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09화


다시 파리의 가디언 중앙본부로 돌아온 사람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파티를 열었다.

속시원한 승리는 아니지만 희생된 사람 없이 파리가 지켜진 것만 해도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덕분에 죽어나는 것은 중앙본부의 주방장과 그 보조들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백 수십의 인원과 그들을 위한 파티 준비라니.

원래 제대로 된 파티 준비를 위해서는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헌데 그런 파티를 열겠다니… 하지만 뭐라 반발할 수도 없었다. 파리를 지킨 그들의 말이니 하라면 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중앙본부에는 항상 준비된 재료가 많다는 사실과 예의를 차린 파티가 아니니 맘껏 먹고 마실 수만 있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방에서는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한 사이, 가디언들과 용병들은 직접적인 전투는 없었지만 긴장으로 인해 흘린 식은땀을 씻어내고는 각자 파티 때까지 편히 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데 모여 앉아 자신들이 관전했던 대표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의논하는 두 무리가 있었다. 바로 놀랑을 중심으로 각국의 가디언들과 이드와 라미아가 그들이었다.

놀랑과 가디언들은 존이 했던 이야기를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자신들도 제로의 단원들과 다를 바 없는 능력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가에서 그런 그들을 실험실의 쥐처럼 연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 말 부리듯 했다고 말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며, 자신들이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신들 역시도 봉인의 날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능력을 떳떳이 드러내놓고 다니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국가도 아니고, 높으신 분들이 제 배불리기를 위해 유린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지금도 어느 비밀 연구 시설에서 자신들과 같은 능력자들을 연구하고 인질을 잡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봉인의 날 이후로 몬스터에게서 국가를 보호하고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는 능력자들을 말이다.

도저히 그냥 넘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하는 지금의 행동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국가와 국민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온갖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높으신 양반들에 대한 복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가디언들은 굳이 제로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일까. 나라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인가?

놀랑은 가디언들의 연락망을 통해 세계 각국의 가디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회의를 요청했다.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열 수 있는 전체 회의를.

이드와 라미아는 자신들에게 배정된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따로 이야기할 만한 장소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엘과 제이나노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내보내 놓았다.

라미아는 거기에다 자신들의 주위로 사일런스 마법까지 걸어두었다. 누가 듣는다고 해서 큰일 나는 일은 아니지만, 들어서 좋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레센도 아닌 이곳에서 여섯 혼돈의 파편에 관계된 일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이드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사라졌다고 했던 브리트니스가 여기 있는 거지?”

이드는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라미아에게 묻는 말인지 모를 말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분명 차원의 벽은 신도 함부로 손대지 못한다고 했었는데…. 그 검에도 이 빌어먹을 팔찌와 같은 기능이 있을 리는 없고… 그때 폭발로 날아왔나?”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스스로 답이 없어 해본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도 넘지 못하는 벽이다. 그따위 폭발로 넘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만약에 그럴 수 있었다면, 고위급의 마법사나 드래곤은 자기 마음대로 차원을 넘어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이드 역시 예전에 중원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 아니요. 어쩌면… 가능할지도.”

“응?”

이드는 자신과는 다른 라미아의 생각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뭔가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듯하던 라미아는 결론이 내려졌는지 이드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이드님도 아시죠? 혼돈의 파편이라는 존재. 그들은 빛도 어둠도 아니죠.”

이드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들에 대한 전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희가 알기론 차원의 벽을 넘나드시는 분은 단 세 분. 창조주와 빛과 어둠의 근원 되시는 분들이시죠. 그럼 여기서 생각해보자고요. 혼돈의 파편들은 창조주께서 빛과 어둠을 창조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탄생한 존재들이죠. 어쩌면…. 빛과 어둠의 근원 된 모습일지도 모른다구요. 그런 이들이라면 어쩌면 차원의 벽을 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죠.”

확실히 가능성은 있는 말이다.

혼돈의 파편은 확실히 대단한 존재들이다.

이드들과 전투를 치르던 때에도 그들의 힘은 완벽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었다. 그런 엄청난 힘을 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라미아. 그건 어디까지나 여섯 혼돈의 파편 본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잖아. 지금 우리가 신경 쓰고 있는 건 그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던 네 자루의 검 중 하나야.”

