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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38화


675화

소드 팰러스 외곽에는 몇 개의 마을이 있다.

이곳은 소드 팰러스에서 잡일을 하는 평민들과 장사를 위해 모여든 상인들, 그리고 멀리에서 소드 팰러스로 수련을 온 수련생을 호위한 용병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처음엔 작았던 것이 시간이 흐르며 소드 팰러스에 모여드는 수련자에 비례하여 커져 갔다.

무엇보다 들어가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적어 소드 팰러스 안에 집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가난한 수련자들이 수련은 소드 팰러스에서 하고 집은 마을에 구해 두는 경우가 많았다. 소드 팰러스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방식은 달랐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도 소드 팰러스는 삶의 중심이었다. 그런 공통점으로 인해 소드 팰러스의 안과 밖의 사람들은 묘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마을에 섞이지 못하는 소수가 있다.

바로 처음부터 소드 팰러스의 입성을 거부당한 자들과 소드 팰러스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이들은 마을에 살고 있으면서도, 온전한 마을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소드 팰러스로 인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소드 팰러스의 인정을 받지 못한 방해꾼 같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혹여 이들과 관련되어 소드 팰러스에 거부라도 당하는 날에는 수입부터 생활까지 온전히 소드 팰러스에 기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으니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멀리하는 이유는 있었다. 제국에 세워졌지만 무공을 가르침에 있어서 출신과 신분을 보지 않는 소드 팰러스에서 입성조차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인물에게 그만한 문제가 있다는 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짓을 해야 소드 팰러스에서 쫓겨날 수 있는 것인가?

차라리 강간이나 살인이라면 소드 팰러스 안에서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고 끝난다. 죽을 짓을 한 자들은 사형을 내리고, 죄에 따라 노역과 감금형에 처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추방이라니? 어떤 파렴치한 짓을 했을까? 아니면 도저히 눈 뜨고 보지 못할 멍청한 짓을 벌인 걸까? 혹은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흉한 꼴을 보였을까?

그와 같은 이유에서 마을 사람들으 소드 팰러스에서 쫓겨난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사실 이런 일도 쉽지는 않다.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대로 그만큼 잔뜩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소드 팰러스에서 쫓겨나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기사의 성지라 불리는 곳에서 사고를 치고 인생을 망치고 싶은 멍청이는 정말 극소수뿐이니까. 그런데 최근 그런 극소수에 속하는 새로운 추방자가 마을에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새로운 추방자에 대해서 두려움이나 거부감보다 그가 추방당한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이유에 비웃음을 보이며 기꺼이 그를 외면했다.

수업을 받고 있는 선생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자신이 배우고 있던 수업을 수업권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권리로 포장해서 팔아 버리다니. 그것도 마인드 마스터 후예의 수업을!

이 어찌 혀를 차며 비웃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팔았으면 돈을 챙겨 빨리 내뺄 것이지, 뻔뻔하게 사기를 치려다 걸려서 돈은 압수당하고 공식적으로 추방당했다.

“그냥 미친놈인 거야. 가까이도 가지마. 멍청함이 옮는다!”

배우지 못한 평민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멍청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빅터는 힘없는 평민들의 조롱과 비웃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한심하고 억울해서다. 너무 답답해서 밤에는 혼자 집에서 울기도 한다. 진짜로.

“젠장! 난 아니라고. 그냥 술에 취해서 헛소리한 것뿐인데, 왜! 그런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잖아! 그런데 도대체 왜 나만! 난 억울해! 이대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날 죽일 거야. 한 푼도 주지 않고 가문에서 쫓겨난다고. 절대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다시, 다시 소드 팰러스로 돌아가야 해. 돌아가서 이드 님께 용서를 받고 다시 들어가야 내가 살 수 있어.”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멍하니 소드 팰러스를 바라보는 것이 일인 그가 하루에 몇 번이나 소리치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무엘 백작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몰랐다. 오히려 검성에서 조사받으며 사무엘 백작과 살롱의 마담, 그리고 후작가의 둘째 공자라는 로터스 경과 대면하고 진짜 자신이 술김에 수업권을 팔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드가 수업을 연 후 그 수업을 받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수련생들이 재미로 자신들의 수업이 얼마짜리라는 농담을 했던 것이 떠올라 그랬을 수 있겠다고 인정해 버린 것이다.

증인도 있고, 본인이 인정해 버렸기 때문에 클라인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는 않지만 본인이 울면서 자신이 한 것 같다고 용서를 비는데, 어쩌겠는가?

클라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빅터의 추방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힘들게 수사해서 빅터의 무죄를 증명하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누가 뭐래도 빅터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드를 부정하고 삼검왕에게 꼬리를 흔든 자였으니까. 오히려 벌을 준다면 몰라도 그를 위해 무고를 밝혀야 할 의리는 없었다.

빅터를 제외하고 이 일로 피해를 보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추방당한 후 빅터는 마을에 정착했다.

그리고 꾸준히 소드 팰러스로 돌아가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드 팰러스의 출입은 입구에서 원천 봉쇄당했고, 친구들은 아무리 연락해도 만나 주지 않았다. 입구에서 죽치다 겨우 만난 동기는 무서운 똥을 보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로 도망치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이드를 만나서 용서를 받아야 그나마 소드 팰러스로 복귀할 가망성이 있을 텐데, 도저히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편을 들었던 마르텔에게 사정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삼검왕이 굳이 자신 따위를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찾아갔다가 거부당한 경험도 그런 생각에 힘을 더했다.

무엇보다 마르텔이 어떻게 나올지가 두려웠다.

