야 할 거 아니냐…..”
이드의 말에 그래이는 어슬렁거리며 도시락을 들고 돌아와서는 털썩 앉아버렸다. 다른 사람들과 드워프 역시 더운지 그늘에 앉아 식사에는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드는 바람이라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정령……
‘잠깐! 정령 그것도 내가 계약한 게 바람이니까…… 부르면 되잖아….’
“에…… 그러니까…….실프…맞나?”
그러자 그의 앞으로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약간 푸른색의 투명한 몸을 가진 요정이 나타났다. 나타난 요정처럼 보이는 실프는 이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의 얼굴 앞에 떠 있었다. 마치 명령을 내려 달라는 듯했다.
“음… 그러니까. 이 일대에 바람이 좀 불었으면 하는데…… 더워서 말이야.”
이드의 말에 실프는 살짝 웃으며 사라졌다. 그러자 곧바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일리나가 한마디했다.
“잘하네요. 이드. 실프 하나로는 이렇게 넓게 바람을.. 그것도 차가운 바람을 불게 할 수 없는데.. 역시 정령왕과의 계약자라서 그런가요….”
그러나 일리나의 말을 들은 이드는 그런가 하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그가 아는 게 어느 정도이겠는가? 거기다 그래이드론의 기억은 어차피 드래곤이 기준이다. 그리고 드래곤도 대충 이 정도는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거의 하급 정령을 사용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정령도 사용할 줄 아십니까?”
기사들과 라한트가 의외라는 듯이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드는 그런 그들을 그게 뭐 이상하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럼 소드 마스터 중급에 정령마법까지….. 정령검사시군요.”
“뭐…. 대충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라한트가 이드에게 한마디했다. 둘은 나이가 비슷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지? 내가 듣기로는 정령검사가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고 하던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라한트의 말대로 보통의 정령기사들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둘 다 해야 하니 어쩌겠는가… 뭐 태어날 때부터 정령술에 특출한 재능이 있다면 검만 익혀서 강해질 수도 있다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뭐 그래도 보통의 기사들이 상대하기에는 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검뿐 아니라 정령 역시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드는 어떤 정령을 다룰 줄 아는데?….”
“저요? 별로 없어요. 바람의 정령밖에는 다루지 못하죠. 사실 처음 정령을 부른 것이 얼마 전이라….. 바람의 정령하고만 계약했죠….”
그러자 라한트가 약간 실망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다른 생각을 했는지 얼굴을 펴고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럼 여기서 다른 정령을 불러봐. 나도 정령계약하는 거 한번 보고 싶거든…”
그러자 옆에서 마지막 빵을 씹고 있던 그래이가 나섰다.
“그래 한번 해봐라. 저번에 그녀 말고 다른 녀석이 나올지 혹시 아냐?”
기사단은 그래이의 그녀라는 말에 얼굴에 의문부호를 그렸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자신들과 그렇게 크게 상관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 말이다.
‘흠음~~~ 한번 해봐? 정령이라는 거 의외로 편한데……….’
그렇게 생각하던 이드는 곧 생각을 바꿨다.
‘에라 말아라.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금방 채워지기는 하지만 기 소모도 만만찮은 거…. 귀찮아.’
“라한트님, 그게 저는 이 바람의 정령으로도 만족을 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정령이 있는 것….. 왜?”
이드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래이를 바라보며 한마디했다.
“난 필요한데. 더워서 그러는데 물로 샤워 좀 했으면 한다. 어때, 이만하면 쓸 데가 있는 거 아니냐? 어서 불러봐라..응?”
“저것 봐. 이드, 필요하다잖아. 한번 불러봐!”
‘으~~ 저 인간은 하여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야……. 이걸 불러? 말아?’
“야! 그래이, 정령 소환하는 거 엄청 힘들다고. 내가 못 움직이면 네가 책임질 거냐? 어쩔래?”
그러자 그래이가 잠시 당황하더니 얼굴을 굳히며 꼭 보고야 말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마라 내가 책임지고 데려갈 테니 어서 계약해봐..”
‘으~ 진짜 내가 미쳐 저걸 그냥…….’