라미아는 이미 생각해 본 내용인지 이드의 말을 바로 받았다.

“그건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가능성은 있어요. 제가 알기론 페르세르가 가지고 있던 네 자루의 검은 그레센 대륙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검이에요. 그 검 한 자루 한 자루가 이름을 날릴 만한 대단한 검들인데도 말이죠. 그렇다면 페르세르는 그 검이 어디서 났을까요? 봉인에서 깨어난 직후에 길가다 줍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럼 뭐야…. 라미아, 네 말은 그 네 자루의 검이 원래 그 녀석이 가지고 있었던 검이다…. 이거야?”

“글쎄요~ 어떨까나…. 헤헤헷….”

라미아는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실내의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너는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 뭐…. 사실이야 검을 직접 보면 알 테고 우선은… 룬이 가지고 있다는 브리트니스가….”

“…. 페르세르가 잊어버린 브리트니스인지 확인을 해봐야겠죠.”

이드는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받아내는 라미아의 말에 호흡이 척척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레센도 아닌 이런 곳에 그런 위험한 물건을 남겨 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이드는 브리트니스가 페르세르의 검이 맞다면 거두어들일 생각이었다. 아직 그레센보다 마법력이나 무력 면에서 현저히 약한 이곳에 그런 대단한 물건이 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드는 그것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때 이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라미아가 스스로를 가리켜 보였다.

“저도…. 브리트니스 이상의 힘은 내고도 남는 초특급 위험물인데요.”

방실방실. 웃으며 이야기하는 폼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드는 그에 응수하여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호기있게 외쳤다.

“넌 내가 있잖아. 자, 나가자. 파티 준비한다고 했잖아.”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었다. 이드는 사일런스 마법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이 목표가 정해진 만큼 앞으로는 지금처럼 느긋하지만은 못할 것 같았다. 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서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발목을 잡아매는 라미아의 말만 없었다면 말이다.

“근데…. 어떻게 확인할 건데요?”

목표만 정했을 뿐이지 중간 과정은 하나도 생각해 두지 않았다. 무슨 방법으로 브리트니스가 있는 곳을 알아내 확인을 할 것인가.

이드는 어색하게 웃음 짓다 라미아를 달랑 들어 올려 안고는 방을 나왔다.

“그건 배부터 채우고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자.”

그 날의 파티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용병들 대부분은 거나하게 술이 취해 여기저기 뻗어버렸고, 가디언들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기분 좋게 알딸딸할 정도의 술을 마셨다. 이드와 라미아 역시 그 속에 섞여 이런저런 요리들을 맛보며 배를 채웠다. 그렇게 전투와 파티로 바빴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날 프랑스의 요청으로 날아왔던 각국의 가디언들은 놀랑과 세르네오의 감사 인사를 뒤로하고 각자의 국가로 돌아갔다. 영국에서 파견되었던 가디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페스테리온을 남겨두고 영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제로의 공격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몬스터가 날뛰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페스테리온을 남긴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존의 말 때문이었는데, 그 조사를 돕는다는 의미에서였다.

이드 일행들도 파리에 남았다. 오엘과 제이나노가 가려고 했던 곳인 만큼 그냥 남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네 사람을 파리의 가디언 본부에서는 기꺼이 받아주는 것은 물론 방도 새로 배정해 주는 친절까지 보여주었다. 그들로서는 대표전의 마지막에 보였던 이드의 무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때문일 것이다.

오엘은 머물기 시작한 그 날을 시작으로 다시 수련에 들어갔다. 이번 전투를 보면서 이드에게 지적받은 부분들을 중심으로 한 수련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련실에서 수련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수련실에 들른 가디언들 태반을 패배시킴으로써 영국에서와 같이 수련실의 얼음 공주로 확실히 자리매김해버렸다.

제이나노는 역시나 잠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피곤을 풀고서 파리 관광에 나서겠단다.

“와~ 이드님, 여기 공원도 정말 이뻐요.”

라미아가 주위를 둘러보며 수선을 떨었다. 지금 그녀와 이드는 중앙본부 근처에 있는 공원에 나와 있었다. 사람의 손으로 가꾸어진 이 공원은 파리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조화롭게 배치된 꽃과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오솔길. 조금 인공적인 맛이 난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정말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때문인가. 주위에는 꽤 다양한 사람들이 한 낮의 햇볕을 즐기며 여유 있는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드는 이곳 공원에 나온 이유를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린 채 주위 감상에 열을 올리는 그녀를 다시 현실로 끌고 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라미아, 라미아. 구경은 나중에 하고 우선 방법부터 찾아야지.”