수업권을 팔았다는 것을 안다면 사정을 들어 주기보다 자신의 죄를 물어 목을 베어 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수업을 통해 얼굴을 익힌 이드가 편했다. 마르텔의 편을 들고 가르침을 부정당했으면서도 자신을 탓하지 않은 이드라면 자신을 용서해 줄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럼 뭐해! 얼굴을 봐야 용서를 빌지.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집에서도 알게 될 테고, 지원금도 곧 끊어질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원망과 걱정과 분노의 감정을 급박하게 오락가락하는 그의 정신은 거의 정상이 아닌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젠장. 이쯤이면 한 번 나올 때도 됐잖아. 매일 수업에 열심인 것도 아니면서! 빨리 기어 나와야 내가 사과를 하건 용서를 빌건 할 거 아냐!” 기한 없는 기다림과 조급함이 슬금슬금 이드를 향한 분노로 변해 갔다.

그때쯤이었다. 이드가 황제의 부름을 받아 황궁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 뒤를 따라 이드가 황궁과 소드 팰러스를 저울질하다 황궁을 택했다는 소리도 들려왔지만 빅터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황궁이든 소드 팰러스든 상관없어. 싹싹 빌어서 용서받은 후 이드의 무공만 배울 수 있다면 황궁이건 소드 팰러스건 무슨 상관이야. 가자! 황궁으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빅터는 미친 듯이 짐을 챙겨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모든 기사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짝짝짝!

“환영한다, 꼬맹이들.”

“입단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빨라!”

“둘 다 엘리트잖아. 크게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입단 시기가 좀 위험한 거 아냐? 곧 출동도 있는데.”

귀여워해 주던 동생들의 입단에 모두 기대와 덕담을 해 왔다. 개중에 걱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입단을 반대하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그 걱정조차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스폴과 데일리가 매일 수련장에 나가며 두 사람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이야기해 둔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기사라면 위험한 전장을 겪는 것은 당연하고, 또 선배로서 후배를 잘 돌보면 된다는데 반박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걸 의심하는 일은 곧 은색 기사단의 힘을 의심하는 일이니까.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이라면 신입 정도는 충분히 돌볼 수 있다. 기사들은 누구 하나 없이 그렇게 자신했다. 그리고 그중 누구보다 두 사람을 반기는 기사가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 은색 기사단의 막내였던 기사 자오였다.

“잘 왔다. 내가 얼마나 너희 입단을 기다렸는지 너희들은 모를 거다. 정말 격하게 환영한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직속이야. 내 말만 들으면 돼!”

“휘익~ 자오가 드디어 막내 탈출이구나.”

“크흠, 본래 신입이 들어오면 환영회를 열지만, 지금 너희들이 보고 있듯이 곧 중요한 임무가 있을 예정이다. 너희들의 환영회는 그 뒤다.”

“환영회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은색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는데 환영회 따위!

자오는 두 사람의 반응에 고개를 저었다.

“환영회는 꼭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의식이니까.”

“대신, 너희에게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임무를 내리겠다.”

“끅끅끅.”

“자오가 원래 저렇게 말을 번드르르하게 잘했었어?”

주변 기사들 사이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귓속에 콕콕 박히는 그 소리에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불안한 얼굴을 했지만 그 앞에 선 자오의 근엄한 선배 표정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뻔뻔한 얼굴로 두 사람을 기사단 창고 앞으로 데려갔다.

창고 앞에는 기사들이 손질하고 있는 무구와 똑같은 무구들과 마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옆으로는 손질하다 만 듯한 무구들과 손질 도구들이 뒹굴고 있었다.

‘설마 우리보고 저 무구들을 손질하라는 건 아니겠지?”

기사가 되어서 그런 일을 할까 싶지만 분위기로 보아 틀리지 않아 보였다. 쌓여 있는 무구의 숫자만큼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지금부터 너희 임무는 여기 있는 무구를 손질하는 것이다. 너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곧 있을 작전에서 활약할 동료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 이보다 하나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는 임무는 없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크~ 은색 기사단의 일원이 되어서 하는 첫 일이 겨우 무구 손질이라니.’

케마란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 자오 경, 이런 건 따로 관리하는 하인이 있지 않습니까?”

“있다. 그러나 우리 은색 기사단에서는 전투에 나서기 전 꼭 자신의 손으로 다시 점검하는 것이 규칙이다. 설마 넌 자신의 무구를 온전히 타인의 손에 맡겨 둘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험악한 자오의 표정에 케마란이 즉답했다.

그러나 하인이나 자신들이나 타인이긴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서라 그 이야기를 했다가는 직속상관에게 찍힌다.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닌데 첫날부터 찍혀서야 기사 생(生)이 괴롭지.’

단체 생활에서 튀어 봤자 고문관 이상은 되지 못한다.

“케마란, 넌 뭘 멍하니 있나? 네 동기는 이미 일하고 있는데!”

“네? 앗, 어느새 !”

버럭 소리치는 자오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네리베르는 어느새 무구를 닦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쁜 계집애. 혼자 잘 보이려고!’

금방 사태를 파악한 케마란은 번개처럼 바닥에 널린 손질 도구를 쥐고 무구를 닦기 시작했다. 딱 네리베르와 마주 앉아서. 눈을 번뜩이며. 경쟁하듯이!

자오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무구를 들어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선배 기사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선배 기분 내는 건 좋은데. 그러다 아이들 무구 치수 재서 보고하는 거 잊지 마라. 잘못하면 후배들 보는 앞에서 망신당한다.”

“아차! 고마워요, 선배님.”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에 얼굴을 붉힌 자오가 선배 기사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막내로서 배워야 할 것이 끝난 대신 선배로서 할 일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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