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64화
그냥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의 보금자리와 같은 이 동굴이 바로 경운석부의 입구인 것이다.
동굴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잔잔한 긴장감이 흘렀다.
보통 때라면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칠 그런 동굴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동굴 안이 문제의 경운석부이고, 또 그 많은 기관을 감추고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절로 긴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드의 품에서 내려서는 라미아나, 산 아래에서 이곳까지 라미아를 안고 온 이드 역시 같은 느낌이었다. 단지 그 긴장감이란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아주 작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들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은근히 긴장한 사람들을 바라보던 문옥련은 스르르 미끄러지는 듯한 부드러운 걸음으로 동굴 입구 쪽으로 나서며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이 바로 경운석부입니다. 이제 이곳에 들어설 텐데…. 그전에 한 가지 정할 것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아졌다.
“뭡니까. 헌데, 이곳이 석부의 입구입니까? 그렇다면 생각보다 상당히 작은데요….”
“네, 그것에 관한 문제예요. 여러분들의 생각대로 이곳이 경운석부이긴 하지만, ‘진짜’ 경운석부의 입구는 이 동굴 안쪽에 있어요. 하지만 그곳이 이 동굴보다 넓다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갈 정도로 넓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들어설 순서와 진형을 짜서 들어갔으면 해요.”
“당연한 말입니다. 그럼…. 어느 분이 앞장서실지…”
그녀의 말에 여기저기서 당연하다는 의견이 들려왔다. 그들 역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 위험한 곳에 아무런 준비 없이 우르르 몰려갈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두되는 문제가 바로 가장 선두에서 일행들을 인도해 나갈 사람이었다. 위험한 기관들이 버티고 서 있는 곳에 아무나 앞세우고 들어설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위험을 피해 갈 수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위험에 뛰어들 수도 있는 일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문옥련은 총책이란 이름답게 이미 그런 생각을 다 해두었던 모양이었다. 그 문제가 나오자마자 자신과 함께 산을 오른 다섯 명의 가디언 중 한 명을 지적해 보이며 자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던 것이다.
“다른 분들의 이견이 없으시다면… 여기 있는 제갈수현을 앞에 세워 기관에 대비했으면 합니다. 아직 약관의 나이지만 다들 만권수재(萬券秀才)라는 별호를 지어 줄 정도라….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기관진법에 있어선 가장 뛰어날 거라 자신해요. 더구나 앞으로 나타날 기관진법을 가장 잘 풀어나갈 거고요.”
그녀의 말에 주위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가 가리키는 제갈수현에게로 향했다. 과연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직 약관으로 보이는 준수한 청년이 한 명 서 있었다. 특이하게 옛 중원의 복식인 하얀색의 유삼을 걸친 그는 호리호리한 것이 무공을 모르는 전형적인 서생의 모습으로 확실히 뛰어난 인물로 보였다.
하지만 막상 문옥련의 말에 찬성을 표하자니…. 만권수재 제갈수현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어지는 이드의 말에 사람들은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제갈…. 수현. 제갈씨라면…. 이모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저 제갈성을 쓰는 형이요. 강호 사대세가(四大世家) 중 하나인 제갈세가의 사람…. 아니예요?”
긴가민가 하는 이드의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드의 말에 대답한 것은 질문을 받은 문옥련이 아니라 당사자인 제갈수현이었다. 그는 강호 사대세가라 칭한 이드의 말이 듣기 좋았던지 입가에 호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드의 말에 답했다.
“하하하…. 이드라고 했었지? 자네 말이 맞네. 이미 오래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본가가 강호 사대세가로 불리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여기서 본가를 기억해 주는 사람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걸….”
“역시 기관진식하면 제갈세가를 빼놓을 수 없지요. 하지만 옛날 이야기라니요. 제가 보기엔 아직까지 그 명성이 그대로인 듯한데요.”
이드의 말에 제갈수현은 조금 멋쩍어 하면서도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중국인도 아닌 한국의 소년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오래 전에 잊혀진 가문의 위세를 인정해준 것이 기분이 좋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실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 멋적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드에 대한 호감은 더욱 커졌다.
이런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동의를 표하자 제갈수현에 대한 설명을 붙이려던 문옥련은 이드를 향해 방긋 웃어 보이고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따라 들어가는 순서와 진형은 간단히 정해졌다. 먼저 제일 앞서 갈 사람으로 여기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눈썰미가 빠르고 행동이 빠른 세 사람이 뽑혔고, 그 뒤를 기관을 알아볼 제갈수현과 이드, 라미아 그리고 문옥련이 뒤따른다.
이어 그 뒤를 한국의 염명대가, 그 뒤를 영국의 가디언 팀인 트레니얼이, 또 그 뒤를 일본의 가디언 팀인 무라사메(村雨)가 따랐다.
들어갈 순서가 정해지자 사람들은 각자 준비하고 있는 식량 등의 준비물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옥련의 출발 신호에 긴장감 가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런 걸음으로 부서진 입구를 지나 석부 안으로 들어선 일행들이 주위를 빙 둘러보고 느낀 점은 하나였다.
잘 지었다는 것.
사람 네다섯은 충분히 지날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통로와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네모 반듯하게 깎여진 돌로 막혀진 사방 벽.
거기다 어디서부터 부는 건지 선선한 바람이 불어 전혀 습기가 차지 않은 바닥까지.
정말 잘 만들었다는 말 이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일행들이 이 석부의 건축방법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잠시일 뿐이었다.
이미 앞서 들어왔던 중국의 가디언들이 설치해 놓은 백열등을 따라 일행들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일행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잠시 그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 앞으로 바로 두 번째 함정이 그 실체를 드러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 디딜 틈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이 매끈하게 뚫려 있는 오 미터 정도의 바닥.
하지만 이미 파해되었기에 그 함정 위로는 튼튼해 보이면서도 널찍한 나무다리가 놓여 있어 일행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 위를 지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를 네 번.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아무런 막힘 없이 지금까지 파해된 여섯 개의 함정을 모두 지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일행들 앞으로 시커먼 속을 내보이고 있는 석부의 모습.
전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그 모습에 천화를 비롯해 일행들 중 정령을 부리는 정령사들은 빛의 정령인 윌 오브 웨스프를 소환해 일행들의 시야를 확보해야 했다.
“모두 조심해서 주위를 살펴 주세요.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니까요.”
윌 오브 웨스프의 빛을 받아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 통로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문옥련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는 말에 일행들은 크게 대답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문옥련도 뒤돌아보거나 하지 않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제갈수현을 보며 부탁한다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그런 일행들 사이사이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주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럼, 제갈 소협 잘 부탁해요. 전진 속도가 느려도 좋으니…. 세세히 살펴야 합니다.”
다시 이어지는 문옥련의 당부에 제갈수현은 당연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자신에게 말하듯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선자님. 당연히 그래야지요. 아! 그전에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금부터는 그 무엇이든 간에 함부로 만지지 마십시오.
특별한 것이 아니라도 만져서는 안 됩니다.
특히 벽에 손을 대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앞에 빛의 정령을 소환해 주신 분들은 빛의 정령을 양 벽과 천장에 가까이 붙여서 움직여 주십시오.
좋습니다.”
제갈수현은 출발하기 전 일행들이 주의할 몇 가지를 부탁하고는 작게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품속에서 팔 길이 반 정도의 지휘봉을 꺼내 손에 들었다.
그 모습에 옆에서 같이 걸음을 옮기던 이드가 눈이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제갈수현의 손에 들려있는 짙은 묵색의 지휘봉.
그것은 이드에게도 상당히 눈에 익은 것이었다.
“제갈세가의 천장건(千丈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