브리트니스를 확인할 방법을 말이다.

“칫…. 그거야말로 공원 구경을 하고, 나중에 말해도 되잖아요.”

라미아는 이드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그러는 중에도 주위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마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이드의 입가로 차분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드는 두 사람이 공원에 간다는 말에 세르네오가 건네준 보온병을 열어 그 안의 차를 따랐다. 푸르른 자연의 향에 향긋한 차 향(茶香)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의논부터 하고 구경하는 게 더 느긋하잖아. 자, 받아.”

이드는 라미아에게 찻잔을 건네며 자신도 차를 홀짝거렸다. 누가 만들었는지 차 향이 아주 좋았다.

그때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특별히 뭔가 생각해 놓은 방법 같은 건 있으세요?”

“후루룩…. 아니, 없으니까 의논을 하자는 거지.”

하지만 그 후에도 이렇다 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의 상황에선 룬이란 소녀를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모습에서부터 현재 있는 위치까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제로의 단원들이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나왔을 때 그들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사로잡은 그들을 통해 제로의 본단을 찾는 방법. 지금으로선 그 한 가지 방법만이 가능 한 것 같았다. 제로의 공격이야 미리 예고장을 보내고 하는 것이니, 놀랑 본부장에게 부탁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라미아가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오엘과 제이나노와 잠시 헤어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럴지도….”

이드는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확실히 두 사람만 다니게 되면 본신 실력을 모두 드러내 놓아도 된다. 한마디로 전처럼 단거리 텔레포트만이 아닌 초장거리 텔레포트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있어도 텔레포트는 가능하다. 다만 그 뒤에 이어질 제이나노의 수다 섞인 질문들과 오엘의 은근한 재촉을 처리하는 일이 남게 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쉽게 헤어지긴 힘들 것 같은데…. 오엘은 디처팀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내 책임 하에 있고…. 제이나노의 경우엔 신의 계시네 어쩌네 하면 곤란해지잖아.”

“이야기는 해보자는 거죠. 두 사람의 생각이 어떻든. 자, 할 이야기 다 했으니 이제 주변 경치 감상이나 하자구요. 이드님….”

이드는 그 말과 함께 공원의 한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라미아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매달고 같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이야기할 건 다했다. 오늘은 느긋하게 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꺼내 봐야겠다. 잘 될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드와 라미아의 계획은 바로 다음 날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가디언을 통해 제로의 움직임을 알아보려고 놀랑과 세르네오를 찾았지만 두 사람 다 만나 볼 수 없었다. 가디언들이 돌아가기 전날 이야기했었던 세계 가디언 회의가 바로 오늘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회의 진행은 하루 종일 어쩌면 내일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드와 라미아는 다음 날 말을 꺼내보기로 하고 오엘과 제이나노를 찾았지만, 그들에게도 말을 붙이지도 못했다. 전혀 사제 같지 않은 사제인 제이나노는 어제 충분히 쉬었다며 파리 시내로 관광을 나가버렸고, 오엘은 오늘도 수련실에서 가디언들과 검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붙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꺼내보았겠는가.

이드와 라미아는 마주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그 날은 포기해 버렸다.

“싫어요.”

“그냥 함께 다니면 안될까요?”

아침부터 나서려는 오엘과 제이나노를 잡아 자신들만 잠시 따로 다니겠다고 건넨 말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답이었다.

이미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두 사람에겐 몇 가지 사실을 숨긴 채 대부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까 브리트니스가 자신들과 관련된 검이고, 그 검이 어쩌면 제로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제로를 찾아가 볼 것이라고. 위험하니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잠시 헤어져 있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특히나 제이나노에게 오히려 역효과만을 나타냈다. 그로 하여금 진짜 모험 같은 모험을 하게 됐다며 환호성을 내지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은근히 부담을 주는 오엘의 눈길이 합쳐지니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을 떼어놓는 일은 포기해야 했다.

결국 자신들의 허락을 받아내고서야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이드와 라미아는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렇게 되면 결국. 저 두 사람에게….. 본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건가?”

