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25화
662화
케마란은 정말 펑펑 울어 댔다. 누가 보면 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냈다고 착각할 법한 모습이다.
그러나 방에 있는 누구도 그녀의 모습에 따뜻한 위로를 보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미적지근한 눈으로 링스피어를 끌어안은 케마란의 등을 바라보았다.
[가만 보면 쟤도 사람 말을 참 안 듣는 것 같지 않아요?]
서러운 울음소리를 뚫고 튀어나온 라미아의 말에 이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면 진작에 링스피어를 버리고 검을 들었겠지. 고집도 고집이지만, 저런 면이 있으니까 링스피어를 여기까지 다듬어 낼 수 있었던 거 아니겠어?”
[그건 인정.]
링스피어를 사용한 후부터 케마란은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무기를 바꾸라는 충고 어린 강요를 받아야 했다.
기형 병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다 검이나 창과 같은 전통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기사들에게 미움을 받기까지 한다. 결국 그녀를 걱정하기에 건넨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의 첫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싸우면서도 링스피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녀를 처음 본 자리에서도 링스피어 때문에 네리베르와 싸우고 있었을 정도다.
그런 주변의 압박에도 케마란은 링스피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링스피어를 손에 쥔 때가 미묘한 나이였기 때문일까? 록이 사춘기 소녀의 반항심이 형상화된 무기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했지만, 이미 그와 비슷한 형태의 미첨도라는 훌륭한 무기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드에게는 대단히 훌륭한 무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번뜩이는 영감으로 미첨도를 만들어 낸 케마란이 대단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기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링스피어를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 창법까지 꾸준히 다듬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단순히 치기 어린 반항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번 반항했다가는 권총이라도 만들 기세가 아닌가.
그리고 이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고집과 외골수적인 기질이 필요하다.
이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는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보통은 천재의 특별함으로 잘 포장되기는 하지만, 정작 그 천재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랄 맞은 인간 정도로 보이지 않았을까? 당장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낸 베토벤의 성격도 까다롭고 괴팍해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만큼 독특한 정신세계와 고집스러운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작품이 나왔을 것이라고, 이상하게 납득이 되기도 했다. 타인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려서야 온전히 자신의 정신세계를 투영한 작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이드는 링스피어를 만들어 낸 케마란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다고 보았다.
두 사람이 케마란의 성격을 주제로 툭툭 말을 던지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자니 어느 순간 울음소리가 뚝 그쳐 버렸다.
우는 중에 들려온 두 사람의 이야기에 케마란이 울음을 그친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얼굴을 박고 움찔거리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 착각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혹시 링스피어를 포기하지 않아도…………?”
그렇다면 정말 기쁜 일이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죽었다 살아 돌아오면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동시에 엉뚱한 지레짐작으로 링스피어를 안고 대성통곡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소름 끼치도록 부끄러워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벌게진 목덜미로 인해 그녀가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이 이미 노출된 상태라는 건 그녀 본인만 몰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기 심히 거북했던 네리베르가 악우의 의리로 케마란의 귓가에 속삭였다.
“늘 차분히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내가 정말 못살아. 그만하고 빨리 일어나요. 마스터 앞에서 언제까지 흉한 꼴을 보일 거예요?”
“알았어. 일어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네리베르의 힐책에 케마란이 작게 대답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혀야 했기 때문에 당장 일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덜미가 얼굴보다 더 붉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는 사람이 하는 말 좀 끝까지 듣자. 알았지?]
어색한 표정으로 일어선 케마란을 향해 라미아가 말했다.
“으응. 헤헤헤.”
“그래, 그래. 이번엔 잘 들어 봐. 라미아의 말은 어디까지나 링스피어’만’ 살릴 수 없다는 거였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드는 부끄러워하는 케마란의 모습이 귀여워 큭큭거리며 말했다.
“네. 링스피어‘만’이라는 거니까, 코어를 빼내기 힘들다는 이야기죠?”
“바로 그거야.”
“하지만 그래서야 링스피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 아닌가요?”
앞서의 실수 탓에 케마란이 조금 자신 없다는 듯 눈치를 보며 말하자, 라미아가 못다 한 설명을 마무리했다.
[절반은 정답이다. 일단 링스피어에서 코어를 빼내기는 힘들어. 놈이 다시 뽑혀 나오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링스피어에 달라붙어 있거든. 이 상태에서 링스피어를 파괴하고 코어만 뽑아낼 경우 코어의 손상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겠지. 결론적으로 링스피어만 온전히 사용하는 것도 힘들고, 코어만 확보하는 것도 힘든 상태야.]
“그………… 일단 링스피어를 부수지 않겠다는 거지?”
설명을 들으며 일희일비하던 케마란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래. 하지만 이 상태로는 링스피어만 온전히 사용하는 것도 힘들어. 무엇보다 코어가 기어든 링스피어는 더 이상 이전의 링스피어가 아닐 테니까. 즉, 네가 링스피어를 계속 사용하고 싶어도, 이대로는 못 쓴다는 거지.]
말은 쉽게 했지만 사실 이 안에는 굉장히 고차원적인 정신체의 안정화와 존재 결정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다. 하지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말하지 않았다.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설명은 허공에 헛소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복잡한 말을 뺀 덕분인지, 아니면 귀를 기울였기 때문인지 케마란도 이번엔 잘 알아들었다.
“즉, 적당한 조치만 취하면 링스피어를 계속 사용해도 된다는 거지?”
[어때, 기쁜 소식이지?]
“그렇기는 한데. 코어라는 그 빛 덩이가 안에 들어 있는 건 어쩐지 좀………….”
[어쩌겠니. 분리가 어려운걸. 그래서 싫어?]
