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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85화


하지만 때맞춰 들려오는 출발신호에 그녀는 더 이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상단의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의 신호에 상인들과 용병들이 화물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화물 바로 옆에 붙어 있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용병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들을 가진 사람들로 어느 정도의 거리는 구애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거스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상단을 보며 곧 자신의 팀원들에게도 출발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이드와 라미아, 제이나노를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미 이드로부터 두 번이나 동행 요청을 거부당한 덕분에 이번엔 그럴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드는 하거스의 뒤쪽에 서 있는 오엘을 바라보았다.

다른 세계의 그것도 이국 땅에서 만난 친인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

이드는 그런 오엘과 쉽게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녀가 옥빙누이의 무공을 얼마만큼 제대로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지 정도는 확인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엘프를 만나는데 방해될까 피했던 ‘차’라는 물건을 대신해 말이 화물칸을 끌고 있지 않은가.

뭐… 이 일로 미랜드 숲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긴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드는 양옆에 서 있는 라미아와 제이나노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상단을 향해 막 출발하려는 하거스를 붙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동행 요청에 하거스는 쉽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가 보기에 이드 등의 세 사람은 전혀 짐이 될 것 같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들고 상단의 책임자에게 다가간 하거스는 쉽게 허락을 받아왔다.

상당한 실력의 하거스가 추천한다는 사실과 상단에 없는 사제와 수가 적은 마법사가 있다는 말이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생각지도 않았던 용병 수당까지 조금 받아내는 수단을 보여준 하거스였다.

용병팀 디처가 상단을 호위하는 위치는 상단의 제일 앞이었다.

거기다 그들의 실력 덕분에 상단과 제법 거리를 둘 수 있어 마치 그들만 따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위치였다.

상단에 합류한 세 사람도 그런 디처팀 사이에 끼게 되었다.

상단이 출발한 시간이 늦은 아침나절이었기 때문에 상단은 출발하면서부터 따끈따끈하게 달아오른 태양을 마주해야 했다.

처음엔 몸이 훈훈해졌고, 이어 좀 덥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를 걷게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마 위로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고, 덥다는 표정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봉인이 풀리고 난 후 영국의 여름 날씨는 유난히 더워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더운 표정의 사람들과는 달리 전혀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한 모습의 사람들도 있었다.

상단에서 떨어져 걷는 몇몇의 용병들과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무기를 가볍게 들고 있는 하거스와 청령신한공이라는 상승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오엘.

그리고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짜증스러운 사람들의 시선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딱’ 붙어 있는 이드와 라미아.

“후우~ 덥구만, 근데 거기 라미아라고 했던가? 듣기론 마법사라고 한 것 같은데… 어째 보통의 용병들보다 더 체력이 좋아 보이는 구만. 이렇게 더운 날씨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둘이 붙어 있으면 덥지 않나? 땀은 나지 않아도 상당히 더울 텐데….”

하거스가 주위의 시선을 느끼며 궁금한 듯 물었다.

밀착이랄 정도로 딱 붙은 두 사람은 자신이 보기에도 더워 보였던 것이다.

주위의 시선도 그랬다.

물론 그 시선 속엔 다른 감정을 담은 시선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그런 시선의 주인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시선 중심에 서 있는 두 사람은 그런 시선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두 사람 중 라미아가 기분 좋은 듯 방그레 웃으며 하거스의 물음에 고개를 살랑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너무 편안해서 그 둘을 덥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만들 정도였다.

“아니요. 전혀요. 오히려 덥지도 않고 기분 좋은 걸요.”

“그, 그래? 보통은 그렇게 붙어 있으며 덥다고 느끼는데…. 자네들은 특이하군.”

하거스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라미아의 말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었다.

이드와 라미아, 두 사람 주위로 극히 좁은 공간의 기온은 뜨거운 태양에도 상관없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사람이 느끼기에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의 출발점은 이드의 손가락에 자리하고 있는 세레니아의 마법 반지 덕분이었다.

원래 일인용으로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 제작자가 워낙 뛰어나고 두 사람이 유난히 붙어 있는 덕분에 마법 반지는 두 사람에 대해 완벽하게 자신의 기능을 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하거스 외 상단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이드는 손에 끼어 있는 반지의 성능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곧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어 올렸던 손을 슬며시 내려 버렸다.

아무래도 이런 햇빛 아래 그런 마법의 특혜를 자신들만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미안했던 것이다.