“빨리 일을 마치려면 어쩔 수 없죠.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움직이던가…. 그보다 오늘은 놀랑 본부장님이나 세르네오를 만나봐야죠.”

“아아… 오늘은 별일 없겠지. 말나온 김에 지금 가자.”

이드는 마침 라미아의 말에 생각난 일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라미아의 의견에 따라 세르네오를 먼저 찾았다. 제로의 움직임 정도라면 그녀에게 부탁해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놀랑 본부장보다는 편하고 라미아와도 친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의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드와 라미아가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세르네오는 책상 위에 한 뼘 높이로 싸여 있는 서류들을 처리하던 모습 그대로 두 사람을 맞아 주었다.

“거기 마음대로 앉아.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비서한테서 어제 나와 본부장님을 찾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응, 일이 있어서. 근데 어제는 회의가 상당히 길어질 것 같길래 그냥 돌아왔었지.”

라미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세르네오는 라미아의 말에 마침 이야기 잘 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드는 옆에서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미 세르네오와의 이야기는 그녀와 친한 라미아에게 넘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야…. 오전에 시작한 회의였는데. 늦은 밤까지 이어진 거 있지. 으~ 정말 지겨워 죽는 줄 알았어. 어차피 그런 문제가 나왔으면 즉각 조사해 보면 될걸. 뭔 말들이 그리 많은지. 된다. 안 된다. 각국 정부가 어떻다. 반응이 어떻다. 등등…. 으~ 정말 잠 오는 걸 참느라 혼났다니까.”

“헤헷…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났는데?”

“어떻게 할 게 뭐 있어. 처음부터 결론은 한 가지인걸. 당연히 조사해야지. 지금의 가디언들의 힘이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야. 더구나 없어서 안 될 존재들이고. 그런 우리들이 나서서 조사하겠다고 하면 정부 측에서도 뭐라고 터치하진 못 할 거야. 그리고 우리들이 조사하는 이상 사실은 숨길 수 없어.”

가디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말이다.

사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지금 세상에선 가디언을 함부로 억누를 정도의 힘을 가진 기관이나 조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몇몇 국가에선 가디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디언들이 봉인의 날 이전에 있었고, 지금도 있을지 모르는 일을 조사하겠다고 하면 막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드는 그 이야기에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존의 말이 사실이고 이번 조사에 그 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가디언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또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대부분 국가라는 단체는 그런 어두운 면을 지니고는 있지만 거의 모든 사건이 어둠에 묻혀버리기 때문에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가디언들이 손을 대고 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세계가 술렁일 거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이드는 입이 근질거렸다.

“그럼… 그 일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엔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요?”

“어머. 웬 존대? 너도 라미아처럼 편히 말해. 그리고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몰라. 하지만 사실이라면 지금처럼 정부에 협조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 밝혀지면 국민들에게도 대대적으로 알릴 계획이야.”

이어지는 세르네오의 말에 이드와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어제 찾아왔던 것과 같은 이유일 것 같은데….”

한참을 떠들어대며 할 말을 다한 세르네오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이드와 라미아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샥샥 돌아보았다.

“그게… 좀 부탁할 일이 있어.”

“부탁? 뭔데? 말해 봐. 대표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의 부탁인데 거절할 수 없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야. 그냥 앞으로 나타날 제로의 위치를 알고 싶어서 말이야. 그들이 공격 목표로 삼는 곳.”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뭐 하게?”

세르네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제로의 행방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고장이 보내지면 예고장을 받은 도시로부터 그 소식이 수도에 있는 가디언 중앙본부로 알려지고 그곳에서 다시 세계로 알려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알아서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라미아는 그런 그녀를 향해 오엘에게 했던 것과 같은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그 말을 들은 세르네오는 걱정스런 모습으로 두 사람이 하려는 일을 말렸다.

비록 제로가 악의 단체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싸우면서 생명을 죽여본 사람들이다.

이드와 라미아도 잘못하면 다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와 라미아의 생각을 도저히 꺾을 수 없었던 때문이었다.

소식이 들어오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부탁을 한 이드와 라미아는 방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짐들 중 큼직한 것들을 정리했다.

제로의 행방을 알게 되는 즉시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세르네오는 아무런 소식도 전해주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