“조금 마음이 복잡해. 링스피어가 싫은 건 아닌데, 그 속에 코어라는 찝찝한 물건이 섞였다고 하니까 어쩐지…………….”
살짝 망설이던 케마란이 슬쩍 이드를 돌아본 후 말했다.
“바람피우고 돌아온 애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미묘해.”
“푸하하하하-“
그녀의 엉뚱한 발언에 웃음이 터졌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난 왜 봐! 난 바람피운 적 없다고!”
미묘하게 기분이 나쁜 이드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럼 이 링스피어는 포기하는 거야? 널 위해서 굉장히 어렵게 방법을 찾았는데.]
“음…….”
케마란은 울고불고했던 사실이 무색하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뭐야, 부서지는 것보다 코어가 섞이는 것이 더 싫다는 거야?”
이드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케마란의 말과 달리 링스피어 실제로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던 차에 라미아의 말이 이어졌다.
[어, 정말 포기하는 거야? 잘만 되면 전설의 무기처럼 뛰어나지는 못하겠지만, 코어가 들어가서 에고 링스피어가 될……………]
“당연히! 나만의 링스피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지!”
에고 링스피어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몸을 던진 케마란이 라미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혼을 담아 소리쳤다.
실로 뛰어난 무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무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라미아는 자신의 의도대로 반응하는 케마란을 보며 흡족해했다.
사실, 그녀가 했던 말과 달리 라미아가 구상한 것은 케마란을 위하기보다는 코어를 좀 더 온전히 손에 넣는 방법이었다. 물론 케마란에게 말한 것 중에 거짓은 없다.
“다만 들인 노력에 비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겠어?”
그때, 뒤에 서 있던 네리베르가 조용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 그건 어떻게 봐도 라미아가 자기 뜻대로 유도한 건데. 그것도 모르고!’
저런 철없는 여자와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후회스러워 무르고 싶었다. 차분히 생각하라고 행동하라고 한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라미아의 말에 홀딱 넘어가 버린 것인지. 라미아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더라도, 케마란의 태도는 분명 문제였다.
[자, 그럼 준비해 볼까?]
“벌써?”
[놀면 뭐해? 특히 케마란이 하는 일이 중요하니까,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지.]
“무슨 일이든 말만 해. 에고 링스피어를 위해서라면!”
“……바보.”
비록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이드의 확답을 들은 워스는 곧장 검성으로 돌아와 페시딘을 만났다.
“그런가. 결국 거절이군.”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 비밀은 확실히 지켜 주기로 했네. 그건 믿어도 좋을 것 같아.”
“그게 뭐 중요한 일인가. 이미 체면을 구긴 일이야. 따로 말이 돌아도 이제는 상관이 없어. 그보다는 이렇게 거절당할 일에 괜히 자네를 움직이게 만들어서 미안하군. 자네 이름이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닌데 말이야.”
“그런 말 말아. 어차피 나서야 했다면 자네보다 내가 나서는 것이 맞으니까. 그리고 이드와의 만남은 나쁘지 않았어. 두 번째 만나는 것이지만, 확실히 마음에 들었거든.”
워스는 거리낌 없는 얼굴로 이드에 대한 호감을 나타냈다. 혹여, 이번 일로 이드에 대한 페시딘의 분노가 일어나지 않기를 원해서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지만 자네를 헛걸음시킨 것은 내 실수야. 상대의 말을 잘못 읽고, 있지도 않은 속뜻을 헤아려 혼자 얼간이 짓을 한 꼴이 아닌가.”
“허허, 자네 지금 날 웃길 생각인가? 이 사람아, 우리 젊은 시절에 자네가 전쟁터에서 실수하던 걸 생각해. 이번 같은 일은 웃음거리도 안 되었다고.”
“웃긴 건 자네지. 지금 헛걸음했다고 있지도 않은 유언비어를 만들면 쓰나.”
워스의 말에 페시딘이 발끈해서 받아쳤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 낸 가벼운 농담에 두 검왕은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자네가 시킨 일도 끝났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 보겠네.”
“고생했네.”
페시딘은 자신의 부탁에 체면을 생각지 않고 나서 준 워스를 배웅하고 돌아와 턱을 쓸었다.
과연 워스의 노력 덕분인지 지금 페시딘에게 이드에 대한 분노는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인정할 줄 아는 남자였다.
“하지만 분노와 정치적인 견제는 엄연히 다른 일이지. 밖에 누구 있느냐.”
페시딘의 부름에 문이 열리고 기사가 들어왔다.
“인테그란 후작에게 내일 내가 만나길 원한다고 전해라.”
“충!”
기사를 내보내 페시딘은 이어 서랍 속에서 통신안을 꺼내 들고 황금 눈동자를 열었다.
“검왕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혹, 무슨 변동 사항이라도?”
일전 있었던 일 때문인지 라울이 그의 통신에 답했다.
“변동 사항은 나보다는 그쪽에 있을 것 같네만.”
“네?”
“조만간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수도에 갈 것 같네.”
“호오. 그가 결정을 내렸나 보군요. 그가 수도에 온다면 당연히 수도의 화제가 바뀌겠군요. 수도에 있는 자치고 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울이 반색하며 말했다.
“자네는 아닌 모양이지?”
“저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하하하.”
“그와 관련해서 미리 조율할 것이 있네. 시끄러운 인사가 움직이는 일인데,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비록 손을 잡자는 제의는 거절당했지만, 이드가 어디로 움직일지는 알았다. 이도 정보의 선점이라면 선점.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히죽.
순간 웃음소리도 없이 황금 눈동자가 웃는 것처럼 보이더니 라울의 목소리가 울렸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협조하지요.”
페시딘은 당연히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그 후 한참 동안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