이드는 어쩔 수 없이 주위의 압력에 의해 정령 소환에 들어갔다. 그러자 역시나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밀려왔다.
‘젠장~ 좋긴 하다만 내가 부르기만 하면 정령왕 급이냐……’
이런 이드의 투덜거림이었으나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우선 그의 친화력은 오행대천공 각 정령력을 가장 확실하게 끌어 모으는 것이니 친화력은 문제없는 거고, 거기다 마나는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한데다 여분으로 드래곤 하트까지 있다. 그러나 처음 소환할 때마다 정령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 자기 잘못인걸 누굴 탓하겠는가…………
그런데 막 정령을 소환하려 하던 이드에게 뭔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래서 정령 소환을 중단하고는 눈을 떴다. 그러자 주위에서 정령의 존재감에 멍해있던 기사들과 라한트, 그리고 또다시 굉장한 정령을 본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던 일행들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왜 그래? 이드.”
“모두 준비해요. 뭔가 다가옵니다.”
이드의 말에 모두 의아한 듯했지만 각자의 무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각자 한군데 모여 섰다.
“과연 무언가 다가오고 있어요.. 아무래도 하늘 같은데…”
일리나 역시 이드보다는 늦었지만 엘프답게 공기의 파공성을 들은 듯했다.
일리나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본 일행이 본 것은 와이번이었다. 그것도 성격이 포악하다는 블랙와이번. 녀석은 하늘을 날다가 일행을 발견하고는 좋은 먹이감이라 생각했는지 빠르게 일행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일란이 마법사답게 앞으로 나와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타겟 온. 토네이도.”
그러자 강한 바람이 불며 날아오던 와이번이 방향을 틀어 날아올랐다. 일란이 와이번 주위의 대기를 틀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녀석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날아들었다. 이번엔 아예 구워버리려는지 화염까지 뿜으면서 말이다.
“정령이여 우리를 보호하라.”
일리나가 빠르게 나서서 물의 정령으로 화염을 막아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이드가 나섰다. 이번에 바람의 정령을 사용해볼 생각이었다.
“바람의 상급정령 로이콘 소환…… 저 녀석의 날개를 찧어버려.”
이드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드래곤 모습 비슷한 그러나 드래곤보다는 훨씬 날씬한 정령 로이콘을 향해 명령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에 있는 공력을 개방했다.
슈아악. 후웅~~
바람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엄청나게 불어대는 소리가 들린 후 공중으로부터 무언가 떨어져 내려왔다.
쿠..구….궁.
그것은 날개가 갈기갈기 찧어진 와이번이었다. 와이번의 날개는 의외로 얇기도 하지만 이드가 공력을 개방한 상태여서 정령의 힘이 강했기 때문에 금방 찢어져버린 것이었다.
일행과 좀 떨어진 곳에 떨어져 구른 와이번은 잠시 그대로 있더니 곧 정신을 차린 듯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녀석이 일어나자 덩치가 굉장했다. 거의 소 서너 마리의 크기였다. 녀석은 날개가 찢어져 고통스러운 반면 일행이 눈앞에 나타나자 잘 됐다는 듯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고 뒤뚱거리는 폼이 오히려 우스웠다.
쿵…쿵….쿵…..쿵……
그러나 녀석이 다가오는 걸 가만히 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이가 녀석을 보다가 옆에 일란을 바라보았다.
“이봐요. 일란 빨리 처리하셔야죠.”
“알았어. 안 그래도 그럴 참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녀석을 향해 돌아서서는 오늘 메모라이즈 해놓은 마법 중 적당한 것을 날렸다. 저번에 이드가 한번 메모라이즈라는 것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는데, 메모라이즈라는 것은 그 날 쓸 만한 마법을 미리 외워두어서 준비 상태로 만드는 것이란다. 한마디로 메모라이즈 해놓은 마법은 다른 것 필요 없이 시동어만 외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메모라이즈하지 않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용하기 위해서는 긴 주문과 그에 따르는 정신력이 필요하므로 꽤 피곤한 작업이다. 대마도사 급은 그런 걱정이 없을지 몰라도 일란 정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피곤한 작업이라서 메모라이즈하지 않은 주문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마다 되는 한껏 주문을 메모라이즈한다나? 그러나 아침잠 많은 일란으로서는 별로 할 말 없다.