덕분에 때 마침 들려온 오엘의 목소리에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청령신한공을 알아본 걸 보면 너도 뭔가 무공을 익힌 모양이지?”

오늘은 아침부터 말을 많이 하게 된 얼음공주 오엘이었다.

그녀의 말에 이드보다 라미아가 먼저 답했다.

그녀의 표정은 뾰로통한 것이 오엘의 말 중에 이드를 “너”라고 부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오엘씨, 너라니요. 아무리 오엘씨가 이드님보다 나이가 위라지만 그래도 너라니…. 이드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단호히 따지는 라미아의 말에 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가 실수한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라미아의 말로 인해 썰렁해지는 분위기에 오엘이 했던 질문의 답을 급히 늘어놓았다.

“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저와 여기 라미아 정도는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됩니다.”

“… 그럼 자네는 어디의 무공인가? 용병 일을 하면서 아시아의 무공을 익힌 사람을 꽤 많이 봤는데, 모두 그 무공의 소속이 있더란 말이야.”

이드는 하거스의 말에 슬쩍 오엘의 눈치를 살폈다.

옥빙누이의 청령신한공의 비급을 이었다면 거기에 자신에 대한 설명과 간단히 익히고 있는 무공에 대해 언급해 놨을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익힌 무공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이드는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하거스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헤헷… 뭐, 소속이랄 것도 없어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익힌 덕분에…. 불가나 도가, 속가의 것 등등 해서 여러 가지가 되죠.”

“그래? 대단하군. 아직 어린 나이에 그렇게 여러 가지를 익혔다니 말이야.”

그 말을 시작으로 그들과 이드들 사이에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간 덕분에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었던 그들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점심을 처리했다.

그들이 선두에 가고 있는 덕분에 중간중간 쉴 자리와 식사할 자리를 찾아 정하는 역할도 같이 맡고 있었다.

“자, 잠깐 여기서 뒤쪽 일행이 오길 기다린다. 여기서부터는 위험하니까 주위를 잘 경계해.”

선두에서 걸어가던 하거스가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서서는 나머지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그 모습에 세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하거스의 말에 따라 주위를 경계하는 다른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이드의 요청으로 상단과 동행한 지 오늘로 이틀째 정오가 훌쩍 지난 시간인 지금 일행들은 평야가 끝나는 부분에 다아 있었다.

그들의 앞으로는 울창한 산세가 저 보이지 않는 곳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런 산의 맞은 편으로 나지막하지만 꽤나 높은 석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그러니까 산의 끝자락을 따라 지금 이들이 서 있는 길과 이어지는 길이 뻗어 있었다.

이드는 앞에 서서 그 길을 바라보는 하거스의 등을 두드리며 지금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도대체 갑자기 무슨 위험에 경계란 말인가.

“아아… 자네들은 초행길이라 이곳에 대해 모르지? 잘 보게, 이곳이 바로 평야에서 벗어나 제일 처음 맞닥드리는 위험지역이야.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꼭 한번은 몬스터와 마주치게 되지. 절대몬스터출몰지역이라고나 할까? 길 바로 옆이 울창한 산이라 길 바로 옆이 몬스터 거주지역이나 다름없어. 덕분에 용병들 사이에선 제일 전투지역이라고도 불리지. 이 곳에서 몬스터를 한번 이상은 보고 지나가게 될 거야.”

그의 말에 이드와 라미아는 자신들이 가진 장비를 정비했고, 제이나노는 신관복을 단단히 묶고 언제든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하거스의 말 대로라면 어떤 상황으로든 몬스터와 마주치게 될 상황이라는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길이 나 있는 지형이 몬스터가 덥치기에 아주 적합해 보였다.

뒤이어 상단이 도착했다. 그들도 이미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듯 용병들이 화물칸 주위를 둘러싸고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상단이 바로 뒤로 다가오자 하거스는 팀원들을 전면에 배치해 주위를 경계하게 했다. 상단의 책임자가 따로 있긴 했지만 이런 위험이 있는 상황에선 그에 대처하는 데 능숙한 하거스가 그 일을 대신 하는 듯했다.

“좋아. 모두 주위를 경계하고 긴장을 늦추지 마라. 여기선 그 못생긴 놈들이 어디서 뛰어나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리고 세 사람도 이번엔 뒤쪽 상단에 같이 합류하도록 해. 너희들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자, 그럼 출발!”

하거스는 이드들에게 안전을 생각한 당부를 건네고는 큰 소리로 출발 신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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