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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화


447화

“굉장히 위험한 작업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 작업을 하다가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드는 내심 생각하고 있던 대답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라일론에서 변형된 금강선도를 확인했다. 그들이 가능했다면 엘프들 역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모르겠지만 완성된 무공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변형시키는 것은 중원의 무인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위험한 작업이다. 이유는 무공이 스스로의 신체를 이상적으로 통제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변형될 경우 그 대가는 육체와 내공에 대한 통제권 상실로 돌아온다. 통제를 벗어난 육체는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내공은 폭주한다. 무림에서는 이것을 주화입마라고 말한다. 무인으로서 쌓아 온 모든 시간과 노력이 무너지는 순간을 부르는 단어. 무인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말이다.

그런데 중원도 아닌 그레센에서 무공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론도 알지 못하는 엘프가 무공을 변형시킨 것이다. 당연히 위험한 순간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윌이 선선히 긍정했다.

“신관의 신성 마법과 회복 마법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겁니다.”

신성 마법과 회복 마법. 중원에는 존재하지 않는 힘이다. 신의 힘과 마나의 힘으로 생명체를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방법.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힘이라면 즉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상 상태에서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주화입마의 위험에서 벗어난 후에는 같은 작업이 끝없이 이어졌다. 엘프가 익힐 수 있는 무공을 찾기 위한 무공의 변형과 회복의 기계적인 반복.

그리고 끝없는 반복 작업 끝에 엘프들은 원하던 결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푸른 나무 마을의 엘프들은 빠른 속도로 강해졌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윌을 포함한 엘프들이 그렇게 강력해진 푸른 나무 마을의 힘이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여러분의 노력은 칭송받을 것입니다.”

이드는 그들의 노력에 존경을 표했다. 무공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만큼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원과 달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그 어려움과 고통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서로에 대한 인사가 오간 후 윌은 이드에게 변형된 무공에 대한 확인과 점검을 요청했다. 무공에 대해서는 그레센에서 이드보다 뛰어난 전문가는 없기 때문이었다. 완성 후 지금까지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확인을 받아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푸른 나무 마을이 아닌 다른 엘프들에게도 자신들이 변형시켜서 완성한 무공을 전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첫 번째는 오히려 이드가 원하던 일이었다. 자신이 전했던 무공이 어떻게 변형이 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인간과 엘프의 차이점을 만들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후에 우디에게 변형된 무공에 대해서 알려 달라고 하면 알려 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드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의 전수는 제가 허락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전해진 무공의 주인은 일리나니까요. 그리고 엘프들의 것으로 재탄생한 무공입니다. 푸른 나무 마을의 것이죠. 그래도 허락을 구하신다면, 당연히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오히려 바로 세상에 있는 모든 엘프들에게 뿌리지 않고 자신에게 물어봐 준 것이 고마운 이드였다. 이미 천지사방으로 무공을 뿌려 댄 제국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뭐, 이미 전수할 때부터 제대로 비밀이 유지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

같은 인간으로서 제국과 엘프가 보이는 행동의 차이에 입이 쓴 이드였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무공을 익히고 전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미 엘프들에게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뛰어난 검술과 마법이 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무공을 익힌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윌이 잠시 이드와 시선을 맞추더니 말했다.

“인간이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

간결한 대답이었다. 세세한 이유를 덧붙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묵직하고 답답하게 가슴을 치는 것 같은 윌의 말에 이드는 더 묻지 못했다.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뭐, 그런 거지. 집단의 힘이 강해지면 당연히 문제는 생기는 거니까. 그것보다 그 개량된 무공은 우리들도 배울 수 있을까? 우리 마을에도 전하고 싶은데.”

어색한 침묵이 싫었는지 채이나가 별것 아니라는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윌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는 이미 윌과 말을 트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채이나. 오히려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채이나의 말을 윌이 반겼다. 무공이란 것이 원래 책으로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수하려는 해당 마을에 무공을 정리한 책과 직접 전수할 인원 한 명을 함께 보낼 생각이었다. 해당 마을이 원한다면 배우고 싶은 인물을 마을로 부를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푸른 나무 마을에서 그레센의 엘프를 모두 감당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마오가 배우는 걸로.”

언제나 그렇지만 채이나가 일으킨 불똥은 마오에게 날아갔다.

“어머니, 루인 피스트를 수련할 시간도 빠듯합니다.”

“그럼 더 열심히 하면 되겠네. 아니면 내가 힘들게 배워서 널 가르쳐 줄까?”

유독 강조되는 ‘힘들게’라는 단어가 심히 두려운 마오는 이번에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래. 착하구나, 우리 아들. 언제나 열심이라 이 엄마는 기쁘다.”

채이나를 이기기에는 아직 요원해 보이는 마오였다.


“헤니, 좀 살살 하지 그랬니.”