“메그넘 파이어 스피어.”
그러자 거의 나무통만 한 굵기의 화염의 창이 회전하며 와이번을 향해 날았다. 그것을 본 와이번이 피하려 했지만, 녀석은 지상에서는 그렇게 빠르지 못하므로 그대로 맞을 수밖에는 없었다. 화염의 창을 맞은 녀석은 뒤로 밀려나더니 곧 창과 함께 폭발해버렸다.
폭발로 인해 녀석의 파편이 여기저기 튀었다. 물론 일행에게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라한트나 하엘은 속이 상당히 불편해졌다.
“욱… 일란. 좀 조용한 마법은 없었어요?”
하엘이 속이 안 좋은 듯 뒤 돌아서서 입을 막고 일란에게 한마디했다. 라한트 역시 같은 눈빛으로 일란을 바라보았다.
“글쎄…. 오늘 메모라이즈한 마법 중에는 가장 알맞은 것이라서……”
어색하게 변명하는 일란……. 불쌍해라 기껏 해치우고도 원망이나 듣고………
와이번으로 인해서 정령을 불러내는 일은 지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일행은 별일 없이 몇 일을 보냈다. 그리고 국경까지의 거리가 하루 남았을 때였다. 그래이가 잡아온 사슴고기를 먹으며 일란이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곧 국경입니다. 적들이 공격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일지도 모릅니다.”
일란의 말에 라크린과 기사들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의견을 냈다.
“제 생각 역시 같습니다. 라한트님께서 제국으로 입국하신다면 공격이 더 어려워지므로 아마 국경선에 접근하기 전에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러니 국경선을 넘기 전까지는 지금보다 더욱더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담 내일은 국경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요. 하엘 양, 만약 국경을 넘었을 때 공격이라도 해들어온다면 지쳐있는 저희들로서는 막는 것이 상당히 힘들게 됩니다.”
그때 이드가 조용히 하라는 손짓과 함께 일어섰다.
“내일부터 더 조심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소리 내지 말고 여기 있어요.”
그렇게 말한 이드는 주위의 돌과 나무 조각들을 여기저기에 던져놓고 불을 꺼버렸다. 그러자 하늘의 달빛만이 주위를 비추었다. 일행들은 이드가 왜 주위에 돌과 나무 등을 던졌는지 궁금했으나 우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드가 저러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일행은 신기해했다. 항상 엘프인 일리나가 아닌 이드가 먼저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 중일 때, 이드가 숲의 한쪽으로 걸어갔다. 어둠 속으로 들어간 이드의 모습은 일리나를 제외한 일행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사삭… 사사삭…..
“지금부터 절대 말하지 말아요. 움직이지도 말고…. 절대로 알았죠?”
이드의 말에 일행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일행과 7~9미터 떨어진 곳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다가왔다. 그중에는 저번에 도망쳤던 마법사 역시 끼어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저번과 같이 갑옷을 걸친 검사들이 이십여 명 가까이 있었다.
그들은 일행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고는 이드가 갔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중 붉은 검집을 가진 검사가 혼자 중얼거리듯 자신의 일행에게 말했다.
“실력이 있는 녀석들인걸?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보아하니 급히 저쪽으로 간 것 같은데…….”
“이봐… 란돌. 자네 생각은 어때?”
그러자 란돌이라 불린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 이야기했잖아. 굉장한 녀석이 있다고…. 그년에게 피로가 당했다고. 잘못했으면 나까지 당할 뻔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이상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자네 말대로라면 그 여자가 소드마스터의 중급 실력이라는데…. 그런 실력의 그것도 여자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니 의외야.”
그러면서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헤쳐진 풀숲으로 걸어갔다. 다른 검사들 역시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란돌이라는 마법사는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붉은 검집의 사내가 물어왔다.
“이봐! 왜 그래?”
“음~ 그게 이 주변에 자연력, 마나가 좀 이상하게 유동하고 있어서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확실히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법도 아니고……”
“이것 봐. 그런 걸 가지고… 주위에 무슨 정령이나 요정이라도 있겠지. 어서 가자고. 이러다 진짜 놓칠지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걸었다. 란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그 검사와 걸음을 같이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드가 간 곳으로 들어가서 눈에서 보이지 않고서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이드와 일행은 짐을 정리했다.
짐을 다 정리한 이드는 자신이 놓아둔 돌과 나무조각 등을 다른 곳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말을 끌고 나가면서 일란, 일리나, 하엘 등 이 궁금해하던 점을 질문했다.
“이드, 어떻게 그들이 우릴 못 본 거지?”
“이드, 아까 전에 돌과 나무조각은 뭐죠?”
“이드, 어떻게 된 거야?”
“시끄러워요. 그 소리 듣고 따라오면 어떡하실 거예요?”
그런 이드의 말에 일행은 떠들어 대던 것을 멈추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드는 자신이 했던 일을 설명했다. 물론 간단히 말이다. 진법에 대한 걸 설명하려면 하루 이틀 가지고는 안 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그 나무 조각과 돌맹이 등으로 마법진과 비슷한 효과를 낸 겁니다. 마법진은 대량의 마나를 흡수하여 그 효력을 발생하나, 제가 한 것은 자연력의 마나 자체를 그 상태 그대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법사 역시 어떤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확실히 알지는 못한 거죠.”
“그런데 어떻게 돌과 나무만으로 그렇게 하는 거지? 마법진은 마법진의 룬어와 표식의 배열 등으로 마나를 이용하지만 자네가 한 것은 전혀 다르잖은가. 전혀 그런 것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건…. 그때그때 진을 펼쳐야 하는 곳의 자연력의 분포를 알아야 합니다. 그 자연력의 분포와 각 자연력의 배열을 재배열함으로써 가능 한 거죠.”
그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은 사람은 일란, 일리나, 하엘 정도의 머리 좀 쓴다는 인물들뿐이었다. 그 외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는 표정뿐이었다.
일행은 그 길로 숲을 돌아 빠져나와서는 국경으로 달렸다. 이곳에 적이 있는 것을 안 이상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늦은 밤부터 달리기 시작해 동이 트는 것을 보면서도 달려 나갔다. 그렇게 달리고 있는 일행의 뒤로 무언가가 뒤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태양이 어느 정도 떠올랐을 때였다.
뒤따라오는 검은 무리를 바라보며 일행은 최고 속도로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감에 일란의 뒤에 타고 있던 라인델프가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그때 뒤따라오던 적들을 바라보며 그래이가 중얼거렸다.
“젠장….. 잘도 따라오네….그런데 마법사가 마법이라도 사용하면..어쩌냐?”
아! 누가 그랬던가. 말이 씨가 된다고……..
그래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쪽으로부터 화이어볼이 여러 개 날아오기 시작했다.
‘으~ 중원에서는 날아와 봤자 화살인데….. 여기는 어떻게 된게 불덩이냐…..’
“실프소환….. 저기 날아오는 불덩어리들 막아줘.”
이드는 정신 없이 말을 몰면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작은 요정모양의 실프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라지고 곧바로 바람이 강하게 압축되는 느낌 있은 후 뒤따라오던 화이어볼이 폭발해버렸다.
“일란 대충 막긴 했는데. 방법 없어요? 또 마법을 사용할 것 같은데…..”
이드가 일란이 곁으로 말을 몰아가서 일란에게 물었다.
일란은 말의 고삐를 꽉 잡고서는 겨우 입을 열었다.
“몰라~!! 이런 상황에서는 그러게 큰 마법은 사용 못해…. 그냥 이렇게 방어 하는게 나아.”
그렇지만 이드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다. 일란은 말을 모는데 집중해서 잘 모르지만 뒤쪽에서 검뎅이녀석들이 점점 뒤 따라잡고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일행에게 있었다. 일행의 몇 몇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추가로 저쪽은 마술이 이쪽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국경에 도착하기 전에 잡힌다. 그렇다고 내가 처리하러 가자니…이쪽이 신경 쓰여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드에게 주위에 스치는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일리나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왜 내가 그걸 생각 못 했지? 하기사 내게 익숙한 일이 아니니….’
“로이콘10소환.”