폴라본은 양쪽 어깨에 올려진 아이들의 몸을 다시 추스르며 아쉬운 듯 수련장을 돌아봤다. 그의 옆에서는 조금 전 연무장 위에서 승자의 포즈를 취하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테이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잖아요. 눈감고도 피한다고 얼마나 잘난 체를 했는데요. 거기다 지는 사람은 세 달 노예라구요. 테이 노예는 죽어도 못 해요.”

헤니는 어지간히도 싫은지 말을 하면서도 진저리를 치다가 곧 음흉하게 웃었다. 일단 자신이 이겼기 때문에 테이를 세 달간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 아이는 알고 있을까. 폴라본은 이 녀석들의 관계가 어떻게 커나갈지 궁금해졌다.

“그런데요, 꼭 마을로 돌아가야 해요? 일리나 언니의 짝이라는 사람 싸우는 거 보고 싶어요.”

“쯧, 위험해서 안 돼! 조금이라도 위험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너희들을 둘 수는 없다. 그래서 평소에도 절대 수련장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하는 거 알지?”

친근하던 폴라본의 목소리에 단단히 날이 서서 떨어졌다.

“칫!”

잘 안다. 그 때문에 웬만한 장난을 쳐도 신경 쓰지 않는 어른들이 수련장이나, 결계 가까이 가는 일에는 가차 없다. 일전의 정령 딸랑이는 장난일 정도로 엄한 벌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도 수련장이나 결계 가까이 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채이나와 이드로 인해서 특별히 수련장에 들어갈 수 있었을 뿐이다.

짧게 혀를 차는 헤니의 모습에 폴라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아쉬운 건 나다, 이 녀석아. 이야기로만 들었던 그 사람의 실력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이다. 아, 아깝다. 아까워.’

이야기가 끝난 후에 윌이 이드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무인의 습성인지, 수련장이라는 장소에 온다고 생각한 순간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드의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그러자 윌의 뒤로 주르륵 엘프들이 줄을 섰다.

나란히 앉아 있던 채이나가 ‘오! 메인 이벤트다!’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폴라본도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이벤트에 끼려고 했지만 불행히도 그때까지 연무장을 차지하고 있던 아이들의 호송이라는 중요 임무에 걸려 버렸다.

‘정말 아쉽다.’

어떻게 다음에는 기회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폴라본에게 입을 삐죽이던 헤니가 물었다.

“그런데 일리나 언니 연인의 이름이 뭐예요? 라미아랑 항상 같이 있는 사람이요. 들었는데 까먹었어요.”

이드의 존재감이란, 아이들에게는 아직 그 정도였다.


“거 봐. 실력 발휘 할 거라고 했지?”

“큼, 저쪽에서 부탁해서 하는 거지, 제가 한다고 그런 적 없네요. 뭐.”

씨익 웃어 보이는 채이나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이드가 다시 채이나를 불렀다.

“그런데 저 녀석은 왜 저기 있는 거예요?”

이드는 자신과의 대련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의 가운데에 서 있는 마오를 바라보았다.

“너하고 한판 하고 싶었나 보지.”

맞는 말이다. 대련을 하려고 서 있는 줄에 서 있는데,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긴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너무 길어서 수련장의 끝에 닿자 이리저리 꼬이고 뒤틀려 구겨진 줄을 보고 일리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대련이니만큼 생명에 지장은 없겠지만 인원이 너무 많았다.

“좀 많기는 하죠?”

“많은 정도가 아니라, 오늘 안에 마오 녀석까지 상대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마오는 긴 줄의 중간 정도에 끼어들어 있었다. 새하얀 얼굴들 사이로 까무잡잡한 건강미 넘치는 얼굴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게요. 그렇다고 서둘러 대충 끝낼 수도 없고요.”

윌이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대련이 일종의 지도 대련 형태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드였다. 단순히 빠른 제압으로는 상대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시간을 들여서는 오늘 안에 끝나기는 글렀다. 집을 나올 때 세운 오후의 나들이 계획이 파탄 나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가만히 긴 줄을 바라보던 일리나가 줄의 선두에 서 있는 윌에게 척척 걸어갔다. 잠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던 일리나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돌아왔다.

“열 명만 상대하면 돼요.”

“정말요? 그럼 나머지는요?”

이드도 오랜만에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릴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지금 인원은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루에 열 명씩 상대하기로 했어요. 이드는 며칠 머물다 떠날 사람이 아니라 우리 마을의 가족이니까요.”

“그 정도면 하루 일과로 나쁘지 않겠네요.”

이드는 일리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서 딱히 할 일이 없는 이드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또 마을의 일원으로 빠르게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인 듯도 했다. 반대쪽에서도 말이 전해졌는지 선두의 열 명을 남겨 두고, 길게 줄을 서 있던 엘프들이 흩어지며 관전 모드로 변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윌이 연무장 위로 올라서며 말했다.

“그럼 첫 상대는 제가 하겠습니다!”

이드는 윌의 말에 양팔을 휘두르며 연무장으로 올라섰다.

“그럼 나도 오늘 할당량을 채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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