그렇게 외친 이드의 주위로 바람이 크게 출렁임과 동시에 날씬한 드래곤 모습을 한 바람의 상급정령 로이콘이 나타났다. 말을 타고 가며 그런 모습을 바라본 몇몇은 감탄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로이콘. 저기 뒤따라오는 녀석들이 방해해서 최대한 속도를 늦춰죠.”
[알았습니다. 이드님]
바람이 울리는 듯한 대답과 함께 로이콘들이 이드의 앞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이드가 뒤를 돌아보자 검뎅이들주위에 모래바람과 회오리 등이 일었다. 그 사이라 붉은 섬광이 번쩍이기도 했지만 별로 약해지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일행 등은 더욱더 속도를 높여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쪽으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한참이 흐른 후 거친 숨을 내뿜는 말들을 앞 세워 국경초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일리나스와 아나크렌의 국경초소가 200여미터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었다. 일행은 국경에 딸려있는 작은 마을에는 서지도 않고 곳 바로 일리나스의 국경초소로 다가갔다. 거기에 있던 경비 군사들은 일행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힘든 듯 거친 숨을 내뿜는 말들 과 몸에 먼지를 좀 덮어쓴 일행 거기다. 갑옷을 걸친 기사들까지… 거기다 기사들은 아나크렌제국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문장을 본 군사들 중 한 명은 곧바로 초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두 명의 기사와 같이 나왔다. 일행 역시 멈추어 서서 그 기사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때는 이드 등이 나서지 않고 기사들과 라크린이 나섰다. 라크린은 말에서 내려서는 두 기사에게 다가가서는 자신의 품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었다.
“본인은 아나크렌 제국의 대지의 기사단장인 라크린 유 로크라트 라합니다. 여기 국경 통과 증명서입니다.”
“예. 저는 일리나스의 기사 로크 인 드라스트입니다.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 증서는 확인되었습니다. 통과하셔도 됩니다.”
로크라는 기사는 라크린이 아나크렌 제국 사람이지만 자신보다 계급이 높아 존대를 사용하였다.
일리나스의 초소를 가볍게 건넌 일행은 아나크렌 제국의 초소에서는 머물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라크린의 갑옷에 새겨진 문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일리나스 제국쪽의 통과장면을 대충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라한트 등에게 경례까지 붙이고 있었다. 일행은 초소가까이 붙어있는 작은 마을의 여관에서 늦어 버린 아침과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휴~ 여기 까지 왔으니 좀 괜찮겠죠?”
“아니야. 그래이, 녀석들도 따라 올거야….. 이드가 늦춰놓기는 했지만….. 않그렇습니까? 라크린”
그렇게 일란이 묻자 물을 마시던 라크린이 컵을 입에서 때어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도 별 문제 없이 따라올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쉬지 않고 후작님께서 계신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여기서 영지까지의 거리는 대략 3일 가까이 걸릴 것 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리고 가까운 영지에 들려 말도 좀 얻어가야겠습니다. 밖에 있는 녀석들이 상당히 지친 듯 하더군요.”
“그건 별문제 없지요. 이드군…. 그리고 아까 전에 이드군 덕분에 따돌렸습니다.”
“별 말씀을요. 제가 하지 않았다면 일리나라도 했을걸요.”
그렇게 말하자 일리나가 살짝 웃어보였다.
“하지만 이드처럼 상급의 정령을 그렇게 많이 불러낼 순 없어요. 제가 부를 수 있는 것은 둘 정도이지요.”
그렇게 늦은 식사를 마치고 주인에게 도시락을 부탁한 후 그것이 다 될 때까지 쉬다가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먹은 것이 있는 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내려고 하니 일란, 라인텔프, 라한트, 하엘이 먹은 것이 올라오는 등의 하소연을 해왔으므로……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속도를 높일 수 있었던 일행이었다. 말을 타고 있으니 음식소화가 얼마나 잘되겠는가……………….. 배고프겠다.
일행은 마땅히 묵을 마을을 잡지 못했다. 더군다나 숲 역시 없어서 평지 한가운데서 노숙할 수밖에는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이드는 우선 자신들의 주위로 진을 형성해서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이번에는 평지 한가운데이다 보니 저번과 달리 이것저것 옮기고 놓는 것이 꽤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